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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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최태규
崔泰奎


출생
1920년 3월 30일
강원도 정선군
사망
2009년
평양시
본관
강릉 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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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화동공립국민학교 (졸업)
일본전수대학 (법학부)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
경력
대한일보정경부기자
가족
부인,1남[1]


1. 개요
2. 생애
4. 선거이력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2. 생애[편집]


1919년 강원도 정선군 동면(현 화암면)의 부유한 집안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화동공립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센슈대학 법학부 3년 과정을 수료하였으나 이후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중일전쟁에 참전했다. 해방 이후 대한일보 정경부 기자로 근무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강원도 정선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1950년 6.25 전쟁 중 월북하였다. 아들 최종혁은 남한에 남았다. 1956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소위 통협 결성에 참여하였고 연구원, 교양부부장, 부회장, 부위원장, 상무위원 등으로 일하였다. 1965년 3월, 안재홍 장의위원, 1974년 1월, 박열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8년 8월 1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조국통일상을 받았고 2004년, 민족21 취재진이 재북인사릉 취재를 하기 위해 방북했을때 안내인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후 2009년 10월 16일 오전 6시, 89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통일신보에 부고가 실렸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과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사업에 모든 힘과 지혜를 다 바쳤다."라고 얘기해주었다.[1]

나중에 북한은 2021년에 나온 <통일의 길에 이름을 남긴 애국인사들> 7권에서 최태규 일대기를 정리하였다.


3. 제헌 국회 활동[편집]


1948년 6월 11일 제1회 8차 본회의 당시 여러 의원들과 함께 "제주도소요사건선처를위한특별위원단설치에관한건"을 발의했다.[2]


4. 선거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48
제헌 국회의원 선거
강원
제8선거구[3]

[[무소속|
무소속
]]

7,757 (31.82%)
당선 (1위)
초선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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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인식이 마지막 제헌의원이라고 알려졌으나 이 사람이 마지막 제헌의원이다 다만 북에 있어서 제외되었다.[2] 같이 발의한 인물로는 오용국,장기영,백남채,서상일,김우식이 있다.[3] 정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