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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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명군처럼 군주제에서 군주의 국정을 통할하는 최고 책임자인 재상 중 뛰어나게 왕과 나라를 보좌하여 이름을 날린 이들을 일컫는다.
2. 현실(및 전설)의 명재상[편집]
2.1. 동아시아[편집]
- 중국
- 상나라 - 이윤, 부열
- 주나라 - 강상, 주공단, 윤길보, 중산보
- 춘추전국시대[8]
- 전한 - 소하[9] , 조참, 진평, 위상, 병길
- 후한 - 등우
- 위(삼국시대) -
-순욱-[10] - 촉한 - 제갈량
- 동오 - 장소[11]
- 후조 - 장빈
- 전연 - 모용각
- 전진(오호십육국시대) - 왕맹
- 동진 - 왕도, 사안
- 소량 - 범운, 주사(周捨), 서면(徐勉)
- 수나라 - 소위, 고경
- 당나라 - 방현령, 두여회[12] , 위징, 장손무기, 적인걸, 요숭, 송경[13] , 위원충, 장열
- 오대십국시대 - 풍도[14]
- 북송 - 여몽정, 이항, 왕단, 구준, 여이간, 범중엄, 왕안석, 사마광, 포증, 한기
- 남송 - 문천상, 육수부, 진의중, 조여우, 사호, 사미원, 주승비, 우윤문
- 요나라 - 야율융운, 한연휘
- 원나라 -
야율초재[15] , 톡토 테무르 - 명나라 - 유기, 이선장, 장거정, 양정화, 양사기, 양영, 양부, 왕서, 마문승, 유대하, 우겸
2.2. 남아시아[편집]
2.3. 중동[편집]
- 창세기 - 요셉
- 셀주크 왕조 - 니잠 알 물크
- 아바스 왕조 - 야히야 이븐 칼리드
- 오스만 제국 - 이브라힘 파샤,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 쾨프륄뤼 가문 재상
- 카자르 왕조 - 아미르 카비르
2.4. 유럽[편집]
- 독일 제국 - 오토 폰 비스마르크
- 러시아 제국 - 세르게이 비테, 표트르 스톨리핀
- 영국 - 소(小) 윌리엄 피트, 벤저민 디즈레일리,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윈스턴 처칠
- 오스트리아 제국 -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 포르투갈 왕국 -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16]
- 프랑스 왕국 - 쉴리 공작, 리슐리외, 장바티스트 콜베르
- 프랑크 왕국 - 카롤루스 마르텔
- 스웨덴 제국 - 악셀 옥센셰르나[17]
- 후우마이야 왕조 - 알 하지브 알 만수르
3. 가공의 명재상[편집]
- 궤적 시리즈 - 길리아스 오스본
- 레젠다리움 - 마르딜 보론웨
- 얼음과 불의 노래 - 바스, 비세리스 2세[18] , 바엘로르 타르가르옌, 존 아린, 타이윈 라니스터, 티리온 라니스터
- 은하영웅전설 - 오토프리트 3세
-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 박규수
- 왕의 삶 - 아데마르 공작
- Warhammer 40,000 - 말카도르
[1] 문하시랑평장사, 판서경유수사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문신. 성군이라 칭송받는 현종을 옹립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제2차 여요전쟁 때 지채문과 함께 목숨을 걸고 현종을 끝까지 호종했다. 전쟁 이후 그의 치세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중신이기도 하다.[2] 우왕 시절에는 탐관오리에 권신이었지만 공민왕 시절에는 고려를 위해 노력하던 충신이었다.[3] 평원군은 장평대전에서 대패하는 계기를 제공해서 애매하다.[4] 법가. 위문후의 변법정치를 주도.[5] 송양공의 서형[6] 미병지맹을 주도[7] 조고와 손을 잡고 2세를 세우거나 하는 등 문제도 있기는 하지만 전국시대 도량법을 통일하고, 각종 제도를 신설하는 등 공이 훨씬 뛰어나다. 이름값에 비해 실제 업적이 적은 채택과 비교할 급이 아니다. 중국사 역대급의 행정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8] 다만 전국사군자는 다들 나름 뛰어난 인물들이긴 하지만 명재상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9] 중국사를 대표하는 명재상[10] 공식 직함은 '한나라'의 상서령이었고, 촉한을 제외하면 상서령이 명실상부 재상급으로 격상하는 것은 남북조시대 이후이다.[11] 주경칙의 수고조론에서 언급[12] 당태종을 보좌한 재상으로, 이 두 사람을 방두(房杜)라고 불렀다.[13] 요숭과 송경은 당현종을 보좌하여 개원성세를 이룩한 명재상들로, 이 두 사람을 성을 따서 요송(姚宋)으로 불렀다.[14] 충성의 대상을 자주 바꾸었지만 민생 안정에 큰 역할을 하였다.[15] 현재는 이 사람이 정말로 몽골 제국의 재상이었는지조차도 의문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야율초재 항목 참조.[16]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 이 멜루, 폼발 후작. 리스본 대지진 당시, 그러니까 통신망이라고는 우편제도가 전부였던 1755년에 포르투갈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 내진설계? 그딴 거 없던 시절이다. 모먼트 규모 8.5~9.0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자연재해에, 바다에서는 해일이 밀려오고, 도시는 지진으로 폭삭 내려앉았으며, 건물은 화마에 사로잡혀 있었다. 카르발류는 그야말로 지옥도가 도래한 리스본을 아주 훌륭하게 수습하였고, 재건하였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조차 저 정도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을 때 과연 행정부가 얼마나 잘 대처할 수 있는가에 견주어보면, 국가가 막장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다. 그런 이유로, 18세기 중반에 사망자 수습, 난민 구휼, 도시 재건의 삼박자를 아주 깔끔하게 해냈다는 점에서 충분히 명재상의 반열에 들 수 있을 것이다.[17]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시대 스웨덴 제국의 재상. 구스타브 2세가 뤼첸 전투에서 전사하자 어린 나이에 즉위한 크리스티나 여왕을 보좌하며 섭정을 했다.[18] 즉위하기 전에 오랫동안 재상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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