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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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해웅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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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57번
조용훈
(2012)

하해웅
(2013)


조용훈
(2014)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47번
이보근
(2009~2013)

하해웅
(2014~2015)


이보근
(2016~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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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해웅
河海雄 | Ha Hae-Woong

출생
1989년 5월 5일 (34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금동초(김해리틀) - 내동중 - 김해고 - 동국대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13년 2라운드 (전체 18번, 넥센)
소속팀
넥센 히어로즈 (2013~2015)

1. 개요
2. 선수 경력
2.1. 2013 시즌
2.2. 2014 시즌
2.3. 2015 시즌
3. 지도자 경력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국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소속의 좌완 투수.


2. 선수 경력[편집]


김해고 시절 1년 유급까지 하면서 프로지명을 노렸지만 결국 미지명되었다. 이후 동국대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넥센 히어로즈에 2순위로 지명됐다.

2012년 당시 김시진 감독은 시즌 내내 원 포인트 릴리프로 쓸 왼손 불펜투수를 팀에 요구하였다.[1] 이러면서 동국대에서 뛰고 있던 하해웅을 보고 정우람같은 투수라며 즉전감이니까 상위 지명해 달라고 요구하였고, 여기에 NC 다이노스가 노린다는 정보에 이장석 구단주가 서둘러서 2라운드에 지명하였다.[2]

그러나 넥센팬들은 하위라운드(대략 5라운드 이후)에서 충분히 잡을만한 선수를 2라운드에 지명해서 결과적으로 지명권만 날렸다는 평가를 내렸다. 사실 165cm에 불과한 작은 키에 뻣뻣한 투구폼[3]으로 성공가능성이 대단히 희박해 보였기 때문에 넥센팬들 사이에서 대단한 논란이 되었다. 애리조나의 1차 스프링캠프에 참가했지만 오키나와의 2차 스프링캠프 명단에선 제외되었다.


2.1. 2013 시즌[편집]


즉시전력감이라고 지명했지만, 김시진 감독의 장담과는 달리 2013 시즌 내내 1군에는 한 번도 올라오지 못했고, 퓨처스리그에서도 무려 8점대 평균자책점의 개막장 성적을 찍었다. 게다가 신고선수 출신이었지만 더 나은 투구를 보여주었던 최현정[4]은 방출당했는데도 불구하고 하해웅은 시즌 후 마무리 캠프에 합류한 것을 두고 팬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 김시진의 사주를 받은 양아들 or 첩자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


2.2. 2014 시즌[편집]


2014 시즌에는 2군에서 9경기 13.1이닝 5.4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결국 11월 30일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일단 홈페이지에서 삭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고선수로 전환된 것으로 보이고,실제로 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


2.3. 2015 시즌[편집]


2015 시즌 퓨처스리그에서는 34경기 52.1이닝 평균자책 6.71에 머물렀고 시즌 종료 후 선수단에서 제외되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 오랜 기간 소식이 알려지지 않다가 2024년에 새로 창단한 세원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를 맡게 되었다는 소식이 나왔다. #


4. 관련 문서[편집]


[1] 김시진 감독이 수 년 동안 좌완 원 포인트로 굴리던 오재영은 그간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2012 시즌 초반부터 불을 지르다가 결국 토미 존 서저리로 시즌을 마감하였다.[2] 사실 2009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김시진 감독은 고교 야구에서 불과 몇 경기 뛰지도 않은 김대유를 '일단 데려만 오라'고 호언장담하면서 상위지명을 지시하였다. 이에 스카우트팀은 3라운드에서 청소년대표 출신인 안승민을 뽑으라는 이장석 구단주의 전화지시를 무시하고, 김대유를 지명하였다. 이에 폭발한 이장석 구단주는 스카우트팀을 전면 개편하고 그 다음 해부터 드래프트 현장에 직접 나와서 지명을 진두지휘하였다. 김대유는 김시진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2군에서도 기대 이하의 성적을 찍다가 2차 드래프트SK로 건너갔고,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몇 번을 더 이적했다가 2021년에 이르러 잠재력이 늦게 개화했다.[3] 실제 퓨처스리그 경기전에 몸푸는 스트레칭을 지켜본 팬들 사이에서 몸이 심하게 뻣뻣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4] 3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었고 방출 후 고양 원더스을 거쳐서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14 시즌 중반 1군에도 원 포인트 릴리프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2년간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16 시즌 도중 방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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