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렌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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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섹스투스 티기디우스 페렌니스
(Sextus Tigidius Perennis)
출생
미상
사망
185년
직위
근위대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로마 제국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근위대장. 콤모두스 황제가 타락하도록 유도하고 권세를 한 손에 쥐었지만 185년 몰락했다.


2. 생애[편집]


근위대장으로 발탁되기 전의 생애는 기록이 미비해서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치세 때 프라이토리아니 장교로 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콤모두스가 황위에 오른 뒤 푸블리우스 타루티에누스 파테르누스와 함께 근위대장이 되었다. 182년 루킬라가 콤모두스를 암살하는 음모를 단행했으나 실패로 끝났을 때(콜로세움 암살미수 사건), 콤모두스의 친구이자 최측근이었던 사오테루스가 별개의 장소에서 암살당했다. 파테르누스는 사오테루스 암살 사건에 연루되었고, 콤모두스는 그를 사고로 사망한 것처럼 위장하여 살해했다. 그 후 페렌니스는 단독 근위대장이 되었고, 전반적인 통치권까지 위임받았다.

그는 콤모두스가 암살 미수 사건 후 원로원을 불신한 걸 이용하여, 많은 의원들을 반역죄로 고발해 죽게 만든 뒤 재산을 뜯어내고, 그중 일부를 황제에게 바쳐서 향락에 빠지게 하였다. 또한 300명의 미녀와 300명의 남첩을 구해다 바쳐서 문란한 성생활을 일삼도록 해, 정치에 관심을 끊도록 유도했다. 한편 제국의 유력한 장군들을 경계하여 반역죄로 소환해 처형했다. 페르티낙스는 콤모두스의 신임을 잃지 않았기에 죽음을 모면했지만, 페렌니스의 공작으로 인해 브리타니아 속주로 좌천되었다.

그래도 제국이 어느정도 운영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수완을 갖추고 있었기에, 그의 집권기에는 이렇다할 변고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185년, 그는 돌연 몰락하였다. 헤로디아누스에 따르면, 그는 군대의 환심을 사고자 막대한 선물을 보냈고, 아들들 중 하나를 황위에 올리기 위해 비밀리에 사병을 모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 반감을 품은 브리타니아 병사 대표 1,500명이 로마에 들어와서 페렌니스의 반역을 고발했고, 페렌니스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을 보여줬다. 콤모두스는 즉시 페렌니스와 아들들을 처형했다. 이후 새 근위대장이 된 클레안데르의 치세에서, 제국은 쇠락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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