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회당(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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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회당
창당일
1974년 1월 21일
해산일
1980년 10월 27일
(5.17 내란으로 인한 해산)
대표
안필수
의석 수
0석 / 175석
당 색

연홍색 (#F88379)


1. 개요[편집]


1974년 안필수에 의해 창당된 혁신계 정당으로 1973년에 해산된 통일사회당의 실질적인 후신이다. 김철은 고문, 심연식이 정치위원장을 맡았다. 기관지 <사회당>을 발간했다.

전신인 통일사회당과 달리 의석 수를 한번도 확보하지 못한 채 원외정당으로 지냈다.

유신 반대 활동과 청계피복노조, 사북항쟁 지지 활동 등 노동운동 연대 활동을 하여 탄압받았으며, 국제적으로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과 사회당 지도자 회의 등에 참석, 국제 사회당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80년 6월 서울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대회장을 점거, 폭죽과 화염병을 사용해 광주항쟁의 진상과 전두환 신군부의 만행을 폭로하려 하다가 정책연구실장 권오창[1], 노동국장 권운상[2], 당원 황인오[3] 씨 등이 검거되어 징역을 산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2009년 재심 끝에 계엄법 무죄가 선고되었다.

이후 별다른 자취 없이 명맥만 유지하다 1980년 10월 27일 강제로 해산되고 당원들은 80년대 재야운동에서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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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상임대표[2] 노동운동가 출신 작가. 대표작 <녹슬은 해방구>가 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유신 반대운동에 가담했다가 1976년 반 유신 학생시위를 주도하여 국민대학교 법학과에서 제적당했다. 이후 노동운동에 몸담다가 1980년 통일사회당 노동국장으로 미스유니버스대회장 폭파미수 사건에 연루되어 2년 6개월을 옥살이한 바 있으며, 민통련 인권부장으로 활동했다. 1988년과 1992년 두 차례 총선에 출마, 낙선했다. 강남구 일대에서 학원업에 종사하던 중 충주로 낙향, 민족문학작가회의 활동 등 작가 활동에 전념하다 1996년 12월 26일 고문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3] 사북항쟁을 주도하였다가 당시 통일사회당의 진상조사단을 통해 입당하였다. 이후 소위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의 총책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