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하/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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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데뷔 전
3. 데뷔 후부터 무한도전 이전까지
3.1. 노브레인 서바이버
4. 무한도전
4.1. 무한도전 종영 후
5. 연기 활동
6. 기타 프로그램
7. 유튜버
8. MC 민지


1. 개요[편집]


코미디언 정준하의 활동을 서술한 문서.


2. 데뷔 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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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3월 18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방동(現 동작구 대방동)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고,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게다가 4대 독자다.[1] 해피투게더 프렌즈에 출연했을 때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부잣집 도련님이라서 하루에 2~3명의 여학생들이 정준하 집 앞에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남이었다고 한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단역이나마 영화배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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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미 군수물자를 다루던 사업이었다고) 힘들어지면서 어머니가 보험사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책임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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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부터 조금 특이한 취미(?)를 가지긴 했었지만 별 탈 없이 잘 지낸 듯. 무한도전에서 공개된 그 당시 사진을 보면 선글라스를 끼고 모형 총을 들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었다. 심지어 상의 탈의... 아무래도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람보를 흉내낸 듯하다.

대입 시험을 봤는데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계속 재수를 하고 삼수, 그리고 4수까지 했는데도 뜻대로 일이 안 풀리자[2] 결국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 포장마차 등등 별의별 일들을 다 했던 듯. 다행히 포장마차는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장사가 아주 잘 되었다고 한다. 정준하 말로는 대입을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 자신이 4대 독자라 부모가 유독 예뻐해줘서 꼭 좋은 직업을 가져서 부모를 자랑스럽게 해드리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4수까지 했는데도 공부가 잘 안 되자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정준하가 말하길, 4수까지 하고도 부담없이 아르바이트 전선으로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군대 면제[3]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군대 면제 덕분에 남들보다 큰 부담없이 4수까지 하고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 들어서 진짜 온갖 일을 다 해봤다고 한다. 형광펜 공장과 도자기 공장에서 일해보고, 출장 뷔페와 냉동창고에서도 일해봤다고 한다. 이는 무한도전 극한알바 편에서 일부 언급된다.


3. 데뷔 후부터 무한도전 이전까지[편집]


포장마차를 차린 후 장사가 잘 돼서 돈을 꽤 버는 등 나름대로 소소하게 승승장구를 하던 중 어찌어찌하여 방송국에 들어가게 되는데, 경찰청 사람들의 스태프로 일하다가 기획사에서 매니저 자리 제의가 들어와서 매니저가 되었다. 당시엔 전담 연예인이 룰라였었다고. [4] 룰라의 데뷔 직전까지 그 회사에 있다가 한 신생 기획사에서 실장 제의가 들어왔는데 그게 바로 이휘재가 소속된 곳이었다. 그 회사는 사실 사장과 정준하, 경리직원 뿐인 조그만 회사였다. 그럼에도 실장 자리를 맡은 이유는 정준하 본인이 방송국 스태프 시절 막내로 고생했던 것 때문에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서 직함 뿐이라곤 해도 실장이 되기를 원하여서 그랬다고 한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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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테마극장에서 웨이터역으로 데뷔[6]
1996년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게스트로 등장

그렇게 이직을 한 후 이휘재 매니저로 있다가, 매니저 중에 재미있는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MBC 테마극장 제작진의 건의로 테마극장에 고정 출연하게 된다. 여러 작품 속에 카메오로 알음알음 출연했는데, 이게 인기를 끌면서 상당한 양의 팬레터가 오고, 집 앞에서 팬들이 기다리는 등 이 때부터 연예인급의 큰 인기를 끌어 방송에 자주 나오게 된다. 역할이 매번 바뀌는 배우라는 직업이 상당히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 덕택에 무도 멤버들 중에서 연기 경험이 제일 많은 멤버로 손꼽히고 있으며, 지금도 연기 관련 기획을 하면 제일 돋보인다. 심지어 목소리 연기까지 잘하는 걸 봐서는 연기의 구분도 잘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무한도전 주말의 명화 특집에서 1인 2역을 했을 때 완벽한 목소리 나누기를 선보였다. 실제로 방송분을 들어보면 스티브와 트러블 검의 보이스가 완전히 다르다. 심지어 모르고 들으면 정준하인지도 모를 정도. 또한 뮤지컬 출연이 잦은 것도 어쩌면 이러한 본인 취향의 연장선상 일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이휘재가 군 입대를 하면서 매니저를 그만두고 난 직후, 1997년까지 배우 생활을 하다가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에 흥미가 생겨 배우의 신분으로 MBC에 지원해 특채 MBC 개그맨이 되었다. 때문에 근근이 '(前) 이휘재 매니저이자 (現) 배우인 사람이 낙하산 타고 들어왔다 뮈하러 왔냐?'면서 박명수 같은 공채 개그맨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다. 정준하는 배우 겸 방송인 그리고 코미디언 등 다양한 삶을 사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살아가고 싶었던 듯 하다.

무도에서 박명수에게 한 이야기로 미루어 보면, 특채로 뽑혀서 희극인실에 인사 온 첫 날부터 박명수가 구박한 듯. 박명수 문서를 봐도 나오지만 그는 이훈도 특채라고 폭행사건 터지기 전까지 엄청 구박했다고 한다. 사실 굳이 박명수 뿐만 아니라 방송국 공채들은 정통파 직계 혈통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편인데, 희극인들의 경우 엄격한 선후배 관계와 더불어 이런 공채 자부심이 유독 강하다.[7] 박명수의 이런 태도도 그런 공채 희극인 특유의 똥군기 문화에서 비롯된 듯.[8] 물론 박명수는 당시 개그맨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다른 이들의 비해선 군기 잡기가 심하지 않았으며 공채 후배에게는 무척 잘해주었다고 한다.

물론 갈수록 공채보다 특채의 비율이 높아져서 공채의 명성이 유명무실해지고, 또 기존 엄격한 방송계 상하관계 속에서 터져버린 후배 집단 구타 사건 같은 똥군기 병크로 인해 공채들의 이미지가 많이 실추되었으며, 방송 중 후배가 선배에게 비난을 폭풍같이 쏟아내거나 타 방송국의 프로그램 이름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언급해도 될 정도로 방송계 벽이 많이 허물어진 최근에는 덜한 듯 하지만...방송에서의 모습과 그 외의 모습이 꼭 100% 일치하란 법은 없으니 모를 일이다.[9]


3.1. 노브레인 서바이버[편집]



그냥 저냥 이름만 알려진 수준이었던 그가 대박을 터뜨린 것은 2003년 코미디 하우스의 한 코너였던 노브레인 서바이버. 이 때의 바보 연기로 그는 단숨에 스타에 올랐다.[10]

이 당시 빵 터진 유행어로

~가 ~라는 편견은 버려~!


그런데 그만!!


어 이거 흥미진진 한데 후비고~


그것은 ~을 두 번 죽이는 거라고~


전국의 ~하는 여러분은 클릭~ 하세요! 떠블유 떠블유 쩜~


이 코너가 얼마나 흥했었는지는, 그 당시 톱스타들이 매회 자청해서 노브레인 서바이버에 출연했었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니까 2010년대 개그콘서트의 잘 나가는 코너에서나 일어나는 톱스타 우정 출연이 10년 전에 정준하의 노브레인 서바이버에서 일어났었다는 것. 물론 정준하 본인에게 각종 CF나 예능 프로 출연 제의가 들어온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명실상부 정준하의 연예계 인생 제1의 전성기. 이 때 니켈로디언의 애니메이션 우주 스파이 짐이 한국에 방영했었는데 피해망상에 걸린 정신병자가 자신이 괴물이 된 과거를 설명하면서 당시 정준하의 말투를 구사한다. 또한 당시 개봉된 미국 영화 Rat Race의 제목을 노 브레인 레이스라고 번역했으며 정준하를 홍보대사로 내세웠다. 국내판 포스터만 보면 정준하가 돈으로 모든 인물들을 움직이는 악덕 업주로 보일 법도 하겠지만 아래 나오듯 정준하는 절대 출연안한다.

재능방송에서 방영하던 미국 애니메이션 우주 스파이 짐의 한 에피소드에서 치킨풋이라는 단역 빌런 캐릭터를 더빙할 때 성우가 정준하를 성대모사하며 유행어를 따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짧은 리즈 시절은 정준하가 드라마 장길산 출연을 결정하고 제작진과 제대로 된 논의없이 코너에서 하차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하차 과정은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데 정준하 측은 MBC에서 사전 통보없이 자신을 뺀 노브레인 서바이버 시즌2를 발표했다며 불만을 제기했고, MBC는 이전부터 SBS 장길산 출연으로 개편 때 소속사 사장까지 하차를 요구하였다며 맞섰는데 결국은 장길산 출연이 영향을 준 것. 사실 장길산 출연이 아니더라도 노브레인 서바이버 코너는 거의 끝물이었다. 무도에서도 지적받는 사실이지만 정준하는 흥한다 싶으면 과할 정도로 우려먹는 성향이 있는데 이 코너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실상 하차를 안 했어도 언젠가 매너리즘으로 코너는 종영될 상황이었다.[11] 다만 문제는 정준하가 그 대체재로 망작인 장길산을 골랐던 게 패착이였다. 같이 출연한 문천식은 크게 대박난 작품은 없었지만 코미디를 접고 여러 드라마에 조연으로 꾸준히 나오는 것과 대조된다.

정준하가 아는 형님 191화에서 밝히길 이 때 준하는 일명 '독한 맛에 6주'여서[12] 노브레인 서바이버도 오래 못 가 폐지될 위기에 놓였고 당시 주말드라마 회전목마에서 악역으로 나왔는데 회전목마 감독도 방금 전까지 바보로 나오다가 5분 뒤에 악역으로 나오면 시청자들이 몰입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들며 언제 종영하는지를 물었다고. 그러다가 브레인 서바이버에서 정준하가 우승하면서 그 버프로 노브레인 서바이버의 인기가 오르자 드라마 PD도 "이렇게 반응 좋은데 계속 가셔야죠."했다고 한다. 이후 옥탑방의 문제아들 139화에서도 이 야이기를 밝혔는데 정준하의 브레인 사바이벌 우승으로 노브레인 서바이버가 인기를 끌자 덩달아 회전목마도 함께 인기를 끌었고 시청률 최고치가 20.3%까지 나왔다.

정준하가 머리를 기르고 점점 노브레인 캐릭터가 희석되어 가는 와중에 KBS 개그맨 이상구애정의 조건이라는 코너에서 그 시절의 정준하를 성대모사했다.


4. 무한도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정준하/무한도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모 범 멤 버 상[13]
이 름 : 정 준 하
위 사람은 '무한도전' 멤버로서
참기 어려운 수차례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얄팍한 우정과 뚝심을 가지고
근면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어
다른 멤버들의 모범이 되었기에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2014년 12월 4일
무한도전 제작진 일동

정준하의 무한도전 첫 정식 멤버 합류편

평소 연예인 야구단 "한(恨)"에서 같이 선수로 뛰는 개그맨 유재석과 친한 사이였던 정준하는[14] 반전드라마 등 몇 몇 프로그램에서 유재석과 같이 협업한 바 있었고 유재석의 추천으로 무모한 도전 시기에 게스트로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 반응이 괜찮아서 유재석의 권유로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15]부터 그대로 고정으로 눌러앉았다. 참고로 유재석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정준하는 가문의 영광 시리즈애서 나종면역을 맡아 코미디 배우로 나름 활약하던 중이었기에 일종의 배우병이 들어있어서 거만했었고 한동안 무한도전을 그만두겠다고 변덕을 부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마다 유재석이 열심히 설득해서 겨우 하차를 막았다고. 2006년 무한도전 멤버들과의 방송연예대상 뒤풀이 자리에서 정준하 본인이 밝힌 바에 의하면 박명수 때문에 무한도전 하차를 정말 진지하게 고려했던 적이 두 번 정도 있었다고 한다. 한 번은 고정 멤버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적에 박명수의 호통개그를 견디지 못해서, 다른 한 번은 무한소년체전 편(2006년 12월 9일 방영)에서 벌어진 하의 실종 사건 때문에...

방송 초기에는 박명수에 의해 3인자 컨셉이었다. 박명수가 평소처럼 아무렇게나 말하다 불현듯 정준하를 3인자라고 지칭한 게 발단.[16] 물론 당시 바보 이미지에만 올인하던 그의 성격답게 이게 딱히 고정 컨셉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잊을만 하면 박명수가 다시 3인자 드립을 쳐주긴 했지만, 결과는 그다지……3인자 뿐만 아니라 노홍철이 파마(노홍철 문서에 사진이 있다.)를 하기 위해 들른 미용실 아주머니가 이름을 잘못 호명해줘서 '정중앙'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보통 무한도전 멤버들을 늘어놓을 때는 유재석-박명수-정준하-정형돈-노홍철-하하 순이었다. 과거 회상 비디오에서는 유재석-박명수-정준하-정형돈-하하-노홍철 순으로 정렬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나이순이지만 유재석만 앞으로 뺀 것. 사실 프로그램에서의 활약상으로 생각하자면 유재석은 이론의 여지 없이 1등이지만 2등은 컨디션 좋은 박명수, 성장 완료된 정형돈, 돌+아이 모드 노홍철이 경쟁하는 상황이었다고 보는 게 맞다.[17] 다만 한국 사회에서는 활약상과 상관없이 경력이 많은 선배가 무조건 윗사람 대접받기 때문에 위에 언급된 멤버 정렬 순서나 실제 서열에서도 3인자 취급을 받은 것. 그래서 정준하가 젊은 멤버들을 "집합"시키기도 했다.

무한도전 초기 당시 매니저였던 최종훈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름을 모르겠다면 무도 중기 때쯤 정준하가 억울할 때마다 불러제끼던 '야 최코디!'가 바로 최종훈. 하하와 함께 정준하에 대한 각종 제보의 산증인으로[18] 나름 역할을 했고, 제7의 멤버 드립 때 항상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다. 농업인 출신이라서 그런지 신체능력이 좋아서 각종 NPC 역을 많이 했다. 2010년까지 5년 넘도록 함께 지냈으나 2011년 1월경에 기사를 통해 결별 소식이 알려졌는데, 기사 당시에 3개월 정도 되었다는 걸로 봐서 겨울이 오기 전에 그만둔 듯하다. 해당 기사 그리고 하필 그 이후에 촬영된 타인의 삶 특집에서 매니저 없이 직접 운전해야 했던 이숭용은……. 지못미 그래도 코디가 파킹은 해줬으니 아니 근데 코디한테 파킹을 시키는 개념은 대체...

방송에서 툭 하면 최코디를 잡고 갈구는 모습만 나갔지만[19] 최종훈 본인은 인터뷰에서 정준하가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자신을 매니저가 아니라 후배 연예인이라고 소개했다고 밝혔다. 최종훈은 본래 배우 혹은 코미디언을 지망하던 사람이었고 그 때문에 정준하가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종훈이는 매니저가 아니라 자신의 후배이고 연기자"라고 강조해서 무척 고마웠다고 한다. 최종훈이 정준하의 매니저를 하게 된 계기도 무명 배우 시절, 너무 돈이 없어서 힘들어하자 노브레인 서바이버의 히트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 정준하가 최종훈의 생계를 걱정하며 자신의 매니저 자리를 추천한 것이었다고 한다. 결별 당시에도 "처자식도 있는 애가 아무런 대안도 없이 무작정 나가면 어떻게 할 거냐"며 많이 걱정해줬다고 한다.최종훈의 인터뷰

이 3인자와 정중앙은 단순히 어감에서 오는 느낌 뿐만이 아니라, 당시 정준하의 입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덩치나 힘은 듬직한데 하는 짓은 믿음이 안 가고, 하는 건 많으나 건지는 건 별로 없고, 착하긴 한데 구설수가 많고 등등... 한마디로 뭘 해도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

메인 캐릭터는 늘 그렇듯 바보 캐릭터.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만 들자면,
  • 꼬리잡기 특집 - 남의 꼬리를 잡아야 하는 꼬리잡기 특집에서 뭣도 모르고 노홍철을 믿고 접근했다가 미션 극 초반부에 덥썩 잡혀버린다. 하지만 덕분에 노홍철의 하수인 컨셉으로 분량을 꽤 많이 뽑아냈다. 주식 때문에 미안해서 일부러 잡힌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기는 했다
  • 악마는 구리다를 입는다 특집 - 지하철을 잘못 타서 혼자 차이나 타운으로 가버렸다.
  • 예능의 신 특집 - 노홍철이 자신의 위치를 알려 주겠다고 잔뜩 낚시질했다가 "내가 있는 곳은 여~기~!" 라고 놀려먹고 전화를 끊었더니, 역(驛)을 뜻하는 힌트로 받아들여서 진짜로 고속터미널 역으로 가버렸다.
  • 여드름 브레이크 특집 - 위도/경도를 찾을 줄 몰라서 안경점이나 부동산에 가서 물어봤다.

김태호 PD가 자막으로 '이 모든 것이 연기라면 진짜 오스카 대상 수상감'이라 언급했을 정도의 우둔함을 보여준다. 다만 본인은 그저 컨셉일 뿐이고 촬영 시간 외에는 정상이라고 주장한다. 2011년 이후로는 이제 옛말이 되었지만, 이후로도 부족한 컨셉은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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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도 자주 한다. 주로 아줌마 분장인데 의외로 싱크로율이 높은 편. 특히 '언니의 유혹' 특집에 나왔던 방배동 노라 캐릭터는 독특한 어투와 특유의 콧소리가 화제가 되어 CF를 찍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예 그 컨셉을 가지고 아수라 백작 뺨친다는 자막이 무한도전에서 자주 나온다.

뮤지컬로 갈고 닦은 실력으로 노래도 잘 불러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부를 때 리드 보컬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과도한 귀여운 척과 비음이 섞인 목소리로 지탄을 받고 있다. 2009년 정준하가 노래를 부르는 방송분이었던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 특집에서도 지적받았다. 오죽하면 종암동 강마에가 어디서 가증스럽게 귀여움을 떠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을까(...). 더군다나 디너쇼 특집 당시 이적이 직접 작곡가들이 (콧소리로 자기 노래를 이상하게 꼬아버리는 탓에) 기피한다라고 친히 확인사살도 해주었다. 아무래도 천성적으로 고칠 수 없는 듯하다. 이제는 김태호 PD가 코에서 분출되는 증기와 쏟아지는 글자 CG를 입혀줘서 그냥 컨셉 중 하나로 밀고 나가는 듯.

여성들에게 호감형으로 꼽히는 듯하다. 실제로도 2009년 9월 26일 품절남 특집 2부에서는 만년 1위를 고수하던 유재석에게 밀려 하위권에 머물던 그가 최후의 선택에서는 만년 1위 유재석을 제치고 1위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다. 이유는 '자꾸 보니까 호감형이라서'. 문제는 그게 현장판매 한정이었다는 것이지만. 인터넷 판매의 경우 유재석이 압도적으로 높은 판매수를 기록하면서 결국 방송 시작 후 단 몇십 분 만에 진짜 품절이 되어버린 것과는 달리, 정준하는 길의 지분과 합쳐도 꼴찌라는 참담한 결과가 나왔다.

신년 특집[20] 당시 왠지 대부분의 멤버들에게 기피 대상으로 낙인 찍혀버렸다. 박명수와 안 좋은 건 원래도 안 좋아 보였으니 당연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그래도 궁합을 본 당시에는 '죽이 맞지요'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러니저러니 투닥거려도 심각한 게 아니라 재미있다는 정도. 실제로 정준하는 무한도전 내에서 어떻게 보면 비난개그의 희생양, 샌드백으로서는 가장 적합한 대상이기도 하다.

유재석과 나쁜 팔자라는 건 상당한 충격. 더군다나 유재석과 가까이 하면 정준하가 손해를 본다는 게 아니라, 정준하와 가까이 하면 유재석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둘이 가까이 하면 유재석이 정준하에게 '재산도 뺏기고 여자도 뺏기고'...한마디로 유재석의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는 남자. 뭐, 결국 유재석은 멀쩡히 결혼도 잘하고 경제적 문제도 별로 없으니 다행이긴 하지만(소속사 문제가 있긴 했지만 주식은 안 산 듯). 아니 애초에 그냥 사주팔자 재미로 보는 거지 왜 이렇게 진지하게 믿어? 파마 머리 시절 때부터 유재석과 의견 충돌이 굉장히 잦았다. 태리비안의 해적 특집이나 디자인 특집 같은 경우 유재석과 소규모 그룹으로 묶이고 나서 둘 사이에서 터지는 잡음은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물론 방송상일 뿐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2009년 10월 3일 방송 후로 박명수에 의해 '겉절이'이란 뜻의 쩌리짱 · 쩌리정이란 캐릭터를 얻었는데, 이게 반응이 꽤 괜찮아서 그 뒤로 '쩌리짱'으로 활동하며 상승세를 탔다. 정말 말만 하면 뻥뻥 터지는 수준으로 간만에 분위기를 탔다. 하지만 김치전 사건이 터지고…

2009년 12월 19일에 찍은 달력 특집에서는 전문가의 지도하에 불쇼를 보였다. 이 때 앙드레 김 복장을 하고 불쇼를 찍어서 용드레 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레슬링 특집 WM7에서는 힘과 덩치, 그리고 잘 받아주는 접수 스킬 덕분에 에이스로 활약. 각종 기술들을 시원시원하게 시전하거나 받아주는 등 우수교보재로 대활약을 했다. 차라리 개그맨보단 이 쪽 계열로 나갔던 게 나았을지도? 대망의 대회 날에는 허리 부상으로 병원으로 가서 진통제를 맞기도 했으나, 경기를 하기 위해 애써 참고 대회장으로 나와 예정된 두 경기를 깔끔하게 뛰는 부상 투혼을 발휘함으로써 호감도가 극도로 상승하였다. 일단 본인이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의지가 확실했기에 이미지 개선에 큰 효과를 본 듯.

2010년 '세븐 특집'에서는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전에는 보여주지도 않은 이중간첩으로 아예 바보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모습. 거기에 길이 친 트랩마저 여유롭게 빠져나가며 식스센스급 반전을 선보였다.

2010년 7월 17일자 '시크릿 바캉스' 특집에서는 이 제시한 벌칙인 꼴찌로 오면 시간 내에 도착해도 벌금 40만 원 때문에 벌금을 물게 되었다. 옷을 갈아입느라 유재석과 간발의 차로 늦은 것이라 뭐라 불만을 토할 만한 상황.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아무런 불만 없이 벌금을 냈다. 해당 편에서 다른 멤버들이 '쿨가이' 드립을 하며 띄워주는 걸 보니 멤버들과 자신의 이미지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던 듯.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는 모양이다! 박명수가 결혼 후 획기적인 진화를 이룬 걸 보면 아무래도 여자친구와 결혼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이 때 새 컨셉으로 총무 + 쿨가이 캐릭터가 등장했는데, 호평을 받고 있다. 사실 억지 쿨가이라는 게 맞겠지만,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묻힐 뻔했던 쿨가이 정총무 캐릭터는 2011년 1월 8일자 방영분에서 다시 살아나게 된다. 정형돈의 부상으로 인해 예정되었던 '두 마리 토끼' 계획이 취소되고 위기일발 무한도전 PLAN B - 정 총무가 쏜다라는 이름으로 아이템 회의를 하게 되었는데, 정준하가 내뱉은 '내가 살게'라는 한마디 덕분에 박명수의 기습공격과 비슷한 '정 총무가 쏜다x3' 특집을 진행하게 된 것. 이 때 정준하는 평소의 바보스러움을 벗고 눈대중만으로 계산기에 맞먹는 정확함을 뽐내며 '전자두뇌'라는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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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TV는 사랑을 싣고 특집 때 정준하가 찾은 인물은 그가 삼수생 시절 자신이 먹튀한 중국집의 주인이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그 중국집 주인은 정준하를 나무라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찾아줘서 고맙소, 성공해줘서 고맙소"라고 말하며 반가워했다. 그리고 정준하가 당시 잘못 때문에 죄송해하면서 눈물을 흘리자 그 때는 다 그런 거야라고 말하며 인자하게 웃어주었다. 여러모로 훈훈한 특집이었다.[21] 21년 전 10만 원의 금액을 먹튀했음에도 바로 앞 학원에 가서 찾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사장의 대인배 정신을 알 수 있다.[22] 방송이 끝난 후 정준하는 그 사장이 운영하는 중국집에 가서 인증샷을 찍고 왔으며, 소문으로는 사장님이 극구 말렸는데도 정준하가 울면서 백만 원을 놓고 갔다고 한다.[23]

2011년 7월 21일 조정 특집 촬영 도중 머리에 부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는데 김태호 PD의 말에 따르면 정준하가 이번 부상 때문에 훈련에는 참석을 못 하지만 부상이 심하진 않기 때문에 조정 대회에는 나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2011년 7월 30일 조정대회에 선수로 참가하지 못해 데프콘이 대신 나갔다.

2011년 10월 8일 무한상사 특집에서는 사내 수공업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직접 그려서 만든 물류표가 컴퓨터로 만든 것만큼 심히 정교해서 모든 멤버들을 경악시켰다. 사실 그 이전에도 그림 잘 그린다는 사실은 종종 등장하곤 했다.

이는 무한여고 특집부터 등장한 사실이며, 2009년 5월 9일 방영된 153회 춘향뎐 특집에서는 멤버들이 그림 실력을 겨루는데, 길이 분장한 "닮아대사"를 실물과 거의 닮게 그려보이는 위엄을 보이기도. 오오 그거슨 정화백의 위엄! 이 '작품'은 같은 해 6월 20일 방영된 158회 여드름 브레이크 특집에서 길 일당(빡빡이파?)의 아지트를 장식하는 소품으로 "재활용" 되기도 했다.

그리고 디자인 특집 당시 유재석이 직접 '준하형이 그리는 거는 제일 잘해'라고 극찬하면서 포트폴리오 제작 작업을 맡겼던 전적도 있다. 그리고 그 포트폴리오는 수작업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박. 또한 쩐의 전쟁 특집 당시에도 초상화 장사를 한 적도 있었다. 다만 들인 시간만큼의 수익이 나지 않아서 그랬지.

2011년 11월 12일 무한도전 TV전쟁에서 드디어 몇 년 동안 노홍철에게 이용당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타겟인 노홍철을 붙잡는 대업을 이루어 냈다. 하하의 원조와 노홍철의 방심과 실수(택시 뒷좌석 왼쪽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깜박함)에 당황한 노홍철에게 정준하가 달려들어 노홍철을 아웃시켰다. 하지만 그 이후 바로 바보형으로 복귀(…). 노홍철이 하하를 잡는 것이었으니 노홍철을 잡으면 다음 대상은 하하였다. 하하도 그걸 모르는 상태에서 동맹을 한 거라 매우 위험했는데, 정준하도 꼬리잡기라는 걸 모르고 그냥 하하랑 이야기 하다가 헤어졌다(…). 만약 노홍철을 잡자마자 아무 것도 모르던 하하를 잡았으면 바보형이 아니라 다시 전자두뇌로 불렸을지도 모를 일.

2012년 1월 7일 방송된 무한도전 나름 가수다 특집에선 하하의 '키 작은 꼬마 이야기'를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 개사한 '키 큰 노총각 이야기'를 불러 1위를 꿰차고 각종 음원차트에서도 1위를 휩쓸었다. 1월 10일까지 나흘째 모든 음원차트를 올킬했다.

1월 중순경 하지정맥류가 발견되면서 수술에 들어갔고 때문에 몸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우대를 받고 있다.

2012년 초에 트위터를 시작했다#

2016년, 정준하는 무한도전에서 힙합 오디션을 보며 엄청난 조회수와 화제성을 기록하는가 하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놀이기구 체험으로 빅 웃음을, 북극곰의 눈물로 모두에게 감동을 선사하며 2016년 한 해 동안 엄청난 활약상을 보여줬다. 그 결과 드디어 방송 경력 약 20년 만에, 그것도 자신의 친정인 MBC에서 단독으로 연예대상 후보에 올랐다. 이에 인터넷상에서는 물론이요 현장에서까지 유재석은 뻔한 공식이다, 김구라는 2연패 못한다, 김성주는 한 게 없다 정준하 스스로도 대상 수상을 많이 기대하고 있다는 식으로 정준하를 띄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시상식 당일, 연예대상 후보들이 모두 최우수상 후보에 들어가며, 여기서 상을 받으면 대상 후보에서 탈락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 결과 정준하가 최우수상을 받음으로서 결국 대상은 저 멀리에...

4.1. 무한도전 종영 후[편집]


무도 종영 후에는 방송 활동에는 거의 손을 안 대고 있으며, 서울 압구정 신사동에 있는 『마법갈비 요술꼬치』라는 식당을 경영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무한도전 스피드 특집 때 무도가 끝나면 방송을 그만두겠다 했는데,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는 셈. 본인 말로는 한동안 방송활동을 자제하고 잊혀졌다가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고 한다. 무도 종영 이후 런닝맨에서 하하가 말하길, "준하 형 손에서 고기냄새 밖에 안 나..."

2019년 3월 31일 무한도전 종영 1주년 기념으로 가진 라이브 방송에서 근황에 대해 나왔는데, 무도 멤버들과도 가게 오픈할 때 정도를 제외하면[24] 대체로 연락을 잘 안 하고 살았던 모양이다. 본인은 안 그렇다며 손사래쳤지만 유재석 말로는 살짝 우울증이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며, 실제로 만나보니 생각보다 얼굴이 좋아보여서 다행이란 말도 덧붙였다.[25]

밀크 메거진과 ABC 키즈 마트에서 주관하는 호킨스 키즈제품 기부 행사에 아들 로하와 함께 모델로 참여했다. 5월 5일 어린이날 맞이 특별 행사로 그간 정준하가 폰에 저장된 사진으로만 조금씩 공개되었던 로하의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딱 정준하 주니어. 이후에는 뮤지컬 시티 오브 엔젤에 출연했다.

오랜만의 예능 프로그램 복귀인 아는 형님 191회에서 꽤나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다. 뮤지컬 도중 소품을 맞아 목을 다친 자기 대신 나왔던 장훈이 그 날 촬영 끝에 앞으로 예능 나올 일은 없을 거라고 해놓고 지금 여러 예능 프로의 고정 출연자로 나오는 걸 두고 왜 그 때랑 말이 다르냐고 디스하고 "넌 나한테 고맙게 생각해야 해! 너 그 때 나 아니었으면 지금 소파에 누워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나 줍고 있지!"라고 찰진 디스를 추가로 날려준다. 남자 게스트를 싫어하는 아형 멤버들이 꽤 강하게 디스를 날렸음에도 무도 짬밥 어디 안 간다는 걸 증명하듯 능숙하게 디스를 받아친다. 그리고 보자기와 휴지로 저글링을 선보여 분량도 적절히 뽑아냈다.

2020년 하반기부터 돈 스파이크, 이상민, 강레오, 밥굽남, 쏘영과 고기를 주제로 하는 JTBC 육자회담에 출연 중이다. 무도 종영 이후로 2년 만에 방송에 복귀했다.

그간 방송에 하도 안 나오다 보니 은퇴설이 돌았다. 사실은 요식업 경영에 집중하느라 섭외를 거절한 것 뿐인데 요상하게 소문이 나버린 것이다.

전 직장동료 유재석, 하하 그리고 새 동료인 신봉선, 이미주놀면 뭐하니?의 멤버십 프로젝트인 '놀면 뭐하니?+'에 합류했다. 무한도전 시절보다 여유로워진 마인드와 더 진화된 탱킹으로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이후 잘 활동하던 중 2023년 6월 중순을 끝으로 신봉선과 함께 놀뭐 하차가 확정되었다.

2023년 11월 2일, 정준하가 운영하던 식당 『마법갈비 요술꼬치』가 폐업했다.#


5. 연기 활동[편집]


드라마 장길산에서 장길산의 동료인 이갑송 역으로 출연하여 드라마 극초반부터 최종화까지 꾸준히 출연했으나, 드라마가 시청률 부진으로 조기종영되고 만다. 드라마는 혹평 속에 일찍 문을 닫았지만, 당시 예능인이 지상파 사극의 주역으로 캐스팅 되는 것도 꽤나 파격적인 사례였으며 본인 또한 예상 외의 연기력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향하던 세간의 의식을 상당 부분 불식시켰다.

반전드라마에서도 유재석과 함께 몇 번 출연했었는데 제법 좋은 연기를 보여준 적이 많다.

이후, 가문의 영광 같은 코미디 영화에서 조연 혹은 까메오로 주로 출연하게 되며, 드라마 발칙한 여자들에서는 나름 비중 있는 역과 동시에 해당 드라마의 OST까지 부르게 되는데 평소 이미지와 다른 미성으로 무한도전에서 밝혀지기 전까지 정준하가 가수인지 몰랐던 사람들이 대부분.

무한도전이 전성기에 들어가기 전부터 풀몬티 등의 뮤지컬에 출연해서 거의 매년 뮤지컬에 섭외된다. 그리고 뮤지컬이나 연극에서는 '진짜 이 사람이 바보형이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를 잘한다. 뮤지컬 라디오 스타에서도 꽤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거침없이 하이킥 같은 시트콤에서의 연기도 생각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본이 있던 비공개 코미디 노브레인 서바이버 때도 괜찮았다. 무한도전 달력 서바이벌 특집에서도 '빈약한 촬영 환경 속에서도 멋진 연기를 보여준다'며 심사위원들에게서 미칠듯한 호평을 받아냈다. 결국 무한도전에서 눈치없다는 등 하면서 보여진 정준하의 단점들은 어디까지나 그가 주어진 대본은 감정을 살려서 잘 읽는데 애드립을 못해서였다.[26] 다만, 요즘은 지나가는 말로 한두마디 하는 것들이 의외로 웃긴다. 대표적인 예가 디너쇼 특집 때 볼살이 두드러진 싸이의 얼굴을 보고 사랑니 뺀 거야 뭐야 또는 2013년 7월 '완전 남자다잉(399화)' 특집 때 유재석에게 했던 아랫니 서로 주장하고 난리났다 와 같은 것들.

애니메이션의 경우 비성우 더빙이 상당히 논란이 많이 되는 편이지만 정준하의 경우 비성우 더빙이라는 비판을 받지는 않는 편이다. 디즈니의 주먹왕 랄프 주연 캐스팅 역시 디즈니 사 측에서 오디션에 참가한 정준하를 직접 발탁한 것이다. 디즈니는 알다시피 자사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 해외 더빙시에도 더빙 성우를 철저하게 뽑기로 유명하다. 디즈니에서 OK를 내야 비로소 캐스팅 되는것. 심지어 유재석 조차도 꿀벌대소동 더빙을 했을 때 정준하 만큼 정극연기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기용을 했다며 비판을 받았다. 다만, 유재석이 한창 개그맨으로서 성장하던 시절의 개그판은 개그보다도 연극성을 더 중시해오던 시절이였다.[27] 임하룡이나 이창훈 등 원로 개그맨들이 정극 연극으로 많이 빠질 수 있던 것도 이 때문.

덕분에 무한도전 주말의 영화 특집에서 영화 비긴 어게인을 더빙할 때 좋은 연기력을 선보였다. 스티브와 트러블 검의 보이스에서 전혀 정준하의 느낌이 안날 정도. 여담으로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극중 아버지로 함께한 이순재 역시 디즈니 에니메이션 의 더빙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2012년 신사의 품격 후속 드라마로 방영하는 다섯 손가락에 출연이 결정됨으로서 1년여 만에 드라마 출연이 결정되었다. 맡는 캐릭터는 루이 강이라는 티가 안 나는 된장남 캐릭터.

2017년 무한도전 정준하 대상 프로젝트의 일부로 무한도전 라라랜드가 방영되어서 미국 드라마 오디션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다름아닌 넷플릭스의 대표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오디션. 더글러스 스탬퍼 역인 마이클 캘리가 1:1 오디션을 진행했는데. 마이클 캘리의 돌발 연기 주문에서도 절륜하게 연기를 펼쳐내어서 극찬을 받기도 했다.


6. 기타 프로그램[편집]


식신 이미지 덕분에 MBC 드라마넷에서 식신원정대라는 프로그램의 MC도 맡은 전적이 있다. 정준하가 단독 MC를 보는 유일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사실 MC를 본다기보단 열심히 먹고 간간이 시시껄렁한 애드립을 던지는 수준이었다. 대신 초기엔 이수근이, 이수근 하차 후부터는 현영김신영이 프로그램의 재미 파트를 주도해 나갔다. 그래도 식신로드부터는 꾸준히 출연하면서 익숙해졌는지 무난한 진행을 보여주고 있는데, 식신로드라는 방송 자체가 게스트와 함께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부담없는 컨셉이고 다른 MC들이 역할분담을 잘 해줘서 그런지 평타는 충분히 쳐 주고 있[28]... 었는데, 방송이 길어지면서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나마 현영이나 이창민처럼 시시껄렁한 애드립도 잘 받아주고 본인 멘트도 시의적절하게 잘 쳐주는데다, 나름 복스럽게 잘 먹는 멤버들이 있을 때는 분담이 잘 이루어졌고 정준하 본인도 균형을 맞춰가며 진행을 했었지만, 박지윤-이재훈과 함께 진행하게 되면서는 설명을 담당하는 박지윤과 별 특징없는 이재훈 사이에서 특유의 오버해서 웃기려는 무리수를 남발하며, 먹는 장면도 정준하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먹음직스러운 게 아니라 음식물 흡입장면"이라는 단점이 부각되는 중. 여러모로 비평이나 비판에 대한 피드백이 이뤄지고 있을 텐데도 식사하는 모습을 바꾸지 않는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2016년 2월 21일 SBS 스페셜에 출연한다. 해당 회차는 '배달'을 주제로 한 내용이며, 정준하는 배달 서비스를 체험하는 내용이다.

2017년 1월 23일부터 E채널에서 방영하는 <먹!킷리스트 ~ 식식한 소녀들>이란 방송에 MC로 합류한다. 물론 단독 MC는 아니고 정진운과의 공동MC이며, 방송의 중심은 5명의 여성 아이돌들의 먹방인 만큼 방송을 주도하는 형식이 아니라 뒤에서 받쳐주며 설명 및 선도하는 역 정도가 될 듯 한데, 사실 식신로드가 가장 조화로웠을 때가 이런 형식이었고 멤버 중 정진운이나 차오루 등 예능감 있는 사람들과 연계만 잘 이루어지면 평타 이상은 쳐 줄 가능성이 높을 듯하다.

2021년 3월 29일부터 신지와 함께 싱글벙글쇼 DJ로 낙점되어 데뷔 이후 처음으로 라디오 프로그램 고정 DJ를 맡았다. 2022년 8월 21일 방송을 끝으로 하차했다.


7. 유튜버[편집]


2020년 2월에 정준하 소머리국밥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였다. 구독자들의 애칭은 "머리". 머리들의 상당수가 무한도전 시청자였던만큼 무도의 추억을 향유하는 댓글들이 보이며 무도 멤버들의 게스트 출연을 기대 중이었다.

초기엔 소머리 국밥 채널을 꽤나 열정적으로 굴렸으나, 2020년 7월 22일 업로드분을 끝으로 업로드가 중단되었다. 일부 인터넷발 언론에서 영상들의 좋아요/싫어요 비율이 5대 5고 악플도 자주 달리는 것 때문에 부담을 느껴 접었다는 기사를 내놓기도 했는데, 본인이 언급하길 요식업 경영 등 개인 사정으로 매우 바빴던데다 신장개업한 2호점이 코로나 사태의 영향으로 망하면서 뒷처리를 하느라 유튜브를 운영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다며[29] 악플설을 일축했으며, 언젠가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2021년 4월 13일, 『정준하하하』라는 새로운 채널을 개설해 복귀하였다. 소머리 국밥은 이런저런 여건이 맞지 않아서 진행할 겨를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기필코 제대로 해 보겠다는 결심을 굳혔다는데, 다만 예전과는 달리 좀 가벼운 컨셉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여담으로 스태프 중 무도 출신 제작진이 꽤 있다고 하며, MBC 관련 채널들에서도 지원 사격용 댓글을 달아주고 있다. 구독자 애칭은 민병관.


8. MC 민지[편집]



사실 정준하는 MC 민지로 활동하기 전에 주나라는 예명으로 <My Love> 개인노래를 발매한 적이 있었다. 발라드 노래로 나름 괜찮은 곡이라는 평은 받고 있지만 의외로 정준하가 부른 노래라는 사실을 모르는 대중들이 제법 있다. 후에 2011년 방영한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스윗소로우와 한 팀이 되기 전 멤버 송우진으로부터 특유의 비음 섞인 보이스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정준하는 힙합을 오래 전부터 좋아한 듯하며[30], 무한도전 때 했던 MC 민지 캐릭터를 사용하여 2021년 6월 21일 싱글 I Say Woo (아새우)를 공개하였다.
MIC SWAGGER의 수장 뉴올, 래퍼이자 작가로도 활동 중인 BENKIFF , 그리고 싱어송라이터 사운드 킴. 이 세 사람이 작사 작곡을 맡았으며 기대를 훨씬 웃도는 고퀄리티에 당황하는 반응이 대부분.
뮤비의 꼬마 댄서는 정준하의 아들 로하. 대부분이 로하를 못알아보고 전문 댄서로 착각했다고 하며 수준급의 춤 실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박명수와 하하가 찬조 출연했다.


11월 6일 또 곡을 냈다. 작곡가는 위의 아 새우를 작곡한 뉴올과 BENKIFF로 동일. 아마 밸런스 게임 이후 연이 쌓여서 인지 정기적으로 활동을 하려는 모습이다. 팬들의 반응은 지난 곡처럼 퀄리티가 준수해서 놀라면서도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하는 그에게 응원을 보내는 편.

과거에 음악적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어서인지, 랩 톤도 확실히 잡혀있다. 스키니브라운, 따마, 염따의 목소리를 동시에 듣는 것 같다는 평이 많다.

[1] 여기서 독자는 남자인 자손이 한 명임을 뜻한다. 여동생과 누나의 유무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2] 4수째는 공부만 하고 대입 시험 미응시.[3] 당시엔 3대 독자 이상이면 6개월 단기복무, 4대 독자 이상이면 군 면제 대상이었다.[4] 2004년 노브레인 서바이벌에서 공익근무가 끝난 고영욱도 이를 언급했다. 20대 초반부터 친했다고.[5] 실제로 사장과 직원 한두 명 뿐인 작은 기획사라도 방송국이나 다른 협력사에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명함에는 실장, 팀장 직함을 찍어 준다. 반면 사장이 젊은 경우에는 대표나 사장이란 직함 대신 실장, 사업부장이라 명함에 찍기도 한다.[6] 오른쪽 인물이 바로 이휘재.[7] 실제로 박명수의 직계 후배인 MBC 희극인들이 특채를 곱지 않게 봤다는 설은 많이 있다. 이는 KBS도 마찬가지로, 블랑카로 유명한 정철규는 특채였다가 19기 기수를 받았는데 후배들이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진철도 두 기수 아래인 20기 멤버들을 집합시켜 원산폭격을 했을 때 특채인 변기수, 윤형빈, 이종훈은 열외시켰을 정도.[8] 해피투게더에 나온 개그맨 박준형의 말에 의하면 MBC는 특히 이런 태도가 심하다고...[9] 다만 김진철, 양원경 같은 막장 사례는 개그맨 전체의 학력 상승과 더불어 거의 사라졌다. 대신 정신적으로 열받게 하는 잔소리와 논리공격이 늘었지[10] 사족으로 브레인 서바이버 48회에서 환희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이변이라고 했지[11] 그 뒤 시즌 2가 나오긴 했지만 시청률 부진으로 금방 종영되었다.[12] 독한 맛에 써 보지만 길어야 6주까지밖에 못 간다는 뜻이다. 무한도전 2010 연말정산 특집 때 김성원 작가도 언급한 적 있다.[13] 평소 서장훈과 불편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무한도전과의 약속을 뚝심있게 지켰다. 참고로 이 상장은 무도 408회 유혹의 거인 특집 때 기획자 유재석 외에 나머지 4명 중 유일하게 서장훈의 끈질긴 유혹을 뿌리치고 받은 표창장. 그 후 다른 멤버들이 전화를 안 받거나 안 온다고 거절해도 전화를 받을 때까지 걸고, 올 때까지 오라고 했다.[14] "한(恨)" 야구단은 이휘재와 정준하가 주축이 되어 만들었으며 정준하는 야구단의 에이스 멤버로 활약했다. 유재석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정준하는 방송에서의 바보 이미지와는 달리 성격이 상당히 드샌 걸로 유명해서 같은 야구단 동료들끼리 정준하를 "싸움닭"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고 한다.[15] 스튜디오에서 거꾸로 말해요 아하 게임을 하던 시절.[16] 당시 무한도전 내에서 권력 서열(...)을 따지면 3인자는 맞다. 맏형은 박명수지만 1인자 유재석은 절대적인 존재라 박명수와 정준하도 접어주고, 그 뒤는 당연히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으로 이어지는데, 동갑인 하하와 노홍철의 경우 노홍철이 경력이 더 짧아서인지 마지막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묵은 때를 벗긴다"는 테마의 특집을 했을 때 멤버들의 과거 흑역사(...) 영상을 틀어줄 때 그대로 이 순서였다. 물론 웃기는 순서가 3인자라는 게 아니다. 사실 정준하는 호구 이미지와 달리 막내급들보다 열살 가까이 많은데다가, 이들의 방송 대선배인 이휘재나 김원준, 심지어 방송 경력으론 훨씬 선배인 유재석 같은 고참 방송인들이 형 대접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쉽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개그성으로 언급하던 "집합"도 실제로 걸면 집합해야 하는 신세. 물론 10년 넘게 같이 방송한 이후엔 그딴 거 없어졌지만.[17] 하하와 노홍철은 1979년생 동갑이지만 노홍철이 생일이 조금 빠른 대신, 하하가 경력이 3년 더 길다.[18] 예를 들어 정준하의 잦은 지각 때 준하의 단골 변명 레파토리인 '종훈이가 늦게 왔다.'가 진짜인지를 추궁할 때라던지.[19] 50회 특집에서 진심게임 때 최종훈이 여과없이 디스하자 삐쳐서 넌 감봉이라고 툴툴대고 이에 최종훈은 감봉 말고 잘라달라고 했다. 이후 정준하는 제대로 삐쳐서 한동안 얼굴도 안 봤다고.[20] 무한도전 37회 후반.[21] 스튜디오에 나와 있던 정준하는 물론 다른 멤버들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22] 방송에서 밝힌 바로는 "그 학생들이 전부 내 자식들 같았고, 당시 우리나라 경제 사정도 가정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잡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정준하 말고도 식사 후 돈을 계산하지 않고 도망가는 사람은 많았지만 잡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 쯤이면 대인배 중의 대인배다. 또한 정준하처럼 이 당시 먹튀했던 사람들이 성공한 뒤 찾아와 사과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23] 2011년 기준으로 21년 전이면 정준하는 1990년에 먹튀를 하였고 21년간 물가는 42.8%가 상승하였다.(CPI 기준) 즉, 당시 먹튀한 10만원은 2011년 기준으로 14만 2800원과 가치가 같다는 말이다. 실질적으로 7배에 달하는 금액을 지급한 셈이지만, 그러한 학생들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족한 액수일 지도 모른다. 사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장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과 죄송함, 감사의 표시라고 봐야한다.[24] 화환 보내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듯.[25] 무도 종영 후 시점에서 촬영된 빅픽처에서 과거 무도의 PD/CP였던 여운혁과 권석이 통화하며 "준하 좀 어떻게 해라"는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나온 적도 있는데, 종영 후 한동안 주변인들에게 걱정을 사는 모습을 보였던 듯 하다.[26] 정준하가 연기를 하면서 욕 먹을 때는 주로 무한도전같은 예능에서 그가 어울리지 않게 멋진 연기를 할때 비웃는다던지, 특유의 바보 캐릭터 때문에 몰입이 안될때 한정이다. 실제로 정준하는 연기 활동을 꽤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연기 때문에 논란이 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무한도전에서 도전 달력모델 특집을 할 당시 전쟁터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는 병사 연기를 했는데, 순식간에 감정에 몰입해 눈물까지 흐르게 하면서 (평상시 그를 놀리기에 바빴던) 무도 멤버들의 찬사를 자아냈다. 유재석의 경우 꽁트에 특히 강한 모습을 보인다면, 정준하는 예능인이란 걸 감안하지 않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연기력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웃긴 연기 외에 진지한 연기나 비열한 연기도 꽤 잘 소화했었다. 현재는 영상자료조차 없는 주말드라마 해바라기에서 악역을 맡았던 장면이 아는형님 191회에서 자료영상으로 잠시 나오는데 굉장한 악역 연기를 선보였고 무도 쪽대본 드라마 특집에서 비열한 시어머니 연기도 수준급으로 해냈다.[27] 일례로 박명수 경우 방송에서 본인 입으로 1990년대 대본식 개그를 할 때 연극 더럽게 못한다고 PD들한테 꽤나 원성을 샀다는 이야기를 했었다.[28] 동 방송에 게스트 출연했던 하하가 "이 형 왜 이렇게 진행 잘해?"라고 평할 정도. 물론 진짜로 잘 했다는 뜻이라기 보단 평소 이미지와는 달리 요란 떨지않고 무난하게 진행하는 모습이 신선해서 한 말에 가까운 듯 하다.[29] 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10억 정도의 빚이 생긴 와중에 방송활동을 뛰어서 번 출연료 대부분을 고용된 스태프들 임금이 체불되지 않도록 하는데 사용하는 등 뒷수습에 많은 애를 먹었다고 한다. 현재는 어느 정도 수습이 된 듯.[30]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한건 2015년 영동 고속도로 가요제쯤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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