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逐鹿中原)은 시작되었다!/관련 정보

덤프버전 :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逐鹿中原)은 시작되었다!


1. 개요
2. 등장 세력
2.1. 조선
2.2. 초원
2.3. 중원
2.4. 강남
2.5. 기타
3. 등장 인물
3.1. 조선
3.2. 초원
3.2.1. 강족
3.2.2. 격곤
3.2.3. 누번
3.2.4. 돌궐
3.2.6. 선비
3.2.7. 예맥
3.2.8. 월지
3.2.9. 회흘
3.3. 중원
3.4. 강남
3.4.3. 촉
3.4.4. 파
3.4.5. 민월
3.4.6. 절
3.5. 기타
4. 연표
5. 주요 사건
6. 주요 밈
7. 1000 정리


1. 개요[편집]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逐鹿中原)은 시작되었다! 관련 정보들을 정리해놓은 페이지.

2. 등장 세력[편집]


크게 초원 세력과 열국(列國)으로 구분되며, 열국(列國) 내에서도 중원과 강남은 차이가 있는 편이다.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중 현재 멸망한 국가/세력에는 뒤에 ◆ 가 붙는다.

2.1. 조선[편집]


플레이어 국가. 항목 참조

2.2. 초원[편집]


  • 정령→회흘
북방 민족들 중에서도 북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후 월지와 동호의 충돌 속에서 재편되어 회흘이라는 이름을 자칭한다. 동호 내란 때 아세라드 칸을 지원하여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으나, 초원의 정세 견제를 위해 조선에게 선택되어 이익을 얻게 된다. 중원 예법을 몰라 극도의 저자세를 보였던 것이 기설의 마음에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근래 들어 동호 내부에서의 우유부단함에 대한 불만으로 이반한 세력을 꽤 흡수하였다.

  • 강족
하서회랑 일대에 살고 있으며 일시적으로 월지의 영역을 점유하거나 진나라를 공격하는 등 세를 과시하는 편이나 장기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하는 편이다.

  • 격곤
정령과 함께 초원에서 북쪽에 자리한 민족. 세력이 작은 편이라 독자적인 활동보다는 초원의 강대국과 연계하여 주로 활동한다.

  • 누번◆
춘추전국시대 존재했다던 소수민족. 흉노 휘하에 복속해 있다. 증산국과 손을 잡고 조선을 끌어들여 연나라를 공격, 멸망시키는 데 일조하였으며 이후에도 증산국의 용병으로 있다가 증산국 멸망시에 이탈. 흉노보다 조선과 거주지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좀 더 자주 교류하고 있으며 조선의 용병이 되기도 하고 조선을 습격하기도 한다. 조나라의 마지막 도박이었던 사주를 받고 조선을 약탈하려 했지만, 관시 등으로 인해서 인근 주민들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사실상 주저하였고, 이내 붙잡혀 그 배후를 간접적으로 불게 되어 조나라의 멸망을 부르게 되었다. 이후에도 이래저래 나쁘지 않은 사이로 지내고 있었으나, 하필 다른 초원 소세력들의 동호에 대한 불만의 크기를 잘못 예측하는 바람에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총대를 매어 질량충돌로 인한 공중분해를 스스로 초래했다.

  • 돌궐
월지의 아사나 일족이 군공을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한 뒤, 서월지를 몰아내고 세운 연맹. 서월지에서도 손꼽히는 강맹한 군사력과 안정된 초원길 상행으로 준수한 경제력을 보유한 사실상 서초원의 패자다.[1]
현재 중요 요충지인 돈황에다 조선에 불러온 묵가 기술자들을 통하여 성을 쌓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 동호
선비족, 오환족의 조상격이 되는 종족. 스레 시작시에는 이미 흉노, 누번, 조선의 협공에 세력을 거의 다 잃고 오환산 근방에 머물던 상태. 이후 조선에 협력하면서 좀 더 북쪽으로 이동. 이후 조선의 협력으로 농업을 배우기도 하는 등 세력을 키운 후 흉노를 공격, 일대 세력을 확보한다. 관시를 비롯해서 조선과의 협력으로 얻은 게 많았던 탓에, 친동호파 예맥이 조선과 충돌한 것에 대해서 자업자득이므로 방관하는 등 조선과의 관계가 양호하다. 최근 어떻게든 월지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의거 지역까지 건드릴 수 있는 루트를 확보했는데, 여기서 다시 진나라에 반기를 드는 의거를 만나기도 하였다. 사실 가능성만 보자면 초원을 일통할 능력이 꽤나 되었지만 여러 이유로 무산되고 자체 세력이 계속해서 토막나는 등 역사가 홍역 그 자체이다. 결국 초원의 강대한 세력이던 아세라드 칸이 반농반목 세력에 대한 지속적인 견제로 반농반목파의 인심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부모자식을 죽이는 패륜까지 저지른 끝에 내란으로 쫓겨나면서 동호의 상당수 영역을 조선, 흉노, 선비, 회흘에게 빼앗기고 만다.
  • 선비
동호가 초원 전체를 아우르고자 하면서 반농반목 중인 지역을 무시할 때 따로 칸을 옹립하며 떨어져나왔다. 모용부, 탁발부, 단부의 3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초기에는 모용부가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고 조선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탁발부가 그 뒤를 잇는 형국이었다.. 조선과 독자적인 관시를 만들어 교역하고 있다. 동호의 내란 때 모용부가 크게 파괴되었으나 조선, 흉노와 함께 동호의 칸을 몰아내는데 성공하면서 영역을 확장했다. 이 사건으로 모용부가 크게 쇠퇴하고 탁발부와 단부가 크게 성장한다. 이후 탁발부는 기미부주 개편의 여파로 선비를 일통할 생각에 눈뜬다.

  • 예맥
조선에 속하지 않은 예맥계 세력. 친조선계와 반조선계 예맥으로 크게 구분된다.
반조선계 예맥 부족들이 뭉처서 국내성 일대에 부여를 만들기도 했지만 조선의 공격으로 이는 파괴되었으며, 이 당시 지나친 기황의 초토화 작전으로 부여 유민들이 조선에 큰 원한을 갖게 된다. 이후 조선의 간접 지배권에 속하게 되었고, 이 일대가 기미부주로 재편된다. 자주 만나던 안월에게 좋은 인상을 받아 그녀의 죽음 이후 예맥 출신들이 조문을 왔다.
기토 때 순행을 하고 요서도로로 조선이 연결되면서 만주 쪽 친조선계 예맥은 기미부주화가 되어서 확실히 조선중앙의 통제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만주 일대는 정식 군현으로까지 성장하게 된다. 다만 연해주쪽에서 퉁구스계와 섞인 부여 출신 반조선계 예맥 부족들은 여전히 독립적이고, 선비와 투닥이고 있는 중. 남하하여 한반도 쪽으로 내려간 부여 출신 반조선계 예맥 부족은 십제와 함께 연합하여 조선을 견제했으나 십제에서도 강성인 부여 유민들을 꺼려 더 남쪽으로 밀려났다. 이런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부여계 유민들은 조선과 영원히 적대할 것을 다짐한다.
  • 월지◆
초원의 대세력으로 어장 초기에는 흉노, 중후기에는 동호와 초원을 두고 다투었다. 워낙 넓은 영역을 영유하고 있어 동월지, 서월지는 따로 노는 경향이 있으며, 주로 잘 나가는 쪽은 서월지. 조선과 진이 시도한 대대적인 공략으로 한번 세가 꺾인 일이 있었다. 이후 아사나 씨족의 돌궐에게 밀리면서 세가 급속히 약해졌다.

  • 흉노
아직 묵돌의 등장 이전이라 초원지대를 완전히 통일하기 전인 세력. 스레 시작시에 다이스 판정으로 라이벌 부족인 동호를 밀어내고 누번을 휘하에 복속시켜 초원의 패자가 되었으나 과확장으로 인한 안정화에 시간이 걸렸고, 이후 오르도스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월지와 충돌.
시작시부터 조선과 친교를 맺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위나라 및 오기를 조선 대신 견제하는 댓가로 조선이 연나라령을 얻으면서 취득하게 된 각종 패물 등을 받게 되었지만 성과가 지지부진할 때 잘 되가고 있다고 거짓으로 알려준 것이 걸린 덕에 못먹어도 약탈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덕분에 약탈및 게릴라전에 대한 노하우를 쌓은 듯 하지만 오기를 넘어서진 못한 모습을 보인다.
누번이 조선령을 약탈하려는 의도를 보이자 관시[2]를 2배로 받는 조건으로 이들을 해결해주었다. 이후 동호와의 혈투 과정에서 사방의 경쟁 유목민족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던 탓에 세가 약간 꺾였으며, 이 여파로 좌대당호 아무로가 6천의 전사와 함께 조선에 귀부하면서 동호에게 길을 빌리는 댓가로 알고 있는 군사정보를 죄다 제공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출혈을 막고자 동호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후 동호에게는 못 미치는 세력으로 남았지만 동호의 내분 때 조선과 함께 동호를 공격하여 상당한 이득을 얻었다.
하지만 조선이 점차 커져가는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2차중원대전때 위에게 비밀정보를 누설하거나 이웃한 의거를 공격하여 점령하려 하였지만, 모두 실패하고 선우의 권위는 땅끝에 떨어져 현재는 조선과 돌궐 양강의 보호국 신세로 전락하였다.


2.3. 중원[편집]


  • 노(魯) ◆
초반에는 다이스가 좋게 나와 오기의 변법 영향을 받고 노 목공이 중흥군주로 서서 제의 위치를 위협하던 산둥반도 남방의 강국이었다. 송나라, 월나라와 손을 잡고 제를 공략하고자 했던 국가. 그러나 BC. 389년 제를 향한 대공세에 실패하고, 이후 조선을 끌어들여 세를 다잡으려 했으나 귀족 세력이 실권을 장악한 월나라와 사이가 틀어진 상태에서 월이 제와 손을 잡고 조선까지 끌어들여 기습 공격, 여기에 예비 병력은 송나라를 공격한 한나라를 막겠다고 보내버렸다. 조선이 노나라와 연결고리가 있던 송나라, 위나라와의 관계를 걱정했기 때문에, 제나라가 한나라를 충동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여기에 당대 최강국이자 노나라와 우호관계에 있던 위나라는 동진을 시작한 진나라의 공격 막는데 정신이 팔렸다. 결국 귀족들과는 사이가 나빠졌어도 동맹이라 믿고 있던[3] 월의 배신에 수도까지 한번에 점령당했다. 여기에 노목공 희현은 수도방위 중 전사, 후계자인 노공공 희분은 제-조선-월 연합군이 바다를 통해서 기습하는 과정에서 포로. 결국 BC.382년 멸망. 실력도 있었고, 동맹에 대한 의리도 있었고, 목적도 분명했으나 만인의 만인에 대한 배신이 오가는 전국시대에는 맞지 않았다.

  • 삼진(三晋)
    • 위(魏)
수도는 안읍 → 대량. 스레 시작시에 패권국이었으나 50스레 상황에선 여기서 내려온 상태. 1대째인 위문후 위사의 시기에 서하를 장악해 진을 압박하고 중산국을 처서 없애는 등 원 역사와 유사한 행보를 보이며 강대국이자 패권국으로 군림하였고 오기가 다이스에 의해 이탈하지 않거나 공숙좌가 원 역사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되는 등 여러모로 다이스의 혜택을 받았으나 2대째인 위무후 위격 때에 제를 견제하려던 몇 차례의 시도가 실패하는 등 패권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3대째인 위앵으로의 세대교체 과정에서 일어날 뻔한 내전(탁택전투)은 당시 동맹이었던 조선의 개입으로 회피하였지만, 상방 공숙좌가 13만을 이끌고 진나라의 수도 악양에 대대적인 공격을 퍼부었으나 태자 영거량에 의해 크게 참패하는 것을 시작으로 동맹이던 조선, 한이 제와 손을 잡고 동맹을 배신하여[4] 공격을 가해 영토의 상당수를 잃으며 몰락.[5] 이후 손빈을 기용한 진의 공격에 서하지역을 대거 상실하고 대량으로 천도하는 등 상황이 상당히 좋지 않다.
허나 위사의 내전을 조선을 비롯한 국가들의 개입으로 또 다시 어떻게든 넘기고 제나라의 패권이 완벽하게 와해된 산둥대전을 기점으로 나름의 중흥기를 맞으면서 소진이 기용되어, 조선을 상대로 중원의 국제질서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 오려는 첨예한 대립을 벌이는 등 어느 정도 옛 영광에 걸맞는 활동을 보여가다가, 2차 중원대전의 결과로 나라가 또 반토막나면서 한과 송처럼 중원의 한가운데로 몰려버렸다.
  • 조(趙)◆
삼진의 일각이자 원 역사대로라면 전국시대 중후기의 주역이 되었어야 하는 나라. 그러나 여기서는 사촌지간인 조열후의 자손인 조장과 역사에서는 조무후의 자손인 조조 사이에 내전이 왕위쟁탈전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역사와 달리 조조가 왕위에 올랐으나, 조조가 결국 내전을 일으켰다. 조조는 내부의 정통성을 기반으로 하면서 제나라의 지원을 받았고, 조장은 위무후가 친정을 할 정도로 지원을 해줬다. 이 내전은 실질적으로 제와 위의 대리전에 가까웠다. 결국 승자는 위무후의 지원을 받은 조장이었는데, 문제는 381년 동맹을 먼저 배신하고 위를 공격했다. 노나라 멸망 전쟁 당시 위나라 군대가 서쪽으로는 진나라와 전쟁한다고 빠져나가고 동쪽으로는 뒤에 노나라 응원하러 간다고 빠진 뒷통수를 후려쳐서 성을 점령했다. 이 때 제나라에 반위동맹을 제안했으나, 거부당하면서 기껏해야 북쪽의 조선을 제외하면 외교적 고립에 빠졌다. 이후 위나라가 바로 그 조선을 끌어들여 협공을 펼치면서 태행산맥 동쪽 영토를 전부 상실하고 위의 속국으로 전락. 이 과정에서 초기 브레인이었던 공중련까지 전사. 이후 370년 진의 서하 공격시도에 협조해 재기를 노렸으나 이를 눈치챈 조선의 공격에 수도인 진양까지 따이면서 멸망.
노나라가 지나치게 의리를 강조하다가 멸망했다면, 이쪽은 진짜 숨 돌릴 틈도 없을 정도의 박쥐노릇을 하다가 모두에게 버림받고 멸망 당한 케이스이다.
  • 한(韓)
삼진의 일각. 부족한 국력과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동맹의 교체가 잦고 전쟁 또한 잦다. 원 역사에선 고향과도 같은 땅이라 진에게 빼앗길 때까지 유지하고 있었던 상당 지역을 위에게 빼앗기는 등 여러가지로 고생이 잦은 편. 다만 그만큼 성과도 있어 꾸준히 성장하여 나름 국력이 불어나기도 하였다.
신불해가 등용된 이후 내부적으로 귀족들을 길들여놓는 등 준수한 발전을 보이고 있었지만, 제나라의 패자 체제의 관성이 결말을 맞았던 산둥 대전 이후 또 다시 나라가 찌그러지는 수준의 외압을 받고 있다.


  • 송(宋)
원 역사에선 송양공 이후에는 송강왕이 즉위하기 전까진 크게 활동을 못하던 나라이나 이 스레에선 초나라가 일시적으로 공중분해되면서 영역을 상당히 확대하는 데 성공. 그러나 동맹관계였던 노나라가 제에 의해 멸망하고 월나라가 돌아서면서 사실상 제의 영향력 하에 들었고, 이후 위나라와 손을 잡으려다가 제의 급습에 속국상태로 전락. 이후 내전 끝에 척성군이 즉위하였다.
조선이 중원에 인정받게 된 것은 송나라의 지원이 컸다. 다이스에서 두차례의 크리가 터지면서[6] 조선이 기자의 후손이자 은의 후예라고 믿어버린 송나라가 은의 후예가 자신들만 남은 게 아니었다고 감동하면서 조선이 기자의 후손이라며 다른 중원 국가들에게도 보증을 서 줬기 때문. 특이사항으로 묵가의 총본산이 송나라에 위치해 있으며, 그 덕인지 방어전에서는 의외로 상당한 전과를 자랑하였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좋든 나쁘든 조선과는 옅어질지언정 지워지지는 않는 연결점이 있으며, 이는 한단 회담에서 제나라가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잘 활용되기도 하였다. 다만 송왕 연홍옥의 재위 기간에 조선과의 단절을 선언하면서 사실상 남남에 가까운 관계로 돌아섰다. 합횡 때도 초나라의 기지가 설치되는 등 수난을 겪는 중. 송나라가 원역사에서 강왕 대에 멸망한 관계로 강왕 시대가 지난 작중 시점에는 인재난이 심각한 수준이다.

  • 연(燕)◆
원 역사에서는 연소왕 시기에 악의를 기용하며 강대국 제를 일시적으로 점령하기까지 하는 전국칠웅의 일각이나, 이 스레에서는 조선을 산융의 일파[7]로 여기는 것도 모자라 국제적인 모욕도 준 것이 빌미가 되어 중산국과 누번이 연에 대항해 조선을 끌어들여 협공, 조선이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하고 연간공이 전사, 후계도 남기지 못하면서 멸망. 다른 무엇보다도 일방적인 업신여김이 단초가 되는 결말을 맞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 위(衛)◆
초소국으로 처음에는 다이스를 굴릴 기회조차 없는 국가였다가 플레이 국가로 승격했으나 덩치가 너무 작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8] 제위왕에 의해 국가 존폐의 위기에 빠지자 스스로 국가의 격을 군작으로 낮추면서 빌빌 기는 것으로 살아남았지만 그 대가로 정규 턴에서조차 0~88 다이스에서 0을 띄운다는 극악의 확률(1/89)로만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국가가 되었고, 그 결과 군작 강등 이후 멸망까지 한 번도 다이스에 의한 플레이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 산동대전을 전후하여 제나라를 압박하는 데 공을 세워 플레이 국가로 다시 승격할 뻔 했으나 실패하여[9] 다시 극악 확률로 돌아왔다. 이후 하남대전에서는 망묘의 꼬드김에 넘어가 조선을 배신해 보급로가 끊긴 조선군을 혼란에 빠트려 합횡군이 승리하는 데 일조를 하지만 망묘가 통수를 치면서 멸망하고 위(魏)에 흡수되었다.

  • 정(鄭)◆
송나라의 지원을 받기도 하면서 몇번씩이나 한나라와 치고받았으나 387년에 한에 의해 멸망. 군주인 정 수공이 살아남는데는 이골이 난 수준의 인물이라는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 제(齊)
작중 진행상 패권국...이였다가 조선이 주도한 합종군을 맞아 나라의 반을 빼았겼다. 수도는 임치→즉묵. 군주는 6대째인 제왕 전지. 제태공 전화가 강제의 마지막 군주인 제강공에게서 군주의 자리를 원 역사보다 일찍 빼앗으면서 시작하였다. 시작시에는 원 역사보다 강성한 태산 남쪽 노나라와 그 동맹들에게 산둥반도의 패권을 노림받던 위기 상황이었으나 중반에 노나라를 멸망시키고 산둥반도를 완전히 장악하면서 강대국으로 성장. 이후 당대 패권을 쥐고 있던 위나라를 한, 조선과 함께 협공으로 들이처 반신불수로 만들면서 제나라의 패권을 확립하였다.[10] 이후 전인제가 주나라에게서 방백으로 제수되고 회맹을 열어 패자로 공인되었다.그러나 88어장 기준으로 초나라와 진나라의 책략으로 전인제가 주나라와 결별을 선고하고 칭왕을 결의하면서 패자 체제는 종언을 맞이했다. 이후 중원최강국이라는 힘과 패자 시절 쌓아놓은 유산으로 계속 최강대국 자리를 유지했으나, 초나라의 확장 저지 실패와 조선의 배신으로 몰락, 150어장 기준으로는 사수와 양관, 교수를 국경선으로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11]
상당히 다이스 빨이 괜찮은 국가. 시작시에는 노나라가 원 역사보다 강성한 상태에서 적대시받고 있었기에 위기상황이었으나 몇번씩 공격받을 때마다 좋은 다이스가 나오면서 그것을 잘 막아내고, 내정에서도 좋은 다이스를 슥슥 받아먹었으며 거기다 시대적으로 전제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는 제위왕~제선왕 시대가 다가왔기 때문에 이웃국가의 약속된 황금기의 도래를 싫어하는 스레민들도 있었다.
여러모로 조선과 연이 깊은 나라이기도 한데, 초창기 요동반도에 박혀있던 조선에 중원의 문물과 유학, 그리고 손자병법을 전파한 사람이 바로 제태공 전화였고, 낭야를 중개점으로 무역을 하거나 위나라와 동맹하면서 서로 동맹이 파기되었음에도 황하 치수사업을 공동으로 개발할 것을 제안하는 등.
조선과 대놓고 적대하기보단 황하를 넘지만 않는 다면 서로 공존 관계를 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했다가 조선의 배신 이후 오랜 숙적이던 초나라와 손을 잡는 등 조선이라면 치를 떨고 있었다만, 291년에 발발한 종횡대전의 끝에 고토회복을 보고 모든 것을 걸고 달려왔던 기조의 전반적인 실패로 인한 반동을 받아 체념의 형태로 친조선 기조로 돌아갈 정도로 전락하였다.
연종성립 이후에는 완전히 밀월관계가 되어버린 밀수꾼들에 대한 제어나 정규군들의 산적화 등이 겹쳐 조선의 눈 밖에 아주 단단히 나는 등 다소 명백하게 내리막길을 걷는 중이다.

  • 주(周)
역시 초반에는 다이스를 굴릴 수 없는 NPC 국가였다가 천자와 태사 담에 의해 주도적인 활동을 몇 차례 시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면서 작은 위나라처럼 거의 플레이가 불가능한 국가로 전락했다.[12]

  • 진(秦)
원조 중원 프센징 수도는 악양 → 함양. 손빈을 기용하는 데 성공한 대신 상앙(공손앙)이 진으로 오지 않았다는 점이 차이점이 있다.
원 역사대로 주변 이민족과의 투쟁이 잦은 편이며 또한 오기가 빼앗은 서하 지역의 탈환을 숙원으로 삼고 있어 주변국과의 전쟁이 잦은 편이다. 특히 진헌공 영사습 시기에는 오기가 만들고 공숙좌가 지휘하는 서하주둔군의 존재로 인해 서하 지역의 공략에 애를 먹었으나 말년에 수도인 약양을 노린 위나라의 대규모 진격을 태자 영거량의 활약으로 막아냈다. 이후 위가 제-한-조선 연합군에 공격당때 마찬가지로 서하지역을 노리며 공격, 방어의 핵심이었던 소량을 무너뜨리며 위의 수도 안읍을 위협하기 시작했으며, 손빈을 기용하는 데 성공해 서하 지역을 거의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원 역사보다 빨리 정국거를 건설하면서 내정도 착실하게 다져나가는 중이다.
제나라 때문에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 진나라 역시 제나라 못지 않게 다이스 운이 좋은 편에 속하는데, 특히 전쟁 관련 다이스는 역시 원조 호랑지국아니랠까봐 조선 못지 않게 잘 나오는 편. 이렇듯 호전적이다보니 내정 관련에서도 'XX를 치는 것은 내정이다.'같은 선택지가 자주 등장하곤 하는데, 이 때문에 스레민들 사이에선 '진나라식 내정'이라는 밈이 정착되었다.
그러나 영거량 말년을 시작으로 제나라의 패자 체제의 벽을 뚫지 못한 채 수성의 시대가 시작되고, 이후 영사 때에는 서하대전의 참패로 인해 실추된 권위로 전대의 개혁 시도가 대대적으로 무산되며, 영사 사후에는 누가 진나라의 왕이 되는가의 문제로 내부의 여력이 둘로 갈려 충돌하는 사태까지 일어나는 등의 불운이 이어지고 있다.
이후 조선이 진직도로 기습적으로 인질이자 서장자였던 영탕을 왕위에 옹립하였다. 영탕은 초나라, 위나라를 몰아내는 등의 군공을 바탕으로 왕권을 안정화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합횡과의 연전과 2차중원대전 이후 벌어진 기근 문제로 영토는 역대 진나라 왕중에서 최대 영역[13]을 만들었지만, 내부상황은 역대 진나라 중 최악[14]으로 흘러가고 있는 형국이다.

2.4. 강남[편집]


  • 증(曾)◆
초도왕의 사망을 기점으로 당시 초나라 북동부 일대가 전부 떨어져 나와 세워진 나라. 그러나 끝까지 부족연합체에서 탈피를 하지 못하고 이내 다시 흡수당한다.

  • 초(楚)
수도는 영→이릉→영(재천도). 원 역사에선 초도왕~초선왕 시기로 상당한 힘을 내던 시기이나 이 스레에서는 그리 상황이 좋지 않다. 원 역사에서는 기원 역사에서는 381년에야 사망하며 역사에서 퇴장하는 초도왕이 이 스레에서는 398년 월나라 내전에 개입했다가 제, 노, 송 연합군에게 참패 후 붙잡혀 낙양으로 끌려가면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 이로인해 장기간 국가 자체가 공중분해 수준까지 갔었다가 초숙왕 웅장을 거쳐 초선왕 웅량부에 의해 겨우 어느정도 본 모습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앞서 언급한 초도왕 뿐만 아니라 초성왕~초선왕까지 전부 말로가 좋지 못한데, 원 역사대로 도적한테 살해당하는 초성왕부터 시작해서 초도왕은 제, 노, 송, 월 연합군에게 참패 후 낙양으로 압송당했고 초숙왕은 지방 순시를 하다가 파나라에게 납치당했다. 그나마 초선왕은 좀 낫나 싶더니 말년에 수춘에서 공자 언에게 참패당하고 끌려갈 뻔하다 구사일생했고, 결국 이릉에 쳐들어온 파나라 왕과 싸우다 전사했다. 이쯤되면 무슨 마가 낀게 아닌가 싶을 정도.
그래도 강남권에 속한 나라들 중에선 정상적인 축. 귀족들의 세력이 강하긴 하지만 나라가 한번 공중분해된 후폭풍을 단단히 겪었던 까닭에 초나라 귀족들은 기본적으로 어느정도 국가와 왕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왕이 어느정도 능력이나 공적이 된다면 명령을 듣는 정도는 된다. 실제로 웅량부가 나름 정상적으로 통치할 때는 귀족들 간 알력다툼은 있긴 했지만 그 정도뿐이었고 초선왕이 노망이 단단히 든 것이 확정이 되자 그즈음 들어서야 반역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다른 강남권 국가들의 반역 사유가 나라고 뭐고 자기 권력을 얻기 위해서인 반면 이 반역은 초선왕 웅량부가 계속 집권하면 나라가 다 망하게 생겼다는 위기감 때문에 꾸미던 것이었고, 그나마도 공중분해된 나라를 이만큼이나마 수습한 게 초선왕이 아니냐며 왕을 끝까지 옹호하던 편인 대귀족들도 많았다. 심지어 이런 충성파 대귀족들은 세자가 반란을 일으키려 세력을 모을 때도 눈감아주겠지만 진짜 거사할 시엔 자기들은 왕 편에 서겠다는 식으로 말할 정도다. 그래도 초회왕 때는 우여곡절은 있어도 떡상한 경취와 함께 국력이 중원 넘버 2로 불릴 만큼 성장하여 대조선합횡의 중심에 서 있다.
그래서 스레민들 사이에서 강남한다. 강남스타일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귀족들이 막장인 타 강남권 국가들보단 스레민들 사이의 인식도 좋고 희망도 있는 편.
다만 완전히 강남의 한계를 극복했다고는 볼 수 없는 일화들이 역사 곳곳에 점철되어 있으며, 패자 체제가 또 한번 대두한 탓에 다시금 북쪽으로의 확장이 오랜 세월 가로막히는 등의 고전을 면치는 못하고 있다.
  • 촉(蜀)
춘추시대부터 존재했던 그 촉나라. 파촉 할때의 그 촉나라가 맞다. 몇번씩 서북방 이민족을 규합해 진을 상대로 공격을 하기도 하는 등 활동적으로 움직였으나 내전으로 인해 영토를 점차 잃어서 한때는 작중 시작때의 절반 정도까지 축소된 상태였다. 경제 측면에서 다이스가 좋아서 촉금(비단)과 암염(소금)을 캐내는 데 성공한 부국이 되었으나 경제력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내전 당시에 완벽하게 괴멸된 관료 및 실무진들을 어떻게든 복구하는 등의 경이로운 저력을 보이고 이후 파나라 왕가와의 인척관계를 기반으로한 긴밀한 협력 관계 등으로 내전 당시 파나라에 양도하였던 땅을 돌려받고, 경제력으로 와해되었던 군사력을 복구하는 등의 성과를 내면서 암흑기에서 벗어나... 는 줄 알았더니만 파나라가 초나라와의 국경분쟁에서 패하면서 그 여파로 일부 세력이 진나라로 귀부하려다 영거량이 촉이 먼저 무릎을 꿇도록 하는 바람에 이를 진압했지만 진나라의 조공국 신세가 되었으나, 대 초나라 합종전 이후 정세를 정확히 읽어 즉각적으로 이러한 관계를 무산시키는 기민한 행동을 보였다.
이후 레이하의 지도 하에 파나라를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아세우지만 초나라에게 결국 패배하여 얻은 땅을 빼앗기며 파촉통일에 실패하였으나 초와 진 사이에서 반강제 중립국이 되면서 국력을 다시 키우고 있다.

  • 파(巴)
춘추시대부터 존재했던 그 파나라. 파촉 할때의 그 파나라가 맞다. 원 역사에서는 제대로 세력 규합을 못하고 초의 속국이었다가 진에게 병합당했으나 여기서는 그 초가 일시적으로 공중분해되어 있는 동안 적지 않은 세력을 모아서 초를 상대로 공격을 걸기도 하는 등 나름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국가. 이래보여도 그 초나라의 왕을 사로잡고 죽이는 등의 전투력(?)을 과시한다.
촉나라 왕가와 인척관계이기까지 한 혈맹이었지만 촉나라가 거의 어쩔 수 없이 진나라의 조공국이 된 탓에 일반적인 동맹 정도로 관계가 소원해졌다. 의외의 성과이지만, 전인제 시절의 회맹에서 천자는 어디있느냐는 순수한(...) 질문으로 전인제 체제에서 가장 작긴 하지만 틈을 제일 먼저 만든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왕실이 귀족을 제압하지 못하고 서서히 몰락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내란에 빠지면서 플레이 확률이 주나라 수준으로 하락하기도 할 정도였으며, 초나라의 수습이 없었다면 그대로 NPC 행의 확률이 보였을 정도. 촉나라에게 일격을 당하며 멸망 직전까지 몰렸으나 초나라의 지원으로 간신히 살아났다. 이후 사실상 초나라의 부용국 신세였으나, 연종의 시대에 다시금 파촉동맹을 성사시키면서 또다시 자립하였다.

  • 월(越)◆
원 역사와 유사하게 흘러가는 나라. 지방세력의 세력이 강하고 군주의 세력이 약하다보니 지속적인 내전으로 세력을 크게 잃었다. 얼마나 지방세력이 말을 안 들었는지 왕가에게 대들지만 않아도 만고의 충신이라고 봐도 될 정도.
이 막장구도의 절정이 조선-제-월나라가 연합한 노나라 멸망전이다. 초기부터 노-송-월은 노나라가 주도가 되어서 반제동맹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노나라에 월나라 귀족들이 공식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왕을 무시하고 자기들과만 관계를 맺자고 했고, 이것을 노나라가 거절한 것이 전쟁 진짜 배경이다. 즉 노나라 왕은 반제동맹을 위해서 월나라 왕에 대한 의리를 지켰는데, 노나라 왕에게 까인 월나라 귀족들이 기존 적국 제나라에 노나라가 반제동맹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중이던 조선까지 끌어들여서 노나라 침공전을 벌인 것.
이후 대부 금강이 실권을 장악한 시절에는 그야말로 금강의 나라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추태를 보였는데, 낭야에서의 지분을 바탕으로 한 막강한 재력으로 초나라의 영역을 실질적으로 사들이다시피 하고, 사실상의 물주에 가까운 제나라에게 과잉 충성하여 조선후 기식의 장례 때 한번, 조선의 맥성 천도 때 한번 불참하는 식으로 도합 2번의 외교적 결례를 저지르면서 제나라의 이미지마저 깎아버리고 그 결과 당시 직하학궁의 인재 중 약14%에 해당하는 외왕파 학사들의 유출을 부르기도 하였다.
이후는 더욱 심했는데, 전인제의 부추김으로 왕좌의 게임 한 편을 찍는 수준의 내전이 발생했다. 해당 과정에서 월왕 착지를 참살한 대부 사구 파벌이 상왕 제구의 역사에도 없던 충신의 게릴라 전투로 인해 시간이 끌린 사이 이것이 빌미가 되어 내분이 일어나 근거지가 이반하여 전장에 고립되고, 대부 사구는 이 사건을 반쯤 주도했던 방계 왕족의 목을 바치고 무마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서 제나라로 피신하는 등의 사건이 있었다.
그 절정이라고 볼 수 있는 사건은 51 스레 당시 얻은 임시턴을 스킵(...) 당한 것인데, 내전 이후 딱히 계획이 없었던 상왕 제구의 신하들이 정말로 아무 일도 안하려 들어서라는 기가 차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뭐 그래도 알고보니 제나라로 피신한 사구를 추적해서 잡아오긴 했다.
진의 서하 병탄전 이후 치루어진 제나라의 행보를 보고 제나라의 패권이 별 볼일 없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전반적으로 귀족들이 심각하게 무개념이고, 자기 이득만 챙기며, 그나마 여러 내전 끝에 집권한 왕실 충성파란 것들도 생각이 없긴 마찬가지라 여러모로 답이 없는 국가다. 여기서 강남권 국가들이 한번 나라가 망할 뻔해서 왕실에 힘을 실어주려는 이들이 많은 초나라를 빼면 귀족들이 무개념에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감이 강하다지만[15] 월나라는 이게 제일 심각한 상황이다. 스레민들이 이런 상황을 두고 월나라가 무개념짓을 할 때마다 '월월한다'는 은어를 쓸 정도로 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그리고 개념 있는 태자의 등장과 함께 초나라의 구리 광산 채굴을 멈추라는 요구를 거부하는 등 자강을 위해 노력했지만 69어장 기준으로 초나라의 침공과 귀족들의 이반으로 멸망한다.
그러나 멸망 이후에 작 선장[16]을 비롯한 월의 유민들이 대규모 부흥운동(초 입장에서는 반란)을 일으켰고 비록 중과부적으로 진압당하나 구 오, 월 전 지역을 불태울 정도로 거셌기 때문에 초가 서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 것에 맞춰 구 월나라 영토를 사실상 방기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멸망 전에는 개판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나라였지만, 멸망당하고 나서야 부흥운동으로 더 장렬한 모습을 보여준 국가. 이 때를 기점으로 작품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년도별 연재 분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 민월(閩越)
현실 중국 복건성 일대에 자리한 월족. 첫등장은 월국부흥운동때 초나라의 해금령에 기겁한 절강이남 월족들이 자체적으로 작과 신문의 해적에 맞설때 등장하였다. 처음에는 절강과 손을 잡고 싸웠지만 해상에서 패전하자 초가 절강세력을 삼켜버린것에 배신감을 느끼고 이후 월부흥운동때는 부흥군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점차 부흥군쪽이 불리해지자 다시 초와 손을 잡고 이들을 배신해 세력을 유지한다.
이후 사실상 초의 부용국 신세로 전락하였지만, 종횡대전 이후 초가 몰락하고 강동에서 초의 영향력이 사라지면서 점차 딴마음을 먹게된다. 결정적으로 2차 장교의 난때 장교측에 지원을 하였고 이후 민월을 징치하고자 초에서 2만5천의 대군을 파견하지만 은읍에서 기적적으로 격퇴한다. 이후 초 조정에서 민월의 장에게 민공을 하사함으로서 자치령 수준의 독자성을 갖게 되었다.

  • 절(浙)
초나라가 반란으로 위태한 상황에 처하자 이를 보다 못한 조선의 제안으로 강남령을 분국시켜 만들어진 초의 형제국이다.
왕성은 삼대 세경가 일원인 경씨고 초대 왕은 경차, 수도는 광릉이다.
초나라가 강동을 점령한 이후 발생한 모든 피폐를 이어받았기에 월국 출신의 상인 세력이 무시하기 힘든 영향력을 가진다.




2.5. 기타[편집]


  • 부여(扶餘)◆
반조선계 예맥 세력이 조선과 싸우던 과정에서 형성된 국가. 잠깐 기세를 올렸으나 조선의 공격에 멸망, 국내성이 불타고 기황에 의해서 여죽남겁을 당했다. 이후 잔존 유민들이 예맥에 섞여들어가 조선의 예맥 복속을 저지하기도 하였지만, 그 보복으로 대부분이 당시 조선의 반대편 끄트마리인 무성 일대로 분산되는 등의 결말을 맞았다.
하지만 잔당들이 청구로 도주해 십제를 충동질해서 반조선 성향을 보이게 만들고, 십제가 조선과 친해지자 다시 분열해서 한반도 남부로 이동해서도 반조선의 기치를 잊지 않는 끈질김을 보여주고 있다.

  • 중산(中山)◆
백적들이 세운 국가로 중원국가로는 취급 받지 못했다. 세후 때 여러모로 협력도 하고 연나라 멸망전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지만,aa값도 못하고 원 역사에서는 몇번씩 다시 재기했던 원역사와는 달리 이 스레에서는 394년 조와 위의 협공에서 중산국 환공이 탈출하지 못하고 전사하면서 멸망.

  • 의거(義渠)◆
과거 진을 위협하고 관중과 위수까지 손을 뻗었던 서융팔국의 필두였던 국가. 그러나 이후 점점 세력이 약해져서 진의 영향력하에 들어가고 종국에 흉노의 침공에 나라가 멸망당할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다. 이에 의거의 귀족들은[17] 진나라에 귀부하기로 결정하고[18] 당시 진왕 영탕이 이를 받아들여 결국 멸망하였다. 현재 의거국 영토는 진나라령 북지군으로 재편되었다.

  • 십제(十濟)
지금의 서울 쯤에 자리 잡은 국가. 부여 잔당들의 도움을 받아서 나라 꼴을 갖추고 지금은 연맹국가와 영토 국가의 사이에 위치한다. [19] 처음에는 청구의 개척자들이 넘어와서 조선과 긴장관계 였지만 청구 개척자들이 남하를 멈추고 조선과 교류하면서 조선과 나름 친하게 지내고 있는 중.[20]

3. 등장 인물[편집]


작중 현재 사망한 인물의 경우 뒤에 ◆ , 은퇴한 인물의 경우 ◇가 붙는다.

3.1. 조선[편집]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조선/등장인물 항목 참조.

3.2. 초원[편집]


초원 부족들은 실존인물이 없다시피 하고, 해당 부족 언어를 고증해 작명하기도 어렵다. 때문에 비중있는 캐릭터의 경우 편의상 AA캐릭터 이름으로 통칭한다.

3.2.1. 강족[편집]



3.2.2. 격곤[편집]




3.2.3. 누번[편집]



3.2.4. 돌궐[편집]



  • 안재(安斎) (AA: 안자이 치요미)[21]
종횡대전 당시 진과 돌궐의 사전 협약에 따라 파견된 5천 가량의 방위지원군의 총대장으로, 돌궐 내에서는 중원의 상경[22] 자리에 대응하는 최고위직이나, 중원식 관제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지원에 감사를 표한 중대부 왕흘에게 자신을 하대부로 소개하여 잠시 소동이 있었다.[23]
이후 진과의 무역 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진의 사정에 맞춘 제안을 할 것을 상신하며 돌궐의 상경급이라는 지위에 걸맞는 안목을 보여주었다.[24]

3.2.5. 동호[편집]



한때 동호를 초원의 최강으로 올려놓은 어머니로부터 그 자리를 실력으로 차지했다. 이를 넘어 동호의 중앙집권화를 꿈꾸었으나, 자신의 후계 문제에서 암수를 써 자신이 내정한 후계자의 경쟁자(즉 어찌 됐든 자기 자식)을 제거하려다 이미 충분한 수준의 물증을 통해 세력을 반 가를[25] 정도의 호응을 확보한 그 안다(의형제)에게 일거에 패하여 짐승을 죽이는 방식인 돌팔매를 당하는 결말을 맞는다.
이때 얼마나 심하게 두들겨 댔는지, 그 시신에서 나온 피가 흥건한 돌들로 돌무덤이 만들어져 훗날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어 버렸으며, 이미 떨어져나간 남부는 진즉에 조선에게 신하의 예를 올렸기에 이후 동호의 몰락에 단초를 제공한 자이다.

바로 위에서 나온 안다 출신의 반란자. 최소 본인 입장서 짐승의 취급을 받아 마땅했던 아셰라드 칸을 상대로 대승을 거둬 그를 돌팔매로 처단한 뒤 칸에 오르지만, 하필 초원의 온 사방이 아셰라드를 도모하기 위해 나타난 타이밍이라 전후처리에서 고생을 좀 했다.
후일 선비의 일통과 기미부주 체제에 따른 안보상의 위협때문에 오환도호부의 불만도를 이용해 세력과 권위를 확대하려 했으나, 동호 내에 절반이나 되는 선비를 선공하자는 쪽의 반대에 부딪히는 사이 오환도호 반란 세력이 진개에게 진압되어 흐지부지된다.

3.2.6. 선비[편집]



3.2.7. 예맥[편집]



3.2.8. 월지[편집]



3.2.9. 회흘[편집]



3.2.10. 흉노[편집]



장왕 재위기인 기원전 324년, 흉노-동호-조선의 초원동맹이 성립하면서 흉노측에서 보내진 인질. 머리가 좋지는 않지만 그 외의 군재나 단점을 보완하는데 노력하려는 성격 탓에 선우에게 경계를 사 낙점되었다.입지가 있는 부족의 서자이며 장자인 점은 덤.
인질 생활 중 카이두에게 반해서 고정과 충돌하기도 하는 등 유유자적한 인질 생활을 보냈다.
이후 조선이 영탕을 진직도를 타고 고국으로 돌려보내 왕위에 오르게 하려는 작전인 일명 "영탕런" 에도 동행하였다.
영탕런 이후로는 흉노로 돌아가 본인의 야심을 실현시키려다 좌절되고 최후를 맞는다.

3.3. 중원[편집]



3.3.1. [편집]


상기한 대로 오기가 추구한 것들을 어느 정도 수용해 노나라가 산둥반도 남방의 강국으로써 세를 떨치게 하였지만, 그럼에도 부족하였던 수군의 육성에 관련해서 이미 실권을 장악한 월나라 대부 금강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여 금강이 이에 앙심을 품고 조선과 제를 끌어들여 노나라를 도모하는 결과를 만드는 등 여전히 춘추시대의 관념에 꽤 매여 있는 모습을 보인 탓에 노나라와 함께 참혹한 결말을 맞은 인물이다.

원 역사의 노공공. 여기서는 노나라가 망했기 때문에 임치에 연금되어 있었다. 다만 같은 연금생활 신세인 전섬과 자주 만날 정도로 그리 심한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26] 결국 연금생활 도중에 사망했다.

원 역사의 노강공. 마찬가지로 제나라에서 연금생활 중.

3.3.2. 삼진[편집]



3.3.2.1. [편집]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위/등장인물 참조


3.3.2.2. [편집]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조/등장인물 참조


3.3.2.3. [편집]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한/등장인물 참조


3.3.3. [편집]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송/등장인물 참조


3.3.4. [편집]


AA 측면에서는 전반적으로 Fate 시리즈마토 가문(+마토 사쿠라의 바리에이션들) 계열 AA가 많다.

  • 연간공[27] 희재(AA:마토 신지)
원 역사에 비해 굉장히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자로, 이 자를 비롯하여 작중 등장했던 연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조선을 산융의 일파로 보고 깔보는 와중에 조선/중산/누번의 공격을 받았다.
이후 조선, 특히 고거가 각 잡고 벼른 수준의 신들린 전쟁계획과 병력 운용의 결과로 방어전임을 감안해야겠지만 조선의 3배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저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무원까지 거의 꽁지 빠지게 도망쳤으나, 안 그래도 연나라의 세가 기운 것을 눈치 까인데다가 하필 딸의 실책[28]을 잘못하면 문책당하게 생긴 무원성주가 본인과 그 후계를 모조리 처리해 버리며 자신의 나라가 그대로 끝장난다.
  • 무양대부 (AA: 마토 조켄)

  • 무양군 사령관 (AA: 패션립)

  • 무원성주 (AA: 멜트릴리스)

  • 고죽성주 (AA: BB(Fate/EXTRA CCC))

  • 무종성주 (AA: 마토 카리야)


3.3.5. 위(衛)(작은 위)[편집]


본인 대에 전술했듯 후작을 포기하고 군작으로 내려왔고, 망묘의 '이대로 있으면 위(衛)는 조선의 복양현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꼬드김에 속아넘어가 조선군을 배신했다가 본인 대에 나라가 망하고 그 자리에 위(魏)의 복양현이 생기는 결말만을 맞이했다. 결국 어느 나라 복양현이 될지밖에 선택하지 못한 셈
송나라 출신으로 송공 대언을 모시고 있었으나, 대언의 폭주를 막지 않고 방관하다 제나라가 대언을 몰아내고 연홍옥을 새로이 송공으로 옹립했을 때 빈형(臏刑)을 받고 위(衛)로 오게 된다. 이후 위군을 섬겼으나, 대언 때 제나라에게 이미 찍혀 있었기에 위에서도 중용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와중 장등의 중개로 조선의 악구와 접촉하여 조선이 제나라를 도모할 것을 알고 이에 대제첩보에 협조한다. 조선에 협조하면서 위 내부의 반제파 인사들을 모으던 중 이 사실을 위군에게 들켜 심문을 받게되는데 심문자리에서 위군에게 교토삼굴의 고사와 제나라의 실정들을 언급하며, 제나라의 그늘에서 벗어날 것을 권한다. 그의 설득이 통했는지 위군은 사마주를 죽이는 대신 위나라에서 추방하고 은밀히 옥환을 들려서 보내준다.
산동대전 이후 다시 위로 돌아와 위군의 최측근이 되어 말년에 빛을 보게 된다. 하남대전 당시에는 사망한 상태.[29]

3.3.6. [편집]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제/등장인물 참고

3.3.7. [편집]


  • 정수공 정태(AA: 니노미야 아스카)
오직 살아남는 게 강한 것이라면 이 세계관 최강자 내지는 베어그릴스급 생존력이 특징. 보통 죽는게 확실한 상황에서 사실 거기 없었다던가, 있었는데 잘 튀었다던가, 심지어는 국가가 멸망하고 남은 게 없는데도 그 처분이 방기 수준이어서 여생을 잘 보냈다던가 같은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이후 별 탈 없이 정황상 천수를 누리고 퇴장했는데, 전국시대 천하의 수많은 인간군상중에서 정 수공 정도 위치에서 이 정도로 실패를 겪고 결말이 좋지 않았던 다른 이들을 생각하면 가장 행복한 삶을 살다 간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 정나라 귀족(AA: 칸자키 란코)

3.3.8. [편집]




천자의 왕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 사치스럽고 향락적인 주나라의 풍속을 우려하고 있다. 이후 AA는 주나라 태사의 대리 AA로 사용 중.

주나라의 상방. 오만한 편으로 초나라의 힘을 끌어들여 위나라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하나 실패한다. 이후 AA는 주나라 상방의 대리 AA로 사용 중.

주나라의 대부. 초나라를 끌어들여 위나라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하였으나 위사의 거병 당시 위사의 편에 붙었지만 위나라에게 패배한 뒤 전사한다. [30]

주나라 출신 종횡가이자 왕족. 2차 중원대전에서 패전한 위나라측[31] 협상 대표자로 등장하였으나, 소진의 기대[32]와 달리 조선의 요구사항[33]을 그대로 수용하여 태자 위의가 반발하는 계기를 만든다.

3.3.9. [편집]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진/등장인물 참고


3.4. 강남[편집]



3.4.1. [편집]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월/등장인물 참고


3.4.2. [편집]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초/등장인물 참고

3.4.3. 촉[편집]



어장 초기 촉왕으로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 비상시국/전문 관료단 (AA: 오학인 )
촉나라의 관료단이 일시적으로 완전 괴멸하고 복구 중일 때 등장. 얼마 안가 완벽하게 복구되며 그 역할을 다하였다(?)

  • 정상시국/전문 관료단(AA: 제갈량 (요코하마 미츠테루의 삼국지))
말 그대로 촉 지방의 관료단. 다만 한때 내전으로 괴멸되는 바람에 위의 비상시국 관료단이 대신 등장한 적이 있다.
이것을 기어이 다시 원상복구로 돌린 저력만으로도 촉이 단순히 작은 나라는 아니라는 점을 참여자들에게 심어주는 역할을 한 셈.
장왕 기유의 치세 말년, 산동대전 이후 등장한 촉의 재상.
파를 병합하기 위해 진의 힘을 빌리고자 진군의 보급에 협조하는 등 철저하게 준비하였으나 하필 거병 당시 진나라가 내전이 막 끝난 상황이었고 초나라가 어찌되었건 파를 지원하는 통에 도박이 실패해버리고 사로잡혀 이후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녀 단신의 능력이나, 이후에도 촉은 언제나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것을 생각할 때 국력차를 포함한 꽤나 안타까운 패배를 당한 셈.
이후 일시적으로 조국이 파와 함께 초나라의 부용국 신세였으나 종횡대전에서 초나라를 성공적으로 배반하면서 그녀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음을 증명하였다.
종횡대전 이후 진나라의 협조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연종의 인과관계상 유사시 촉나라를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판단한 영탕이 거절하자, 대신 연종의 참여를 조선에 요청하기 위해 길을 빌렸다. 그러나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영탕이 소식이 조선에 닿지 않게 손을 쓰느라 진나라에서는 목숨을 위협받는데, 마침 아탈란테[34]를 마주쳐 동행한다. 이후 독살이나 추격전의 위협까지 어떻게든 극복해내며 황하를 건너[35] 마침내 조선의 강역, 그것도 경현군 조승의 영지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에도 회맹에서 촉왕의 보좌로 계속하여 얼굴을 내미는 등 굉장히 출세하였다.

3.4.4. 파[편집]


어장 초기 파왕으로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몰락한 초를 지속적으로 공격하였으나, 끝끝내 쓰러뜨리지 못하고 지속적인 패전으로 왕실의 권위가 떨어져 지방 유력귀족들의 위협을 받았다.


현재 파왕으로 본래 평도 귀족 대표였으나, 선대 파왕 가문과 결혼하여 새로이 파왕자리에 올랐다. 즉위 후 종횡대전과 반란으로 초나라가 흔들리자, 상국으로 모시던 초와의 관계를 끊고 촉과 연맹하여 초에 대항하였다.





3.4.5. 민월[편집]


원래는 민월의 수군지휘관 AA였지만, 점차 민월의 대표AA로 자리잡았다. 현재는 민공 AA.

첫등장은 월국의 소금생산 중흥을 위하여 초빙된 기술자였지만, 어느새 민월 귀족세력 AA로 바뀌었다.

은현 성주로 경양이 지휘하는 초군 2만5천을 상대로 선전하여 은현을 사수하는데 성공한다.


3.4.6. 절[편집]


초나라 삼대 세경가 경씨 집안 인물로 전 대표 경양이 폐위된 왕의 복권을 노리다 발각되어 실각하자 황헐이 이를 약점 삼아 분국될 절국의 왕으로 삼은 인물.

굴개와 굴원 이후 등장한 굴씨. 초나라 선민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월어를 사용할 수 있어 강동을 맡는 등의 일을 하고 있지만 초성왕 때부터 계속된 국력의 외부투사 기조로 상황의 진척이 없어 결국 장교의 봉기로 야기된 혼란과 함께 담당지에서 급히 탈출하는 등 곤혹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가, 초절분국을 계기로 현지에서 재상감으로 발탁되었다.[36]


3.5. 기타[편집]




3.5.1. 부여[편집]



11어장 1000에 의해 등장한 부여의 뛰어난 외교관...이었지만 부여 내부의 뿌리깊은 반조선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시체는 들판에서 짐승들에게 뜯어먹히는 처지가 되었다. 뱀프가 죽은 후 부여의 주화파들도 함께 죽었는지 아니면 반조선파로 전향했는지는 몰라도 '그리고 부여에 더 이상 주화파는 없었다'라는 언급이 나왔고, 그가 우려한 그대로 기원전 384년 부여는 4만의 조선군을 상대로 억지로 징집한 1만의 병력으로 전면전을 펼친다는 어처구니없는 판단과 함께 멸망했다.

3.5.2. 십제[편집]



3.5.3. 중산[편집]



  • 환공 (AA: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실제 역사에서는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선 중선국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군사적 수완 자체는 엄청났던 인물. 때문에 가지고 있던 정예병들을 거의 모두 잃어버리지만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연나라와 조나라가 신경을 곤두세워왔다.
그러나 이후 연을 멸망한 조선과는 공식적으로 관계가 끊긴 뒤, 위와 조나라의 공격을 받아 전사하고 중산국은 멸망한다.

3.5.4. 의거[편집]



3.5.5. 헬레니즘[편집]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그 펜팔이던 공수속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 죽음에 대해 조사했는데... 본인 죽는 해에 조사가 끝났다.



4. 연표[편집]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逐鹿中原)은 시작되었다!/관련 정보/연표 참고


5. 주요 사건[편집]


전체 사건은 연표 참조.


6. 주요 밈[편집]


  • AA력, 역사력: 주요 인물의 성향이 AA와 비슷해지는 경우 AA력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역사와 비슷해지는 경우에는 역사력이라는 표현을 쓴다.
  • 거용관 드립: 코렁탕 드립과 비슷한 것으로 남산과 비슷한 장소를 어사부에서 거용관에 설치해놓았다는 드립 겸 설정.
  • 기병만능론: 기병이 워낙 효율이 좋아서 나온 말로 악자와 위혜왕이 기병에 꽂혀서 기병만 키운데서 유래. 결국 산동대전에서 제군을 몰살시킨 기병의 측면 돌파로 반쯤은 사실인 것으로 공인된다.
  • 다이스(주사위) 관련 드립: 워낙 다이스로 인해 울고웃는 일이 많다보니 흔히 요괴라고 부르며, 다이스를 다갓이라고 부른다.
  • 영승지국, 일승지국: 조선이 빠른 시기에 전차병을 폐지하고 기병대 위주로 군제 개편하면서 조선을 부를 때 영승지국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 이후 109어장에서 조선왕이 타는 수레 하나 정도는 있지 않겠냐는 어장주의 이견이 나오면서 일승지국으로 하나 올라갔다.
  • 관이오 드립: 제나라의 내정이 성공할 때마다 관이오와 안영의 전통이 언급되면서 관이오는 대체 뭐하던 사람이길래 작중 300년 이상 지난 시점에도 영향을 끼치는지 의문을 품으면서 생긴 드립.
  • 조선제일외교관: 조선은 외교에 약한 편인데, 타국에서 발생한 사건의 나비효과가 조선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외교적으로 뭘 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밥상을 차려주는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긴 호칭. 보통 초왕 웅괴 또는 진왕 영사를 가리킨다.[38]
  • 정점 드립: 제위왕이 사실상 천하를 평정하면서 그의 AA인 레드가 정점임에 착안하여 제위왕의 행동 하나하나를 정점의 행동이라고 부른데서 나온 말.
  • 제나라 암살단: 제나라는 첩보만 하면 성공하고, 제나라에 첩보를 걸기만 하면 실패한데서 제나라에는 암살단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드립에서 나온 말.
  • 조선=독일 비유: 법가 사상이 지배적인데다가 상인에게까지 오가작통을 실시하는 모습에서 병영국가 프로이센과 공통점을 착안하여 비유하는 말.
  • 종횡가는 결말이 나쁘다: 작중 종횡가가 대부분 비명횡사하거나 배드 엔딩으로 끝난데서 나온 말. 실제로 작중에서 장의는 초나라에서 진나라로 사신으로 갔다가 처형당했고, 진진은 내란의 과정에서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다가 사형, 공손연은 관중공략전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책을 저지르며 조사에게 붙잡혀 사형, 고애는 고문받고 뜻이 꺾인 상태로 조선에서 일개 벼슬아치로 살다가 죽었다.[39] 작중 묘사로는 소진과 소대도 미래가 상당히 불안한 편이기 때문에 이 징크스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40]
  • 진나라식 내정: 진나라 선택지에서 외정인지 내정인지를 결정하는 다이스에서 내정이 나와도 국가 영역 내부나 인근의 이민족(주로 의거)을 정벌하는 것은 내정이라는 등의 말이 자주 나오는데서 사실 전쟁=진나라식 내정이라는 공식이 생겼다. 현실 역사의 병영국가 진나라와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 호랑지국: 원래는 진나라를 일컫는 말이었으나, 작중에서는 병영국가화되어 틈만 보이면 뒤통수를 치는 국가인 조선을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조선은 연, 조, 노를 멸망시키는데 앞장서거나 일조했고, 중원대전에서는 위나라의 뒤통수를, 산동대전에서는 제나라의 뒤통수를 후려친 전력이 있다.
  • 어장가: 어장에 참여하는 참치들을 제자백가를 빗대 부르는 표현.
  • 피를 마시는 관중: 장의가 진초관계를 이간질한 후, 진나라의 권역인 관중 내에서 내전이건 외침이건 상관없이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네임드 하나는 꼭 죽는 일이 벌어지면서 생긴 별칭, 사신으로 온 굴원과 진초관계를 이간질한 장의도 목이 달아나는 비범한 시작으로 다른 지역에서 전투로 죽는 네임드가 적은 것에 비해 관중 지역은 전쟁 한번 벌어지면 무조건 네임드 1킬이 나오는 징크스가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7. 1000 정리[편집]


※ '가속' 등 내용없는 1000은 제외.
1. 조선에 새로운 인재가 등용을 하러 찾아온다.
4. 조선에 좋은 일이 생긴다.
5. 위대한 철학자가 조선에 출현.
6. 리롤권(리다이스권) 1개
7. 조선에 크와트로 AA 출현.
10. 아무로 AA 출현.
11. 부여에서 뛰어난 외교관이 나온다.
15. 조선은 군마의 개량과 공성병기 개발에서 긍정적 성과를 얻는다.
16. 조선은 수군을 증강하는 문제가 수면으로 부상한다.
17. 말 개량에 참여할 동호 사람이 합류
18. 조나라령의 빠른 안정화
19. 묵가의 인사들이 조선에서 회담을 갖는다.
20. 조선은 변법의 진척에 열의를 가지고 임하게 된다.
21. 조선의 점령지 안정화에 부가적인 진척이 생긴다.
22. 묵가 인사들의 추가적인 유입으로 인하여 조선 전역의 방비도에 전반적인 개선이 목격된다.
23. 전차병을 해산하면서 남는 군마로 기병을 추가로 편성한다.
24. 조선의 복속/안정도 보너스에 진척 및 무성 요새화 자동 추진
25. 기이가 위나라에서 배워온 오자병법을 무관들에게 전수해서 무관들의 통솔이 오른다.
26. 예맥 포섭에 보정 추가
27. 예맥 복속에 보정
28. 점령지 안정화에 진척
29. 점령지 안정화에 보너스
30. 문예의 마지막 업무가 완수되어 변법의 진척에 적지는 않은 결과를 얻는다.
31. 일반적인 변법 가속도 보정
32. 제나라에 실망한 직하학궁 인재들이 상당수 조선으로 유출되어 전국적으로 교육 진흥이 있었다.
33. 기이는 우선 기식이 남긴 기록 등을 통해 기토에게 외교와 첩보를 가르쳐본다. (지력 상승)
34. 기이와 기토의 문무백관과 함께하는 오자병법(2차) 탐방기.
35. 조선의 중앙집권화 작업이 마무리가 가시권에 들면서 조선 조정의 다음 우선 과제가 관제 개혁으로 대두된다.(다다음턴 관제 개혁 보정.)
36. 조나라 군주 사망 패널티 약화
37. 공손앙에게 이전 대담에 의해 스스로의 생각에 변화가 있었는지, 이제 그 답을 찾기 위해 연구를 하고 싶다면 거기에 도움이 되는, 어떤 업무를 하고싶은지 물어본다.
38. 직하학궁 출신 학자의 유입, 상앙과의 대담 등의 일을 계기로 인의패도론의 완성도가 정교해진다.
39. 무효로 통과(대신 40어장에서 1000, 1001의 2개 들어주기로 함)
40. 안문관 건설에 보정
40. 청구 개척의 과정에서 조선의 자체 수운의 발달
41. 맥성의 보리는 중원 제일이라고 소문이 난다.
42. 위나라 점령지 안정화 보정
43. 안문관에 논을 만들어 쌀재배를 한다.
44. 군제 개편 보정
46. 다음 조선 인재 AA로 유즈키 유카리
47. "우리 조선의 맥주맛으으으으으으으으으은 중원 제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일!!"
48. 요서회랑 행군으로 빡친 묵가 공병대가 요서회랑에 고속도로를 깔 실마리를 찾아낸다!
49. 다음 구현령에는 호세, 증산 사절로 갔었던 성주의 후손 중 한명이 등장하려나...?
50. 조선후의 옥좌는 칼을 모아 녹여 만든 철옥좌.....일까?
51. 조선의 상징물중에 하나는 호랑이다.
52. 역사속의 랩배틀
53. 훗날 월의 사후 인생역정을 들은 조선후는 조회를 3일간 파할 것을 명했고, 흠모하는 대부들의 발길이 끊일 줄 몰랐다더라...
54. 기식의 과거에 대해서 알아보자.
56. 사실 기토는 현재의 철옥좌가 몸에 딱 맞는다(?)
(추가 정리 필요)
191. 조선 국군들의 바둑 실력
193. 초대 조선후 브로리의 진짜 이름은 '부루'. 제왕운기 스타팅 가즈아!
194. 극신 캐릭터AA 변경
195. 리롤권
196. 부여잔당 현황
197. 현재 비비오에게 투제라는 이름의 감상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5 17:50:38에 나무위키 기원전 4세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초원은 서쪽의 돌궐과 동쪽의 조선으로 양분되어있는 상황이다.[2] 關市. 중원 국가와 주변 이민족 간에 벌어지는 공식적인 무역. 일반적으로 비과세였으며, 한고조 유방이 흉노 묵돌 선우에게 백등산 전투에서 패배하고 맺은 조약 조항 중 하나로 관시 개설이 있을 정도로 북방민족들에게 필요했다.[3] 월은 왕과 귀족들의 대립구도였는데, 월나라 귀족들의 접근을 거부하였고, 접근 사실을 월 왕에게 보낸 사실마저도 월나라 귀족들 손에 들어갔다.[4] 당시 조선은 위나라와 단순한 동맹 사이가 아니라 혈맹이라 부를 정도로 매우 긴밀한 사이였는데 조선과 동맹하여 제나라를 견제하고 있던 한나라가 먼저 조선과의 동맹 관계를 이탈하고 제나라에 붙어서 위나라 침공을 개시하자 조선 역시 제나라와 적대하기 보단 위나라를 뜯어먹는게 더 낫다고 판단하여 손바닥을 뒤집은 것. 사실 당시 위앵이 밀어주던 방연이 과한 군사행동으로 어그로를 끄는 바람에 조선과의 관계가 약간 흔들리고 있긴 했다.[5] 이때의 묘사는 거의 반쯤 합종군이라는 표현에 걸맞는 대규모였으며 조선 15만, 제 18만 등 전국시대 후기에도 상당한 병력이라 여겨질 정도의 대병력이 위나라를 집중 공격했다. 다만 묘사상으로 볼때 조선이 15만씩이나 동원하면서 제나라가 이를 위협으로 여기고 마찬가지로 동원한 감이 있다.[6] 최고의 명장면은 송공이 직접 참여한 조선에서 벌어진 제사가, 자료가 남아있던 부분을 제한 나머지를 그냥 찍어서 진행했음에도 은나라 예법과 100% 일치했던 것이다. 송나라 전체가 감동의 도가니가 되었다.[7] 조선은 산융보다는 예맥계였다.[8] 348년의 정규 턴은 다이스 결과 위(衛)부터였는데 하필이면 바로 이전 해 판정에서 정규 턴 포함 저스트 1년 행동불가가 떠버리면서 그대로 행동이 날아가 버렸다.[9] 구체적으로 전후 협상안에서 격을 공이나 왕으로 올린다는 안도 논의'는 되었지만, 결국 최종 협상안은 위군 유지였다.[10] 단순 국력이라면 조선이 앞설 가능성이 높으나 조선은 위나라와 오랜 기간 동안 동맹이었다가 이를 끊고 바로 뒤통수를 치면서 신뢰를 크게 상실해 외교적인 헤게모니를 쥐지 못하고 제나라에 한수 뒤처져 있었다[11] 이게 어느정도냐면 교동, 그러니깐 즉묵 일대를 제외하면 어장 초반의 노나라보다도 줄어든 것이다.[12] 작은 위와는 도찐개찐인데, 둘다 정규턴에서조차 행동이 확정이 아니고 작은 위는 0~88 다이스에서 0이 나와야, 주는 0~9 다이스에서 0이 나와야 했다. 언뜻 보기에는 주나라가 더 사정이 나아 보이지만, 작은 위는 비정규 턴에도 다이스를 돌려보기는 하는데 주나라는 다이스를 돌려보지도 않았다.[13] 초를 관중 밖으로 몰아내고 하동 일부와 의거를 합병하여 북지군으로 만들었다.[14] 기근해결책의 하나로 과거 친초파들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 그리고 숙청의 반동으로 진나라 서부지역이 반란이 일어난다.[15] 오죽하면 스레민들 사이에서 '강남한다', '강남스타일'이라는 은어를 만들어질 지경이다.[16] 필사적으로 저항한 광릉성주의 형이었다.[17] 의거왕은 흉노침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건으로 발언권이 없다시피 했다.[18] 귀부 상대로 진말고도 돌궐, 조선이 언급되었으나 돌궐과는 문화가 다르고, 조선은 너무 멀리있어서 상대적으로 가깝고 또 왕족끼리 인척으로 묶여있던 진이 낙점되었다.[19] 물론 지금 한반도는 개발이 안 되있어서 국력은 일개 도시인 개성이랑 투닥이는 신세다(...)[20] 아예 주요 8대 가문 중에서 조선의 유가 정통파 학자로 기거하고 있는 인물이 나올 정도로 가까워졌다.[21] 돌궐 카칸 AA와 공유로, 어장 극초기에 기식의 AA가 군사행동 당시 조선군의 장으로 사용된 것과 동일 원리로 일시 부여되었다. 추가예시로는 대부 금강을 사로잡아 월국에 넘긴 무명의 제군 장수가 있다.[22] 조선 식으로는 명예직화 되기 이전의 조선상. 즉 이 사람보다 높으려면 돌궐 카칸이나 그 후계자 후보들 정도다.[23] 자신이 돌궐의 6인자라는 의미에서 하대부(...) 라고 소개하였고, 중대부 왕흘은 이에 자신보다도 지위가 낮음을 이유로 정말 대놓고 하대하자, 5인자(...)의 격을 전혀 느끼지 못한 위화감으로 이에 대해 질문하니 이내 기겁한 왕흘의 태도가 돌변하였다. 본인의 지식 부족을 이유로 왕흘이 범한 외교적 결례에 대해서는 대범하게 넘어갔다.[24] 군마, 그중에서도 농마로 전용이 가능한 힘과 지구력이 좋은 품종 위주로 제품을 제안하고, 그조차도 성과가 충분치 않다면 진이 공물을 보내었다는 소식을 통해 위신을 추가하여 벌충하자 하였다.[25] 사실 그 전에 아셰라드 칸을 지지하지 않는 동호 남부 구성원은 이미 조선에게 붙은 상태였기에 이 시점에서 그의 세력은 1/4이 되어있었다.[26] 그러나 전오 시기에는 정황 상 건강 악화를 가장한 독살 시도에 좀 시달렸다.[27] 나무위키에선 연희공으로 되어있다. 연간공은 다른 호칭으로, 일반적으로는 같은 한자를 쓰는 연간공이 100여년 전에 존재했기 때문에 '뒤 후(後)'자를 붙여서 연후간공으로 부른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헷갈릴 일이 없으므로 작품 내에서 쓰인 연간공으로 호칭을 통일한다.[28] 제까짓 조선이 뭘 하겠느냐면서 최전방 관문에 해당하는 지역을 그냥 비워두었다.[29] 참고로 사망 사실이 알려지는 게 실로 골 때리는데, 하남대전 당시 다이스를 돌리다가 위(衛)의 판정에서 '아 얘 죽었나 보다' 정도로 언급되고 지나간다.[30] 그러나 모든 것이 틀린 이때 위사에게 강제동원당한 것을 가장하면서 휘하 병력들을 전원 무사히 투항시켜 주나라에 되돌려보내는 최후의 계책을 성공시키고 만족하며 죽었다. 조국의 현실을 넘어서는데 실패한 안타까운 인재라 할 수 있다.[31] 정확하게는 소진의 추천으로 발탁[32] 불리한 조건 한두개정도 물리길 기대하였지만[33] 변경사항은 연종에 주가 참여한다는 한구절뿐[34] 영직의 경호원으로 조선이 정중히 영직 일행을 대접하기에 할 일이 없어 심부름을 나와 있던 도중 죽을 위기에 처한 사신단을 보고 괴한들의 장을 저격해 죽였다.[35] 독살 시도로 일행이 모두 도망쳐버려 정사와 부사만 남았고, 이 때문에 혼자 움직이던 아탈란테가 받았던 조선마가 수레를 이끌면서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강을 건널 때에는 인근에 조선인들이 있어 눈치가 명백히 보이기에 몰래 움직여야 했던 암살대들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었다[36] 당시 초나라는 굴씨와 경씨에 불안점이 발견된 상황이었다.[37] 2차 완 전투, 5차 수춘 전투 포함[38] 상세 사유는 주요 사건의 산동대전, 진나라 내전 등 참조 [39] 고씨 가문이 아니었으면 사형당했을 것이라는 언급이 나온다.[40] 다만 조선의 방첩요원이기도 했던 연종가, 그것도 필두인 방훤이 이 징크스의 예외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