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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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국적을 가졌거나, 몽골을 모국으로 인식하거나, 혈통적으로 몽골계인 민족을 일컫는 말.
몽골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하는 기준으로 보면 중국 내몽골 자치구에 사는 내몽골인도 몽골인에 포함되며, 혈통적으로 몽골과 같은 러시아의 부랴트인, 칼미크인, 투바인도 사용하는 언어는 다르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몽골계 민족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한국인은 몽골족을 하나의 종족(Ethnic Group)으로 여기고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통일 영웅으로 불리는 칭기즈 칸이 통합한 나이만, 타타르, 케레이트 등은 실제로는 몽골족이 아니라 몽골계 언어를 사용하는 유목민일 뿐이었고, 이후에 몽골로 편입된 위구르족, 캉글리, 킵차크, 거란족[1] , 탕구트 등도 이 당시 정(正) 몽골인으로 분류된 니룬(귀족), 두릴리킨(평민) 몽골과 달리 한문 사료에 언급되는 '색목인(色目人)'에 가까웠다.
14세기 후반 몽골 제국이 붕괴된 후, 색목인으로 분류된 각 부족들부터 정(正) 몽골인으로 구성된 부족들까지 부족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각지로 흩어졌고, 부하라 칸국, 카자흐 칸국, 크림 칸국, 티무르 제국, 북원, 오이라트 등의 구성 부족이 되었다.[2] 한편 16세기 몽골 고원에서는 다얀 칸이 일시적으로 몽골 고원의 각 종족을 정복하고 6투멘 체제를 정립하기는 했지만 하나의 종족이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의 몽골 즉, 내•외몽골의 개념을 정립한 것은 17세기에 발흥한 만주 청나라였다. 청의 태종 홍타이지는 여진 제부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릭단 칸의 팽창을 피해 투항한 동몽골의 각 부족을 복속했고, 이후에는 릭단 칸 사후 와해된 차하르부를 복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한 성조 강희제는 1691년을 전후로 외몽골 지역의 할하 부족들을 복속시켜 나갔고, 세종 옹정제는 칭하이성 일대의 몽골계 부족과 오이라트계 호쇼트 부족 등을 정복했으며, 고종 건륭제는 마침내 준가르와 러시아 제국에서 남하한 토르구트 등의 오이라트계 부족들을 모두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청나라 조정은 이들을 '몽골'로 묶어 분류하기 시작했고,[3] 기존의 울루스와 오톡 제도를 파괴한 뒤 팔기제에 준하여 몽골 제부를 181기(旗: 호슌)와 13맹(盟: 출간)으로 재편하고 유목지를 지정했으며, 만주족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몽골인의 문화를 규정했는데, 투메드의 사간 세첸이 1662년에 저술한 《어르더니 톱치(Erdeni-yin tobči)》를 번역한 《흠정몽고원류(欽定蒙古源流, Hesei toktobuha enetkek tubet monggo han sai da sekiyen)》 및 《흠정외번몽고회부왕공표전(欽定外藩蒙古回部王公表伝, Hesei toktobuha tulergi monggo hoise aiman-i wang gung sai iletun ulabun)》을 편찬하여 하나의 역사를 정립함으로써 이들의 문화적 균질화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목민이었던 그들의 종족적 정체성이 결코 통합되지는 못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몽골인'이라 생각하지 않고 '~ 맹' 혹은 '~ 기' 출신의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19세기 중후반 청이 내우외환을 겪으면서 세속주의 정책을 유지하지 못하고 중국화되기 시작하자, 많은 한족들이 투셰투칸부 등으로 유입돼 개간을 시도했고, 이에 따라 유목 사회는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몽골로 유입된 한족은 유목민들과 충돌하였고 이 과정에서 위협적인 타자와 접촉하게 된 유목민들은 '동족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1912년 청나라의 멸망 이후, 북몽골의 탄누 우량카이에 속했던 투바인들은 몽골계임은 인정했지만 스스로를 국적상 몽골인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며, 북몽골의 할하인들은 자신들이 중심이 되어 몽골국을 건국했다. 진정한 몽골인으로 분류되지 못했던 오이라트계 부족들 중 중국에 거주하는 이들은 중국 공산당에 의해 몽골족으로 여겨지게 되었다.[4] 그리고 팔기몽골의 후손들은 만주족으로 편입되었다. 결국 몽골인들은 현재까지도 하나의 종족적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이다. 즉, 몽골족이라는 명칭만 보고 처음부터 있었던 하나의 종족이라고 간주하면 큰일난다. 실제로 내몽골의 차하르인과 몽골의 할하인의 사이는 매우 나쁘다. 20세기에 청나라가 멸망한 틈을 타서 내몽골이 독립해서 몽강연합자치정부가 되었을 때도 외몽골 쪽에서 몽강국을 합병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고, 아예 할힌골 전투 때는 각자 일본과 소련의 동맹국으로서 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몽골인을 포함한 몽골 혈통을 가지고 있거나 몽골계에 해당되는 민족들을 가리킨다. 물론 엄밀히 따지자면 몽골계에 해당되어도 정체성이 다르기에 민족의 정체성으로 본다면 몽골인과는 다르다. 언어는 몽골어족에 속한다.
만주 지역과 몽골 사이의 내몽골 동부에 거주하는 다우르족, 신장위구르 자치구 북부 준가리아의 오이라트계와 극소수의 준가르족들, 그리고 오이라트인 중 러시아 카스피 해 북서부로 이주한 칼미크인, 티베트 북부 칭하이 성의 투족, 간쑤 성에 거주하는 무슬림 민족들인 둥샹족, 아프가니스탄 북서부에 거주하는 모골인들 역시 대표적인 몽골계 민족들이다.
참고로 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민족은 만주족(여진족), 일본인[7] 이라고 한다. 관련논문 한족(North Chinese)과 몽골인은 그 다음으로 가까운 그룹에 속한다. 결론적으로 가까운 민족인 것은 맞지만 가장 가깝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
한반도보다 훨씬 북쪽에, 그것도 러시아보다도 더 추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라서 추위에 강하다.[8] 그래서 한국의 맹추위에도 버티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들은 다 추워하는데도 혼자 덥다고 할 정도며, 밤이 추운 가을에도 에어콘 바람을 직접 쐬면서 팬티만 입고 이불도 없이 창문을 열어 찬 밤 공기 속에서 잘 정도이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추위를 타는 사람들도 있다.
유목 생활을 주로 하는 환경적인 요인 덕분에 시력이 매우 좋기로도 유명하다. 유목민에게 중요한 재산인 양과 같은 가축이 늑대와 같은 맹수의 먹이로 희생되는 일이 많기에 이에 대한 경계를 해야 하므로 시력이 좋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눈을 피로하게 하는 장애물이 적고 탁트인 넓은 초원에서 살아왔기에 시력이 좋은 이유도 있다. 실제로 몽골에 방문했던 한 교수는 갑자기 저 멀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어어이~" 하며 목청을 울리는 몽골인을 보고 토속적인 관습인 줄 알았는데, 한참 후에 그쪽에서 오는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때문에 시력이 좋은 사람을 보고 몽골인이냐고 한다.
그렇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타 국가 사람들처럼 시력이 그리 좋지 못하다. 몽골인들의 절반가량이 수도인 울란바토르 주변에 살고 있는데 울란바토르의 풍경은 보통의 대도시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문제는 석탄으로 난방을 하다보니 공기가 매우 나쁘며, 눈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준다. 또한 몽골인이라고 해서 TV나 스마트폰, 컴퓨터 등 눈 나빠지기 쉬운 전자제품 사용률이 특별히 더 낮은것도 아니기 때문에 요즘은 몽골인들 중에도 안경 쓰고 렌즈 끼는 사람들이 많다. 쉬운 예시로 몽골의 독재자 욤자깅 체뎅발만 해도 안경 착용자다. 몽골인이 시력 좋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다만 그래도 타 국가 사람들에 비해서 시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자신들이 칭기즈 칸의 후예라고 믿는 몽골인이 많다. 실제로 과거 몽골 제국의 영토에 사는 현세대 민족 중 칭기즈 칸의 후예로 추정되는 사람은 약 8%에 달하며 이는 1,600만 명이라는 대인구다. 실제 칭기즈 칸의 유전자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 사람들은 전부 동일 Y염색체를 가졌으며 약 1천 년 전 급속도로 확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보다 정확히는 칭기즈 칸의 직계 후손은 아니고 칭기즈칸 가문의 유전자들이 이어진 것이다. 칭기즈칸 가문 사람들은 몽골 제국이 쇠락한 이후로도 유라시아 각지에 나라를 세우면서 지배계층의 자리를 차지했고. 티무르 제국, 무굴 제국, 모굴리스탄 칸국, 크림 칸국, 부하라 칸국 등의 나라가 수백년 넘게 이어왔고, 몽골계 국가들을 정복해서 세를 확장한 러시아 제국에서도 몽골계 귀족가문이 상당수 있었을 정도였다. 또한 중국에서도 청나라가 중국 전역을 정복한 뮈로는 황금씨족이 청나라 황실과 혼맥을 맺을 정도로 높은 지위와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 때문에 칭기즈칸 유전자는 만주, 중국 북부, 고비 사막, 바이칼, 투르키스탄, 파키스탄 북부 등지까지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것이다, 다만 몽골 이외 지역에서 정착한 칭기즈칸 가문의 후예들은 이렇게 오랜기간 동안 지배계층의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튀르크족, 페르시아인, 슬라브인 등과 혼혈되어 중동인, 유럽인의 외모를 지니는 경우가 많고, 언어, 문화적으로도 현지어를 쓰며 동화되었기 때문에 몽골족의 정체성을 가지지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웹상에서는 2010년대 이후로 부흐가 매체에서 조명되거나 몇몇 부흐 출신 몽골 선수들이 격투기나 레슬링 등지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부각되면서 덩치 크고 힘 좋은 민족이라는 인식도 생겼는데, 실제 러시아 내에서 몽골인들은 소수민족 중에서 힘이 좋기로 유명하다. 다만 유전적 차이라기보다는 스포츠가 생활화된 정도의 차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민성의 경우 척박한 지역에서 유목을 하는 특성상 대체적으로 터프하지만 순수한 편으로 돌려말하기식 같은 건 전혀 없고 빈말이란 개념도 없어서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편이다.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일본과는 정반대. 유목민들의 공통적인 특성인 여행자 같은 처음 보는 타인에게도 호의를 베푸는 편. 한 사례로 몽골로 교환학생을 간 대학생의 경험에 따르면 홀로 버스를 타고 몽골시내 곳곳을 여행하였는데 탑승하는 승객들이 모일 때마다 항상 시끌벅적했다고. 보이는 사람마다 대화와 관심을 비춰 웃음과 대화가 끊이지 않았으며 당연히 그 교환학생도 뜨거운 관심과 대화를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때에 따라 버스 안에서 술판, 춤판, 합창판이 되기도 한다.
더불어 신세를 지면 반드시 갚는다는 성향이 있다. 매우 터프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가이드와 친해지면 몽골에서 겪는 위험한 상황 대부분은 넘길 수 있다. 다만 거꾸로 원수를 지면 잊지 않고 두고두고 보복한다는 말도 있다.[9] 그래서 몽골인에게 모욕을 주거나 해코지를 한다면 뒷일은 책임 못 진다.[10] 사조영웅전에 나오는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몽골인들을 떠올리면 쉽다. 다만 터프한 게 지나치다 보니, 몽골인 근로자들이 외국에서 문제 일으켜 체포당하고 형사처벌을 받거나 추방당하는 일이 있어 몽골의 국가 이미지에 먹칠하는 경우가 많다.[11]
그러나 최근엔 몽골의 경제 사정이나 도시화에 따른 여러 문제들이 겹친 데다, 몽골의 치안은 좋지 않기로 유명하기 때문에[12]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한몽관계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
술을 매우 잘 마시는 나라로, 소비량, 음용률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폭음 문화는 역시 오래된 유목생활에서 나타나는데, 유목민족들은 초원에서 사람을 만나면 상대가 초면이더라도 반드시 서로를 지켜줘야 했고, 아무리 바빠도 상대가 술을 건네면 예의상 마셔야 했다. 인구밀도가 희박한 스텝지역, 사막지역에서 인간은 맹수나 자연환경 등과 싸워야 했고 인간끼리는 서로 힘을 합쳐야 했다. 낮에 인적 없는 초원에서 사람을 만나면 서로 돕고 하는 게 좋기는 하지만 문제는 밤이었다. 밤에 잠들 때, 한 명이 몰래 상대의 말이나 양들을 몰고 도망가 버리면, 남은 한 명은 죽게 된다. 그러자니 서로 못 믿고 잠 안 자고 버티면, 둘 다 피곤하다, 그러다 결국 선택한 방법이 모두가 떡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함께 잠 드는 것이었다. 술이 주는 특유의 고양효과로 어색한 사람과도 금방 친해질 수 있게 되는 것은 덤이었다.
이 문화는 몽골 제국을 설립한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제국 성립 이후에도 몽골인은 중국인, 고려인[13] , 이란인 등 타민족과의 공식석상에서도 상식을 초월한 폭음을 즐겨 피지배 민족을 경악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문제는, 드넓은 초원에서는 가족 이외의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많아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 이렇게 술을 마셔도, 그렇게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숙취와 함께 깨어나도, 이곳은 초원이어서 공기도 좋았고, 어차피 비도 거의 내리지 않는 이런 기후에서 양 떼를 이동하는 것이, 꼭 시간을 정해서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후에 꾸준한 승마와 육체노동을 해서 건강을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국 건국 이후에는 이들은 점령한 대도시의 궁에서 살았다. 그러나 고향에 대한 향수병에 시달리며 자기들끼리 거의 매일 이렇게 술을 마시고, 다음 날에는 숙취에 시달렸기 때문에 지도자로서 처리해야 하는 일은 안 했다. 또 그렇게 술을 마시고 따로 운동은 하지 않았으니[14] 체력도, 전투력도 엉망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제국은 제대로 굴러가지 못했고, 실제로 거대한 원 제국의 몰락 원인을 주둔 병사들의 알콜 중독으로 보는 설이 있을 정도다.
술 좀 마신다 하는 한국인들도 몽골인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 편이다. 특히 몽골은 러시아와 가까워서 40도 이상가는 보드카를 주로 많이 마시기 때문에 20도짜리 소주 마시던 한국인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아예 알콜 도수가 낮은 맥주의 경우 술로 쳐주지도 않는다. 실제로 몽골에 여행 간 한국인들이 마지막 날 뒷풀이를 하려고 맥주를 잔뜩 사두고 몽골 현지인 가이드에게 같이 술 먹자고 말하자, 몽골 현지인 가이드는 술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예로는 술을 전혀 못 한다는 한 몽골인이 맥주를 물처럼 마시자, 의아한 한국인이 술 못하신다면서 맥주는 어떻게 드시나요??라고 물으니까 "맥주는 술 아니에요."라고 했다고 한다.[15] 다만 이러다보니 알콜중독이나 폭음이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지적받으면서 국가에서 절주를 강조하고 있다.[16]
몽골 국민들은 중국과 대립하는 감정이 있으며, 아울러 내몽골인이나 자국 내 튀르크계 카자흐인은 더욱이 혐오한다. 신해혁명을 전후하여 내몽골인 남성 상당수가 한족 여성들과 통혼했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외몽골 할하인들과 다르게 내몽골인들이 중국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다소 복잡하다. 내몽골인은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인식하기는 하지만 엄연히 한족과는 다른 몽골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몽골계 중국인이다.
일단 이 문서는 독립국가 몽골국의 국민 90%를 차지하는 할하 몽골인들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몽골국에는 몽골인 말고 소련 시대에 이주한 러시아인도 있는데,[17] 인종부터 백인인 데다 정교회를 믿는다. 또다른 이웃 국가인 중국의 한족에 비하면 러시아인의 이미지가 그나마 좋은 편이다.
이슬람을 믿는 5%의 튀르크계 카자흐인 및 키르기즈인도 있는데, 외몽골 서부의 호브드 아이막에 산다. 튀르크인들 역시 몽골인과 사이가 나쁘며 그래서 몽골과 카자흐스탄 간에 은근한 신경전이 있다.
미국내에 소수의 몽골계 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칼미크계 미국인들도 거주하는 등 소수의 몽골계 민족이 미국에 거주한다. 그리고 러시아내에는 몽골계 러시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몽골계 한국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몽골계 러시아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부분 몽골 제국, 원나라 시대 인물인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라, 원나라 멸망 이후 몽골은 약체화, 소수민족화 되었기 때문이다. 내몽골은 차하르가 후금에 복속되어 이후 청 황실의 외척으로 나름 중요한 세력이 되었지만 인물은 별로 안 나왔고, 외몽골은 오이라트계 준가르 제국 최후의 명군인 가르단이나 체왕 랍탄 등이 나오기도 했으나 결국 족속 자체가 지리멸렬해져서 몽골인민공화국(현 몽골) 건국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19] 그 외 다른 몽골계 민족들에 해당되는 인물들은 몽골계 인물 참고.
※ 해당 국가 작품 제외.
배우 및 성우가 몽골인인 경우 ☆표시.
1. 개요[편집]
몽골 국적을 가졌거나, 몽골을 모국으로 인식하거나, 혈통적으로 몽골계인 민족을 일컫는 말.
몽골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하는 기준으로 보면 중국 내몽골 자치구에 사는 내몽골인도 몽골인에 포함되며, 혈통적으로 몽골과 같은 러시아의 부랴트인, 칼미크인, 투바인도 사용하는 언어는 다르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몽골계 민족이다.
2. 몽골족?[편집]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한국인은 몽골족을 하나의 종족(Ethnic Group)으로 여기고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통일 영웅으로 불리는 칭기즈 칸이 통합한 나이만, 타타르, 케레이트 등은 실제로는 몽골족이 아니라 몽골계 언어를 사용하는 유목민일 뿐이었고, 이후에 몽골로 편입된 위구르족, 캉글리, 킵차크, 거란족[1] , 탕구트 등도 이 당시 정(正) 몽골인으로 분류된 니룬(귀족), 두릴리킨(평민) 몽골과 달리 한문 사료에 언급되는 '색목인(色目人)'에 가까웠다.
14세기 후반 몽골 제국이 붕괴된 후, 색목인으로 분류된 각 부족들부터 정(正) 몽골인으로 구성된 부족들까지 부족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각지로 흩어졌고, 부하라 칸국, 카자흐 칸국, 크림 칸국, 티무르 제국, 북원, 오이라트 등의 구성 부족이 되었다.[2] 한편 16세기 몽골 고원에서는 다얀 칸이 일시적으로 몽골 고원의 각 종족을 정복하고 6투멘 체제를 정립하기는 했지만 하나의 종족이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의 몽골 즉, 내•외몽골의 개념을 정립한 것은 17세기에 발흥한 만주 청나라였다. 청의 태종 홍타이지는 여진 제부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릭단 칸의 팽창을 피해 투항한 동몽골의 각 부족을 복속했고, 이후에는 릭단 칸 사후 와해된 차하르부를 복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한 성조 강희제는 1691년을 전후로 외몽골 지역의 할하 부족들을 복속시켜 나갔고, 세종 옹정제는 칭하이성 일대의 몽골계 부족과 오이라트계 호쇼트 부족 등을 정복했으며, 고종 건륭제는 마침내 준가르와 러시아 제국에서 남하한 토르구트 등의 오이라트계 부족들을 모두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청나라 조정은 이들을 '몽골'로 묶어 분류하기 시작했고,[3] 기존의 울루스와 오톡 제도를 파괴한 뒤 팔기제에 준하여 몽골 제부를 181기(旗: 호슌)와 13맹(盟: 출간)으로 재편하고 유목지를 지정했으며, 만주족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몽골인의 문화를 규정했는데, 투메드의 사간 세첸이 1662년에 저술한 《어르더니 톱치(Erdeni-yin tobči)》를 번역한 《흠정몽고원류(欽定蒙古源流, Hesei toktobuha enetkek tubet monggo han sai da sekiyen)》 및 《흠정외번몽고회부왕공표전(欽定外藩蒙古回部王公表伝, Hesei toktobuha tulergi monggo hoise aiman-i wang gung sai iletun ulabun)》을 편찬하여 하나의 역사를 정립함으로써 이들의 문화적 균질화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목민이었던 그들의 종족적 정체성이 결코 통합되지는 못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몽골인'이라 생각하지 않고 '~ 맹' 혹은 '~ 기' 출신의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19세기 중후반 청이 내우외환을 겪으면서 세속주의 정책을 유지하지 못하고 중국화되기 시작하자, 많은 한족들이 투셰투칸부 등으로 유입돼 개간을 시도했고, 이에 따라 유목 사회는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몽골로 유입된 한족은 유목민들과 충돌하였고 이 과정에서 위협적인 타자와 접촉하게 된 유목민들은 '동족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1912년 청나라의 멸망 이후, 북몽골의 탄누 우량카이에 속했던 투바인들은 몽골계임은 인정했지만 스스로를 국적상 몽골인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며, 북몽골의 할하인들은 자신들이 중심이 되어 몽골국을 건국했다. 진정한 몽골인으로 분류되지 못했던 오이라트계 부족들 중 중국에 거주하는 이들은 중국 공산당에 의해 몽골족으로 여겨지게 되었다.[4] 그리고 팔기몽골의 후손들은 만주족으로 편입되었다. 결국 몽골인들은 현재까지도 하나의 종족적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이다. 즉, 몽골족이라는 명칭만 보고 처음부터 있었던 하나의 종족이라고 간주하면 큰일난다. 실제로 내몽골의 차하르인과 몽골의 할하인의 사이는 매우 나쁘다. 20세기에 청나라가 멸망한 틈을 타서 내몽골이 독립해서 몽강연합자치정부가 되었을 때도 외몽골 쪽에서 몽강국을 합병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고, 아예 할힌골 전투 때는 각자 일본과 소련의 동맹국으로서 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2.1. 몽골계 민족[편집]
몽골인을 포함한 몽골 혈통을 가지고 있거나 몽골계에 해당되는 민족들을 가리킨다. 물론 엄밀히 따지자면 몽골계에 해당되어도 정체성이 다르기에 민족의 정체성으로 본다면 몽골인과는 다르다. 언어는 몽골어족에 속한다.
만주 지역과 몽골 사이의 내몽골 동부에 거주하는 다우르족, 신장위구르 자치구 북부 준가리아의 오이라트계와 극소수의 준가르족들, 그리고 오이라트인 중 러시아 카스피 해 북서부로 이주한 칼미크인, 티베트 북부 칭하이 성의 투족, 간쑤 성에 거주하는 무슬림 민족들인 둥샹족, 아프가니스탄 북서부에 거주하는 모골인들 역시 대표적인 몽골계 민족들이다.
3. 특징[편집]
3.1. 한국인과의 가장 가까운 민족?[편집]
막연히 한국인과 가장 가까우리라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21세기 고고학적인 연구결과에 의하면 고조선의 발원지가 요서지방으로 추측되고 있는데 몽골인들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동호[6] 와 인접한 상황에서 부여나 고구려, 발해, 고려 같은 나라들이 몽골계 종족들과 교류해왔고, 몽골계 종족들을 복속시키거나 복속되기도 했다. 이렇게 몽골계 종족들과 오랜기간 공존했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몽골인들과 가까운 것은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다.
참고로 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민족은 만주족(여진족), 일본인[7] 이라고 한다. 관련논문 한족(North Chinese)과 몽골인은 그 다음으로 가까운 그룹에 속한다. 결론적으로 가까운 민족인 것은 맞지만 가장 가깝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
3.2. 신체적 특징[편집]
한반도보다 훨씬 북쪽에, 그것도 러시아보다도 더 추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라서 추위에 강하다.[8] 그래서 한국의 맹추위에도 버티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들은 다 추워하는데도 혼자 덥다고 할 정도며, 밤이 추운 가을에도 에어콘 바람을 직접 쐬면서 팬티만 입고 이불도 없이 창문을 열어 찬 밤 공기 속에서 잘 정도이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추위를 타는 사람들도 있다.
유목 생활을 주로 하는 환경적인 요인 덕분에 시력이 매우 좋기로도 유명하다. 유목민에게 중요한 재산인 양과 같은 가축이 늑대와 같은 맹수의 먹이로 희생되는 일이 많기에 이에 대한 경계를 해야 하므로 시력이 좋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눈을 피로하게 하는 장애물이 적고 탁트인 넓은 초원에서 살아왔기에 시력이 좋은 이유도 있다. 실제로 몽골에 방문했던 한 교수는 갑자기 저 멀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어어이~" 하며 목청을 울리는 몽골인을 보고 토속적인 관습인 줄 알았는데, 한참 후에 그쪽에서 오는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때문에 시력이 좋은 사람을 보고 몽골인이냐고 한다.
그렇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타 국가 사람들처럼 시력이 그리 좋지 못하다. 몽골인들의 절반가량이 수도인 울란바토르 주변에 살고 있는데 울란바토르의 풍경은 보통의 대도시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문제는 석탄으로 난방을 하다보니 공기가 매우 나쁘며, 눈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준다. 또한 몽골인이라고 해서 TV나 스마트폰, 컴퓨터 등 눈 나빠지기 쉬운 전자제품 사용률이 특별히 더 낮은것도 아니기 때문에 요즘은 몽골인들 중에도 안경 쓰고 렌즈 끼는 사람들이 많다. 쉬운 예시로 몽골의 독재자 욤자깅 체뎅발만 해도 안경 착용자다. 몽골인이 시력 좋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다만 그래도 타 국가 사람들에 비해서 시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자신들이 칭기즈 칸의 후예라고 믿는 몽골인이 많다. 실제로 과거 몽골 제국의 영토에 사는 현세대 민족 중 칭기즈 칸의 후예로 추정되는 사람은 약 8%에 달하며 이는 1,600만 명이라는 대인구다. 실제 칭기즈 칸의 유전자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 사람들은 전부 동일 Y염색체를 가졌으며 약 1천 년 전 급속도로 확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보다 정확히는 칭기즈 칸의 직계 후손은 아니고 칭기즈칸 가문의 유전자들이 이어진 것이다. 칭기즈칸 가문 사람들은 몽골 제국이 쇠락한 이후로도 유라시아 각지에 나라를 세우면서 지배계층의 자리를 차지했고. 티무르 제국, 무굴 제국, 모굴리스탄 칸국, 크림 칸국, 부하라 칸국 등의 나라가 수백년 넘게 이어왔고, 몽골계 국가들을 정복해서 세를 확장한 러시아 제국에서도 몽골계 귀족가문이 상당수 있었을 정도였다. 또한 중국에서도 청나라가 중국 전역을 정복한 뮈로는 황금씨족이 청나라 황실과 혼맥을 맺을 정도로 높은 지위와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 때문에 칭기즈칸 유전자는 만주, 중국 북부, 고비 사막, 바이칼, 투르키스탄, 파키스탄 북부 등지까지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것이다, 다만 몽골 이외 지역에서 정착한 칭기즈칸 가문의 후예들은 이렇게 오랜기간 동안 지배계층의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튀르크족, 페르시아인, 슬라브인 등과 혼혈되어 중동인, 유럽인의 외모를 지니는 경우가 많고, 언어, 문화적으로도 현지어를 쓰며 동화되었기 때문에 몽골족의 정체성을 가지지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웹상에서는 2010년대 이후로 부흐가 매체에서 조명되거나 몇몇 부흐 출신 몽골 선수들이 격투기나 레슬링 등지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부각되면서 덩치 크고 힘 좋은 민족이라는 인식도 생겼는데, 실제 러시아 내에서 몽골인들은 소수민족 중에서 힘이 좋기로 유명하다. 다만 유전적 차이라기보다는 스포츠가 생활화된 정도의 차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3.3. 국민성[편집]
국민성의 경우 척박한 지역에서 유목을 하는 특성상 대체적으로 터프하지만 순수한 편으로 돌려말하기식 같은 건 전혀 없고 빈말이란 개념도 없어서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편이다.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일본과는 정반대. 유목민들의 공통적인 특성인 여행자 같은 처음 보는 타인에게도 호의를 베푸는 편. 한 사례로 몽골로 교환학생을 간 대학생의 경험에 따르면 홀로 버스를 타고 몽골시내 곳곳을 여행하였는데 탑승하는 승객들이 모일 때마다 항상 시끌벅적했다고. 보이는 사람마다 대화와 관심을 비춰 웃음과 대화가 끊이지 않았으며 당연히 그 교환학생도 뜨거운 관심과 대화를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때에 따라 버스 안에서 술판, 춤판, 합창판이 되기도 한다.
더불어 신세를 지면 반드시 갚는다는 성향이 있다. 매우 터프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가이드와 친해지면 몽골에서 겪는 위험한 상황 대부분은 넘길 수 있다. 다만 거꾸로 원수를 지면 잊지 않고 두고두고 보복한다는 말도 있다.[9] 그래서 몽골인에게 모욕을 주거나 해코지를 한다면 뒷일은 책임 못 진다.[10] 사조영웅전에 나오는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몽골인들을 떠올리면 쉽다. 다만 터프한 게 지나치다 보니, 몽골인 근로자들이 외국에서 문제 일으켜 체포당하고 형사처벌을 받거나 추방당하는 일이 있어 몽골의 국가 이미지에 먹칠하는 경우가 많다.[11]
그러나 최근엔 몽골의 경제 사정이나 도시화에 따른 여러 문제들이 겹친 데다, 몽골의 치안은 좋지 않기로 유명하기 때문에[12]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한몽관계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
술을 매우 잘 마시는 나라로, 소비량, 음용률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폭음 문화는 역시 오래된 유목생활에서 나타나는데, 유목민족들은 초원에서 사람을 만나면 상대가 초면이더라도 반드시 서로를 지켜줘야 했고, 아무리 바빠도 상대가 술을 건네면 예의상 마셔야 했다. 인구밀도가 희박한 스텝지역, 사막지역에서 인간은 맹수나 자연환경 등과 싸워야 했고 인간끼리는 서로 힘을 합쳐야 했다. 낮에 인적 없는 초원에서 사람을 만나면 서로 돕고 하는 게 좋기는 하지만 문제는 밤이었다. 밤에 잠들 때, 한 명이 몰래 상대의 말이나 양들을 몰고 도망가 버리면, 남은 한 명은 죽게 된다. 그러자니 서로 못 믿고 잠 안 자고 버티면, 둘 다 피곤하다, 그러다 결국 선택한 방법이 모두가 떡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함께 잠 드는 것이었다. 술이 주는 특유의 고양효과로 어색한 사람과도 금방 친해질 수 있게 되는 것은 덤이었다.
이 문화는 몽골 제국을 설립한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제국 성립 이후에도 몽골인은 중국인, 고려인[13] , 이란인 등 타민족과의 공식석상에서도 상식을 초월한 폭음을 즐겨 피지배 민족을 경악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문제는, 드넓은 초원에서는 가족 이외의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많아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 이렇게 술을 마셔도, 그렇게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숙취와 함께 깨어나도, 이곳은 초원이어서 공기도 좋았고, 어차피 비도 거의 내리지 않는 이런 기후에서 양 떼를 이동하는 것이, 꼭 시간을 정해서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후에 꾸준한 승마와 육체노동을 해서 건강을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국 건국 이후에는 이들은 점령한 대도시의 궁에서 살았다. 그러나 고향에 대한 향수병에 시달리며 자기들끼리 거의 매일 이렇게 술을 마시고, 다음 날에는 숙취에 시달렸기 때문에 지도자로서 처리해야 하는 일은 안 했다. 또 그렇게 술을 마시고 따로 운동은 하지 않았으니[14] 체력도, 전투력도 엉망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제국은 제대로 굴러가지 못했고, 실제로 거대한 원 제국의 몰락 원인을 주둔 병사들의 알콜 중독으로 보는 설이 있을 정도다.
술 좀 마신다 하는 한국인들도 몽골인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 편이다. 특히 몽골은 러시아와 가까워서 40도 이상가는 보드카를 주로 많이 마시기 때문에 20도짜리 소주 마시던 한국인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아예 알콜 도수가 낮은 맥주의 경우 술로 쳐주지도 않는다. 실제로 몽골에 여행 간 한국인들이 마지막 날 뒷풀이를 하려고 맥주를 잔뜩 사두고 몽골 현지인 가이드에게 같이 술 먹자고 말하자, 몽골 현지인 가이드는 술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예로는 술을 전혀 못 한다는 한 몽골인이 맥주를 물처럼 마시자, 의아한 한국인이 술 못하신다면서 맥주는 어떻게 드시나요??라고 물으니까 "맥주는 술 아니에요."라고 했다고 한다.[15] 다만 이러다보니 알콜중독이나 폭음이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지적받으면서 국가에서 절주를 강조하고 있다.[16]
4. 몽골 국외 거주 몽골인[편집]
몽골 국민들은 중국과 대립하는 감정이 있으며, 아울러 내몽골인이나 자국 내 튀르크계 카자흐인은 더욱이 혐오한다. 신해혁명을 전후하여 내몽골인 남성 상당수가 한족 여성들과 통혼했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외몽골 할하인들과 다르게 내몽골인들이 중국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다소 복잡하다. 내몽골인은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인식하기는 하지만 엄연히 한족과는 다른 몽골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몽골계 중국인이다.
일단 이 문서는 독립국가 몽골국의 국민 90%를 차지하는 할하 몽골인들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몽골국에는 몽골인 말고 소련 시대에 이주한 러시아인도 있는데,[17] 인종부터 백인인 데다 정교회를 믿는다. 또다른 이웃 국가인 중국의 한족에 비하면 러시아인의 이미지가 그나마 좋은 편이다.
이슬람을 믿는 5%의 튀르크계 카자흐인 및 키르기즈인도 있는데, 외몽골 서부의 호브드 아이막에 산다. 튀르크인들 역시 몽골인과 사이가 나쁘며 그래서 몽골과 카자흐스탄 간에 은근한 신경전이 있다.
미국내에 소수의 몽골계 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칼미크계 미국인들도 거주하는 등 소수의 몽골계 민족이 미국에 거주한다. 그리고 러시아내에는 몽골계 러시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4.1. 재한 외국인[편집]
자세한 내용은 몽골계 한국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러시아[편집]
자세한 내용은 몽골계 러시아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유명 몽골인[편집]
5.1. 실존 인물[편집]
- 간볼드 간바야르
- 구유크 칸
- 경화공주: 고려 충숙왕의 왕비
- 계국대장공주: 고려 충선왕의 왕비
- 노국대장공주: 고려 공민왕의 왕비
- 나이단 투브신바야르: 몽골의 유도선수며, 몽골의 올림픽 첫 금메달리스트.
- 다나시리 황후
- 다니엘라 왕: 중국의 배우. 몽골족이지만 내몽골 자치구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몽골 자치현 출신이 아니라 허난성 출신이다.
- 다르카이
- 달라이 라마 4세
- 담딘 수흐바타르
- 덕녕공주: 고려 충혜왕의 왕비, 충목왕의 모후
- 데므치그돈로브: 내몽골의 칸으로 몽강연합자치정부을 세웠다. 몽강국 또는 몽골군사정부는 일제의 괴뢰국으로 형제 국가인 만주국과 같은 처지였다. 이후 장제스에 투항.
- 멍크 바터: 중국의 농구선수, 뜻은 몽골어로 '영원한 영웅'으로, 몽골식 발음은 뭉흐바타르다
- 메르키트 바얀
- 몽케 칸
- 무나시리 황후
- 무칼리
- 바린 바얀
- 바얀 후투그 황후
- 바투
- 베이르 테무르
- 보로클
- 보르테 우진
- 보르지기트 셍게린첸
- 보오르추
- 복국장공주: 고려 충숙왕의 왕비
- 부다시리 황후
- 살리타이
- 수부타이
- 아리크부카
- 아바카 칸
- 아무칸
- 아오르꺼러: 내몽골인인 중국의 격투기 선수로 몽골씨름인 부흐 선수 출신이다. 중국식 이름이 아니라 원래 이름이 차하르어로 아오르거러이다.
- 아운가
- 왕리쥔[18]
- 야쿠
- 오고타이 칸
- 욤자깅 체뎅발
- 엘 테무르
- 예수게이
- 원혜종 토곤 테무르
- 욘돈반처그
- 의비(懿妃) 야속진(也速眞): 충선왕의 제2비. 광릉군과 충숙왕의 모후.
- 자랄타이
- 자무카
- 제국대장공주: 고려 충렬왕의 왕비, 충선왕의 모후
- 제베
- 젤메
- 조국장공주: 고려 충숙왕의 왕비, 용산원자의 모후.
- 조리그투 칸
- 주치
- 차가타이
- 차칸테무르
- 칭기즈 칸
- 쿠빌라이
- 쿠빌라이 칸
- 탕우타이
- 텡기스
- 토오릴 칸(옹 칸)
- 톡토 테무르
- 툴루이
- 티라운
- 푸타우
- 허를러깅 처이발상
- 호엘룬
- 훌라구
- 함보 라마 이르길로프(Hambo Lama Itigelov): 러시아 부랴트 공화국의 티베트 불교 대승려로 사망 직후 시신이 썩지 않아서 유명하다. 저절로 미라화된 사례로 뽑히는데 소련 당시 과학 아카데미에선 "춥고 건조한 기후와 부랴트 사원 특유의 수련 분위기 등이 실제로 시신이 부패하는 것을 막아주어, 시신을 미라화/비누화시킨다"고 결론을 내렸다.
- The HU#4
- 난딘에르덴
- 아즈자르갈 : 블랙컴뱃 헤비급 파이터 https://www.sherdog.com/fighter/Tserendash-Azjargal-384760
대부분 몽골 제국, 원나라 시대 인물인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라, 원나라 멸망 이후 몽골은 약체화, 소수민족화 되었기 때문이다. 내몽골은 차하르가 후금에 복속되어 이후 청 황실의 외척으로 나름 중요한 세력이 되었지만 인물은 별로 안 나왔고, 외몽골은 오이라트계 준가르 제국 최후의 명군인 가르단이나 체왕 랍탄 등이 나오기도 했으나 결국 족속 자체가 지리멸렬해져서 몽골인민공화국(현 몽골) 건국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19] 그 외 다른 몽골계 민족들에 해당되는 인물들은 몽골계 인물 참고.
5.2. 가상 인물[편집]
※ 해당 국가 작품 제외.
배우 및 성우가 몽골인인 경우 ☆표시.
5.2.1. 한국 작품[편집]
5.2.2. 일본 작품[편집]
- 라리 펠드난드 - 대운동회
- 라찌 - 푸른 늑대와 흰 사슴
- 황아일족 - 마기(만화)
- 레키 - 비탄의 아리아[21]
- 바트뭉흐 바트바야르 - 히노마루 스모
- 북갑국 사람들 - 환상게임
- 아인 - 팬텀 오브 인페르노, Phantom ~Requiem for the Phantom~
- 우란푸 - 은하영웅전설
- 위글 옥장 - 북두의 권
- 지그짓 바톨 - 파이팅 레이어
- 킬 한 - 기동무투전 G건담
- 테무진 - 용호의 권 2
- 아이글 - 럼블 로즈
5.2.3. 미국 작품[편집]
5.2.4. 기타 국가 작품[편집]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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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자는 한인으로 분류되었다.[2] 17세기에 히바 한국에서 활약한 나이만 부족과 병자호란에 동원됐던 나이만 부족의 사례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3] 오이라트는 청나라 황실이 분류하는 진정한 '몽골'로 분류되지는 못했다.[4] 키르기스스탄, 러시아 연방 칼미키야 공화국, 몽골 서부의 홉드(Ховд)와 웁스(Увс) 아이막에 거주하는 오이라트인들도 몽골족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몽골 인민 공화국의 독재자 윰자깅 체뎅발이 웁스 아이막에서 출생한 토르구트인이다.[5] 참고로 왜 'South Chinese'가 동남아시아인으로 분류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는데, 'South Chinese'에는 징족, 태족, 묘족 등 중국 최남부에 거주하는 여러 소수민족도 포함되고, 북중국과 남중국으로 나눈다고 중국 대륙을 딱 절반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유전학계에서 남방 한족이 있다고 보는 지역은 난링·우이 산맥 이남 지역으로, 중국 대륙 기준으로 매우 일부분이다. (혹은 중국과 인도차이나 반도 국경 근처의 소수민족 거주지까지 포함할 수도 있다.) 사실 이마저도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인원이 너무 많아서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의 역사적인 대도시는 전부 난링·우이 산맥 이북에 있다. 다만 난링·우이 산맥 이남에 거주하는 객가인은 북방 한족의 일파로서 전쟁 등으로 인해 중원에서 남쪽으로 피난 간 이들의 후손이다. 이들은 유전적으로 북방 한족에 가깝다고 한다.#[6] 다만 동호 자체는 흉노보다 동쪽에 살던 여러 종족들을 총칭한 명칭으로 몽골계, 튀르크계 등 다양한 북방종족들을 가르키는 말이었다. 동호인이라 해도 꼭 몽골계는 아니었던 셈이다.[7] 일본인(야마토 민족)은 한반도와 중국 남부에서 온 야요이인들의 피가 많이 섞였기 때문에 일본 열도 선주민이라 할 수 있는 조몬인의 직계 후손인 아이누인보다 한국인과 가깝고, 일본인과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클러스터에 속한다고 한다.[8] 러시아는 추운 이미지로 유명하지만 워낙 국토가 넓어 춥지 않은 지역도 얼마든지 존재하고, 러시아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모스크바는 아예 온대 기후에 가까울 정도이다. 반면 몽골은 국토가 충분히 넓은데도 전부 추운 땅인데다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러시아나 북유럽 국가들의 수도를 전부 제치고 가장 추운 수도로 알려져 있다.[9] 칭기즈 칸의 일대기를 그린 만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에서도 예수게이가 '은혜와 원수는 반드시 갚아라!' 라고 아들 테무친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10] 일부 개념 없는 사람들처럼 경제력만 믿고 거들먹거리다가 큰일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경제력 높은 국가에서 왔으니 함부로 설쳐도 현지인들이 위해를 가하지 못하리라는 위험한 착각을 하여 현지에서 행동을 함부로 하다 낭패를 겪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11] 그 예로 한국에서 외국인 범죄자들 중에서 몽골인들의 비율이 높다. 그 이유가 몽골에서 말보다 싸움으로 해결하는 문화 때문에 외국에 와서도 그걸 못 버려서 싸움질하거나 범죄를 저질러 체포당하는 일이 많기에 외국인들에게 괜한 편견과 선입견을 심어주는 것이었으며 몽골 정부도 이런 범죄자들 때문에 골치 아픈 상황이다.[12] 세계적인 수준으로 치안이 나쁜것은 아니고 미국, 러시아와 비슷한 평범한 수준이지만,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대만이 세계적인 수준의 치안을 자랑하고 있고, 중국도 세계적으로 보면 치안이 좋은 축에 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빠보이는것이기는 하다.[13] 고대 삼국시대의 한족들부터 근대 서양인들까지 한결같이 음주가무를 즐긴다고 평한 민족이 이런 평가를 내릴 정도면 그야말로 엄청난 수준인 것이다.[14] 초원에서는 승마를 해야만 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에 꾸준히 승마를 하고 체력을 키울 수 있었지만 성에서만 살게되니 승마할 공간도 없고 승마할 필요도 없으니 기초체력이 떨어졌을 것이다.[15] 이러한 인식은 북한도 비슷해서 30도짜리 소주를 주로 마시다보니 막걸리가 사장되고, 맥주를 패스트푸드점에서 팔 정도다.[16] 몽골에선 매달 1일에는 술을 사고 팔지 못하게 법으로 되어있다.[17] 2010년 통계 기준 2,474명[18] 보시라이를 몰락시킨 결정적인 인물. 항목 참조.[19] 지금 몽골도 인구가 매우 적어서 한국의 부산광역시 수준이다. 2010년대에 부산광역시의 인구 감소로 몽골의 인구가 부산광역시의 인구를 약간 추월하였다.[20] 고려에서 사신으로 등장한다.[21] 칭기즈 칸의 후예이자 몽골의 공주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