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옥/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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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13총선 방송토론회 불참 사건
2. 대구광역시 노인 폄하 발언 논란
3. 박근혜세월호 사고에 책임 없다 발언 논란
4. 박근혜 구속영장 청구 반대 발언 논란
5. 민주노총양극화의 주범 발언 논란
7. 정치보복 발언 논란
8. 선거연령 하향 반대 발언 논란
9. 2차 남북정상회담 비난 발언


1. 4.13총선 방송토론회 불참 사건[편집]


2016년 4.13총선을 앞두고 같은 당 소속인 정종섭, 곽상도와 함께 대구광역시 지역방송인 TBC 주최 토론회에 이유없이 불참해 논란을 일으켰다. 법정 토론이 아닌 지역방송 주최의 토론회인지라 참석이 의무는 아니지만 대구 지역 유권자들로부터 알권리를 빼앗았다는 비판이 일었다. #


2. 대구광역시 노인 폄하 발언 논란[편집]


그분들 나이 70세 넘어…10년만 걸리면 문제 해결

2016년 7월 대구에서 열린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당정협의회에서 무단점유 가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정태옥은 "그분들 나이가 지금 70세가 넘기 때문에 솔직히 10년만 걸리면 자연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마치,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노인들이 사망할 것이니 기다리자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태옥은 당시 "이 문제를 부각시키지 말고 유야무야 넘어가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인 폄하' 논란이 일자 정태옥은 "(주민들이 사망하길 기다리자는) 그런 취지는 아니었다"라며 "70세 이상이 대부분인 주민들의 수입이 적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보상금 지급 문제) 쟁점화될 것이고, 그러면 안 된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3. 박근혜세월호 사고에 책임 없다 발언 논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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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대 패널인 유시민의 표정. 정태옥의 발언이 어떤 수준인지를 나타내주는 모습이다.

박근혜 탄핵 인용 이후, JTBC '특집토론 - 탄핵심판 이후 대한민국, 어디로 갈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책임이 없다"고 말해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현재 국정 혼란의 원인으로 박근혜를 대신해서 헌법을 지목하고 탄핵 반대 집회 중 사망한 2명을 사회 갈등의 희생양으로 예를 들었다가 유시민에게 면박을 듣는 등, 논지를 흐리면서 토론의 기본조차도 제대로 안 되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당시 유시민은 정태옥이 발언을 할 때마다 매우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토론에 임했다. 이는 정태옥의 시국에 맞지도 않고 논리도 없는 발언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 당시 유시민이 지은 표정은 짤방으로 만들어졌을 지경이다.

당연히 대통령이 직접 입수해서 들어가라는 말은 아니였다. 하지만 최소한 NSC 상황실에는 나와 있어야 한다. 조지 워커 부시9.11 테러 당시 7분 동안 행방이 오리무중이었다가 욕을 먹고 해명하느라 진땀빼야 했는데, 박근혜는 국민을 지킬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는 박근혜는 행방이 묘연했던게 무려 7시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별 문제 아닌 마냥 치부해버렸고, 국민들이 차디찬 바다에서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을 때 정작 박근혜는 취침 중이였다. 애초에 출근도 안 하고 늘어져 자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와 결혼했으니, 국민을 누구 보다 지킬 수 있다."고 말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

4. 박근혜 구속영장 청구 반대 발언 논란[편집]


‘친박’ 정태옥 “박근혜 화장 안 한 모습 TV에 세워야겠나”

2017년 3월 27일 개인 명의의 성명을 내고 "이미 예순이 넘은 전직 대통령을 오랏줄에 묶어 산발하고 화장도 안 한 모습을 TV 카메라 앞에 세우는 것이 우리 국민과 국가의 위상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합리적 판단이 결여돼 있다"며 박근혜의 '여성성'을 거론하며 강력 반발하는 성명을 내 논란을 일으켰다.


5. 민주노총양극화의 주범 발언 논란[편집]


정태옥 의원, “강성귀족노조는 민노총 의미해”, “양극화 주범” 맹비난

2017년 4월 20일 오후 대구참여연대 등 대구지역 7개 시민단체가 개최한 대선 정책 공약 토론회에 홍준표 후보 선거대책위 공보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이자리에서 "우리나라 양극화를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주범이고, 일자리 창출을 막는 가장 중요한 걸림돌이 강성귀족노조"라며 "강성귀족노조는 전국 노동자의 3%밖에 안 되는 민노총이 주도한다" 라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강성귀족노조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들고, 투자가 되지 않는지 구체적인 팩트를 제시하고 말씀을 해주셨으면 한다"며 "왜 강성노조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들고, 우리 경제의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팩트를 제시해 달라"고 질문했는데 이에 정태옥은 “강성귀족노조의 정의가 뭐냐? 아주 간단하게 민노총을 의미한다”며 “(민주노총이) 양극화의 주범이라는 건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객관적 팩트는 수없이 많다”고 답했으나 결국 정확한 팩트를 제시하지 못했다.


6. 이낙연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논란[편집]


정태옥 “이낙연 아내 그림, 대필·가작 의혹”…이낙연 “심각한 모욕”

2017년 5월 25일 열린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2차 인사청문회에서 이낙연 아내의 전시된 작품이 조영남 대작 사건과 같이, 중견 작가의 대필과 가작으로 그렇게 많은 작품이 양산된 것이라는 제보가 있다"고 질의했는데 이에 대해 이낙연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대단히 심각한 모욕이다. (제보의) 신빙성이 상당히 위험하다. (아내가) 집에서 잠도 안 자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 그건 심각한 모욕이다"라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더불어 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비공개로 들어온 제보는 확인하고 말하길 바란다. 절차 없이 질문이 과하다고 느끼지 않냐. 그렇게 인격모독하면 청문회 취지와 다르지 않냐"고 지적했고, 이에 정태옥은 "인격적인 모독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7. 정치보복 발언 논란[편집]


2017년 7월 18일 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나와 청와대가 최근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 문건과 수석비서관회의 자료 등을 발견해 공개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공개적으로 까발려서 전 정권을 망신주기 시작하면 아마 문재인 정부도 다음에 반드시 그런 정치적 보복을 당할 것이며 이미 정권을 한 번 잡았다가 다시 잡지 않습니까? 그러면 좀 더 신중하고 사려 깊게 행동하는 것이 굉장히 바람직하지 않은가 지적하고 싶다"며 반 협박성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정태옥 “전 정권 망신주면 현 정부도 정치보복 당할 것”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박근혜는 나라의 근간 자체를 흔든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다. 해당 주장이 전혀 동의를 얻을 수 없는 이유이다.

8. 선거연령 하향 반대 발언 논란[편집]


2018년 2월 정태옥은 선거연령 하향에 대해서 "진보적인 성향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교사들의 정치적 발언으로 학생들이 선동당할 것" 이라며 선거연령 하향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는데 이에 근거없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9. 2차 남북정상회담 비난 발언[편집]


2018년 5월 26일, 2차 남북정상회담 성사 직후 당 대변인 자격으로 논평을 냈는데 "법률적으로는 아직 반국가단체에 해당되는 김정은과의 만남을 국민에게 사전에 충분히 알리지 않고, 충동적으로, 전격적이고, 비밀리에, 졸속으로 이루어졌다"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마치 남북정상회담이 '불법' 소지가 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이적 행위'를 했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마저 "나하고 의논하고 논평하지 않았다, 정 대변인 단독 생각"이라며 선을 그었고, 이후 그 논평은 폐기됐다(...)


10. 인천광역시, 부천시 비하발언 (이른바 '이부망천') 논란[편집]


이부망천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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