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기/사건사고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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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원정 도박 의혹(무혐의 처분)
4. O tvN <어쩌다 어른> 강의 오류 사건(방송 하차)
5. 통계청 비판 및 통계청의 재반박
6. 강의에 대한 비판
6.1. 독자적인 강의 구성
6.2. 강의 내용 오류


1. 개요[편집]


최진기의 사건사고 및 논란을 다룬 문서.


2. 원정 도박 의혹(무혐의 처분)[편집]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마카오에서 총 30여 차례 원정도박을 한 혐의로 2012년 11월 27일 검찰에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기소 내용은 법이 허용하는 한도를 초과하는 액수의 불법도박을 했다는 내용. 하지만 알고보니 최진기는 4년동안 지속적으로 한도 내에서 카지노를 했던 것이고, 검찰은 이것을 한 번에 허용액 4년치의 거액 도박을 한 것으로 수사했다고 한다. 그에 따라 법원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는데 역시나 후속보도는 거의 없었다. 이투스 공지사항에 최진기 사무실에서 올린 내용 정도가 끝.

3. 댓글 조작 의혹[편집]


삽자루는 2015년 5월 이투스와의 전속계약을 해지하며 이투스가 불법 댓글조작을 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삽자루가 그러한 댓글조작 행위에 연루되어 있다고 지목한 강사들 중 최진기도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되었다.

2017년 3월, 사교육 정상화를 촉구하는 학부모 모임(사정모) vs. 최진기. 시민단체 사정모는 이투스의 불법 댓글 홍보활동[1]에 최진기 등이 직접적으로 연루되어있다(활동지시까지 하였다)며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하였다. 경찰이 사건을 내려받아 수사에 착수하였다.[2] #신문기사

2017년 4월, 최진기는 수능 강의에서 은퇴하고 대중인문학에 매진하겠다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은퇴영상

2018년 1월, 지난한 조사 끝에, 경찰은 고발당한 최진기 등이 혐의가 없다는 판단으로 사건을 불기소의견으로 송치하였다. #관련기사

2018년 2월, 삽자루는 영상 최진기X설민석 레파토리를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이 영상에서 삽자루는 최진기 연구실 직원들, 댓글알바(제보자), 이투스 측으로 구성된 이들 삼자 간에 주고받은 내부 이메일 및 내부 보고 문건(예산 지출 내역, 강사 요청내용 등)을 다량 공개했다. 이를 근거로, 불법 댓글 홍보가 (인강회사 일개 직원들끼리 하는 일이 아니라) 이투스교육 대표이사 및 강사들이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일임을 주장하였다. 특히 삽자루는 이때 통계를 제시하며, 9명의 강사가 연루된 와중에 오직 최진기 1명이 댓글 작업량을 전체의 약 1/3이나 점유하고 있다는 점(타 강사들 평균 주작 분량의 4배에 해당한다)을 부각시켰다.

2018년 8월 23일, 김어준이 진행하는 딴지일보 방송 ‘다스뵈이다29회에 삽자루가 출연해 최진기의 댓글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자신이 체험적으로 밝혀낸 댓글조작 최신 경향을 설명하였고, 레파토리에서 공개한 내용을 발췌하여 직접 연루를 다시 주장하였다.

2018년 8월 27일, 최진기는 유튜브 채널 ‘오마이스쿨’을 통해 이런 의혹에 응답했다. (해당 유튜브 영상은 지금 지워진 상태다. 최진기 페이스북에는 영상이 남아있다.)최진기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처음엔 대응하지 않으려 했지만 ‘(우씨(삽자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면 싸워달라’는 이메일을 받고 마음을 바꿨다”며 “김어준이 나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영상에서 반론기회보장을 요구했는데, #다스뵈이다측에서는 출연요청을 하였으나 출연하지는 않았다.

2019년 6월 28일 대법원은 이투스가 삽자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삽자루의 손해배상 책임을 60%로 낮춰 인정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대법원 2019. 6. 28. 선고 2018다296298 판결 참조). 이에 앞서 원심인 서울고법의 판결문(서울고등법원 2018. 11. 9. 선고 2016나2081933 판결 참조)에 따르면, 이투스의 댓글조작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 다음, "이 사건 변론에 드러난 다음과 같은 사실관계 내지 사정들에 비추어 볼 때, 원고(이투스 측)의 위 손해 전부에 대하여 피고들에게 배상책임을 지우는 것 역시 공평의 관념에 반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들(삽자루 측)의 책임 범위는 60%로 제한하는 것이 옳다."고 판시하였으며, 판결문은 "피고들(삽자루 측)은 원고에서 원고에게 제1, 2 전속계약 위반에 따른 기지급 전속계약금의 반환 및 위약금 지급과 적극적 · 소극적 손해에 대한 배상으로 합계 7,588,164,263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상의 서울고법과 대법원 판결은 삽자루의 계약해지 및 손해배상의무에 대해서만 판단했을 뿐, 댓글조작 사건과 최진기의 연관성에 관하여 어떠한 법적 판단을 내린 적은 없다. 애초에 민사재판에서 댓글조작 등 형사사건을 판단할 리 만무하다. 삽자루의 유튜브 영상에 따르면 이와 관련하여 형사재판이 진행중인 듯하니 향후 형사법원의 판단을 기다릴 필요가 있다.

4. O tvN <어쩌다 어른> 강의 오류 사건(방송 하차)[편집]


파일:군마도(이양원).jpg
파일:군마도(장승업).jpg
이양원의 군마도
장승업의 군마도

2016년 5월 5일 O tvN TV특강 어쩌다 어른 32회에 출연해 설민석과 '가족'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에서 강의하였다. 그런데 장승업을 소개하던 중 현대 화가인 이양원(1944~)의 그림 군마도를 버젓이 장승업의 그림으로 설명하였다(…).

이 사실은 해당 방송이 나간 지 한 달이 지난 2016년 6월 8일 한국미술정보개발원에서 운영하는 한국 미술 정보 사이트 '스마트K'에 미술평론가 황정수가 기고한 'tvN 미술 강의로 본 인문학 열풍의 그늘'을 통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최진기가 이런 오류를 범한 이유는 아마도 한국어 위키백과의 잘못된 정보[3]에 기반하여 강의를 준비했기 때문인 듯하다.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이 그림이 장승업의 그림이라면서 그 출처를 개인 홈페이지인(…) 여기로 해 두었는데, 짐작건대 작품 구석의 '양원'이라는 낙관을 장승업의 호인 '오원'으로 오식한 듯하다. 위키백과의 이 잘못된 그림 인용은 2008년 11월 19일에 생겼으며 그 후로 8년간 수정이 되지 않다가[4] 강의 오류 사건 이후에야 수정되었다.

황정수 교수가 지적한 바에 따르면, 최진기는 군마도뿐만 아니라 파초 그림을 설명할 때도 실제 장승업의 그림이 아니라 장승업을 소재로 한 현대 영화 취화선의 소품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파초 그림을 인용하는 오류를 범했다.

제작사 CJ E&M 측에서는 "온라인에는 이양원 작가의 '군마도'가 장승업의 그림으로 소개된 곳이 많다, 온라인으로 정보를 찾다 보니 간과한 부분"이라고 밝혔으며(#) 방송사 O tvN 측에서는 사과문을 기재했고, 최진기는 모든 방송에서의 하차를 결정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의 경우 해당 분야를 전공한 석학들과 달리 비전공자인 강사들은 강의 중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최진기의 정규 학력은 사회학 대학원 석사'과정'이다. 수료하거나 학위를 취득하지는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5. 통계청 비판 및 통계청의 재반박[편집]


2018년 9월 10일 오마이스쿨 유튜브에 올린 '생존경제 36회:가계동향조사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자신의 강의에서 통계청이 올해 발표한 가계동향조사를 두고 "국가기관이 발표할 수 없는 통계"라며 통계청을 비판했다. 저소득층 소득이 줄고 소득분배가 악화됐다는 1·2분기 가계동향조사가 잘못된 모집단에 근거했기 때문이라는 것.

이러한 최진기의 주장에 대해 통계청은 18일 '해명자료'를 통해 통계청은 팩트체크 방식으로 최진기의 강의가 10가지 부분에서 잘못됐다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통계청은 “동일한 표본체계 하에서 표본규모가 증가하면 통계의 신뢰도가 높아지고 표본가구의 중복률이 높으면 적은 표본을 통해서도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러나 통계가 독립적인 2개의 시점 간에 유의미한 비교가 가능한가는 해당 통계가 각 시점에서 모집단에 대한 충분한 대표성을 확보하고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점을 말씀 드린다”며 “이를 위하여 통계청에서는 각 시점에서의 가구특성(지역, 주택유형, 가구원수 등)을 기준으로 조사결과를 사후보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최진기가 연도별로 표본 가구 수가 차이가 나는 점을 지적하며 문제를 제기한데 대해서는 “표본 크기가 커지면 오차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축소된 표본규모(약 4000가구)에서의 오차 수준은 2% 내외로 통계 작성 및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통계청은 한국사회의 빈부격차가 확대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새로이 많이 뽑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최진기의 발언에 대해 “소득모집단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통계청이 사전적으로 가난한 가구를 미리 알고 추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통계청은 표본이 모집단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표본가구가 해당 시점의 모집단을 충분히 대표할 수 있도록 인구주택총조사, 인구가구추계결과와 주택유형, 점유형태, 가구원 수 등 보조지표를 활용해 표본을 설계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표본 집단은 모집단 비율대로 추출해야 하며, 무작위 추출은 제대로 표본을 추출하지 못했다는 의미라는 최진기의 주장에 대해 최진기가 제시한 표본추출방법은 층화추출방법으로 모집단에 대한 사전적 정보가 있는 경우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통계청은 모집단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거나, 알려진 정보가 조사와 연관성이 낮은 경우에 모집단의 대표성을 확보하면서도 타 표본추출방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효율성이 높은 표본추출 방법인 무작위추출방법을 이용한다고 덧붙였다.

통계청이 반박내용을 발표한 데 대해 박상영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최진기의 해당 강의가 가계동향조사의 신뢰성 등을 훼손하고 있는 점과 해당 강의가 유튜브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 중인 점을 지적하며 “통계청 내에서도 해명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담당과로서 국민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6. 강의에 대한 비판[편집]



6.1. 독자적인 강의 구성[편집]


2017년 은퇴했지만, 과거 수능 강사 시절 다음과 같은 비판들이 있었다. 첫째,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의 용어가 아닌, 학문적이고 지나치게 현학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설명한다는 점, 둘째, 그 결과 다른 강사와의 호환성이 낮다는 점이다.

6.2. 강의 내용 오류[편집]


유튜브의 최진기 영상 중 조회수가 1200만이 넘는 2차대전 강의와 오마이스쿨에서 진행한 전쟁사 강의에서 오류에 대한 지적이 많다. 최진기 자신도 강의를 준비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라 외국어 발음을 혼동하거나 인물을 혼동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자신은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재주가 있을 뿐, 지식 수준이 그리 높지도 않고 전문 연구자도 아니다. 라고 강의에서 밝힌적이 있다.

  • 러일전쟁일본군의 연합함대 사령관 도고(東郷) 제독을 도조(東條, 제2차세계대전 전범으로 전혀 다른 인물)라고 잘못 말함. (장미(도고)를 보고 국화(도조)라고 한다면 장미(도고)도 모르고 국화(도조)도 모른다고 볼 수 있다).
  •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전함 야마토를 항공모함 야마모토라는 존재하지도 않던 배로 바꿔버리고, 미드웨이 해전에서 침몰했다고 잘못 말함.[5]
  • 세키하라 전투를 세키하라 전투라고 잘못 말함.
  • 진주만은 항공보급을 위한 기착지였다고 설명함.#
  • 폴란드는 전차가 없어서 기병이 독일의 기갑부대에 돌격했다는 독일의 전쟁초기 선전을 그대로 설명함.[6][7]

이외에도 평소 강의에서 자잘한 오류가 많은 편이다. 일례로 2015 수능 대비 윤리와사상 강의에서 장자의 '소요유'를 '소소유'로 잘못 읽는 일이 있었다. 단순 실수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전자칠판에는 '소요유'라고 멀쩡히 제대로 표기되어 있던 서명을 강의에서 잘못된 음독으로 고쳐 읽은 것이다.
[1] 최진기 언급 및 찬양 & 이지영 등 경쟁강사 폄훼[2] 시민단체의 근거 자료는 삽자루의 200GB 자료 일부로 추정된다... 링크된 기사와 후술할 레파토리 영상 참조[3] 2014년 2월 18일 버전 문서. 현재는 수정되었다.[4] 2014년 2월 18일부터 2년 반 동안은 아무도 위키백과의 이 문서를 건드리지 않았다.[5] 야마토급 전함의 3번함이었던 시나노가 급하게 항공모함으로 개조되어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미드웨이 해전의 참패가 개조의 원인이었던 사실과 함종과 함급이 여러가지로 섞여버린 모양.[6]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후 사정을 알아야 한다. 폴란드 기병은 윙드 후사르의 후예로 폴란드 군의 엘리트 부대였다.(폴란드 뿐아니라 독일 등 추축군부터 미국 영국 연합군까지 2차대전에서 기병을 운영하였다. 딱히 특이한 병과가 아니다.) 당연히 전투시에는 총기무장후 전선을 우회기동 적의 측면이나 후방을 타격하는 형태나 전술수색임무 운영되었고 특히나 재대로된 도로망이 거의 없던 당시 동유럽에서는 2차대전 직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입증된 전술운영이였다.(이는 독일군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개전 당시만 하더라도 당시 독일 수뇌부에서 동프로이센 일대에서의 작전 수행능력이 의심스러운 기갑부대 대신 기병 등의 비율을 대폭 늘린 경기계화부대 등이 편제하고 있었다.) 중세기병처럼 랜스 무장후 중앙 닥돌하는 부대도 그런식으로 운영되는 부대도 아니였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서도 폴란드 기병은 이런식으로 독일군의 측면이나 배후를 기동타격하는 형식으로 운영했고 전쟁사를 보면 전공또한 대단하다.[7] 하지만 독일 침공당시 폴란드 군은 아직 전력을 정비하기 직전이였고 제대로된 기갑부대가 배치되기 전이였다. 그런상황에서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시작되었고 개전초기 폴란드군의 예측과 달리 독일을 중앙 바르샤바로 진격이 아닌 북부와 남부로 측면 공격을 감행했고 이때 폴란드 북부의 항구도시인 그디니아그단스크에 주둔중이던 폴란드군은 독일군에 포위된다. 후퇴하기위해서는 동쪽 비스와강을 도강해야하는 상황에서 보병의 후퇴 시간을 벌기위해 폴란드 기병대가 희생을 감수하고 독일군에 돌격공격을 감행했고 이때의 일을 독일은 전쟁 초부터 선전했다. 재미있는건 이런 독일의 선전이 그대로 서방세계에 들어가서 미국 등에서 만들어지는 2차대전 자료나 책등에 그대로 인용이 되고 또 이 책이나 자료들이 한국전 이후부터 2000년대 이전 우리나라에 그대로 번역되어 출간되면서 이러한 이미지가 그래도 굳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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