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란 관계/202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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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大韓民國
Republic of Korea
이란
جمهوری اسلامی ایران‌
Islamic Republic of Iran
1. 개요
2. 2020년
3. 2021년
4. 2022년
5. 2023년
6. 관련 기사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2020년대, 즉 2020년부터 2029년까지의 대한민국과 이란의 관계를 나타내는 문서이다. 2010년대 후반까지는 한국과 이란의 관계는 경제적인 교류가 있었고 한류도 이란에서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2020년초에 미국이란이 갈등을 심하게 빚으면서 양국관계는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2020년 미국의 제재가 시작되어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에 군대를 파견한다고 밝히자 갈등을 빚었다.

미국이 핵합의를 복원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한국도 자연스럽게 이란과의 관계 호전에 노력하고 있었지만, 이란 정부의 히잡 시위 탄압으로 인해 경제재제 해제는 수포로 돌아갔고 2020년대 이후에도 미국-이란 관계한국-이란 관계는 계속 냉각된 상태다. 이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의 UAE의 적은 이란 발언으로 양국관계의 악화가 심화됐다.

거기에다가 양국 다 국가대표 축구팀 인기가 매우 높은 국가인데 이란 팀이 한국 상대로 항상 지저분한 경기로 일관하며 양 국민들 간에도 감정이 상해가고 있다.


2. 2020년[편집]


1월초에 이란이 이라크의 미군 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한 것과 관련해 한국 정부는 이란내 위기경보를 상향조정하기로 밝히면서 여행경보를 자제로 상향조정하고 재외국민보호는 주의를 발령했다.## 그리고 합동대응반 회의를 개최했다.# 청와대도 관련동향을 시시각각으로 주고 받으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외교부에서도 이란과 이라크에 거주하는 교민 안전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며 이번 사태가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호르무즈 파병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 참여연대군인권센터 등 107개 단체들은 한국 정부가 미국의 파병 요구를 거절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고 이어 주한 이란 대사관을 방문해 카셈 솔레이마니를 추모했다.#

1월 21일 정부는 호르무즈 호위 연합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소말리아 연안에서 활동 중인 청해 부대의 활동 영역을 호르무즈 일대까지 일시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란측은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이란 언론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파병하는 것을 부각해서 보도했다.# 또한, 양국관계에 대해서도 관리 입장을 표명했다.# 한국 국방부가 페르시아 만을 아라비아 만도 포함해 병기한 것에 대해 이란 외무부가 반발했다.#

2월 12일에 이란의 세예드 압바스 무사비 외무부 대변인이 이란내 삼성전자 간판이 내려지는 사진을 SNS에 공개해 불만을 표시했다.# 그리고 삼성전자가 이란에서 자사 앱스토어인 Galaxy Store를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자 이란 정부 고위 관계자가 삼성전자 임직원 입국 거부, 제품 등록 금지 등 삼성전자에 대한 징벌적 조치를 경고하고 나섰다.#

한편, 이란내의 한국 기업들이 철수하고 호르무즈 해협 파병으로 인해 반감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이란내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사망자도 늘어나자 한국측은 이란내의 교민들을 철수시키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게다가 이란내 교민 사회는 코로나19로 인해 불안감을 겪고 있다.# 결국 3월 8일에 외교부는 이란내 교민들과 주재원들을 철수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밝혔다.# 3월 19일에 이란내 교민 80명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고 이란 내에서 감염이 급속도로 퍼지자, 이란에서 한국산 진단 키트를 비롯한 방역품을 구입하겠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의 이란 제재 때문에 곤란한 상태이다. 이란이 구입 대금을 한국에게 지불하려면 한국 내 계좌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게 제재로 막혔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에서도 진단 키트를 비롯한 인도적 물품 수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미국과 논의하였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다. KBS 기사 이란의 요청에 대해 외교부는 한미간 소통중이라고 밝혔다.#

4월 7일 보도에서 이란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형태로 한국이 진단키트 등을 지원해서 물품이 이란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미국 정부는 4월 9일 이란과 북한 등에 대한 제재가 인도적 지원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기존의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4월 19일에 키아누시 자한푸르 보건부 대변인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 탓에 한국 바이오업체의 코로나19 검사 키트와 장비를 수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기업은행이 미국의 이란제재 어긴 것으로 8천600만달러(약 1천49억원)의 벌금에 합의했다.#

5월 17일에 주이란 한국대사관은 이란에 100만달러 규모의 코로나19 검사진단장비를 지원했다.#

5월 27일에 이란의 유력 일간지 에테마드는 인도적 목적으로 필요한 의약품을 사겠다는 이란의 제안을 한국이 거절했다면서 미국의 일방적 경제 제재에 동참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란내의 언론들도 한국을 비판하는 기사를 냈다.#

5월 28일에 미국의 제재로 막혔던 대 이란 인도적 수출이 재개되었다.##

6월 1일에 이란 외무부는 한국에 동결된 이란의 원유 수출 대금을 한국 정부가 되돌려 보내야 하지만 미국의 허락만 기다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6월 10일에 압돌나세르 헴마티 이란중앙은행 총재는 블룸버그통신과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 측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동결된 한국 내 은행에 동결된 원유 수출대금을 해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6월 13일에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한국 정부에 미국 제재로 동결된 수십억달러 자금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고,# 6월 15일에 세예드 압바스 무사비 외무부 대변인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 탓에 한국의 은행에 동결된 이란의 석유 수출대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이란 정부가 한국에 묶여 있는 원유 수출대금을 받아내기 위해 국내 은행들을 상대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이란 정부가 한국 정부에 원유대금을 갚지 않으면 국제 소송으로 맞서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외교부는 이란 외무부 대변인이 원유수출 대금 미상환시 한국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과 '한국은 미국의 하인'이라면서 악담한 것과 관련하여 주한 이란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7월 29일에 이란 외교부는 한국 정부가 이란의 석유 수출대금을 반환하기 위해 실질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8월 2일에 외교부는 이란측과 인도적 교역의 효율적인 논의를 위해 워킹그룹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이란간의 관계가 안 좋아진 것에 대해 외신은 한국의 중동변화 정책이 바뀐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와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에서 승소한 이란 다야니가가 한국석유공사가 보유한 영국 회사 주식에 가압류를 걸고 나섰다.#

사단법인 한국-이란 협회가 10월 24일부터 주한 이란대사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활동을 할 예정이다.#


3. 2021년[편집]



  • 이후 한국과 이란 외교당국이 교섭을 벌였지만, 입장차만 확인했다.#

  • 1월 21일, "한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등 강한 어조로 한국을 비판하고 있다. #

  • 2월 2일, 이란 외무부가 구금된 MT한국케미호 선원들의 석방을 허용했다.#

  • 한국 정부는 동결된 이란 원화자금의 활용 방안과 관련해서 한국측 제안에 이란이 동의했다고 밝혔고 미국과는 협의를 가진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란측은 동결된 10억 달러를 돌려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 4월 5일, 이란은 코백스를 통해 한국에서 생산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공급받는다고 밝혔다.#

  • 이란 정부는 석 달 가까이 억류 중인 한국 선박 케미호와 선장의 석방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

  • 이란 정부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이란 방문 때[1] 한국 내 이란 동결 자산 문제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4월 9일 이란 정부가 MT한국케미호 선장 구금을 풀었다고 한국 외교부가 발표하였다.

  • 4월 11일, 이란을 방문한 정세균 총리는 이란 핵합의 협상 복원 및 한국에 동결된 이란자금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했고 정세균 총리는 이란 핵합의 복원을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이란 부통령측은 동결자금이 해결돼야 한다고 밝혔다.#

  • 4월 12일,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이란의 외교차관을 만나 미국의 대이란 제재조치에 따라 국내 은행에 동결돼 있는 이란 측 자금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 이란측이 3개월 ~ 5개월내에 한국과 다시 무역하는 것을 전망하며 동결자금을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호세인 탄하이 한이란 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란 대선에서 당선된 라이시 현 사법부 수장의 방한 경험이 한국과 이란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 40곳이 넘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대 이란 제재로 묶여 있던 수출 대금 7천만 달러 가량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 2021년 7월, 이란이 백신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란 경제 협력 단체인 '주한 이란상공회의소'가 대한민국 정부를 사칭한 서한으로 '한국 정부의 위임을 받았다' 면서 러시아 백신을 확보하려다 적발됐다. #

  • 8월 3일, 외교부는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라이시 대통령 취임식에 정부 대표로 참석한다고 밝혔다.#

  • 8월 4일, 이란을 방문 중인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압바스 아락치 외교차관과 만나 우리나라에 동결돼 있는 이란의 원화자금 문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

  • 8월 5일, 경주시와 이스파한시는 문화 교류 증진을 위한 공동성명을 채택해 발표했다.#

  • 9월 30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삼성, LG 가전제품 수입 금지를 지시했다.#

  • 10월 3일, 이란 외무장관이 동결된 자산을 풀어주지 않을 경우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류 드라마 방영도 중단한다고 경고했다.#

  • 10월 25일, 대한민국 정부가 서방의 경제제재로 백신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란에 AZ 백신 100만 회분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란은 그 동안 여러 채널을 통해 한국에 백신이나 의약품 등과 관련한 인도적 지원을 요청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지원이 대이란 관계개선에 있어 긍정적인 실마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 보여진다. # 그리고 10월 27일, 해당 백신이 이란에 제공되었다.#


4. 2022년[편집]


  • 한국과 이란이 미국의 제재로 묶여있는 동결자금 이전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전문가 간 실무협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 한국이 이란 유엔 분담금을 동결된 원화자금으로 지불하였다.#

  • 한국과 이란 양국이 동결자금 등의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 협의를 2월 중순에 한국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2월 16일, 이란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해 동결자금과 관련된 실무협의를 진행했다.#

  • 4월 13일, 이란 정부가 어느 외국 은행과 제재로 묶인 이란의 동결자금 해제 문제를 잠정 합의했다고 밝히자 외신들은 한국과의 합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시절


  • 6월 10일,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이 미국의 로버트 말리 이란 특사와 통화하고 이란핵합의(JCPOA) 복원 협상 동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 6월 20일,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따른 한국 내 동결자금 해제를 재차 요구했다.#

  • 7월 8일, 한국수입협회가 주한이란대사를 만나 양국간 교역 확대에 대해 논의했다.#

  • 10월 1일, 이란 정부가 한국내 동결된 70억 달러 문제가 곧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 2022년 이란 시위가 일어난 뒤, 서울시에서 주한이란인들이 이란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그리고 재한 이란인들이 시위을 이어나갔다.#[2]

파일:나세르 칸아니.jpg

  • 이태원 압사 사고 당시 외국인 희생자 중 이란 국적자는 모두 5명으로 내국인 다음으로 사망자 수가 많았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10월 31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가 관리 방법을 알았다면, 행사 관리를 했어야 했다”는 발언과 함께, 한국은 히잡 반대 시위 관련한 훈수를 둘 수 없다는 발언을 남겼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외교부는 11월 1일 "이란 쪽을 접촉해 확인한 결과, 이란 쪽은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닌 개인적 언급이 기사화된 것이라고 해명해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이런 언급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유감을 표명하고, 향후 각별한 주의 및 재발 방지를 이란에 강력 요청했다”고 밝혔다.#

  • 12월 5일, 국회 외통위가 이란 시위의 폭력진압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 12월 14일,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서 실시한 이란의 여성기구퇴출 결의안에 한국도 동참했다.#


5. 2023년[편집]




  • 1월 18일, 이란 외무부에서 주이란 대한민국 윤강현 대사를 초치하였다. #

  • 1월 19일,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주대한민국 이란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대사를 초치하였다. #

  • 1월 26일, 이도훈 외교부 제2차관은 필요하다면 이란과 소통을 더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5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은 사이드 쿠제치 신임 주한이란대사에게 신임장을 전달했다. 쿠제치 대사는 윤 대통령에게 "한국과 중동의 경제 관계에 있어 한국은 이란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면서 "의 이름으로, 그리고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이름으로 각별한 안부를 전한다"라고 밝혔다. 주한이란대사관은 이날 대사관 트위터에 쿠제치 대사가 윤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했다. 이는 윤 대통령의 논란 발언으로부터 4달 만에 우호적인 메시지가 나온 것이다. #

  • 5월 29일, 한국과 미국 정부가 한국 우리은행·기업은행에 동결된 이란의 원유결제 대금 70억 달러를 조건부로 이란에 돌려줄 방침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UN 분담금 지급, 코로나19 백신 구매 등 공적인 목적으로만 쓴다는 조건으로 이란 자금을 풀어주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낸 아이디어이다. 해당 조치가 실현되면 경색되었던 한국-이란 관계와 미국-이란 관계가 개선될 전망이다. #

  • 8월 10일, 미국의 제재로 인해 한국에 동결되었던 이란 자금 60억 달러(약 8조 원)과 관련해 미국-이란이 동결을 해제하기로 합의했고, 이로 인해 한국-이란 관계의 최대 걸림돌도 해소되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란은 동결되었던 자금을 비군사적 목적의 식량, 의약품 등에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합의 이후 동결이 해제되면서 한국에서 이란으로의 송금이 시작되었다. 한편, 백악관에서는 "이란 동결 자금 해제에 앞서 한국 측과 사전에 공조했다"고 밝혔다. # # # 한편, 대한민국 정부는 외환시장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4~6주에 걸쳐 자금을 쪼개서 이체하고, 우리 기업들이 이란에서 못 받은 미수금과 지연이자 등 5000억 원 가량은 국내에 남겨두었다고 밝혔다. #

  • 9월 18일. 한국에 동결된 이란 자금 60억달러가 카타르로 송금되었다.# 그것도 스위스 은행을 통해 가졌다.#

6. 관련 기사[편집]




7. 관련 문서[편집]



[1] 정세균 총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 방문이다.[2] 사실 재한 이란인들 중에는 팔라비 왕조가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지는 과정에서 우호국이였던 한국으로 망명한 보트피플 출신들이 은근히 있어서 생각보다 신정체재를 부정하는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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