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시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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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1. 개요[편집]


1296년부터 1361년까지 발르케시르, 베르가마를 중심으로 미시아 (아나톨리아 서북부) 일대를 지배하던 아나톨리아 베이국. 초기에는 동쪽의 오스만 베이국보다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후 성장이 정체되고 오스만 베이국에 밀려 쇠퇴한 끝에 1361년 오스만 베이국에 완전히 정복당했다. 오스만에 정복당한 최초의 아나톨리아 베이국.


2. 역사[편집]


카라시 왕조를 세운 카라시 베이는 과거 다니슈멘드 왕조를 세웠던 다니슈멘드 가지의 후손이였다고 한다. 대략 1280년대 후반 즈음에 처음으로 미시아 지역에 진출하기 시작한 카라시족들은 1293년 동로마 제국의 명장 알렉시오스 필란트로피노스에 의해 점령지를 상실하고 동쪽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1295년 알렉시오스 필란트로피노스가 쿠데타 모의 혐의로 수도로 압송당하자 카라시족들은 1296년에서 1297년 사이에 다시 미시아를 공격하여 차지하고 카라시 왕조를 세웠다. 이후 카라시 왕조는 룸 술탄국에게 해안의 베이라는 작위를 받았다가 1299년경 룸 술탄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였다.

한편 동로마 제국아나톨리아가 붕괴하는 것을 실감한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안드로니코스 2세는 이 시기 동로마 제국으로 이주해온 알란족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고 남은 국력을 긁어 모아서 1302년 아나톨리아로 대규모 원정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카라시 왕조는 알란족들을 압도하여 격파하였고 바페오스 전투에서 오스만 베이국오스만 1세가 동로마군을 상대로 결정적으로 승리하면서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국운을 건 원정마저 실패하자 안드로니코스 2세는 당시 지중해 전역에서 악명이 높던 루지에로 데 플로르카탈루냐 용병을 고용, 1304년 아나톨리아에 당도한 카탈루냐 용병들은 카라시 왕조를 비롯한 아나톨리아 서부 전역의 튀르크인들을 쓸어버린다. 이로 인하여 카라시 왕조는 큰 피해를 입었다.또한 이제 남아있는 동로마 제국의 도시들은 난공불락의 요새들 뿐이였고, 카라시 왕조는 이를 함락할 만한 공성 능력이 없었기에 카라시 왕조의 성장은 매우 더뎌졌다. 미시아는 1302년을 기점으로 사실상 붕괴된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카라시 왕조가 1289년에 첫 공성을 시작했던 팔레오폴리스가 1328년에 함락되기 전까지 상당한 지역이 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남아있었다.

카라시 왕조가 팔레오폴리스 하나를 두고 30년 가까이 동로마군과 공방을 주고 받던 동안 카라시 왕조와 경쟁 관계에 있었던 오스만 왕조는 푸르사, 로파디온 등의 비티니아의 훨씬 더 중요한 요충지들을 획득했고, 급기야 오스만 왕조가 1331년에는 니케아, 1337년에는 니코메디아를 점령해버리자 세력 균형은 완전히 깨져버렸다. 게다가 왕조를 세운 카라시 베이가 사망한 이후 1330년대에는 베이국이 그의 아들들에게 분할되었고, 이를 틈 타 1336년 오스만의 베이 오르한이 카라시 왕조를 공격하여 상당한 영토를 탈취하였다. 이후 1343년에 스미르나 십자군이 카라시 왕조의 영토에 상륙하여 승리를 거두는 등 쇠퇴를 거듭하던 카라시 왕조는 1361년 오스만 왕조에 완전히 정복되었다. 카라시 왕조는 모든 아나톨리아 베이국 중 처음으로 오스만에 정복당한 베이국이다. 한편 카라시 왕조는 상당한 숫자의 함대를 보유하고 헬레스폰트 해협과 에게해 일대에서 노략질을 일삼았으며, 트라키아까지 약탈하여 동로마 제국에 큰 피해를 입혔다. 카라시 왕조가 오스만에 정복당한 이후에는 멘테셰와 함께 후일 오스만 함대의 주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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