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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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영국 국기.svg 1차세계대전기 영국군의 장성급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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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Field Marshal/Admiral of the Fleet

육군
원수
허버트 키치너 | 존 프렌치 | 더글러스 헤이그
해군
원수
존 피셔
대장
General/Admiral

육군
대장
허버트 플러머 | 에드먼드 앨런비 | 줄리언 빙
해군
대장
바텐베르크의 루트비히 공자 | 존 젤리코 | 데이비드 비티
중장
Lieutenant-General/Vice-Admiral

육군
중장
-
해군
중장
-
소장
Major-General/Rear-Admiral

육군
소장
-
해군
소장
-
준장
Brigadier/Commodore

육군
준장
-
해군
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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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ral of the Fleet
The Right Honourable
[1]
The Lord Fisher
GCB, OM, GCVO


파일:John_Arbuthnot_Fisher,_1st_Baron_Fisher_by_Sir_Hubert_von_Herkomer.jpg

이름
John Arbuthnot Fisher
존 아버스넛 피셔
출생
1841년 1월 25일
실론 섬 람보다
사망
1920년 7월 10일 (향년 79세)
영국 잉글랜드 런던
국적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복무 기간
1854년 ~ 1911년
1914년 ~ 1915년
최종 계급
파일:영국 해군기.svg 해군 원수
(Admiral of the Fleet)
지휘
북미 및 서인도 기지
(North America and West Indies Station)
지중해 함대
(Mediterranean Fleet)
포츠머스 총사령관
(Commander-in-Chief, Portsmouth)
제1해군경
(First Sea Lord)
작위
노포크 카운티의 킬버스톤의 피셔 남작 (1909)[2]

1. 개요
2. 상세
3. 커리어



1. 개요[편집]


영국 해군의 제독. 목조 범선의 시대에 입대해 60년 가까이 복무하면서 드레드노트급 전함에 이르기까지의 발전을 이끈 명제독이다.


2. 상세[편집]


존 피셔는 1841년 실론 섬에서 11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육군 대위였지만, 그가 태어난 해에 장교 계급을 팔고 커피 농장을 경영했다. 하지만 성과가 신통치 않았기에 결국 피셔는 6살의 나이에 영국의 외할아버지에게 보내져서 영국에서 자랐다.

피셔는 실론 주지사의 보좌관을 맡았던 아버지의 인맥으로 1854년 해군에 입대할 수 있었다.[3] 해군에 입대한 후, 피셔는 크림 전쟁제2차 아편전쟁에 참전했다. 영국에 돌아온 후에는 포술학교에서 최신예 함포를 평가하는 직책을 맡았고, 이후에는 함선의 포술장교로 일했다. 다시 포술학교로 돌아와 교관으로 근무하는 동안 피셔는 최신예 무기인 어뢰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전기 어뢰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 근무를 마친 피셔는 포술학교로 복귀했고, 곧 새로운 어뢰학교를 설립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이후 해군성에서 어뢰 관련 업무를 맡아 보던 중 피셔는 북미에 배치되어 첫 함장 직을 수행했다. 이후 지중해와 북미를 오가면서 여러 함선의 함장을 맡았던 피셔는 1882년 지중해를 순방하는 빅토리아 여왕을 수행하게 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피셔는 빅토리아 여왕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영국-이집트 전쟁에 참전한 피셔는 알렉산드리아 포격에 참여했고, 상륙 당시에는 정찰 수단이 부족하자 열차에 무장을 탑재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피셔는 이집트에서 말라리아에 걸렸고 본인이 병가를 고사했지만, 해군성의 명령에 의해 영국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영국에서 피셔는 웨일즈 공 부부와 친분을 쌓게 되었고, 빅토리아 여왕의 초대를 받아 오스본 하우스에 방문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하였다.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피셔는 포술학교장을 맡았지만, 건강 문제로 인해 다시 요양하게 된다. 다시 해군으로 복귀한 피셔는 해군병기국장에 임명되었다. 병기국장 임기 동안 피셔는 어뢰정에 대응하기 위한 속사포의 개발을 담당했다. 1887년부터 여왕의 부관 직을 같이 수행한 피셔는 1890년 제독으로 진급했다.

병기국장 임기를 마친 후, 포츠머스 조선소장에 임명된 피셔는 함선의 건조 속도를 줄여 비용을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제3해군경으로 영전한 피셔는 구축함의 건조를 추진했다. 이후 북미 및 서인도 기지사령관을 역임하던 중 피셔는 솔즈베리 후작의 지명으로 제1차 만국평화회의에 영국 해군 대표로 파견되었다.

만국평화회의 이후, 지중해함대사령관에 임명된 피셔는 임기 동안 함대의 훈련과 전투 준비 태세를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피셔는 해군성과 마찰을 빚었고, 군수업체 이사로 옮길 것을 권유받기도 했다. 이후 제2해군경으로 해군성에 돌아온 피셔는 해군 내에서 과학 기술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병기 장교와 항해 장교를 따로 육성하던 기존의 커리큘럼을 합치는 개혁을 추진했다. 이후 포츠머스 총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긴 피셔는 1904년에 제1해군경에 취임하게 된다.

제1해군경이 된 피셔는 드레드노트급 전함순양전함의 건조를 추진했으며, 여러 구형 함선을 매각하거나 예비역으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함선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는 개혁을 추진했다. 한편 피셔는 독일 해군을 상대로 선제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킬 운하의 확장이 완료되는 1914년 10월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4] 1909년에 남작 작위를 받은 피셔는 1911년 70세의 나이에 해군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 왕립 연료 및 엔진 위원회 의장을 맡았던 피셔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해군성을 지속적으로 방문하면서 윈스턴 처칠과 면담을 가졌다. 그리고 바텐베르크의 루트비히 공자가 출신 문제로 제1해군경에서 사임하자, 피셔는 현역으로 복귀해 제1해군경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처칠과 갈등이 일어나면서[5] 피셔는 다시 해군에서 은퇴했고, 나머지 전쟁 기간 동안 피셔는 발명 및 연구 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피셔는 1920년 79세의 나이에 런던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3. 커리어[편집]


  • HMS 캘커타 근무
  • HMS 아가멤논 근무[사관후보생]
  • HMS 하이플라이어 근무[중위]
  • HMS 체서피크 근무
  • HMS 코로만델 근무
  • HMS 퓨리어스 근무
  • HMS 엑설런트 근무[대위][6]
  • HMS 워리어 포술장교
  • HMS 엑설런트 교관
  • HMS 도네갈 부장[중령]
  • HMS 오션 부장
  • HMS 버넌 교장[7]
  • HMS 허큘리스 함장[대령]
  • HMS 벨레로폰 함장
  • HMS 팔라스 함장
  • HMS 노스햄프턴 함장
  • HMS 인플렉시블 함장
  • HMS 엑설런트 교장
  • 해군병기국장[소장]
  • 포츠머스 조선소장
  • 제3해군경[8][중장]
  • 북미 및 서인도 기지사령관
  • 지중해함대사령관[대장]
  • 제2해군경[9]
  • 포츠머스 총사령관
  • 제1해군경[원수][퇴역]
  • 왕립 연료 및 엔진위원회 의장
  • 제1해군경[현역][재퇴역]
  • 발명 및 연구위원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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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작 본인에 대한 경칭[2] Baron Fisher of Kilverstone in the County of Norfolk[3] 피셔의 동생들도 해군에 입대했다. 남동생 프레데릭은 몰타 조선소장과 그리니치의 왕립해군대학장을 지내고 대장까지 진급했으며, 또 다른 남동생인 필립은 대위까지 진급했지만 1880년 폭풍우 속에서 탑승한 함선과 함께 실종되었다.[4]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8월에 일어났다.[5] 윈스턴 처칠갈리폴리 상륙작전을 추진했지만, 반면에 피셔는 발트 해 상륙을 선호했다. 무엇보다 갈리폴리 전투 중 다수의 수상함이 침몰하자 결국 처칠에게 항의하는 의미에서 사퇴한다.[사관후보생] [중위] [대위] [6] HMS 엑설런트는 함선이 아니라 육상에 설치된 해군의 포술 학교다.[중령] [7] HMS 버넌은 함선이 아니라 육상에 설치된 해군의 어뢰 학교다.[대령] [소장] [8] 해군 통제관이라고 불리며, 해군의 선박과 장비의 공급을 총괄하는 직책이다.[중장] [대장] [9] 해군의 인사를 담당하는 직책이다.[원수] [퇴역] [현역] [재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