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트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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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맘루크 왕조의 48대 술탄. 바르스베이의 맘루크 출신으로, 술탄 자크마크 대에 해방된 후 승진을 거듭하여 야전 사령관에 올랐다. 1468년 술탄 티무르부가의 폐위 후 즉위한 카이트베이는 전임자를 예우하고 쿠데타 세력을 숙청하며 민심을 얻음과 동시에 권력을 공고히 하였다. 그는 기존에 배척되던 맘루크들을 등용하여 친위 세력으로 삼으면서도 경쟁자들을 비슷한 지위에 임명하여 상호 견제하게 하였고, 따라서 특정 아미르의 성장을 통제하였다. 아나톨리아 동부의 둘카디르 왕조가 반기를 들자 3차례의 원정 끝에 그를 복속시켰다. 1485년 오스만 제국의 킬리키아 침공과 함께 시작된 맘루크-오스만 전쟁 역시 두차례에 걸친 맘루크 군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카이트베이는 공통의 적을 둔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와 동맹하였고, 후자로부터 물자를 보급받았다.[1] 1491년 카이트베이는 오스만 술탄 바예지트 2세와 휴전을 맺었고, 이는 양자의 사망 시까지 준수되었다.[2]
카이트베이는 종종 소수의 호위만을 동행한채 카이로의 민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신뢰를 얻었고, 즉위 전부터 축적한 막대한 재산으로 빈민을 구제하여 명성을 쌓았다. 한편 70대 후반에 접어든 카이트베이는 심복들의 사망 후 정치적으로 고립되었고, 1492년의 역병으로 카이로에서만 20만명이 사망하였다. 카이트베이 역시 낙마 사고 후 1494년 몸져누웠고, 권력을 두고 내분이 일기 시작하였다. 1496년 여름 카이트베이는 사망하여 생전에 건립한 자신의 이름이 붙은 복합단지에 안장되었다. 그는 맘루크 술탄들 중 앗 나시르 무함마드 다음으로 긴 28년간 재위하고 16차례의 군사 원정을 감행하며 제국을 안정적으로 통치하였다. 사후 아들 나시르 앗 딘이 계승하였지만 2년만에 폐위되었고, 그후 맘루크 조는 깐수 알 구리의 집권 전까지 내전에 시달리며 쇠퇴하였다. 그외에 카이트베이의 치세는 후기 맘루크 예술의 전성기로 평가되며, 많은 예시들이 현존한다.
2. 건축 사업[편집]
카이트베이는 건축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우선 1472년 카이로에 마드라사-모스크-영묘를 건립한 그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등을 순행하며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 대사원에 거대한 미나렛을 세우고 이스칸다리야에는 옛 파로스 등대 터에 성채를 건립하였다. 그외에 이슬람 성지들인 예루살렘의 바위의 돔에는 분수대를 헌정하였고 메디나의 예언자 모스크 역시 대대적으로 중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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