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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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895년 7월 18일, 경상북도 경산군의 빈농 집안에서 출생했다. 1907년 대구공립보통학교 졸업 이후 1912년 6월,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측량기수로 일하다가 1920년 3월, 대구청년회 및 노동공제회 위원이 되었다. 1925년 8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으나 1927년 10월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다.

해방 후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 1945년 8월, 서울시 인민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1945년 9월, 조선공산당이 재조직되면서 당중앙검열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으나, 11월에 다시 투옥되었다. 1946년 11월, 남로당 중앙감찰위원장에 선출되었으며 1948년, 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49년 6월, 남북로당이 합당하여 조선로동당이 출범함에 따라 조선로동당 중앙검사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50년 10월, 군부대 병원장에 배치되었으며 1952년 5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장에 임명, 1953년 8월 전원회의에서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에 선출되었다. 1955년 1월,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55년 8월 5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환갑기념 로력훈장을 받았다.

1956년 4월, 3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으며 1957년 9월, 2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의장에 선출되었다. 1961년 9월, 4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재선되었으며 1962년 10월, 3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 및 의장에 재선되었다. 1963년 5월, 강진건 장의위원, 1965년 7월, 정로식 장의위원장을 지냈다. 1967년 12월, 4기 대의원에는 재선되었으나 의장직을 백남운에게 물려주었다. 1968년 1월, 조국전선 의장에 선출되었다. 1968년 3월, 홍명희 장의위원, 1971년 10월, 박문규 장의위원을 지냈다.

1973년 3월 17일 21시 40분에 오랜 병환으로 사망하였다. 조국전선은 부고를 발표, "최원택동지는 자신을 우리 당의 유일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자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무한히 충실하였으며 사회주의의 완전승리와 조선혁명의 전국적승리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왔다."라고 좋게 말해주었다.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으며 1990년 8월 15일, 조국통일상이 추서되었다.

3. 참고문헌[편집]


  • 조선대백과사전 2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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