정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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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인표.jpg
출생
1898년 12월 22일
전라북도 완주군
사망
1957년 5월 30일
충청남도 정읍군
종교
보천교, 미륵불교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미륵불교 창시자.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인표는 1898년 12월 22일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보천교 신자로서 차경석을 추종하면서도 미륵불이 세상에 강림할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별도로 수양 생활을 지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태양이 입으로 들어가는 꿈을 꿨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선관(仙官)이 나타나 미륵산(모악산)으로 가라는 계시를 내려주었다고 한다. 이에 그는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의 미륵산 산제당에서 오주문(五呪文)으로 치성을 드렸고, 사흘 뒤인 1934년 1월 천신으로부터 도통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미륵불의 성령이 자기에게 접응되었으므로 자신은 곧 인불(人佛)이라 자처하면서 그 길로 하산하여 과거 김형렬(金亨烈)이 이끌었던 신도들을 규합하여 미륵불교의 재기를 꾀하며 포교활동을 하다가 1938년 김제 백산에서 신도공사(神道公事)를 건립하고 그해 태인에 교단을 창설했다.

한편, 그는 1938년 4월부터 정읍에서 보천교도들이 조직한 비밀결사단체 신인동맹(神人同盟)에 가담했다. 신인동맹은 일제패망을 기원하는 한편 국권회복에 앞장서기를 결의하고 대원 50여명으로 조(組)를 편성하여 경찰서 습격 등을 계획하였다. 그는 설립 초기부터 왕성하게 활동하며 동지들을 규합했고, 1940년 무렵엔 신인동맹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9840년 7월 15일, 정인표는 교도 이신호의 집에서 미륵불교의 행사를 강론했다. 이때 그는 일본에 '사(死)' 자를, 조선에 '생(生)' 자를, 소화(昭和: 쇼와 덴노의 연호)에 '락(落)'자를 각각 붙이고 "일망무지(日亡無地: 일본이 망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통해 일본은 죽고, 조선은 살고, 소화는 떨어지고, 일본은 망하므로 조국 광복을 위해 성심껏 기도를 계속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밀정 김병환(金炳煥)에 의해 경찰에게 전해졌고, 1940년 12월 15일 미륵불교 신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체포된 그는 가혹한 고문을 받다가 1943년 10월 6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으로 징역 8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 광복 직후 석방되었다.

광복 후 정읍에서 포교를 이어간 그는 1950년 정읍군 태인면 대성리에 교당을 세우고 미륵불영원회(彌勒佛永園會)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는 포교활동과 더불어 아동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인재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고 1951년에는 명륜고등공민학교를 인수하는 등 교화교육도 병행하였다. 또 1952년에는 미륵불을 주불로 하고 석가와 공자를 모시는 신앙의 체계를 확립하는 한편, 본부를 태인면 태흥리로 옮겨 대성미륵대장전, 명부전, 칠성전을 건립하는 등 교화의 터전을 굳게 하였다.

1957년 5월 30일 정읍에서 정공일(鄭公一)에게 교조 자리를 물려준 뒤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정인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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