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L. 매브리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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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라파예드 매브리 2세
George Lafayette Mabry Jr.


출생
1917년 9월 14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섬터
사망
1990년 7월 13일 (향년 72세)
미국 펜실베이니아 스테이트버그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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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학력
프레비테리안 대학교
직업
군인
최종 계급
소장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1. 개요
2. 생애
3. 참고 문헌



1. 개요[편집]


미국의 군인이다.


2. 생애[편집]


1917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섬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프레비테리안대학교에 진학해 영어학을 공부했고, ROTC를 통해 소위로 임관했다. 1940년 훈련을 마친뒤 제4보병사단 제8보병연대에 배치되었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해 유타 해변에 상륙했으며 8월 지크프리트 선에 도달하게 된다. 11월 휘르트겐 숲 전투에서 독일군과 전투를 치루게 되었다.

11월 20일 제8보병연대 제2대대를 지휘하던 매브리 중령은 지뢰밭과 강력한 적의 사격으로 인해 위치에 고립되었다. 매브리 중령은 나머지 병사들을 위한 안전한 경로를 안내하기 위해 지뢰밭에서 혼자 전진했다. 최전방 정찰병보다 앞서 나가 공격을 이끌었고, 폭발물을 분리하고 전선을 통해 경로를 끊었다. 적에 도착했을 때 세 개의 독일군 참호를 발견하여 총검을 사용해 독일군들을 생포했다. 다시 계속 전진해 벙커 세 개를 발견했다. 첫 번째 벙커는 비어있었으나 두 번째 벙커에서 9명의 적군과 맞닥뜨렸다. 매브리는 간신히 소총 개머리판을 사용하여 한명을 저지했고 나머지는 정찰병이 도착하기 전 총검으로 사살했다. 정찰대가 합류한 후 세 번째 벙커로 돌격했고, 내부로 진입하여 적군 6명을 사살했다.

이후 해당 지역이 확보되자 매브리는 고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대대를 이끌고 300야드를 전진했고 양쪽 측면에서 방어선을 구축해 교두보를 마련했다. 매브리의 활약으로 며칠 만에 제4보병사단은 두 개의 도로를 확보하고 그로스하우 마을을 점령했다.

4일뒤 명예훈장을 수여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파나마 운하에 배치되어 육군 정글전훈련소 설립을 지원했고, 운하 벙어 계획을 수립했다.

1966년 베트남에서의 군사작전의 효율성을 연구하는 연구팀을 이끌었고, 미 육군전투개발실험사령부의 사령관이 되었다. 3년 뒤 소장으로 진급해 베트남으로 파견되어 그린베레블랙옵스 작전 은폐 업무를 맡았으며 1년 후 파나마 운하에 다시 배치되어 미 육군 남부사령부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1975년 예편했고, 1990년 전립선암으로 인해 사망했다.


3. 참고 문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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