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침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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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일본서기 기록



1. 개요[편집]


支侵國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소개된 마한 54개국 중 하나이다. 3~4세기 무렵 백제에 병합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일본서기》에서는 397년 8월 백제 아신왕왜국에 예의를 갖추기 않았기 때문에 지침(支侵) 등의 지역을 빼앗고 왕자 부여전지를 볼모로 데려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문헌 특성상 이 기록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4세기 말에는 지침국이 위치했던 곳이 백제의 소유가 되었음이 확인된다. 이후에는 지삼촌(只彡村)이 되었고, 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당나라 웅진도독부가 설치될 때는 지심주(支潯州) 관할 하의 지심현(支潯縣)으로 개칭되었다.[1]

정확한 위치는 불명이나, 《삼국사기》의 웅진도독부 기사에서 지심주의 속현을 나열할 때 지심현 바로 다음으로 기재된 마진현(馬津縣)이 본래 고산(孤山)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같은 지명으로 보이는 고산현(孤山縣)이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침국의 위치 역시 그 근방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한자 지(支)의 당시 음가가 '기'에 가까웠다는 점을 들어 백제의 기군(基郡)이 위치했던 충청남도 서산시에 비정하기도 한다.

2. 일본서기 기록[편집]


百濟人來朝. 【百濟記云, 阿花王立无禮於貴國. 故奪我枕彌多禮, 及峴南·支侵·谷那·東韓之地. 是以, 遣王子直支于天朝, 以脩先王之好也.】

백제인이 내조하였다. 【《백제기》에 따르면, 아화왕(阿花王)이 왕위에 있으면서 귀국에 예의를 갖추지 않았으므로 (귀국이) 우리의 침미다례 및 현남(峴南), 지침(支侵), 곡나(谷那)[2]

, 동한(東韓)의 땅을 빼앗았다. 이에 왕자 직지(直支)를 천조(天朝)에 보내 선왕 때의 우호를 닦도록 하였다.】

일본서기》 10권 오진 덴노 8년(397년)[3]

3월


[1] 이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사실인데, 734년 작성된 〈난원경 묘지명〉에서 백제 유민 난원경의 아버지인 난무가 지심주제군사(支潯州諸軍事)와 수지심주자사(守支潯州刺史)를 역임했다는 대목이 있어 금석문과도 교차 검증된다.[2] 백제의 욕내군(欲乃郡)으로, 곧 전라남도 곡성군을 의미한다.[3] 《일본서기》의 기년을 그대로 신뢰하면 서기 277년이지만, 아신왕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실제 연대는 이주갑인상을 적용한 서기 397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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