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브로몽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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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i Bromont Manufacturing Plant

1. 개요
2. 역사 (1989~1993)
3. 생산 차량



1. 개요[편집]


현대자동차캐나다 퀘벡 주에 설립했던 자동차 제조 공장으로 현대자동차흑역사라 할 수 있는 공장이다.


2. 역사 (1989~1993)[편집]



브로몽 공장의 스카이뷰 (붉은 표시가 해당 공장이었다.)

연간 10만대 생산 규모의 자동차 공장으로 지었으며, 1989년에 준공되었다. 당시 현대자동차를 이끌던 정세영 전 회장은 캐나다 브로몽 공장을 교두보 삼아 북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었다.1986년 3월부터 3년 간 2억9000만 달러라는 큰 비용을 투자하여 건립되었다. 현대차의 최초 해외 공장이자 유일하게 폐쇄된 공장이다.

공장 건설 전 1984년1985년캐나다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현대차 때문인지 당시 캐나다 무역부의 장관까지 직접 정세영 회장을 찾아와 유리한 조건으로 공장 건설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당시 제안 중에는 50만 평의 부지를 단돈 1달러[1]에 주겠다는 말에 솔깃해 충분한 시장조사 없이 세운 공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예상과는 다르게 현대 쏘나타는 북미 시장에서 상당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1991년에는 29,066대, 이듬해에는 17,196대를 생산하는 등 상당히 초라한 성적을 보였다. 또한 브로몽 공장 주변에 부품 공장이 존재하지 않아 국내에서 조달된 부품을 수출해서 생산해야 했는데, 그 비율이 60% 이상이었고 미국 시장 판매 당시에도 부품의 관세가 적용되면서 부품 수급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현대자동차의 돌풍을 견제하기 시작한 미국일본의 자동차 기업들도 이에 대응을 하게 되면서 시장 공급 과잉이 일어나는 상황이었고, 현대차는 그 자리에 낄 틈도 없었다.

이러한 집중 견제로 쏘나타의 판매가 시원찮자 오히려 현대차는 해당 차량들을 대만 등 아시아 시장에 역수출할 목적으로 2교대를 돌릴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해당 지역에서 수급할 수 있는 근로자 역시 부족한 상황이었다. 1992년부터 인해 생산성이 30%~40% 수준으로 머무는 데다 당시 현대자동차에서 노사 분규가 일어나 엔진 등 주요 부품을 조달받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해당 공장을 더 이상 운영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1993년 2월에 폐쇄되었다. 하지만, 큰 돈을 들이고서 포기하기에는 아깝긴 했는지 1995년부터 해당 공장에서 2세대 엘란트라의 현지 생산을 검토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캐나다 달러의 약세를 보이는 상황인데다 당시 소형차 시장에서 각축전이 상당해지면서 승산이 없다고 생각해 계획을 백지화하였다. 후에 5,000억원의 손실 처리를 정리한 후 1996년에 해당 공장을 완전히 정리하였다.[2] 이후 정세영 전 회장은 충분한 시장 조사 없이 북미 공장을 건설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성급한 결정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라고 회고한 바가 있다.# 흔히 이 사건은 브로몽의 악몽으로 회자되는 듯 하다.

이후 현대자동차에서는 12년 동안 국내에서 북미 지역 수출 차량을 제조해 오다가 2005년부터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지역에 공장을 건설하면서 다시 북미에서 차량을 제조하고 있으며, 해당 공장에서 최초로 생산된 차량 역시 현대 쏘나타였다. 브로몽 공장의 실패 때문인지 현대차가 앨라배마에 공장을 지을 때 반대 여론이 있었던 듯 하다.

현재는 해당 공장 부지에 가구 공장이 들어선 듯하다. 또한, 해당 지역 경찰에서 해당 공장 생산 쏘나타를 경찰차로 굴린 바 있다.

3. 생산 차량[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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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캐나다 달러로 미국 달러로는 약 75센트 정도의 환율이었던 듯 하다.[2] 덧붙여 브로몽 공장을 지었을 때 캐나다 정부로부터 받았던 보조금도 모두 상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