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화진 전투(1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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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화진 전투
興化鎭戰鬪

시기
1010년(현종 원년) 11월 16일 ~ 11월 23일
장소



고려 흥화진 (현 평안북도 의주군)
원인
요성종의 고려 침공
교전국
고려
(수비)



(공격)


주요 인물
지휘관

파일:고려 의장기.svg 양규 (서북면 도순검사 형부낭중)
파일:고려 의장기.svg 정성 (흥화진사 호부낭중)
파일:고려 의장기.svg 이수화 (흥화진부사 장작주부)
파일:고려 의장기.svg 장호 (판관 늠희령)
지휘관

[[요나라|
]] 야율문수노(요 성종[聖宗]) >
병력
3,000명
400,000명
피해
피해 규모 불명
피해 규모 불명
결과
고려의 승리 및 거란의 패배
흥화진을 사수함
영향
거란군이 흥화진을 우회해 남하함

1. 개요
2. 배경
3. 전개
3.1. 거란의 항복 권유
3.2. 거란과의 전투
4. 결과
4.1. 대중매체



1. 개요[편집]


고려군과 거란군이 강동 6주의 하나이자 요충지인 흥화진(興化鎭, 현 평안북도 의주군)의 지배권을 놓고 여러 차례 맞붙은 전투 중 하나로 여요전쟁 시기 중 제2차 여요전쟁 때 일어났다.

흥화진 성은 현재 평안북도 의주군 위원면에 위치한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성의 경우 삼수채가 휘감고 있어 규모는 작으나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성이다.


2. 배경[편집]


1009년 강조의 정변을 구실삼아 요나라 성종이 직접 40만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기로 한다. 침공한 시기가 겨울이라 압록강이 얼어 거란군의 기병들이 빙판 위를 지나 고려의 최전방 요새인 흥화진의 고려군과 대치하게 된다.

3. 전개[편집]



3.1. 거란의 항복 권유[편집]


1010년(현종 원년) 음력 11월 16일(양력 12월 24일), 거란의 성종이 압록강을 건너 최전방의 고려군 요새인 흥화진을 포위했다. 서북면 도순검사 형부낭중 양규가 흥화진사 호부낭중 정성, 흥화진부사 장작주부 이수화, 판관 늠희령 장호 등과 더불어 성문을 닫고 3,000명의 병력만으로 굳게 지켰다.

거란의 성종은 통주성 밖에서 벼를 베던 남녀를 사로잡아 각각 비단옷을 하사하고, 종이로 감싼 화살 하나를 준 뒤, 병사 300여 명으로 하여금 흥화진까지 호송하여 항복을 권유했다. 화살을 감싼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짐은 전왕 왕송(목종)이 조정을 섬긴 지 오래되었는데 지금 역신 강조가 임금을 시해하고, 어린 왕(현종)을 세웠기 때문에 친히 정예병을 거느리고 와서 이미 국경에 이르렀다. 너희가 강조를 잡아서 어가 앞으로 보내온다면 곧 군대를 되돌리겠다. 그렇지 않으면 곧장 개경으로 들어가 너희 처자식들을 죽일 것이다."

뒤이어 칙서를 화살에 묶어 성문에 꽂아두었는데, 그 내용은 이랬다.

"흥화진의 성주와 군인 및 백성들에게 명한다. 짐이 생각하건대 전왕 왕송(목종)은 그 조상을 계승하여 복속한 뒤 우리의 번신이 되어 변방을 지켜오던 도중 갑자기 간사하고 흉악한 자(강조)들에게 해를 당했다. 짐은 정예병을 이끌고 와서 죄인들을 토벌하고자 하되, 여타 위협에 굴복하여 가담한 자들은 모두 용서할 것이다. 더욱이 너희는 전왕이 안무해주던 은혜를 받았고, 역대의 반역과 순종이 유래한 바를 알고 있으니, 의당 짐의 뜻을 체득하여 후회를 남기지 말도록 하라."

이수화 등이 거란의 성종에게 표문을 올리며 아뢰었다.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서있는 자는 마땅히 간사하고 흉악한 자를 제거해야 하고, 아비를 의지하고 임금을 섬기는 자는 모름지기 절개와 지조를 굳건히 해야 하니, 만약 이러한 이치를 어긴다면 반드시 그 재앙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민(民)의 심정을 굽어 살피시어 밝으신 지략을 거두어주십시오. 천망을 크게 펼쳐두고 어찌 참새와 같은 작은 새들이 먼저 뛰어들기를 바라십니까. 병거에 올라가 통할하시면 비휴와 같은 용맹한 군대의 복종을 얻어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거란의 성종이 비단옷과 은그릇 등의 물품을 흥화진 안의 고려군 장수들에게 차등있게 하사하고, 칙서를 내려 일렀다.

"표문을 올려 아뢴 바를 모두 살펴봤다. 짐은 다섯 성군을 계승하여 천하에 임어한 이후로 충성스럽고 어진 자에게는 반드시 포상을 했고, 흉악하고 반역하는 자에게는 모름지기 형벌을 시행했다. 강조는 옛 군주(목종)를 시해한 뒤 저 어린 군주(현종)를 끼고서 마음대로 간악한 권세를 부리며 크게 위압과 복덕을 보였다. 따라서 친히 죄인을 토벌하고 특별히 형전의 명분을 바로잡고자 바야흐로 모든 군사를 이끌고 국경 근처까지 이른 것이다. 앞서 특별히 칙서를 반포한 것은 초유하려는 뜻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는데, 문득 올라온 글을 보니 귀부하겠다는 말은 아뢰지 않았다. 진술하고 있는 바는 성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며, 화려한 문장은 단지 공경하는 듯 보이려는 것뿐이다. 하물며 너희들은 일찍부터 관직에 포열하여 필시 반역과 순종에 대하여 알고 있을 터인데, 어찌 역당에게 계책은 보태면서 전왕(목종)을 위해 설욕할 것은 생각하지 않는가. 의당 안위를 되돌아보면서 재앙과 미리 분별해야 할 것이다."

다음날 이수화가 표문으로 회답했다.

"신들은 지난 날 조서를 받들 때마다 번번이 굳건한 심정을 진술했습니다. 허물을 보고 눈물 흘리는 은혜를 내려주시기 바라고, 그물을 풀어주는 인자함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서리에도 버티고 눈을 감내하면서 백성의 마음을 더욱 편안하게 할 것이며, 뼈가 재로 변하고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1,000년의 성업을 영원히 받들 것입니다."


거란의 성종은 표문으로 흥화진의 고려군이 항복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공격을 개시했다.


3.2. 거란과의 전투[편집]


1차전 - 먼저 거란군은 고려의 아이들과 노인들을 성 앞에서 잔혹하게 학살하는 걸 보여주어 고려군의 기세를 꺾으려 들었다. 그리고 사다리를 들고 대거 달려들었으나, 흥화진은 팔우노[1]와 정노[2], 성 주변에 뿌려진 마름쇠[3] 등으로 강력하게 무장되어 있어 거란군은 일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2차전 - 다음으로 거란군은 성문을 돌파하고자 화살을 막으며 첨두목려[4]를 진격시켰으나, 양규의 고려군은 여기에 맹화유[5]를 들이부어 불태웠다. 또한 산에다가 돌로 쐐기를 박은 형태의 성벽이라 거란군이 공성무기로 돌을 들이받을수록 더 단단해지기만 했다.


4. 결과[편집]


결국 거란의 성종은 흥화진을 버리고 통주에 있었던 강조 휘하의 고려군 주력 300,000명을 상대하기로 했다. 황제는 흥화진을 떠나며 칙서를 보냈다.

"너희는 백성을 안무하며 기다리도록 하라. 200,000명의 병력을 인주 남쪽의 무로대에 주둔시키고, (나머지) 200,000명의 병사들로 통주까지 진격할 것이다."



4.1. 대중매체[편집]



4.1.1. 다큐멘터리[편집]




평화전쟁 1019에서 기록에 적힌대로 재현하여 고증에 맞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4.1.2. 드라마[편집]



4.1.2.1. <천추태후>[편집]

<천추태후>에서는 73회에서 다루고 있다.

거란군이 화살, 사다리, 투석기 등을 이용해 흥화진성을 공성하다가 중간에 성벽이 무너진 곳이 생겨 그 곳을 통해 성을 침입하며, 양규가 그쪽으로 가 거란군을 막아내면서 김숙흥에게 성을 보수하라고 지시한다. 거란군은 성 밖에서 항복을 권유하지만 양규가 거부하며, 이후 거란군이 세 차례나 공격을 시도하지만 성이 함락되지 않자 물러난다.


4.1.2.2. <고려 거란 전쟁>[편집]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에서는 5회부터 7회까지 다룬다.

밤에 거란군이 맹화유를 이용한 투석 공격으로 전투를 개시한다. 이후 거란군이 투석기를 공격하면서 성 안의 여러 건물들을 부수자 고려군도 투석 공격을 단행한다. 양 측이 모두 투석 공격을 하지만 투석기가 모두 파괴된다.

거란군의 장수는 고려군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보병을 투입해 성벽에 오르도록 지시하지만 고려군이 미리 설치한 함마갱에 빠져 흥화진성에 접근하지 못하며, 양규가 병사들에게 지시해 함마갱에 빠진 거란군을 화살로 공격하자 거란군 장수는 함마갱을 메우면서 진군하도록 지시한다.

둘째 날에 거란군이 피해를 입으면서도 함마갱을 메워 진군하고 정성이 이 상황을 보고하자 양규는 병사들에게 잠을 교대로 자도록 하면서 앞으로는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셋째 날 저녁에는 거란군이 함마갱을 모두 메우고, 성벽에 오를 것이기에 성벽을 사수하라고 지시한다. 넷째 날에는 백성들이 성벽 위로 올라와 화살을 보급하고, 고려군은 방패로 거란군의 공격을 막거나 화살을 쏜다.

일곱째 날, 거란군의 공격이 멈추자 양규는 휘하의 병사들에게 휴식하도록 했고, 거란군 진영에서는 격노한 성종 야율융서야율분노에게 오늘 안에 성을 함락하라고 지시한다. 이에 거란군이 흥화진성 앞에서 포로로 잡은 고려 백성들을 인질로 삼아 고려군을 동요시키려고 한다. 거란군은 고려 백성들을 몰아 세우며 강제로 기름통을 등에 업고 나아가게 했으며, 선두에 있는 고려 백성들을 방패삼아 흥화진의 성벽에 사다리를 올리자 양규는 눈물을 흘리며 군사들에게 화살을 쏘도록 지시한다.

야율적로, 야율분노가 흥화진을 함락하지 못하자 성종이 죽이려 했지만 소배압이 그들을 죽이면 이 패전은 무거운 의미가 될 것이며, 고작 작은 흥화진 따위를 집착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통주를 공격할 것을 간언하자 거란군은 흥화진을 견제할 병력을 남겨두고 물러나 통주로 남하하기로 한다.

[1] 활을 당기는데 말 8마리가 필요하다는 뜻. 거란이 든 방패를 관통했다.[2] 자동 석궁, 장전하면서 몸이 드러나지 않음[3] 독을 바른 쇠침[4] 한쪽 끝을 뾰족하게 깎은 통나무를 진자 운동으로 성문을 부수는 공성추.[5] 맹렬히 타는 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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