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슈티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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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Stigler
프란츠 슈티글러 | 프란츠 스티글러[1]


파일:Franz_Stigler.png

본명
Ludwig Franz Stigler
출생
1915년 8월 21일
독일 바이에른레겐스부르크
사망
2008년 3월 22일 (향년 92세)
캐나다 벤쿠버 브리티시 컬럼비아
국적
[[나치 독일|

나치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나치 독일"
행정구
]]
→ [[캐나다|

캐나다
display: none; display: 캐나다"
행정구
]]

직업
군인 - 루프트바페 전투조종사
소속
루프트바페 JG 27JV-44

1. 개요
2. B-17 'Ye Old Pub(오랜 술친구)'기와의 조우
2.1. 후일담
2.2. 2차 창작



1. 개요[편집]


독일 국방군 공군 소속 조종사다. 격추수 28기의 에이스 조종사로, 루프트바페의 다른 슈퍼 에이스들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후술할 B-17 폭격기를 영국 방향으로 유도해 준 휴머니즘 일화로 유명한 조종사이다.

제27전투비행단(JG 27) 소속이었고 전쟁 후반엔 제트 전투기 Me 262 부대인 JV-44에 소속되었었다.
종종 아돌프 갈란트의 애기라고 알려진 Me 262 백색 3번의 조종사다. 갈란트의 애기라고 잘못 알려진 이유는 갈란트가 백색 3번 앞에서 사진을 찍어서 그런 오해가 생긴것.


2. B-17 'Ye Old Pub(오랜 술친구)'기와의 조우[편집]


1943년 12월 20일:
찰리 브라운과 프란츠 슈티글러의 조우

파일:1546593256.jpg
프란츠
슈티글러
찰리
브라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의 프란츠와 찰리

Yarnhub가 다룬 영상
한국어 CC 자막 포함
국방TV에서 다룬 영상
41분 49초부터

1943년 12월 20일 미 육군 제8항공군 제379폭격비행단 527비행대대 소속 찰리 브라운 소위가 조종했던 "Ye Olde Pub(오랜 술친구)"라는 애칭을 가진 B-17F 폭격기는 폭격 임무를 마쳤지만 독일군의 여러 차례 방해 공작으로 인해 당시 폭격기의 상태가 심하게 파손되고, 대형에서 낙오된 상태로 혼자 겨우 날고 있던 상태였다. 얼마나 심각했냐면 기수가 깨지고, 2번 엔진은 피격 당해서 꺼졌으며, 3번 엔진과 4번 엔진도 손상을 입어 기체 출력이 40% 수준이었고, 산소, 유압, 전자 계통도 대부분 피격으로 인해 고장났고, 방향키의 절반과 왼쪽 승강키도 날아갔다. 승무원들도 대다수가 부상을 입었고[2], 방어 총기들도 대부분 고장나서 적기에 대응할 수 없었으며, 후방 꼬리 사수였던 휴 "에키" 에켄로드는 독일군 전투기의 총격에 전사한 상태였다.[3] 심지어 항법 장치도 고장나서 영국과 반대 방향으로 날고 있었다. 그야말로 독일군 전투기가 나타나면 꼼짝 없이 격추를 당할 딱 좋은 먹잇감인 상태로 날고 있던 도중 슈티글러 중위가 조종하고 있는 Bf 109와 조우하게 된다. 당시 슈티글러는 재보급을 받고 이륙한 상태였는데, 재보급 전에 이미 B-17을 두 대 잡은 상태였다고 한다.

당연히 B-17 승무원들은 이제 자신들은 죽었다며 절망했지만 그 독일군 전투기는 공격하지 않고 옆에서 날기만 했다. 슈티글러는 네덜란드 쪽에 비상 착륙 유도 수신호를 보냈는데 워낙 저쪽이 쫄아서 수신호를 못 알아듣자 결국 영국과 반대 방향으로 날던 B-17을 도버 해협까지 인도해주었으며, 독일군 대공포가 사격하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자신의 기체를 B-17에 바짝 붙이기까지 했다. 이후 공해상에 진입하자 B-17 승무원들에게 경례를 한 후 기지로 돌아갔다.

그가 이 폭격기를 살려준 이유는 이미 사실상 격추되어 탈출한 파일럿이나 다름없는 상태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가 JG 27 소속으로 아프리카에 있을 당시 상관이었던 구스타프 뢰델[4]은 탈출하는 적 파일럿을 쏘는 것을 엄금했는데, 이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이 당시 루프트바페에는 격추되어 탈출한 파일럿도 확인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져 있었기에[5], 슈티글러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본인의 목숨을 걸고 항명했다고 할 수 있었다.


2.1. 후일담[편집]


전후까지 슈티글러 본인과 브라운 소위 모두 살아남았고 프란츠 슈티글러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된다. 전후 B-17 '오랜 술 친구' 호의 기장인 찰리 브라운은 자신들을 살려준 독일 공군 조종사를 찾기 위해 수소문 했고 캐나다에 있던 프란츠와 소식이 닿아 재회하게 된다. 프란츠는 찰리와 평생 친구로 지냈고 슈티글러와 브라운 모두 2008년 별세했다고 한다. 프란츠 슈티글러는 2008년 3월 22일에 사망했다.

이 유명한 일화는 수많은 에이비에이션 아트로도 남겨졌으며 사바톤같은 경우는 아예 노래로도 만들고 그 노래를 슈티글러의 후손들이 듣고 고마움에 영상편지를 남긴 데다 그후 영상편지에서 한 약속대로 공연장까지 방문하자 그걸 또 애니메이션 영상 뒤쪽 쿠키영상으로까지 만들며 기념하고 있다.


2.2. 2차 창작[편집]


  • 단편 애니메이션
The Stigler-Brown Incident Animation
}}}||
당시 실제 슈티글러의 탑승기는 기체 번호는 2번에 JG 27 소속이었지만 기체 번호가 1번이고 부대마크도 다른 것이 새겨진 오류가 있다.

  • 노래
사바톤 - No Bullets Fly
}}}||

Stigler - War Thunder Short Film
}}}||
단, 이 재현 영상도 Bf 109의 기종과 도색이 다른 오류가 있다.

[1] 영어 발음으로 읽은 것이고, 독일 현지 발음으로는 슈티글러이다. 단, 캐나다로 이민을 갔기 때문에 스티글러 쪽도 맞다고 할 수 있다.[2] 조종사인 찰리 브라운은 왼쪽 어깨에 파편에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고 한다.[3] 정확히는 비행기 파편으로 인해 목이 잘린 상태였다고 한다. 당시 오랜 술친구 기의 유일한 전사자.[4] Gustav Rödel(1915. 10. 24. ~ 1995. 02. 06.): 또 다른 에이스로, 전후 서독 공군에 재입대해 준장까지 올랐다.[5] 당시에도 기초적인 생명 존중과 적국 군인에 대한 예절은 있었지만 나치독일이 미쳐돌아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명령이었다. 현대전에서는 이런 명령을 하면 두말할 것도 없는 전쟁범죄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 군인이든 즉시 불명예 전역 당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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