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씨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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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후 레 왕조가 막 왕조에게 한번 멸망했다가 다시 재건된 후, 중흥 후여조를 세우기 위해 공을 세운 정씨(鄭氏) 일족들이 세운 정권. 명목상으론 여씨 황제의 신하들이기에 제후왕을 칭했다. 응우옌씨 정권과 대립했으며 조정과 가까웠기에 정왕(鄭王)들은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실질적인 통치자 노릇을 한다.
2. 역사[편집]
1570년, 찐끼엠의 뒤를 이은 찐뚱(Trịnh Tùng, 鄭松)은 1572년에는 후 레 왕조의 영종(英宗)을 살해하고, 다섯 번째 아들인 세종(世宗)을 옹립하였고, 자신은 평안왕(平安王)이 되었다. 1599년 세종이 죽자, 경종(敬宗)을 옹립하였으나, 1619년 경종을 살해하고 신종(神宗)을 옹립하였다.
또 1653년 6월부터 찐뚱의 후계자인 찐짱(Trịnh Tráng, 鄭梉)은 멸망 직전의 남명(南明)으로부터 안남(安南)의 부왕(副王)으로 책봉되었다. 또 1657년 계승한 그 아들인 찐딱(Trịnh Tạc, 鄭柞)은 서왕을 자칭 하는 등, 탕롱(하노이)를 거점으로 하여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다.
정주 후반 포악하며 무능한 군주인 찐장조 시기 쇠퇴기에 접어들었으나 남쪽의 응우옌씨 정권에 비하면 심한 쇠퇴기는 아니였다.
1771년, 완주의 징세리 응우옌냑이 떠이선 농민 운동을 개시해 완주에 대항하자 당시 정왕 찐섬은 떠이선과 연합하여 완주를 멸망시켜 외형상의 통일을 이루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찐섬의 뒤를 이은 전도충민왕을 폐하고 즉위한 찐똥 시기, 찐똥의 즉위에 공헌한 삼부군의 횡포를 비롯하여 정주의 인사들도 완주처럼 부패했다는 내막에 실망한 응우옌흐우찐이 완혜에게 이를 고했고 결국 1786년 탕롱을 침공, 찐똥이 붙잡혀 자살함으로써 찐주는 실질적으로 멸망하였다.
3. 역대 국왕[편집]
- 명목상으로는 후여가의 신하이기에 황제가 아닌 왕임.
4. 추존 국왕[편집]
4.1. 계보[편집]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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