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 도쿄 올림픽/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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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64 도쿄 올림픽 로고.svg
올림픽 축구
파일:1964 도쿄 올림픽 픽토그램.png
대회기간
1964년 10월 11일 ~ 10월 23일
본선 진출국
16개국 → 14개국
우승
파일:올림픽 금메달.svg

파일:헝가리 인민 공화국 국기(1957–1990).svg 헝가리
준우승
파일:올림픽 은메달.svg

파일:체코 국기.svg 체코슬로바키아
3위
파일:올림픽 동메달.svg

파일:독일 올림픽 단일팀기.svg 독일[1]
득점왕
파일:헝가리 인민 공화국 국기(1957–1990).svg 페렌츠 베네 | 12골
이전·이후 대회
1960년
로마

1964년
도쿄

1968년
멕시코시티


1. 개요
2. 경기장
3. 본선 진출국
4. 조 편성
4.1. 조 편성 결과
5. 선수 명단
6. 대회 진행
6.1. 조별리그[14강]
6.2. 토너먼트
7. 최종 순위
8. 여담


1. 개요[편집]


파일:1964_Olympics_football_stamp_of_Japan.jpg

1964 도쿄 올림픽축구 종목에 대하여 서술하는 문서.

이탈리아가 지역예선에서 프로 선수를 출전시킨 이유로 실격 처리되었고, 북한은 신흥국 경기 대회에 나선 선수들에 대한 제재 조항에 대해 항의의 의미로 대회 개막 하루 전에 선수단을 철수하며 기권했다. 따라서 대회는 14개국이 진출로 치러졌다.


2. 경기장[편집]




3. 본선 진출국[편집]


대륙
국가
예선 대회
대회 성적
티켓 수
통산 진출
최근 진출
최고 성적
아시아
오세아니아 (AFC)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개최국
1장
3회
1956
8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1964 도쿄 올림픽
아시아 - 오세아니아 지역예선
최종예선 승자[2]
3장
2회
1948
8강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첫 진출
-
-
파일:팔라비 왕조 국기.svg
이란
첫 진출
-
-
유럽
(UEFA)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전 대회 우승국
1장
8회
1960
금메달
파일:루마니아 인민공화국 국기(1952-1965).svg
루마니아
1964 도쿄 올림픽
유럽 지역예선
예선 1조 1위
5장
3회
1952
1R
파일:헝가리 국기.svg
헝가리
예선 2조 1위
6회
1952
금메달
파일:독일 올림픽 단일팀기.svg
독일[동독]
예선 3조 1위
첫 진출
-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예선 4조 1위
9회
1960
금메달
파일:체코 국기.svg
체코슬로바키아
예선 5조 1위
3회
1924
1R
남미
(CONMEBOL)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아르헨티나
1964 CONMEBOL 프레-올림픽 토너먼트
우승
2장
3회
1960
은메달
파일:브라질 국기(1960-1968).svg
브라질
PO 승자
3회
1960
8강
북중미
(CONCACAF)

파일:멕시코 국기(1934-1968).svg
멕시코
1964 CONCACAF 프레-올림픽
토너먼트 멕시코

우승
1장
3회
1948
1R
아프리카
(CAF)

파일:시리아 국기.svg
아랍연합공화국[3]
1964 도쿄 올림픽
아프리카 지역예선
예선 1조 1위
3장
8회
1960
4위
파일:가나 국기(1964-1966).svg
가나
예선 2조 1위
첫 진출
-
-
파일:모로코 국기.svg
모로코
예선 3조 1위
첫 진출
-
-
  • 남미 지역예선에선 최악의 참사가 일어나 대회가 도중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4] 이 대참사 때문에 경기는 그대로 아르헨티나의 1-0 승리로 종료되었고, 예선 전체 21경기 중 5경기를 남긴 상황에서 그대로 예선 일정 자체가 올 스톱되었다. 이후 사고가 어느정도 수습된 다음, 예선 중단 시점에서의 1위 아르헨티나는 본선 진출을 인정하고, 2위 브라질과 3위 페루의 플레이오프 승자가 남은 한 장의 티켓을 가져가는 것으로 일정이 조정되어 브라질이 페루를 4-0으로 누르고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 이탈리아가 예선 4조에서 1위로 본선에 진출했지만, 예선에서 프로 선수들이 뛰었다는 점이 지적되어 본선 진출권을 박탈당했다. 4조 2위 폴란드에게 대타 참여의 기회가 주어졌으나 폴란드는 이를 거절했다. 유럽 예선 5조에서도 그리스가 프로 선수를 출전시켰다는 이유로 도중 실격되어 5조 결승전을 치르지도 못하고 탈락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5조 결승을 부전승으로 통과하는 행운을 얻었다.
  •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대한민국이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예선을 통과하고 올림픽 본선에 16년만에 진출했다. 1948년 런던 대회에 참여한 역사가 있으나 당시 올림픽 축구는 참가만 하면 나설 수 있는 대회였다. 북한 또한 본선에 진출해 남북 동반진출로 본선에서의 치열한 신경전이 예상되었으나, 북한이 신흥국 경기 대회 출전 선수들에 대한 IOC의 제재에 항의하며 인도네시아와 함께 올림픽에 전격 불참해버리는 바람에 동반 진출은 무산되었다.


4. 조 편성[편집]



4.1. 조 편성 결과[편집]




5. 선수 명단[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64 도쿄 올림픽/축구/참가팀 정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대회 진행[편집]



6.1. 조별리그[14강][편집]



6.1.1. A조[편집]


순위
팀명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1
파일:독일 올림픽 단일팀기.svg
독일[동독]
2
1
0
7
1
+6
5
2
파일:루마니아 인민공화국 국기(1952-1965).svg
루마니아
2
1
0
5
2
+3
5
3
파일:멕시코 국기(1934-1968).svg
멕시코
0
1
2
2
6
-4
1
4
파일:팔라비 왕조 국기.svg
이란
0
1
2
1
6
-5
1
결선 진출 | 탈락


6.1.2. B조[편집]


순위
팀명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1
파일:헝가리 국기.svg
헝가리
2
0
0
12
5
+7
4
2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1
0
1
8
7
+1
2
3
파일:모로코 국기.svg
모로코
0
0
2
1
9
-8
0
-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기권
결선 진출 | 탈락


6.1.3. C조[편집]


순위
팀명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1
파일:체코 국기.svg
체코슬로바키아
3
0
0
12
2
+10
6
2
파일:시리아 국기.svg
아랍연합공화국
1
1
1
12
6
+6
3
3
파일:브라질 국기(1960-1968).svg
브라질
1
1
1
5
2
+3
3
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0
0
3
1
20
-19
0
결선 진출 | 탈락


6.1.4. D조[편집]


순위
팀명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1
파일:가나 국기(1964-1966).svg
가나
1
1
0
4
3
+1
3
2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1
0
1
5
5
0
2
3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아르헨티나
0
1
1
3
4
-1
1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실격
결선 진출 | 탈락


6.2. 토너먼트[편집]





6.2.1. 결선 토너먼트[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축구/결선 토너먼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2.2. 5-8위 순위 결정전[편집]




7. 최종 순위[편집]



1964 도쿄 올림픽 남자축구 우승국
파일:헝가리 국기.svg
헝가리
두번째 우승


8. 여담[편집]


  • 올림픽 축구에서 역사상 마지막으로 순위 결정전이 열렸던 대회다. 8강 토너먼트에서 패한 네 팀이 5-8위 순위 결정전을 가지고 소규모의 미니 토너먼트를 치뤘고, 여기서 루마니아가 2연승을 거두고 5위를 차지했다. 이후 대회에서는 따로 탈락한 팀들끼리 순위 결정전을 치르지 않고 탈락 당시의 성적으로 순위를 매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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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상의 동독 대표팀[14강] A B [2] 홈 앤드 어웨이의 완전 토너먼트로 치러졌다.[동독] A B [3] 당시 이집트, 시리아 연합[4] 1964년 5월 24일,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델 페루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경기 도중 일어난 일로 당시 페루는 브라질과 치열한 2위 싸움을 하고 있어 아르헨티나와의 경기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었다. 0-1로 끌려가던 경기에서 후반 36분에 페루가 동점골을 넣었으나 당시 우루과이 국적의 심판이 골 무효 선언을 내렸다. 이에 격분한 53000명의 당시 페루 관중들 중 일부가 경기장에 난입했고, 페루 경찰이 최루탄을 쏘면서 대응했다. 그런데 이 최루탄의 방향이 다름 아닌 페루 관중들이 몰려있는 경기장 북쪽 스탠드였다는게 가장 큰 문제였다. 경찰이 군중들을 향해 최루탄을 쏘면서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관중들은 서로 경기장을 빠져나가려 출입구로 몰렸다. 당시 경기가 끝나기 전이었기 때문에 출입문이 굳게 닫혀있던 상황에서 최루탄때문에 눈물 콧물 범벅이 되버린 대다수의 관중들은 사실상 시야가 없다시피 했고, 출입문이 닫힌 것을 인지하지 못한채 출입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충돌로 인한 과다출혈과 압사로 수백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 공식 집계로는 328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지만 최근까지도 이는 과소집계된 수치라는 말이 지배적일 만큼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힐스버러 참사, 브래드포드 시티 구장 화재, 헤이젤 참사에서의 사망자를 아득히 뛰어넘는 엄청난 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