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미안

덤프버전 :

鍘美案

1. 개요
2. 줄거리
3. 찰미안의 원전 및 뒷이야기
4. 여담
5. 출연진


1. 개요[편집]


판관 포청천에피소드 가운데 하나. 여러 화로 구성된 장편 에피소드이다.

1993년 판을 MBC에서 방영했을 때 표기되었던 제목은 부마처형사건이었다.


2. 줄거리[편집]


시골 여인 진향련이 고향에서 기근으로 시부모를 잃고 두 아이를 데리고 과거시험 보러 떠난 후 실종된 남편 진세미를 찾아 상경했다가 우연히 부마 진세미를 보고 자신의 남편이라 주장하면서 소송을 건다. 부마는 부인하지만, 알고 보니 부마 진세미는 과거에 급제하고 그에게 반한 공주 측에서 혼담을 넣으면서 혼인 여부를 물어보자, 공주와 결혼하려고 총각인척 혼인하여 조강지처를 버린 나쁜 놈이었고, 사실을 부인하며 잡아떼기 위해 증인이 될 사람 여럿을 죽게 하였다. 공주와 태후가 와서 자기들 체면 때문에 완전히 억지를 부리며 진세미를 구하려 하지만, 결국 포증에게 목이 잘린다.

부마부에서 항의하다 쫓겨난 진향련이 쏟아지는 비에 혼절하게 되고 퇴궐하던 왕승상이 진향련과 아이들을 발견하여 승상부에 데려와 치료해주는데 억울함을 호소하고 왕승상은 진위여부를 알기위해 진향련을 부마를 자신의 생일에 초대한다. 승상의 생일날 가희[1]로 진향련이 등장하고 부마가 과거를 보기 위해 떠난 이후 자신의 고생담을 노래로 부른다. 노래를 듣던 진세미가 불편한 표정으로 그냥 나가버린다. 이 일로 진위를 알게 된 왕승상이 진항련을 포청천에 보내준다.

그러나 진세미가 사형에 처해질지도 모른다는 말에 진향련은 고소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고 그런 진향련과 아이들을 진세미는 자신의 호위무사 한기를 시켜 죽이려 한다. 한기가 죽이려는데 진향련이 자신은 그의 조강지처인데 호랑이도 자기 새끼는 먹지 않는 법이라며 울부짖자, 한기는 사정을 알고는 자신은 부마부의 시위로서 부마의 지시를 따름이 맞으나, 그렇다고 죄 없는 진향련과 아이들을 죽일 수도 없다며 자신의 칼은 부마부의 시위가 지니는 칼이라며 이 칼로 그를 고소하라고 하고 자살한다. 이러한 이유로 한기는 진향련에게는 은인, 포증에게는 협객이라 불리게 되고 진향련이 부마가 처형되고 고향에 떠날 때 시부모의 위패와 함께 한기의 위패도 가지고 간다. 하지만 진세미는 도리어 진항련에게 오히려 한기를 살해했다는 죄[2]를 뒤집어 씌워 유배를 보내고 유배 가는 도중에 진항련과 아이들을 죽이려 하나 우연히 지방으로 떠났다 개봉으로 돌아오던 전조가 발견하고 구해준다.

그 후 어쩔 수 없이 진세미는 진향련을 거두는 척 부마부로 불러들여 포증의 눈을 피해 강제로 조작된 이혼서[3]에 지장을 찍게 하는데. 진향련이 응하지 않자 아이들을 빼앗고 감금해 버리고 결국 어찌저찌 풀려났다. 진향련은 지치고 분노하여 황가가 이딴 식이면 백성을 어찌 대할진 불을 보듯 뻔하다며 억울해도 억울하다 하지 않고 원념을 품은 채 죽겠다고 말한다. 포증은 정의로운 성격상 그건 절대 용납 못한다며 백성의 무고함과 억울함을 풀지 못하면 뭐하러 판관을 하겠냐며 진향련을 설득한 뒤,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진세미의 목을 작두로 잘라버리겠다며 진세미를 작두형에 처해버린다.

진세미에게 간신히 작두형을 선고했음에도 공주는 부마를 살려달라고 포증과 황제가 있는 앞에서 떼를 쓴다. 포증이 부마가 증인으로 오는 중매쟁이 노부부 중 노부인을 죽였다고 고하자, 황제는 살인사실을 공주는 왜 숨겼냐고 추궁한다. 공주의 대답이 "그건...부마가 직접 죽인 것도 아닌데 죄인가요..."였다. 아랫사람에게 살인을 명령한 것이나 살인한 것이나 뭐가 다르냐는 반박에 공주는 그저 모른다고만 하며 부마를 살려달라고 떼를 쓴다. 황제 역시 분노하며 포증에게 부마 처형을 지시하자 뱃속의 아이 타령을 하며 아이를 아버지 없는 유복자로 만들 수는 없으니 부마는 무조건 살아야 한다며 억지를 부린다.

살인교사도 살인죄가 맞다고 황제가 타이르는데도 직접 살인 안 하면 무죄라면서 과부 되기 싫어서 억지를 부리는 공주나, 그런 공주편만 들어주는 유태후[4]나 인간 말종들이다.[5] 개봉부에 부마가 끌려오고서도 공주와 유태후가 억지를 쓴다. 유태후는 인종이 하사한 자신의 지팡이를 작두에 밀어넣으면서 이것도 같이 자르라며 헙박하자[6] 결국 포증이 진종이 하사한 상방보검[7]을 내세우자 파직시키겠다는 협박에도 관모를 벗으며 (관직에 연연 안 하니) 마음대로 해보시라는 통에 유태후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8] 결국 진세미는 작두로 목이 잘리는데, 그의 죄목은 기군망상(군주 기만), 부정청탁, 협박, 무고, 살인미수, 살인, 살인교사이다.


3. 찰미안의 원전 및 뒷이야기[편집]


판관 포청천에서 실화로 알려진 찰미안(鍘美案)은 희곡 새비파(賽琵琶)를 원전으로 한 작품이다, 그러나 원전인 새비파(賽琵琶)나 이후 등장한 찰미안(鍘美案)은 희곡일 뿐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진세미의 모티브인 실제 인물 진년곡(陳年谷)은 '진청천'이라고까지 불린 청백리로, 포청천이 환생했다고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9]

통더룬(童德倫)이라는 사람이 수십 년간 각종 사료를 조사하여 '진년곡비사(陳年谷秘史)'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의 저서에 따르면 청나라 강희제 연간(1662~1722)에 진년곡(陳年谷)이 귀주(貴州)의 포정사[10]가 되었다. 그러자 동향의 선비 구몽린(仇夢麟) 등이 관직을 부탁하러 진년곡을 찾아갔다. 그러나 청렴한 진년곡은 그들이 자신에게 청탁해 벼슬에 오르려는 의도를 알고 정중히 거절하였다. 진년곡이 벼슬을 하기 전에 구몽린은 작은 도움을 준 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도움을 받았던 진년곡에게 거절당하자 소인배였던 구몽린은 크게 실망하고 진년곡에게 원한을 품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구몽린은 저자에서 비파기(琵琶記) 공연을 보았다.

희극 비파기(琵琶記)의 원작은 비극 조정녀채이랑(趙貞女蔡二郞)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정녀는 과거를 위해 집을 떠난 남편 채이랑[11], 즉 채백개(蔡伯喈)를 대신하여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다가 가뭄으로 시부모가 유명을 달리하자, 비파를 연주하여 구걸을 하면서 남편을 찾아 수도로 올라온다. 채백개는 자신을 찾아온 조정녀를 외면하고 오히려 말발굽으로 짓밟아 조정녀를 죽인다. 그러자 하늘이 노하여 번개를 쳐서 채백개를 죽임으로써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이후 원나라 말기의 문인 고명(高明·1305~1359?)이 내용이 해피엔당으로 바꾸었다. 고명의 자는 측성(則成)이고 호는 채근도인(菜根道人)이며 온주(溫州·지금의 절강성 루이안시) 사람이었다. 마흔이 넘어 진사에 합격한 후 항주 등지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노년에 절강성 영파(寧波) 부근에 은거하면서 희극 창작에 전념하였는데,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희극을 통해 희망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에 손으로 여러 비극 작품들이 희극으로 탈바꿈하였는데, 비파기는 그때 쓴 작품이다. 해피엔딩으로 바뀐 비파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류(陳留) 지방에 살던 채백개(蔡伯喈)는 조오낭(趙五娘)과 혼인하여 달콤한 신혼생활을 하였으나 신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과거 시험을 보아서 집안을 빛내라는 분부를 받들어 수도에 가서 과거에 응시하여 단번에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당시 조정의 승상이던 우씨(牛氏)는 그가 뛰어난 인재인 것을 알고 사위 삼으려 하였다. 채백개는 처음에 자신은 유부남이라고 강경하게 반대하였으나 황제와 우씨의 적극적인 권유로 결국 우씨의 사위가 되었다. 승상인 우씨가 혼인을 권할 때는 강경하게 반대하였으나, 우씨가 황제에게 요청하자 황제가 직접 나서 우씨의 딸과 혼인하라고 권하자 결국 받아들이고 만다. 황제가 권하는 혼인을 반대하면 황제기만죄가 되기 때문.[12]

그러나 마음은 늘 고향에 가 있었고 항상 본처 조오낭(趙五娘)을 그리워했다. 한편 그 즈음 채백개의 고향에서는 대기근이 밀어닥쳤다. 채백개의 본처 조오낭은 자신은 술지게미와 겨(糟糠)나 들풀을 뜯어먹으면서도, 시부모에게는 시집올 때 가져온 패물을 모두 팔아 음식을 마련해 공양하였다. 이런 정성에도 불구하고 기근은 끝나지 않았고 시부모는 모두 굶어죽고 말았다. 조오낭은 명주치마에 흙을 담아 날라서 시부모를 매장한 후, 여도사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서울로 남편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녀는 시부모의 영정을 직접 그려 몸에 지니고 여정 내내 비파를 타며 구걸을 하였다. 수도에 올라와 미타사(彌陀寺) 법회에 참가하였다가 시부모의 영정을 불전에 바쳤다.

때마침 미타사를 찾았던 채백개는 부모의 영정을 발견하고 자신의 본처 조오낭이 자신을 찾으러 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집으로 가져가 서재에 걸어놓고 조오낭을 그리워하는데 영정을 바친 사람이 여도사이며 비파를 타고 구걸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암암리에 수소문하여 비파를 타던 여도사를 찾지만 허탕을 치게된다. 거리를 헤매던 조오낭은 연회를 위해 비파를 타는 사람을 찾는 우승상 댁 하인들 손으로 우승상의 집에 불려가고 우승상의 사위가 남편 채백개이며 그가 황제의 명으로 우승상의 딸과 혼인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모르는 사람인 척한다. 상술되었듯이 남편이 황제기만죄를 범할 수 없어 우승상의 딸과 혼인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

승상부에서 열린 연회에서 비파를 타다가 우씨 부인(즉 채백개의 둘째 부인)의 현숙함을 보고 우 부인과 단 둘이 있게 되었을 때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한다. 현숙한 우씨 부인은 채백개가 자신과 혼인하기 전에 본처가 따로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남편이 본처를 항상 그리워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남편 채백개와 본처 조오낭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신중한 계획을 세운다. 혹 채백개가 조오낭과 마주쳤을 때 갖은 고생을 한 조오낭이 외모가 예전과 달라 몰라볼까 염려하여 조오낭으로 하여금 서재의 영정 위에 시를 적도록 한다.

집으로 돌아온 채백개는 영정 위에 씐 시를 보곤 본처 조오낭이 자신을 찾아온 것을 알고 자신의 둘째 부인인 우승상의 딸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 채백개와 조오낭은 결국 재회한다. 조오낭에게 사정을 들은 채백개는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장인 우승상에게 간청한다. 우승상은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사위 채백개의 본처까지 찾아온데다 자신의 딸까지 그렇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마당이라 동의해준다.

채백개는 첫째 부인 조오낭과 둘째 부인인 우씨 부인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의 묘소 곁을 지킨다. 후에 황제가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이 괜히 혼인을 주선해서 채백개의 첫째 부인 조오낭을 고생하게 했고 채백개가 그의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승상의 사위라는 권력을 포기하고 낙향하여 부모의 묘소를 지키는 채씨 가문을 표창하고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한 조오낭에게는 열녀문을 하사한 뒤 조오낭과 우씨는 의자매를 맺어준다. 이후 채백개와 첫째 부인 조오낭과 둘째 부인인 우씨는 서로를 공경하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소인배인 구몽린(仇夢麟)은 비파기(琵琶記)의 공연을 보다가 원전이 조정녀채이랑(趙貞女蔡二郞)이고, 원전에서 채백개가 조강지처인 조정녀를 죽이지만 그도 천벌을 받아 죽는다는 내용을 듣고 이를 진년곡(陳年谷)을 모함하기 위한 술수로 아용하기로 마음 먹곤 새비파(賽琵琶)란 희곡을 지었다. 새비파에서 남녀 주인공을 진세미(陳世美)[13]와 진향련(秦香蓮)[14]으로 하였다. 작품을 통해서 진년곡을 조강지처를 버린 인간 말종으로 묘사하여 백성들에게 진청천으로까지 불리며 존경받는 그의 명성을 흠집내어 복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구몽린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진년곡은 자신이 아껴둔 녹봉으로 돈을 보내 그의 집을 새로 지어주고 공부에 전념하여 과거 시험을 보고 당당하게 벼슬에 오르라라는 격려 편지와 함께 많은 책을 보냈음을 알았다. 구몽린은 자신이 속 좁은 소인배라고 후회했지만 그가 지은 새비파는 이후 크게 유행하였고, 가경제 연간(1796~1820)에 찰미안(鍘美案)으로 새롭게 개편되었다. 결국 구몽린의 뒤늦은 후회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영원히 남아 진세미를 영원한 비판의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다만 진년곡은 실제로 청백리였기에 새비파가 유행하던 당시에도 민중에게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현실의 진년곡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귀주(貴州) 지방을 잘 다스려 백성들의 신망을 얻었고 둘째 부인 진형련과 백련해로하였다. 그래서 그가 벼슬을 한 귀주(貴州) 지방과 그가 태어난 균주(均州)[15]에서는 찰미안의 공연은 금지한다는 불문율이 전한다.

그런데 이후 일부 극단들이 돈을 벌기 위해 귀주와 균주에서는 공연을 금지하자던 약속을 깨고, 실제로 진년곡의 출신 지방인 균주(均州에서 찰미안을 공연했다. 균주에 사는 진년곡의 직계 자손이 이를 알고 집안 사람들을 모아서 연극에 뛰어들어 망쳐놓았고, 극단원들을 폭행하여 공연하던 이들을 죽였다. 살아남은 극단인들이 이들을 살인죄로 고발했으나 극단인들을 살해한 이들은 오하려 무죄방면되었다. 살해당한 극단에서 진년곡 집안 사람들을 고발하였는데, 재판에서 청백리여서 청천이라 불리며 포청천으로 불리던 포증이 환생했다고 믿는 민중들이 존재할 정도로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을, 단지 돈벌이를 위해 거짓으로 작품을 꾸며서 연기한데다, 이러한 이유로 그가 태어난 균주와 벼슬살이를 한 귀주에서는 공연하지 않기로 진작에 정해놓고도 돈을 더 벌려는 욕심에 규칙을 깨는 등 죽어 마땅한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진년곡의 후손들을 무죄방면했다.

이 때문에 연극을 하는 이들은 찰미안은 귀주와 균주에서는 공연이 완전히 금지하기로 하고, 연극을 해서 일어난 불상사는 해당 극단에서 알아서 하기로 못을 박았다. 정확히 법으로 금지된 게 아니라 공연을 하는 이들이 여기에서 공연해봤자 두들겨 맞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해도 가해자는 진년곡의 후손들일 텐데, 이들이 처벌받지 않으니 공연하지 말자고 정한 것이다. 하지만 찰미안이 워낙 유명한 공연이라 다른 지역에서는 공연되고, 귀주나 균주 사람들이 이러한 공연을 보러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거기에 진년곡과 진향련의 모티브이자 진년곡의 아내인 진형련(秦馨蓮)과 사이는 찰미안과는 달리 오히려 천생연분이었지만 찰미안 때문인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진세미의 원형 인물이 청백리 진년곡인 줄도 모르는 이들이 많았으나, 인터넷이 보급되어 배경사실이 알려지면서 새비파를 쓴 구몽린이나 이후 찰미안으로 개편하여 연극을 하는 이들이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오히려 진년곡은 억울하게 모함받은 청백리로, 아내 진형련도 남편 내조를 잘한 현모양처로 새롭게 조명받았다.

4. 여담[편집]


1993년판 포청천이 우리나라에서 방영했을 때 이 에피소드와 진가장원을 MBC에서 1994년 추석특집으로 방영했었다. 그 후 나머지 시리즈는 알려졌다시피 KBS2에서 1994년 10월부터 방영해서 시청률이 대박을 쳤다. MBC는 졸지에 KBS 대신 파일럿 방영을 해준 셈이 되었다.

2008년 포청천에서 리메이크 되었는데, 이때는 공주를 포함한 주요 인물들이 재해석되어 나름 개념인으로 나왔다. 단적인 예로 08년도 공주는 뱃속의 아이만 아니었다면 본인이 진세미를 사형시켰을지 모를 정도로 개념찬 모습으로 나온다. 오히려 어머니 이태후가 이묘환태자 사건으로 자신을 도와준 공이 있는 포증에게 억지를 부리는 추태를 부렸으나, 공주의 말을 듣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여 나중에 포증이 사과하러 오자 자기가 틀렸다고 사과하였다. 참고로 공주는 유태후 소생이라서 이태후에게는 원수의 딸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머니를 잃은 공주를 가엾게 여겨 이태후가 자기 딸처럼 길렀다고 묘사된다. 2008년 포청천 첫 에피소드 이묘환태자와 마지막 찰미안의 시간 차이는 약 15년 정도. 공주가 20살로 나오므로 딸이나 마찬가지라서 이태후가 억지를 부린 것도 기른 정으로 공주를 가엾게 여겼기 때문이다.

2021년에 찰미안을 주제로 한 경극의 내용 일부를 Blaxy girls의 If You Feel My Love에 붙혀서 리믹스가 됐다.

5. 출연진[편집]


출연 배우: 진향련 - 유설화, 진세미 - 양회민, 공주 - 후병옥

[1] 歌姬-여자 가수를 아름답게 이르는 말, 2008년 포청천에서는 시녀로 등장하여 차를 진세미에게 날라준다.[2] 현령 서가린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 부마 진세미와 짰다.[3] 이혼 날짜를 공주와 혼인하기 전으로 앞당겨 이혼했다고 조작하여 황제를 기만했다는 죄를 피하려고 했다.[4] 부마처형사건은 이묘환태자 방영 전이므로 이때의 태후는 유태후이다.[5] 결국 유태후는 이묘환태자 사건으로 몰락하고 유태후 소생의 공주도 같이 몰락한다. 이후 공주의 내시가 사건을 꾸미는 홍화기 편에서 공주가 다시 등장하는데, 이때의 공주는 남편을 잃고 어머니도 잃은 뒤 궁에서도 찬밥 신세라서 의지할 곳이라고는 어릴 때부터 자기를 딸처럼 예뻐하던 늙은 내시였는데 그마저도 잃는다.[6] 태후가 지닌 지팡이는 황제가 하사한 것이므로 이를 자르면 황제를 모욕한 중범죄가 된다. 그러니 부마 목을 자르고 너도 죽어보라는 협박이다.[7] 판관 포청천 원작에는 인종이 진주에서 청원이 올라온 안락후 방욱의 상소의 진상을 파악하라고 보낼 때 어찰 세 통을 하사했다. 이때 공손책이 어찰 세 통을 작두 셋으로 바꾸어 황제에게 고하자고 하고 포증에게 고하는데, 인종이 이 내용을 보고 잘했다고 칭찬하며 그대로 시행하라고 하여 공손책이 용작두, 호작두, 개작두를 설계하고 떠나는데, 포증에게 자신의 대리자라는 징표로 상방보검을 하사하고 이후 진주의 사건을 무사히 해결하자 그대로 개봉부에 하사한다. 우리나라에서 방영할 때 오역으로 상황보검으로 나오고 이걸로 진종이 하사한 검으로 묘사되지만 드라마에서도 인종이 하사한 검이다.[8] 공주가 어머니 유태후에게 부마를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이때는 유태후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제아무리 유태후라도 황제의 권위 앞에 결국 후궁인 자신이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9] 실제로 진년곡은 사후 민간에서 포증이 추앙받았듯이 문곡성주의 화신으로 추앙받으며 사후 염라대왕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실존 인물인 포증이 그랬듯이, 청백리들이 염라대왕으로 올라 고통받는 민중들이 사후에서나마 공정한 재판을 받았으면 하는 민간의 희망이 섞인 설화이다. 진년곡은 이 정도로 존경받던 청백리였다.[10] 포정사(布政使)는 현재의 의 우두머리 격인 성장( 省長)에 해당하며 한국으로는 도지사에 해당한다.[11] 蔡二郞인 이유는 채씨 집안의 둘째인데 첫째는 어릴 적에 죽었다고 나온다.[12] 황제기만죄가 되면 자신은 물론 자신의 집안까지 모두 멸족당할 수도 있고, 그러면 자기 부모나 친인척은 물론 본처인 조오낭과 그의 처가까지 연루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13] 진년곡(陳年谷)의 호가 숙미(熟美)인데 세미(世美)와 발음이 동일하다.[14] 진년곡의 두 번째 아내로 첫째 아내와 사별한 후 혼인한 조강지처로 원래는 진형련(秦馨蓮이었는데 이름만 살짝 바꾸었다.[15] 현재 후베이성 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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