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베 토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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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베 토시오의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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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킨테츠 버팔로즈]] 등번호 27번}}}
키무라 타카오미
(1969)

칸베 토시오
(1970-1978)


이케베 타케노리
(1979)

{{{#FFFFFF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야쿠르트 스왈로즈]] 등번호 11번}}}
니시이 테츠오
(1970-1978)

칸베 토시오
(1979-1982)


아라키 다이스케
(1983-1995)

{{{#FFFFFF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야쿠르트 스왈로즈]] 등번호 73번}}}
마치다 유키히코
(1980-1982)

칸베 토시오
(1983-1985)


사토 타카오
(1987-1989)

{{{#ffffff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킨테츠 버팔로즈]] 등번호 83번}}}
미즈타니 히로시
(1979-1985)

칸베 토시오
(1986-1996)


스구로 히로노리
(2000-2002)

{{{#ffc74b [[오릭스 버팔로즈|오릭스 블루웨이브]] 등번호 81번}}}
나카자와 신지
(1986-1994)

칸베 토시오
(1997-2001)


후지타 마나부
(2002-2003)

{{{#fc0 [[오릭스 버팔로즈|오릭스 버팔로즈]] 등번호 83번}}}
카와무라 켄이치로
(2004)

칸베 토시오
(2005-2007)


바바 토시후미
(2009)

KIA 타이거즈 등번호 81번
김태원
(200-2007)

칸베 토시오
(2008-2009)


김대진
(2010-2011)



파일:KIA 칸베 토시오 코치.jpg

칸베 토시오
神部年男 | Toshio Kanbe

출생
1943년 3월 24일 (81세)
효고현 카고군 하리마정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학력
효고현립 타가사고고등학교
신체
175cm, 78kg
투타
좌투좌타
포지션
투수
사회인야구
미츠비시 제지 (1962-1964)
후지제철 히로하타 (1965-1969)
프로 입단
1966년 1차 드래프트 3순위(요미우리, 지명 거부)
1969년 드래프트 2순위 (킨테츠)
소속팀
킨테츠 버팔로즈 (1970-1978)
야쿠르트 스왈로즈 (1979-1982)
지도자 경력
야쿠르트 스왈로즈 2군 투수코치 (1983-1985)
킨테츠 버팔로즈 투수코치[1] (1986-1996)
오릭스 블루웨이브 투수코치 (1997-2001)
오릭스 버팔로즈 투수코치 (2005-2007)
KIA 타이거즈 투수코치 (2008-2009)
한화 이글스 투수 인스트럭터 (2013.2-2013.3)
1. 개요
2. 프로 데뷔 전
3. 현역 시절
4. 지도자 시절
5. 기타



1. 개요[편집]


일본의 前 프로야구 선수 및 지도자.

KBO 리그 야구팬들에겐 2008-2009시즌 KIA 타이거즈의 투수코치를 맡아 양현종의 성장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2. 프로 데뷔 전[편집]


효고현립 타가사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인야구팀 미츠비시 제지와 후지제철 히로하타에서 주축 투수로 뛰었고, 1966년과 1968년엔 도시대항야구대회에 2차례 보강선수로 나서 68년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대회 MVP상인 하시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66년 1차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3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사회인야구에 남았고, 이후 1969년 드래프트에서 킨테츠 버팔로즈의 2순위 지명을 받아 프로에 데뷔했다.

3. 현역 시절[편집]


칸베는 킨테츠에 입단하자마자 곧바로 주전 투수 자리를 꿰찼고, 이후 선발 투수중간계투를 오가며 시즌 10승을 4차례 기록하는 등 킨테츠의 주축 투수로써 활약했다. 1975년엔 난카이 호크스를 상대로 같은 해 퍼시픽리그지명타자제가 도입된 이래 역대 최초인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고, 선발진의 일원으로써 킨테츠가 이 해 후기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데 공헌한 바 있다.

현역 시절엔 주로 수비견제 기술이 뛰어난 투수로 유명했는데, 덕분에 사회인야구 시절부터[2]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대도였던 후쿠모토 유타카의 천적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칸베의 뛰어난 견제 실력과 도루 타이밍을 잡을 수 없는 투구에 애를 먹었던 후쿠모토가 칸베의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 칸베가 투구하는 모습을 철저하게 분석한 끝에 '견제구를 던질 때 왼발 뒤꿈치가 불과 수 mm 정도 공중에 뜬다'는 투구 습관을 찾아내어 칸베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는 비범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투구 습관을 간파당한 것을 눈치챈 칸베가 스코어러에게 자신이 투구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줄 것을 부탁하여 그 사진을 통해 투구 습관을 고치는 바람에 한동안 후쿠모토는 또 다시 칸베에게 도루를 막혔지만, 얼마 안 가서 칸베를 상대로 재차 도루를 시전했다고 한다.

킨테츠에서 계속해서 주축 투수로 뛰어온 칸베였으나, 1979년 찰리 매뉴얼 등과의 2:3 트레이드로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야쿠르트에서도 이적 초반엔 선발 투수로 뛰었으나 이전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서 중간 계투로 전향했고, 1981년엔 마무리 투수를 맡아 10세이브[3]를 올리기도 했다. 한편으로 1980년 10월 12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코라쿠엔 구장 원정경기에서 오 사다하루의 현역 시절 마지막 홈런인 통산 868호 홈런을 얻어맞고 패전투수가 되기도 했다.

1982년엔 1군 등판 없이 2군에만 머물렀고, 그 해를 끝으로 통산 370경기 등판(204선발), 90승 89패 16세이브 평균자책점 3.15의 기록을 남기고 현역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4. 지도자 시절[편집]


은퇴 후 야쿠르트 스왈로즈, 킨테츠 버팔로즈, 오릭스 블루웨이브/버팔로즈에서 투수코치를 맡아 투수진 정비 등에 수완을 보였고, 1989년엔 불펜 코치로써 킨테츠의 리그 우승에 공헌하기도 했다.

2008년엔 KIA 타이거즈의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는데, 이 당시 양현종을 비롯해 유동훈, 곽정철 등 여러 투수들의 성장을 이끌어내어 투수진 정비에 크게 기여하며 팀이 2009년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는 데 보탬이 되었다. 2009년 시즌 종료 후 건강 문제를 이유로 코치직에서 사임했고, 이후 2013년 한화 이글스의 스프링캠프 투수 인스트럭터를 잠시 맡은 것을 끝으로 지도자 생활을 끝마쳤다.

5. 기타[편집]


  • 상술했듯이 KIA 투수코치 시절 양현종의 성장에 크게 기여한 바 있는데,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양현종을 지속적인 훈련으로 단련시키며 훗날 리그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인연으로 양현종과는 현재도 자주 연락을 가진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양현종은 자신이 선발 투수로 나선 2017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칸베를 초청하여 스승의 앞에서 122구 완봉승이란 엄청난 투구로 자신의 성장한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파일:양현종 칸베.png
2차전에서 완봉승을 거둔 이후, 칸베에게 완봉승을 거뒀을 때 걸었던 목걸이를 선물하는 양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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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9년엔 불펜코치를 역임했다.[2] 당시 도시대항야구대회에서 후쿠모토가 소속된 마츠시타 야구부를 이기고 본선 진출을 달성하기 위해 칸베는 후쿠모토를 잡아내기 위한 견제 기술을 연마하는 데 힘썼고, 이것이 프로에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3] 당시엔 경기 후반에 2~3이닝씩을 던지는 중무리 투수가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세이브 숫자가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