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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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龍
중국의 연호 중 하나이다.

1. 삼국시대 조위 제2대 황제 조예가 사용한 연호
1.1. 주요 사건
2. 오호십육국시대 후조 제6대 황제 석감이 사용한 연호
3. 오호십육국시대 후연 비정통 황제 난한이 사용한 연호



1. 삼국시대 조위 제2대 황제 조예가 사용한 연호[편집]


조위 연호



명제
청룡(靑龍)
(233년 ~ 237년)




삼국시대 조위의 제2대 황제인 명제 조예가 사용한 2번째 연호로 233년부터 237년까지 사용되었다. 233년 1월에 마피(摩陂)의 우물에서 청룡이 발견되자 이를 계기로 연호를 고쳤고, 청룡이 발견된 마피를 용피(龍陂)로 고쳤다.

조예는 234년 제갈량의 5차 북벌4차 합비 전투라는 촉한오나라의 양면공격을 버텨내어 위나라가 자리잡는 데 공을 세웠지만, 점점 실책을 범하여 위나라의 쇠퇴가 시작되었다.


1.1. 주요 사건[편집]




2. 오호십육국시대 후조 제6대 황제 석감이 사용한 연호[편집]


후조 연호

애제
태녕(太寧)
(349년)



폐제
청룡(靑龍)
(350년)



말제
영녕(永寧)
(350년)


오호십육국시대 후조의 제6대 황제인 폐제 석감이 사용한 연호로 350년에 사용되었다. 석감이 석준을 붙잡아 살해하고 스스로 황제에 즉위하여 청룡 연호를 사용하였지만 이후 석지가 다시 석감을 살해하고 스스로 황제에 즉위하였다.


3. 오호십육국시대 후연 비정통 황제 난한이 사용한 연호[편집]


후연 연호

혜민제
영강(永康)
(396년 ~ 398년)



창려왕
청룡(靑龍)
(398년)



소무제
건평(建平)
(398년 ~ 399년)


오호십육국시대 후연의 비정통 황제인 난한이 사용한 연호로 398년에 사용되었다. 반란을 일으킨 난한은 스스로 창려왕을 칭했으나 모용성에 의해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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