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갓산토다 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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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전개
4. 결과
5. 영향


1. 개요[편집]


1565년부터 1566년까지 일본 전국시대 주고쿠 이즈모 국의 갓산토다 성에서 벌어진 모리 가문과 아마고 가문 간의 전투로 모리 모토나리는 이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주고쿠의 패자가 된다.


2. 배경[편집]


1555년 이츠쿠시마 전투에서 승리한 모리 모토나리는 이후 오우치 가문을 공격해 멸망시키고 오우치가 차지하고 있던 주고쿠의 영토를 장악하며 주고쿠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다. 이때 아마고 가문의 당주 아마고 하루히사이와미 은광을 공격해 점령하는데 모토나리는 이와미 은광을 접수하기 위해 2번이나 아마고를 공격하지만 하루히사는 이 부대를 모두 격퇴하면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1561년 하루히사가 급사하면서 아들 아마고 요시히사가 당주에 오르지만 그 과정에서 내분이 발생하고 아마고는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모토나리는 오토모 소린과의 전쟁을 마무리하고 1563년 삼남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에게 2만 군대를 이끌고 아마고를 침공하게 했다.


3. 전개[편집]


모리 군은 1563년 10월 갓산토다 성의 주요 방어선 중 하나인 시라가 성을 공격해 함락시키고[1] 1565년 아마고의 거성 갓산토다 성을 포위하였다. 1차 포위전은 전황의 불리로 인해 패퇴하였으나 9월 2차 포위전을 개시했고 아마고 영지의 다른 성들을 모두 공략해 갓산토다 성을 완전히 고립시켜서 보급 차단을 개시하였다. 이에 아마고는 1년 동안 농성전을 펼쳤으나 보급 차단으로 인한 병량 부족과 그로 인한 투항병 발생으로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요시히사가 모함에 속아 우야마 히데카네를 처단하면서 아마고 가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발생하며 승기는 모리 쪽으로 점점 기울어가고 있었다.


4. 결과[편집]


결국 1566년 요시히사는 성을 개성하고 모토나리에게 항복하고 만다. 모토나리는 요시히사 등 아마고 일족을 아키 국에 유폐시키면서 아마고는 멸망하고 모토나리는 71세의 나이로 주고쿠의 패자가 된다.


5. 영향[편집]


아마고는 멸망했지만 야마나카 시카노스케 등 아마고의 잔당들은 아마고 카즈히사를 당주로 내세우고 격렬한 저항을 벌이고 모리는 이 잔당들을 진압하기 시작하는데 이 과정에서 아마고 잔당 세력이 오다 노부나가에게 지원을 요청하면서 오다 노부나가의 주고쿠 원정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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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전투 기간에 모리 타카모토가 사망하는데 아마고에 의한 독살 의혹이 있다. 모토나리는 이를 사실로 여겨 아마고에 대한 공세를 강화한다.[2] 오다 노부나가가 주고쿠로 원정을 단행한 것은 아마고 잔당의 지원 요청도 있었지만 또다른 원인은 당시 모토나리는 사망하고 손자 모리 데루모토가 당주로 있었는데 때마침 노부나가에 의해 쫓겨난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모리 가문에게 의탁하며 이를 빌미로 모리 가문이 제2차 노부나가 포위망 결성을 주도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