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정 (r6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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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장윤정 친족 재산탕진 논란


제20회 MBC 강변가요제 대상
안문식
나와 같은 눈물을 흘릴거야
(1998)

장윤정
내 안의 너
(1999)


시너지
그녀의 여름
(2000)

장윤정
張允瀞 | Jang Yun Jeong


출생
1980년 2월 16일 (44세)
충청북도 충주시[1]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신체
168cm, 48kg
동거남
안현빈(불륜남 ~ 현재)
종교
불교
학력
성호초등학교 (졸업)
매홀중학교 (졸업)
영신여자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전문대학 방송연예과 (전문학사)
소속사
아이오케이컴퍼니
데뷔
1999년 제20회 강변가요제 대상

1. 개요
2. 음반 활동
3. 데뷔 전
4. 가수 생활
4.1. 행사의 여왕
4.2. 1~4집
4.3. 노홍철과의 연애
4.4. 도경완과의 결혼
5. 장윤정 친족 재산탕진 논란
6. 기타
6.1. 논란


1. 개요[편집]


대한민국트로트 가수. 흔히 ‘트로트의 여왕’, ‘행사의 여왕’ 등으로 불린다.

‘트로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여가수로, 2000년대 트로트 가수로서는 드물게 수많은 히트곡을 배출하며 최고의 인기 트로트 가수로 명성을 날렸다.


2. 음반 활동[편집]


구분
앨범명
대표곡
1집
<어머나!>
<어머나>
2집
<짠짜라>
<짠짜라>
<사랑아>
싱글
<꽃>
<꽃>[2]
2.5집
<장윤정 Special Remake>
<콩깍지>
3집
<이따, 이따요>
<이따, 이따요>
<어부바>
<첫사랑>
4집
<장윤정 트위스트>
<장윤정 트위스트>
<애가타>
싱글
<애원>
<애원>[3]
5집
<올래>
<올래>
<초혼>
6집
<장윤정 10주년 앨범>
<왔구나 왔어>
싱글
<블란서 영화처럼>
<블란서 영화처럼>
7집
<女子>
<반창고>
<오! 마이 러브>[4]
싱글
<벚꽃길 2017>
<벚꽃길 2017>[5]
싱글
<당신편>
<당신편>
8집
<préparation>
<목포행 완행열차>
<사랑 참>[6]


3. 데뷔 전[편집]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이 가난해 가족들이 모두 뿔뿔히 흩어져서 살았으며[7] 대학교 시절에는 자취를 했는데 난방비가 없어서 겨울에 자다가 추위에 잠이 깰 때 마다 헤어 드라이어로 이불속을 데우고 강아지를 껴안고 다시 잠이 들 만큼 아주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토크쇼에서 밝히길 그 당시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학자금을 대출받으러 은행에 갔다가 부모가 진 부채 때문에 자신도 신용불량자인 사실을 알았고, 당시 은행직원이 모니터를 돌려서 신용 상황을 보여주면서 이 상태에서는 휴대전화도 개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지점 안에서 자기를 보는 사람들도 많아서 엄청나게 창피했다고 한다.[8][9] 다행히도 장윤정의 사정을 들은 대학교 친구들이 돈을 모아서 등록금을 마련해주었으며 평생 은혜를 갚아야할 친구들이라고 한다.

1999년 강변가요제에서 '내 안의 넌'으로 대상을 받았지만 가수로 데뷔하는 과정은 어려웠다. 첫 공식 방송 무대에서 너무 떨었다.[10] 기획사에 들어가서도 음반을 낼 돈이 없어서 단역 배우로 활동했다.[11] 실제로 '어머나' 로 뜨기 전까지인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 초반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12]나 '사랑과 전쟁' 등에서 재연배우 일로 전전했다. 이 시절 모습은 이후에도 종종 케이블에서 나온다. 본인도 이것 때문에 돈을 밝혔고, 그래서 쉽게 갈 수 없는 트로트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결국은 크게 성공했다. 다만 너무 상업성만 노렸다고 질타해서 이후 노래는 같은 트로트지만 스타일을 바꾸었다.

4. 가수 생활[편집]



4.1. 행사의 여왕[편집]


전국 각지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출연하려고, 1년에 10만㎞ 정도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모 토크쇼에서 MC몽을 능가하는 '하루 12회 행사' 경험을 이야기해 주변이 깜짝 놀랐다. 전성기 시절에는 행사비로만 하루에 1억을 번 적도 있다고 한다. [13]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장윤정 몸값을 추정하면, 사실상 1년에 행사로만 100억 원 정도를 번다고 추측할 정도다.[14]는에서 그래서 1년 기름값은 억대, 교통 법규를 어겨서 내야 하는 과태료가 일곱 자리라는 썰도 있다.

예전에 이동할 때는 차를 이용했지만, 나중에는 비행기로 이동한다고 했다. 비행기로 이동해서 남는 시간에 다른 행사를 더 참여하는 게 더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장윤정 본인은 '자신의 노래는 시골 장터에서 시작했으며, 자신의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현재까지도 전국을 돌아다닌다'는 신념을 밝히기도 했다. 사실 장윤정 급의 가수라면 폼나게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것이 몸도 편하고 수익도 더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장윤정 본인의 말에 따르면 전국에서 자기가 행사를 가보지 않은 곳은 날씨 문제 때문에 도저히 가기 어려운 울릉도독도 뿐이라고.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면서 행사 스케쥴을 많이 줄였었으나, 둘째를 출산한 뒤에 출연한 프로그램이 줄줄이 대박을 치면서, 2019년 하반기 현재는 10년전 전성기 스케쥴로 복귀(...)했다고 한다. 하루에 행사 2~3개는 기본이고 한달에 하루도 못 쉰다고.

4.2. 1~4집[편집]


2004년 '어머나' 로 데뷔했는데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15] 작은 소속사에서 데뷔한만큼 별다른 홍보도 없었으나, 노래가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고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신청받는 곡이 되며 알아서 홍보가 되었다. 트로트는 중장년층만 부른다는 편견을 깨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최초 사례. 서태지가 음악시장을 재편한 이후로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 이무송의 ‘사는게 뭔지’, 김수희의 '애모', '남행열차', -김혜연의 '참아주세요'-[16] 등 전세대를 아우르는 트로트 히트곡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 20대 초반 여가수가 본격 트로트로 데뷔하고 크게 성공한 것은 장윤정이 처음. 블루 오션 개척 사례로 경영학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웬만한 아이돌 가수보다도 크게 성공했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인 2008년도 JYP, YG, SM은 모두 적자였다.

이후 '어머나' 로 쌓은 인지도로 2집 '짠짜라'와 3집 '이따이따요', 4집 '장윤정 트위스트'를 냈는데, 어머나 못지 않게 히트를 치며 적자를 낸 음반이 없다. 음반을 판매한 수량은 둘째고, 보통은 특정 세대만 기억하는 다른 가수들과는 달리 거의 모든 세대가 자기 노래를 기억하는 건 엄청 드문 일이다. 간드러지는 음색 자체가 트로트랑 적합하고, 넉살 좋은 이미지는 중장년~노년, 심지어는 10대까지 아울렀다.


4.3. 노홍철과의 연애[편집]


2009년 12월 28일자 연예 플러스에서 노홍철이랑 자기 관계를 언급했는데, 아직은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라고 실토했다. 자기가 힘든 걸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직설적인 성격은 좋아하지만, 노홍철이 보여주는 괴이한 패션 센스는 안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레깅스를 입은 모습은 딱 질색이라고 표현했다. 그래도 연인 취향을 존중해서 구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2010년 3월 9일부터 노홍철과 결별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본인은 성격이 달라서 헤어지지 않았다고 했으나, 무한도전 뉴욕편에서 장윤정이 쓴 편지에서 '나는 의지할만한 강한 사람이 필요했는데 너는 너무 성격이 여리고 나한테 기대려 하는 연두부 같은 사람이라 힘겹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2012년 10월, 그녀는 노홍철과 헤어진 진짜 이유는 그때 본인을 둘러싼 스캔들 때문이라고 이실직고했다. 그 때문에 헤어진 이후 에피소드를 들어보면 노홍철보다 장윤정이 더 힘들었다. 결별 후에도 가끔씩 연락을 하며 지낸다고 한다.


4.4. 도경완과의 결혼[편집]


2013년 일본에서 발표한 2집 타이틀 곡인 '最期の川' 로 일본 유선방송 엔카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해당 곡은 한국에서 발매했던 '초혼'의 번안곡으로, 기존 장윤정표 트로트와는 조금 다른 애절한 곡이다.

2013년 4월, KBS 소속 도경완 아나운서와 2013년 9월에 결혼한다고 발표했다. 2013년 5월 8일 혼인신고를 해 법적인 부부가 되었으며, 예정보다 빠른 2013년 6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를 밝히면서 어머니와 남동생이 장윤정이 10년 간 벌어온 돈을 탕진했으며 오히려 빚만 남아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장윤정은 현재 어머니, 동생과 의절한 상태이며 유일하게 연락하고 교류하는 이는 아버지 뿐이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오히려 남편인 도경완의 부모님들, 즉 장윤정의 시부모님들이 친부모보다 더 가족같이 든든하게 챙겨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도경완은 처음엔 돈 잘 버는 아내와 결혼한 '로또 당첨자' 따위의 평가를 받다가 재산 탕진 논란이 터진 뒤엔 성인군자 취급을 받고 있다.[17]

2014년 6월 13일 도경완 아나운서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출산했는데 6월 22일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스페셜 방송으로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까지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물론 장윤정 친정 쪽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보여주지 않고 도경완 친가만 보여준다고 했다. 도경완의 부모님이 이로써 최초로 방송에 공개되는 셈. 8월 10일 방송을 끝으로 하차했다.
하지만,5년 뒤인 2019년 11월,도경완의 인스타를 통해 (9당시 꼼꼼이었던)아들 연우와 2018년 집사부일체에서 2분 남짓으로 출연한 둘째 딸 하영이와 함꼐 슈퍼맨이 돌아왔다 재합류를 했다.
2021년 4월 도경완의 KBS아나운서 사직으로,남편인 도경완,아이들과 함께 (노래가 좋아)를 제외한 KBS의 전체 출연작에서 하차했다.[18] [19]

2015년 발표한 7집 앨범의 타이틀곡 '반창고'가 다시 대박을 내면서 성공적인 복귀를 마쳤다. 타이틀곡 선정 능력으로는 따라갈 사람이 없는 듯.

2017년 3월에 7집 앨범의 수록곡인 '벚꽃길'을 재편곡하여 벚꽃길 2017를 발표했다. 또한 7년만에 음악 방송도 출연하였다.

2018년 11월 9일 딸을 출산하였다.

5. 장윤정 친족 재산탕진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장윤정 친족 재산탕진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기타[편집]


  • 대학교 시절 강아지를 키웠는데, 겨울철에 온수가 나오지 않아서 매일 밤 근처 학교 운동장에 가서 강아지와 함께 땀이 뻘뻘 날 정도로 뛰고 나서 찬 물로 같이 씻었다고 한다. 본인은 사람이니 버틸 수 있었지만 키우는 강아지한테 잘 해 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했다고 한다.

  • 지금의 장윤정을 만든 대표곡인 '어머나'는 사실 다른 가수들에게 여러번 거절을 받고 신인인 장윤정에게 온 곡이라고 한다.[20] 장윤정도 처음에는 멜로디가 다소 가벼운 느낌이라 그저 그랬으며 특히 가사가 맘에 안들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이러지 말라'로 시작해놓고 후렴에서는 '좋아해요', '사랑해요'로 급 진행을 하더니 마지막에는 아예 '다 줄게요'로 끝나서 사람이 헤픈 느낌도 나고 너무 이상해서 못 할 것 같았다고[21].

  • 장윤주와 목소리가 상당히 비슷하다.[22] 백지영처럼 웃음소리가 엄청 크다.

  • 이휘재도전 1000곡 MC를 맡았다. 진행력은 역대 여자 MC들 중에서 가장 우수하지만,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것보다는 무대에서 진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까부는 스타일에 약간 호불호가 갈리긴 한다. 프로그램 성격과 잘 어울리고, 그런 진행 스타일을 선호하는 해외 동포를 비롯한, 장년층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이다보니 좋아하는 쪽이 더 많았다. 이따금씩 왕중왕전에서 있는 패자부활전에서 노신(노래의 신)으로 나와 게스트들과 대결했는데, 짬밥 자체가 허풍이 아닌 걸 여실히 증명했다.

  • 2011년 9월 12일 나는 가수다스핀오프격 추석 특집 프로그램인 나는 트로트가수다에서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 를 불렀는데 원곡을 재현하려고 한 것은 좋았지만, 호불호가 갈렸으며 일부 시청자들의 혹평을 받았다. 원곡은 락발라드인데 트로트식 바이브레이션이 나와 본인도 연습과정에서 계속 이걸 자제하려고 했지만 트로트 창법이 몸에 베였다고 볼 수 있다.

  • 데뷔 초와 2012년을 비교하면 창법이 변화했다. 데뷔 초에 불렀던 '어머나' 하고 '짠짜라' 의 경우에는 발음이 굉장히 또박또박한 편이었고 포인트에서 잠깐씩 쥐어 짜는 듯한 창법이었다. 이후에는 콧소리가 많이 들어가고 바이브레이션을 많이 넣으면서 발음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듯이 발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23]
좀 더 말하자면 확실히 부를 때 좀 더 간드러지게 변했다. 본인 스스로가 일부러 창법을 바꾸었는지, 아니면 가요계에 몸 담은 지가 꽤 되어 자신의 노래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게 되어서 기교 형식으로 그렇게 된 건지는 미지수. 이러한 창법의 변화에 대해서는 주 고객층인 중장년, 어르신들 사이에서 약간 호불호가 갈린다.
그녀가 이미 라이브를 엄청나게 많이 하는 가수인 데다가 데뷔 10년이 넘었으니, 아무리 성대가 튼튼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 나갈 것이다. 이 창법은 목에 상대적으로 무리가 덜 가는 창법이라 바꾼 듯 하다.

  • # 자신의 팬클럽 회원들의 결혼식에 참석해 천만원이라는 통큰 축의금을 쏴 화제가 되었다. 이에 네티즌들은 장윤정 팬클럽에 가입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 태교를 로이킴의 노래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판타스틱 듀오 시즌2의 스타판듀에 무려 박완규가 장윤정의 팬 자격으로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로이킴을 최종 선택했다.

  • 해외에서 장윤정과 가장 많이 비교당하는 가수는 바로 독일의 국민 여가수 헬레네 피셔.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들은 자국에서 최정상급의 솔로 여가수며 나이대도 얼추 비슷하고 노래 스타일, 창법도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헬레네 피셔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녀가 수시로 거론되곤 한다. 미국음악 갤러리 등지에서 농담식으로 미국의 트로트라 할 수 있는 컨트리송으로 인기를 얻은 테일러 스위프트와 비교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테일러가 컨트리 음악에서 팝으로 장르를 바꾼 이후에는 지나간 일이 되었다. 사실 커리어나 노선을 고려하면 진짜 미국의 장윤정은 캐리 언더우드다. 이쪽은 아직도 컨트리 음악을 고수하며 활동중이고 컨트리 장르 팬들에게 좋은 비평적 평가를 받고있다.

  • 도경완 아나운서에 따르면 아내와 자신의 수입은 경포대 모래사장과 그 위에 놓인 모래 포대 두 자루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 그래서 도경완은 방송 등지에서 이런 아내의 재력에 관한 농담을 자주 하는 편이다. 이에 장윤정은 이런 남편의 농담에 '내가 번 게 많을 뿐 남편 걸 뺏은 게 아니다'(힐링캠프 200회)라는 농담으로 맞받아쳤다.

  • 2015년 이후로 공연 등에서 '사랑아'라는 곡이 굉장히 많이 리퀘스트된다. 무려 2집에 실린 곡이라 십년도 넘은 노래인데 장윤정 본인도 의아해하면서도 행사 레파토리에 꼭 넣게 되었다. 트로트는 아니고 2000년대 초반풍 나이트댄스에 가까운 노래인데 알고 보니 뒤늦게 콜라텍 등지에서 히트했다고.[24][25]


6.1. 논란[편집]


  • 그녀가 출연한 솔로몬저축은행 광고가 마치 대부업체 광고처럼 나와서 천천히 안티가 생겼다. 그래서 양자 모두가 굉장히 곤란했다. 문제는 이게 제2금융권 신용대출 광고다. 저축은행 신용대출 이자는 대부업체 이자와 비슷하다.[26] 하지만 이후에 드러난 "가정불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CF를 찍었다"라고 이야기를 해서 재평가를 받았다.

  • 2010년 6월 30일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다. 나름대로 억울해서 나갔지만, 그 방송에 나가자마자 시청자 게시판과 각종 키보드워리어들이 장윤정을 공격했다. 당시 자신을 둘러싼 임신설 루머를 해명하려고 언급했는데, 정작 시청자들은 이를 잘 몰랐다.[27] 오히려 장윤정 자신이 '나 임신 루머 돌았어요'하고 되려 언급한 격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네이버 실시간 검색에 장윤정 임신이 튀어나왔다. 결국, 해명하려고 방송에 나갔다가 일만 커졌다.

  • 세바퀴에 출연했을 때, '결혼하면 자기 돈은 안 쓰고 필요한 걸 구하는데 남편 돈만 쓰겠다'고 말해서 까였다. 사실 본인이 여러 번 방송에서 자기 돈만 보고 접근하는 남자들이나, 결혼 적령기인 아들 가진 여자에게 시달렸다고 말해서 나온 농담이다. 예를 들어 의사라는 남자와 소개팅을 했는데 상대 부모가 '우리는 연예인 며느리 탐탁지 않지만 그쪽이 병원 지어준다면 생각해 보겠다'는 식으로 나왔다고 한다.


[1] 유년기는 충주시가 아닌 오산시 일대에서 보냈다. 이유는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살았기 때문인데, 장윤정은 아버지와 함께 경기도 오산시에 살면서 영신여고까지 졸업하였고, 동생은 어머니와 함께 충주시에 계속 살면서 충주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2] 2집에 실린 <꽃>을 재편곡했으며, 음악 방송에서는 이 곡으로 무대를 했다.[3] MBC 드라마 ‘사랑해, 울지마’의 OST. 장윤정의 첫 정통 발라드곡이다.[4] 장윤정의 앨범 중 첫 더블 타이틀곡이다.[5] 7집에 실린 곡을 재편곡했다.[6] TV CHOSUN 음악 경연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에서 홍자가 이 곡을 부르며 크게 화제가 되었다. 앨범 수록곡 중 타이틀곡 못지않게 인기가 높은 곡.[7]힐링캠프’에서 말하길, <어머나>로 뜬 이후부터 번 돈을 쓸 여유도 없는 살인적인 행사 스케줄을 돌고 너덜너덜해져 집에 돌아와도 가족 모두가 한 집에 모여서 자신을 맞아주는 것을 보면 '그래, 내가 이걸 위해서 일을 하는 거지.'라고 보람을 느껴왔다고 한다.[8] 부모가 빚을 져도 금융연좌제가 없으면 생존자인 부모가 자녀에게 채무를 상속하지 않는다. 장윤정 본인이 부모에 의해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는 경우라면 부모가 장윤정 이름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거나, 연대보증인을 세운 정도. 그런데 자신 명의로 채무나 연대보증이 걸렸음을 알았다면 추가로 빚을 지는 학자금 대출을 받으러 갈 리가 없다. 장윤정과 친모가 다툰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부분이다.[9] 2010년대를 기준으로 그렇게 쉽게 어머니가 딸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고 평가하는 이도 많으나, 2000년대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자녀 명의로 대출을 받거나 자녀를 몰래 연대보증인으로 지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장윤정의 대학 시절은 90년대 말부터였고, 금융실명제만 해도 고작 93년에 시행됐다. 물론 합법적 금융권이 아닌 사채 등의 비합법적인 루트를 고려한다면 현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10] 제주도에서 열린 행사에서 댄스곡을 불렀는데 의외로 잘 부르고, 안무 실력도 수준급이다. 댄스 가수로 활동할 기회도 있지만 본인은 트로트가 제일 편하다고 실토했다. 사실 비음 때문에, 다른 장르와는 잘 안 맞는다고 말한 음반 제작가도 있다.[11] 장윤정이 소속됐던 인우기획 전신은 무명시절이었던 장윤정과 같이 일했던 이벤트 회사다. 장윤정이 성공할 가능성을 보고 대표가 연예기획사로 전업했고 크게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인우기획은 잘못된 경영으로 장윤정, 박현빈, 윙크라는 말도 안되는 라인업을 가지고도 (저 셋은 젊은 나이에도 트로트계에서도 높은 몸값과 인지도로 수많은 행사를 소화하는 탑급이다.) 폐업하고 말았다.[12] 어머나로 뜬 이후에도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다.[13] 물론 장윤정이 모두 1억을 가져간건 아니고, 여러 비용을 떼면 실제로 돌아오는 돈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다.[14] 100억대 수익설을 뒷받침하는 이유로 대표되는 유명한 일화로,201@년에 실시한 KBS국정감사에서 "도경완아나운서가 현직 KBS 아나운서 중 가계수익 1위했다"는 국회의원발 카더라가 있을 정도이다.[15]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트로트가 1위를 한 것은 김수희의 '애모'가 93년 상을 받은 이후 11년 만의 일이었다.[16] 94년에 발표된 곡이긴 하나 유명해진 것은 1박2일 기상송으로 등장한 2007년이다.[17] 방송게문화를 잘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당시 입사 5년차인 도경완 아나운서의 입장에서 "예비시가발 금전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만큼의 커리어상 흠결은 향후 인사적으로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파혼까지 고민하는 것"은 무리도 아니다. 그리고 2013년 당시기준으로는 장윤정의 위상은 일개 비교적 유명한여성 트로트가수 정도이었다는 점,도 전 아나운서가 당시 30대 초반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때 장윤정과의 결혼은 진심 자신의 아나운서생활을 담보한 결정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18] KBS아나운서실 내규상,한 아나운서가 사직을 하면 최소 3년간 자사의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중단하는 관례문화가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후배 아나운서들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문화인듯 하다.[19] 물론,현행 방송제작관레상,KBS에서 (노래가 좋아)의 후임 여성진행자까지 캐스팅에 성공한다면,장윤정의 출연료가 비싸졌다는 핑게로 언제든지 하차시킬 수 있다.[20] 원래는 계은숙을 위해 만든 노래였는데 거절되고, 이후 송대관, 주현미 등을 거쳐 장윤정에게까지 왔다는 모양.작곡가 인터뷰. 이때문에 곡이 히트한 후에 '나한테도 제의가 왔던 곡이다'라고 밝힌 가수들이 많았다.[21] 작곡가 윤명선에 따르면 주현미가 곡이 마음에 드는데 아쉽다며 제목을 바꾸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이 곡의 위트와 경박함이라는 포인트를 잃기 싫어서 거절했다고.[22] 같은 장씨에 이름이 윤이 들어간다는 점, 노홍철과 썸씽이 있었다는 점, 남편은 경상도 출신이라는 점, 한 분야의 넘사벽 스타라는 점 등등 공통점이 많다.[23] 장윤정이 등장한 가요 무대나 트로트 이벤트와 장윤정 데뷔 초 뮤직비디오 혹은 행사 동영상을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24] 콜라텍항목에서 설명되고있지만, 초기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등장한 콜라텍은 오늘날에와서는 대부분의 청소년층이 클럽으로 빠져나감에따라 중장년층부터 노년층을 주고객으로 하는 장소로 변화했다. 이제와서는 콜라텍하년 춤추는걸 즐기는 중장년층이 노는 장소라고봐도 무방하다.[25] 여담으로 KIA 타이거즈시절 안치홍의 응원가이다.[26] 솔로몬저축은행은 대부업체가 아닌 제2금융권이지만, 지나치게 대출을 강조하고 광고까지 촌스러워서 영락없이 대부업체로 찍혔다. CF가 이들 이미지만 더럽혔다. 또한 연락처(주로 휴대폰 번호)가 새어나갔을 때 저축은행에서 전화하는 빈도가 대출 업체랑 맞먹었다. 간판에 건 은행만 보고 대출하면 큰일난다.[27] 물론 장윤정의 주요 수요층인 중노년층에게는 어느정도 퍼져있던 루머다. 그렇지 않았다면 해명하겠다고 방송에서 언급할 필요도 없을테니. 문제는 이 루머 자체의 인지도가 극히 일부 계층에만 높았지 그 외 대중에게는 매우 낮았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