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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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보좌관 출신 정치인. 전라남도 국회의원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리다.
2. 생애[편집]
1965년 10월 6일,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풍남초등학교, 풍양중학교, 전남고등학교(16회),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남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이수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맡고 있었으며, 1987년 6월 16일 전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앞 광장에서 1987년 4월 전두환이 발표한 '4.13 호헌조치 철폐'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삭발을 결행하고, 광주와 전남에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이한열 열사의 넋이 이름 모를 파랑새가 되어 이곳에 날아와 앉아있습니다……."
단상 앞으로 나온 전남대 총학생회장 김승남 군이 수십만인파 속에 날아온 파랑새를 가리키며 말하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이한열 : 나의 행동이 너를 부끄럽지 않게 하기를 中
특히 1987년 6월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세상을 떠난 전남 화순 출신 이한열의 추도식에서 한 마리의 파랑새가 날아들어 추도식이 열리던 전남도청 앞 광장에 걸린 만장 위에 앉자,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단상에 오른 그는 "이한열 열사의 넋이 이름 모를 파랑새가 되어 이곳에 날아와 앉아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추도사를 하여 수십만 명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 #
또 이인영, 우상호 등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결성을 주도하며, 전대협 부의장과 광주전남 지역조직인 남대협 1기 의장을 맡아 대통령 직선제 수용 등 1987년 헌법 개정과 군부독재를 저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특수공무집행 방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여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대다수 호남 출신 정치인들과 달리 1993년 민주당 이기택 총재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경기 광명시 을 선거구에 출마해 4위로 신한국당 손학규 후보에 낙선하는 등 꼬마민주당 계열에서 활동하다가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김정길 등과 함께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뒤 박상천 의원[3] 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구 민주계 계열로 전향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이 후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의 전남 고흥군-보성군 선거구 후보 경선에서 장성민을 누르고 공천을 따내 국회의원이 된다.
2016년 1월 14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당월 27일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20대 총선 지역구 공천을 두고 황주홍 의원, 김철근 후보와 경선하였으나 떨어졌다. 이에 불공정 경선이라며 3월 28일 국민의당을 탈당했고, 신문식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지지의사를 밝혔다. 총선 이후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여 고흥·보성·장흥·강진 지역위원장 자리에 도전하였으나 경쟁자인 신문식과의 다툼이 이어져 경선이 중지되어버렸고, 직무대리로 박병종 고흥군수가 임명되었다.
2018년 7월, 더불어민주당 고흥보성장흥강진 지역위원장 경선이 치러졌다. 권리당원 경선에서 신문식 위원장을 63대 37로 제치고 위원장에 복귀하였다.
2019년 4월 7일 고흥군 풍양면 면민의날 행사에서 민주평화당 당적의 송귀근 군수와 행사장에서 고성이 오가는 충돌로 간만에 뉴스에 등장했다. 최근 1천100억원대 스마트팜 밸리 사업을 유치한 것을 두고 정치적 다툼이 있다가 터진 일이라고 한다. 김 전 의원은 유감이라면서도 송 군수가 특정 정당을 홀대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황주홍 의원과 재대결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 벌써부터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간 기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전남 고흥군·보성군·장흥군·강진군 지역구에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중앙당에서 본래 이 지역구를 전략 공천 대상 지역으로 검토한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결국 한명진 전 방위사업청 차장과의 경선이 확정되었고 승리하여 공천을 확정지었다.
이후 민생당 현역 황주홍 후보와의 승부에선 호남에서 몇 안되는 박빙 지역구가 될거란 예상과는 달리 여론조사에서 시종일관 앞섰고 이는 투표 당일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큰 차이로 황주홍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