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게 유저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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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
2. 사회 게시판에 정착한 정게 올드비
3. 정게 올드비 vs 정게할배 대립구도 형성
4. 사게 유저의 난
4.1. 반란의 시작
4.2. 사게 유저들의 고립
4.3. 사게 키우기 운동의 쇠퇴
4.4. 운영자들의 강제 진압
4.5. 사게 유저들의 이탈
4.6. 사게 유저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다
5. 여담
6. 사게 유저들의 성향
6.1. 정치적 성향
6.2. 5.18에 대한 견해
6.2.1. 호남 혐오에 대한 견해
6.3. 국뽕 vs 일뽕에 대한 견해
6.4. 틀딱들에 대한 입장


1. 개요[편집]


2013년 3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일베저장소에서 정치게시판 틀딱[1]들과 사회게시판 유저들 사이에 일어났던 싸움.

사실상 게릴라전의 양상을 띄고 있었으며 무려 5달 가까이 애니메이션 게시판, 사회 게시판 vs 짤방 게시판, 정치 게시판 이런 식으로 무려 4개의 게시판이 서로 편을 갈라 싸웠다.

그러나 싸움의 주요 무대 자체는 일베의 수도 역할을 맡은 짤게보다 인구가 적고 방문자도 적은 정게에서 더 격렬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이 사건을 알고 있는 일베 유저들은 의외로 적다.

2. 사회 게시판에 정착한 정게 올드비[편집]


파일:Screenshot_20210501-002154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UPy2l

파일:Screenshot_20210501-002216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oicnx

18대 대선 이후 정게에서는 정게노땅들이 강력한 화력으로 정게를 장악하자 기존의 정게 올드비들이 밀려나면서 정치 게시판을 빼앗기고 갈 곳을 잃은 정게 올드비들은 하나 둘씩 사회게시판에 정착하였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올드비들로 구성된 사게노인들로 구성된 정게 사이에서는 대립각이 형성되었다.


3. 정게 올드비 vs 정게할배 대립구도 형성[편집]


파일:나이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자면.jpg
https://archive.vn/61te2

파일:정게노땅 디스.jpg
https://archive.vn/kxEiS

사회게시판으로 이주한 정게 올드비들도 처음에는 정게할배들에게 자정작용을 지켜 달라고 좋은 말로 부탁했으나[2][3][4] 정게 노땅들은 그저 "네다홍"만을 반복할 뿐이었고[5] 이 무식한 늙은이들과는 대화가 안 통해도 너무 안 통하자 사게 유저들의 투쟁 방식은 점점 더 과격해져서 나중에는 낚시글[6], 노땅 조롱[7], 고려장 드립[8] 등으로 발전할 정도였다.[9]

기존 올드비들이 이 정도로 반발할만큼 유입 늙은이들의 완장질은 그 도가 지나쳤는데 가령 몇 가지 사례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파일:정게할배의 중복자료재업에 분노하는 사게유저.jpg

https://www.ilbe.com/view/1065744323

정게할배들의 잦은 중복 자료 재업은[10] 사게 유저들 사이에서 심각한 문제들 중 하나로 지적되어 왔었으며, 이런 잘못들을 지적하더라도..

파일:정게할배가 올린 문제의 중복자료.jpg

파일:정게할배의 뻔뻔한 태도.jpg

http://www.ilbe.com/1037639572

파일:Screenshot_20210628-153408_Samsung Internet (1).jpg

https://archive.vn/4MV9M

중복자료를 업로드하며 뻔뻔하게 추천을 받아먹으면서 원작 출처 표기도 안 하는 행위를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고 중복자료를 재업로드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려 들거나 전라도를 까는 글은 중복이라도 상관없다는 기적의 논리까지 내세우면서[11] 이를 지적하는 유저들에게 오히려 안하무인격으로 싸움을 일으키는 등 민폐를 일으킴으로써 피로감을 느끼고 이를 지적하지 않거나 이탈까지 하는 유저들을 만들어내서 일베의 자정작용을 뿌리부터 망치기 시작했다.[12][13]

파일:노땅 고소드립 공포정치.jpg

https://archive.vn/cONwU

일베에서 자신과 의견이 다른 유저들에게 고소를 통보하기도 했다.

파일:시스템클럽의 일베 고소모의.jpg
https://archive.vn/W1Er9

더 나아가 자신들이 추종하던 오피니언 리더[14]와 의견이 대치되는 유저들을 모두 좌좀으로 몰아가고 그들에 대한 집단적 고소까지 모의했을 정도였다.

원래 정게에서는 자신과 정치성향이 다른 상대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발언권을 인정하며 일단 토론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을 중시했으나 이것을 알 턱이 없었던 유입 노친네들은 정게에서 완장질을 일삼았으니 결국 정게는 젊음과 토론 중시라는 장점이 사라지고 빠르게 몰락하였다.

미래의 일베를 예상한 정게아재

4. 사게 유저의 난[편집]


파일:Screenshot_20210601-113244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jrjGM

파일:Screenshot_20210502-190700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v1mvR

파일:Screenshot_20210502-184946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tV2ut

자신들이 개척한 정치게시판을 웬 늙은이들한테 빼앗기고 사회게시판으로 쫓겨난 전직 정게 올드비들은 우좀 노인들 때문에 정게가 망가지고 우좀화되어 가는 상황을 보며 항의했지만[15] 결국 정게는 회생 불가능 상태였기 때문에 정게 탈환은 포기하고 일베의 우좀화를 저지하기 위해서 정게노땅들을 견제하기 시작했다.[16]

4.1. 반란의 시작[편집]


파일:4456000be1be0ff274aed0e2e47730a73e84b482-1.jpg

https://archive.vn/yQCtA

파일:Screenshot_20210501-004650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oicnx

파일:Screenshot_20210502-190216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XQOic

이후 정게에서는 쫓겨났으나 일베에 아직 미련이 남았던 사게충(전 정게 올드비)들은 정게의 여러 문제점들을 공론화하고 타 게시판의 유저들에게 시스템클럽이나 박사모의 일베 여론조작 정황들을 발굴하고 폭로하면서 정게, 더 나아가서 일베 전체의 우좀화와 그로 인한 일베의 몰락을 경고하였다.[캡쳐본]

아래의 링크들은 실제로 박사모나 시스템클럽 등등 일베 외의 극우 사이트에서 일베에 최소 2013년부터 여론조작을 시도한 증거들이다.

박사모 일베 주작
팀별로 움직이신다는 박사모 회원님
[모니터링] 6/7자 시스템클럽 자게에 게시된 일베관련글(브금)
[약스압] 박사모 문제가 뭐냐고? 들어오시는게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사회게시판 유저들의 호소는 초창기에 타 게시판 유저들에게도 어느 정도 호응받기도 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애니메이션 게시판은 정게와 짤게의 우좀화에[17] 반발감을 가진 유저들이 많았기 때문에[18] 사게 유저들이 일으킨 반란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물론 폭동에 가담하는게 재밌어서, 참여한 애게 유저들이 더 많겠지만

4.2. 사게 유저들의 고립[편집]


파일:박사모의 일베 여론조작 개입 정황.jpg

https://archive.vn/XxK7G

박사모들이 실제로 일베에서 여론조작을 시도했다는 증거들을 확보한 사게 유저들은 그 증거를 짤게 유저들에게 제시했다.

특히 일베의 우좀화와 박사모의 테라포밍은 사게 유저들만 지적하던 문제점도 아니었으며 사게 유저를 싫어하던 유저들 중에도 박사모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여론까지 존재할 정도였다.[19]

그러나...

파일:짤게의 노관심.jpg

https://archive.vn/eOnwf

파일:졌다.jpg

https://archive.vn/w84QK

의외로 짤게 유저들의 반응은 저조했고 오히려 정게노땅들의 사게유저 홍어몰이가 먹혀들면서 사게 유저들이 짤게 유저들에게도 외면을 받는 사태까지 발생했다.[20]

짤게 유저들 중 적지 않은 이들도 처음에는 정게우좀화에 대해서는 불만을 품었으나 정게에 대한 불만과는 별개로 정게와 계속 싸움을 할 필요성까지 느끼지는 않았고 오히려 "사회 게시판 유저들 역시 지속적으로 분쟁을 일으킨다."라고 생각한 유저들도 존재했는데 정게는 이런 부분를 집요하게 파고 들며 지속적으로 사게유저 분탕론과 같은 모략을 펼치면서 점차 짤게에서는 사회게시판 유저들도 똑같은 병신이라는 인식이 점차 짤게 내부에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짤게 유저들 중에는 사회 게시판 유저들을 정말로 분탕인줄 착각하는 사람들까지 생기자 짤방게시판은 결국 사회게시판과 대립 관계로 변하고 말았다.[21]

결국 사게 유저의 난의 진행 양상은 애니메이션 게시판 + 사회게시판이 공동으로 팀을 맺고 정치 게시판 + 짤방 게시판 + 일베 운영자로 구성된 카르텔에 대립하는 구도로 진행되었는데[22] 일베에서 가장 큰 지분[23]을 가진 짤방게시판이 사게 유저들을 외면하자[24] 사게+애게 연합군은 점차 한계점이 보이기 시작했고 애게의 지속적인 폭동에도 불구하고 틀딱들의 뻔뻔한 태도와 운영자의 편파판정이 지속되자 애게 유저들의 도배 화력조차 아무 소용이 없어지면서 사게 유저의 난은 공세종말점에 다다르고 말았다.

4.3. 사게 키우기 운동의 쇠퇴[편집]


파일:졌다.jpg

https://archive.vn/dLnP5

이후 대다수의 사게 유저들은 직접적으로 정게를 공격하는 방식은 실패했다고 보고 차라리 사회게시판을 키워서 정게를 대체하자며 사회게시판에 나름대로 양질의 글을 몇 번 쓰기도 했다.

사무엘슨의 OG모형
[정보] 깨진 유리창의 오류 - 경제학적으로 바라보기

위의 링크들은 실제로 당시 사게에서 올라왔던 양질의 자료들이다.

파일:Screenshot_20210502-190921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bTO9e

그리고 실제로도 한동안 좋은 글들이 연달아 올라오기까지 하자 사회게시판에도 희망이 보이는 것만 같았으나 결국 사게 키우기 운동은 얼마 못 가서 중단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질적으로 우수한 글을 올려서 사회게시판을 성장시키자는 운동은 그 한계부터가 명확했기 때문인데 사회게시판은 만들어진 목적 자체가 쓰레기 매립지라 위치부터 눈에 잘 안 띄고 접근성도 안 좋은 구석에 쳐박혀 있었다 보니 접근이 불편한 사회게시판까지 찾아오는 유저들은 극소수였기 때문이다. 그 전에 애초에 사게의 존재를 아는 유저들 자체가 소수였다.

방문자 수가 적은 게시판에서는 무슨 글을 쓰더라도 어차피 반응이 적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 누가 공을 들여서 양질의 컨텐츠를 만들겠는가?

결국 이 상황을 타파하려면 타 게시판에 사회게시판을 홍보하거나 아예 사회게시판을 버리고 다른 곳에 정착하는게 최선이었는데 여기서 문제점은 일베사회게시판 외에 정치글 작성을 허용해 주는 게시판은 정치게시판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사게 유저들의 대다수는 애초에 정게가 싫어서 사게로 이주한 사람들인데 다시 정게로 돌아갈 바에는 차라리 일베를 떠나겠다는 게 사게 유저들 대다수의 공통된 견해였고[25] 다시 정게에서 활동하려고 하더라도 이미 정게할배들에게 단단히 찍힌 사게 유저들은 정게에 글을 쓰기만 해도 순식간에 비추와 신고 테러를 당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활동이 불가능해졌다.[26]

파일:정게의 노반응.jpg

https://archive.vn/cbR0g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게 올드비들이 정게를 떠난 이유들 중 하나는 정게에는 아무리 좋은 글을 써도 틀딱들이 싸지르던 똥글들에 묻히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심지어 틀딱들의 심기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내용의 글을 쓰면 비추천을 다량으로 받는 경우가 빈번했으며 무엇보다도 이 무식한 늙은이들은 애초에 프리드먼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래프를 읽을 줄도 몰랐으니 양질의 글을 보더라도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추천을 누르지도 않고 댓글을 달지도 않는 경우가 빈번해서였다.

파일:무한반복.jpg

https://archive.vn/COpHA

정게에 양질의 글을 올리거나 사게에 양질의 글을 올리거나 결국 둘 다 똑같이 묻히는 상황만 반복되자 사게 유저들도 사회게시판에 양질의 글을 쓸 의지를 잃게 되었다.

4.4. 운영자들의 강제 진압[편집]


고담2 같은 운영자들은 사회게시판의 유저들이 작성한 글을 수시로 삭제하며 차단을 반복하는 등 노골적인 편파판정을 지속했고 그나마 정게의 우좀화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정게를 견제하던[27] 새부마저 2013년 4월에 일베의 매각을 진행했고 2013년 6월 이후 자취를 감추었는데 이렇게 정게 틀딱들을 견제하던 운영자도 퇴임하면서 상황은 사게 유저들에게 점점 더 불리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운영자들의 진압 방식은 굉장히 편파적으로 진행되었는데 실제 사례를 제시하자면 다음과 같다.

파일:Screenshot_20210527-042811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BJ0xR

운영자가 정게할배들과 싸운 유저들을 멋대로 차단했다.

파일:Screenshot_20210527-115232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dwEc4

사회게시판의 유동닉 사용을 금지했다.

파일:Screenshot_20210527-115445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owuut

정게할배들에게 불리한 글은 링크만 올려도 차단당했다.

조금이라도 정게할배들을 비판하는 글은 바로 삭제하고 사게 유저들에게는 사사건건 말도 안 되는 사유를 대면서 차단을 남발한 반면

파일:955081fee6dc37804ff3b4b268100394_11197731366.png

정게 유저들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만 보이는 등 노땅들을 노골적으로 편애하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여줬다.

게다가 이런 노골적인 편파판정이 일어나던 2013년 5월 22일에 조국 교수가 주도한 일베저장소 광고주 불매운동의 여파로 일베의 큰 수입원이었던 광고비를 뽑아먹을 수 없게 되자 새부로부터 13억에 일베를 매수한 운마는 그 손해를 메꾸기 위해서라도 수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던 정게할배들을 더더욱 편애하기 시작했으며 5.18 유공자 비하 논란 때문에 일어난 불매운동 사태를 위기로 인식하고 짤게에서 지역드립 글들에 대한 규제까지 한층 더 강화하기 시작했다.

결국 사게 유저들이 지적한 대로 일베의 극단적인 극우화와 정치화가 일베에게 심각한 피해를 일으킨 셈이다.

4.5. 사게 유저들의 이탈[편집]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2013년 8월쯤이 되면 모든 사게 유저들은 아예 사회게시판을 버리고 제3의 사이트[28]로 떠나 버렸다.

사게 유저들은 그야말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도 주변의 비협조 때문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면서 일베에 환멸을 느끼고 그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는 진짜 분탕으로 전향한 케이스까지 나타났다.

특히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일베 정게 올드비 유저들은 19대 총선18대 대선 시기의 민주당에게 큰 피해를 입히면서 당시 민주당에서도 어떻게든 없애려고 혈안이 된 존재였는데 그런 유저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일베 밖으로 쫓아낸 이들은 다름 아닌 일베 유저들 자신이었다.

결국 사게유저의 난은 그렇게 진압당했다.


4.6. 사게 유저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다[편집]


파일:요즘의 일베는.jpg

https://archive.li/d7Mll[29]

사게 유저들이 가장 경계했던 것은 일베가 스스로 유머 사이트라는 정체성을 잃고 정치적으로 극단화되는 시나리오였다.

만일 일베가 유머보다 정치가 우선시 된다면 이전까지 존재했던 정치 커뮤니티인 서프라이즈노노데모수컷닷컴처럼 전형적인 정치 커뮤니티의 최후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런 정치 커뮤니티들은 장기간 존속이 불가능하다. 그런 대규모의 정치 커뮤니티들은 특정 정치세력들이 사방에서 유입되어 자신들의 나와바리로 만들기 위한 투쟁을 일으키면서 사이트 자체가 정상적 토론이 불가능한 선동의 장으로 이용당하다가 재미가 없어지고 음모론자들이 들끓다가 단물 다 빠지면 몇년 뒤에 인구가 흩어지는 식으로 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항상 예외 없이 필연적으로 이렇게 망했다. 디시인사이드주식 갤러리우한 갤러리미국 정치 마이너 갤러리 역시 그런 수순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사실 보수 진영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방법으로 따져도, 일베 유저들의 재미가 최대한 보장되는 방법으로 따져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일베가 유머러스함과 건전한 토론 문화가 유지되고 극단적 진영논리를 배제해 가면서 장기간 존속해 유머로 대중들에게 접근하며 젊은 세대들을 조금씩 보수로 물들이는 것이었는데 이 방법은 일베가 장기간 생존하는 것에도 유리하고 보수 진영의 외연 확장에도 도움이 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사회 게시판 유저들의 대다수는 자신들도 정치글을 좋아하는 유저들임[30]에도 불구하고 일베에게는 정치보다 유머사이트로써의 정체성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며 이 점을 강조해 왔다.

파일:Screenshot_20210501-004650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oicnx

파일:Screenshot_20210502-190216_Samsung Internet.jpg =

https://archive.vn/XQOic

쉽게 말해서 "정게할배들 때문에 정게의 질이 떨어지고 정치글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짤게도 유머가 줄어들어서 문제가 될 것이다."라는 의미였다.

그렇다 보니 사게 유저들은 변희재수컷닷컴을 만들기도 전부터 '만약에 변희재 같은 특정 오피니언 리더들이 일베의 대체 사이트를 만들더라도, 그 사이트는 정치를 우선시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재미가 없어서 흥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까지 남기며

변희재가 만약 정치 커뮤니티를 만들 경우의 장래를 정확하게 예언하기도 했다.

파일:Screenshot_20210502-190106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lg519

그렇기 때문에 사회게시판 유저들은 18대 대선이 끝난 직후 일베 전체의 극우화 분위기에 대해서 경고했으나 나머지 일베 유저들은 당시 사회게시판 유저들의 이러한 우려를 이해하지 못했다.

파일:사회 게시판유저 저격하는 정게 할배.jpg
파일:음해에 대한 사게 유저의 항변.jpg
https://archive.vn/tekVc

이처럼 일베의 강성 우경화를 염려하는 사회게시판 유저들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대다수의 일베유저들은, 사게유저들을 분탕으로 오해하고 이들을 탄압했던 것이다.

특히나 "이제 갓 집권한 박근혜 정권에 대해서 힘을 실어주긴커녕 비판하는게 말이 되냐"라는 정치유저들의 주장과는 달리
오히려 2011년부터 일베는 박근혜에 대해서 비판~비판적 지지를 보내던 곳이었음에도[2011년_일베_분위기]

일베에 유입된 박사모들은 박근혜에 대한 일베 유저들의 비판에 대해서
마녀사냥과 신고를 통해 발언권 자체를 틀어막기 급급했고, 결국 일베 정치게시판은 소수의 극성 박근혜 지지층만 활동하는 폐쇄적 장소로 전락해서, 과거와 같은 영향력과 인구수를 영구적으로 상실하고 말았다.

5. 여담[편집]


한편으로 짤방 게시판에서는 시간이 지나자 정치 게시판이 철저히 망가져 버린것을 보고 난 뒤에야 사회 게시판 유저들이 옳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일부 짤게 유저들은 사게 유저들에게 무관심했던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면서 사회 게시판 유저들을 재평가하거나[31] 과거 정게의 전성기를 주도했던 그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염원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32]

심지어 이후에는 이 후회조차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베의 상황은 최악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면 이 사건 이후 일베 유저들의 다수를 차지한 유입종자들은 이 사건의 전말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지금의 일베는 과거에 이런 사건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라서 이 사건을 회고하며 반성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다.[33]

고로 사게 유저의 난은 이제 일베에서도 잊혀진 사건인 셈이고 이는 다른 의미로 말하자면 현재의 일베는 전성기 일베의 인재풀이 모조리 사라졌다는 의미다.


6. 사게 유저들의 성향[편집]


애초에 사게충이라는 집단은 그 자체가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우좀에 대한 안티테제로 뭉쳐진 집단인 만큼 하나의 성향으로 똘똘 뭉친 집단으로 보긴 어렵다.


6.1. 정치적 성향[편집]


실제로 사게충이라고 불린 세력들 사이에는 온건한 자유 보수 세력도 존재했는데 그런 이들이 분명 다수를 차지했지만 사회자유주의자리버테리언이나 심지어 좌파 성향[34] 유저들도 일부 섞였다 보니[35] 정사게시판 시절과 인구 구성 비율은 비슷하지만 좀 더 진보적인 색채가 강했다.

그래서 한국 보수진영에서 동의하기 힘든 주장들도 가끔 나온 만큼 일베에서도 좌좀이나 분탕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자주 생기는 편이었다.

내가 2010년부터 일베했는데 후기 풀어봄.txt
내가 기억하기론 정게에 맨 처음 식근론 떡밥 일었을 때가 2011년 10월 쯤이다
정사게 시절에도 리젠 멈출 때가 많았지...

위의 링크들은 실제로 당시 사게에 올라왔던 과거 정게 회상글들이다.

그래서 사게충들은 일베에서 어지간한 유저들과 비교해 봐도 가입일로는 안 꿇리는 올드비들이고 2012년 총선과 대선 당시 맹활약을 한 이들이 대다수였는데도 이런 차이점들 때문에 일베 내에서 이단아로 취급받는다.


6.2. 5.18에 대한 견해[편집]


파일:사게1.jpg

https://archive.vn/9GOuP

파일:사게2.jpg

https://archive.vn/BY9Bb

파일:Screenshot_20210605-114107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oPy6G

파일:Screenshot_20210605-114214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OGuXZ[36]

사게 유저들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공통적인 견해가 아니라 자신들끼리도 여러 시각 차이를 가지고 있었으며명칭에 대해서도 민주화 운동, 광주 사태, 광주 항쟁 등으로 부르며 서로 이것에 대해서 치열하게 토론하기 일쑤였지만[37] 사게충들이 유일하게 5.18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가진 견해라고는 지만원의 5.18 관련 주장들만큼은 거른다는 입장이 전부였다.


6.2.1. 호남 혐오에 대한 견해[편집]


5.18에 대한 견해 문단을 읽은 사람들 중에는 "이게 내가 알던 일베 맞나?"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이건 사게 유저들이 특이한게 아니라 원래 저게 2011년 일베의 스텐스였다.

물론 당시 일베에도 반호남 정서는 분명히 존재했으나 오늘날의 일베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초창기였던 2011년의 일베는 아무리 전라도가 싫더라도 전두환신군부를 옹호하진 않았으며 5.18에 대한 역사 왜곡에 동조하진 않았다. 지금과 같은 일베의 호남 혐오 정서는 2011년 12월 라도코드 폐쇄 후 그 인원들이 일베로 몰려들면서 형성한 것이다.

또 일베에서 5.18 폭동설을 주장했던 것은 나중의 일이고 원래 2011년의 일베에서 5.18은 토론의 대상이었으며 전두환도 2011년 초중반에는 일베에서 까였던 인물이다.

애초에 일베에서 전두환을 빨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말엽에 '두환찡'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어느 어그로 종자가 컨셉으로 전두환 빠는 글을 도배하다가 이것이 하나의 으로 정착함에 따라 전두환을 진지하게 재평가하는 유저들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38]

게다가 이런 맹목적 호남 혐오 정서가 일베에서 널리 확산된 후에도 정게만큼은 일베의 극단적인 호남 혐오 분위기에 크게 휩쓸리지 않았다.

파일:맹목적 호남혐오정서를 반대하던 초기 정게.jpg

http://archive.today/FcmO6

이 사건 이후의 정게의 모습과 비교해 본다면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오히려 2012년 대선 이전까지만 해도 일베 정게에서 무조건적인 반호남 정서는 규탄의 대상이었다.

https://archive.ph/nDcVJ

무조건적인 반호남 정서를 가진 짤게조차도 정게에서 일베의 지나친 지역감정에 대한 자제를 촉구한다면 그 망나니 같은 짤게도 정게의 주장을 일정부분 수긍하고 자중할 만큼 정게는 당시 일베 자정작용의 한 축을 담당했다. 다만, 자중을 하더라도 작심삼일이라 문제이지만

결국 당시 정게에서 자정작용을 외치던 이들이 사회게시판으로 쫓겨나면서 정게는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6.3. 국뽕 vs 일뽕에 대한 견해[편집]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사게 유저들은 정치성향적으로 단일한 집단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의 사안에 대하여 내부에서도 여러 견해 차이를 가지긴 했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국뽕 vs 일뽕에 대해서 사게충들이 가진 견해는 국뽕이나 일뽕이나 둘다 병신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사게충들은 상대가 일뽕이라고 하더라도 토론을 통해 상대의 논거를 반박했지, 상대를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내쫓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견해 역시 대체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은 사실이지만 수혜론(시혜론)에는 동의할 수 없으며[39] 식민지 근대화론과 같은 주제는 민족적 감정이나 진영논리보다도 토론을 통해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주제라는 견해를 가진 유저들이 많았다.[40]

얼핏 들으면 식근론이 옳다는 대목에 눈쌀이 찌푸려질 수 있겠지만 이는 식민지 근대화론수혜론[41]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선입견이다.

식근론은 일제강점기 조선이 근대화되었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일 뿐 일제의 통치가 정당한가와 같은 도덕성을 다루는 분야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식근론과 수혜론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하다 보니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한다는 글들을 접하면 정작 그 내용의 상당수가 사실상 수혜론을 비판하는 내용인 경우가 더 많다. 근대화란 제도와 법치 기술 등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개념이다. 근대화라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착각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근대화 = 고도성장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고도성장과 근대화는 다른 개념이며[42] 식근론이라는 학문은 조선이 객관적으로 근대적 제도나 기간시설이 얼마나 도입되었는지를 따지는 학문이지 조선인들의 삶의 질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하는 학문이 아니다. 가령 한국의 법이 대륙법 체계인 것 역시 일본 제국의 영향이라는 점만 따져 봐도 한국의 근대적 법체계는 일제에 의해 이식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적 연계는 6.25 전쟁 때 다 박살났다"는 류의 반박만으로는 식근론을 부정하기 어렵다. 또 구한말 양전사업 역시 일제강점기의 토지 조사 사업과 연결성이 입증되면서 식민지 근대화론 자체는 맞다는 게 정설로 정착되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 근대화론이 사실이라고 해서 그것이 일제의 식민통치를 정당화시키는 근거가 될 수도 없고[43] 일제의 지배 덕으로 조선인들의 삶이 윤택해졌다는 의미도 결코 아니다. 설령 일제가 조선을 근대화시켰다고 한들 그것은 강압적이고 야만적인 근대화에 가까우며 일본제국은 조선인들을 위해서 조선을 근대화시킨 게 아니라 그저 조선을 경영하기 위해서 조선을 근대화했을 뿐이며 그마저도 제대로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조선을 굴려먹기 편할 정도만 한 것이 고작일 뿐이었다. 가령 일제강점기에는 여전히 백정 차별이 공공연했고 시골에서는 축첩까지 빈번했으며 조선인들은 사회 여러 방면에서 차별과 빈곤을 겪었으며 갑오개혁 때 형식상으로만 노비 제도가 폐지되었을뿐 이미 대한제국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 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머슴이라는 형태로 사실상 노비제도의 잔재는 관습적으로 남아있었다. 당장 양반의식 역시 일제강점기 내내 사라지지 않았고 6.25 전쟁을 거치면서 비로소 소멸된 점만 보더라도 일제의 지배가 하루아침에 조선의 모든 부분을 근대화시킨 것도 아니다.[44]


6.4. 틀딱들에 대한 입장[편집]


사회 게시판 유저들 입장에서 노땅(틀딱)들은 자신들의 원래 거주지를 빼앗은 침략자들이다.

애초에 사게충들은 본래 정게의 올드비들이었으니 굴러들어온 틀딱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리가 만무하다. 사회 게시판이 전면적으로 정게와 충돌한 최초의 게시판인 까닭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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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엔 노땅, 정게할배 등으로 불렸다.[2] 파일:정게틀딱0.jpg [3] 파일:정게틀딱1.jpg 파일:정게틀딱2.jpg [4] 파일:말이 안 통해.jpg [5] 밑의 짤은 정게노땅들과 대립하던 어느 정게 올드비의 댓글인데 파일:정게 노땅이 하는 헛소리를 반박하는 일베 정게 올드비.jpg 해당 상황을 설명하자면 '토론과 설득이라는 정게의 장점이 사라졌음'에도 남탓만 일삼고 자기반성을 하지 않는 정게 노인들의 뻔뻔한 태도에 기가 막혀서 이를 보다못한 올드비 한 명이 노인들에게 댓글로 일침을 박는 상황이었다. 이 올드비의 격한 반응도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게 올드비들이 노땅들에게 가장 분노했던 것은 일베 고유의 토론 문화가 파괴되었을 때였다. 본래 토론이 가능하다면 상대가 좌파라고 할지라도 그들과 토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베 정게의 전통이었으며 이는 새부 본인부터가 정사게시판에 유동닉을 허용하면서까지 명시한 사안임에도 정게에 갓 유입된 늙은이들은 그런걸 알 턱이 없었다. 파일:dadd12f96c2459d372fac3cfab941224_11191646665.png [6] 파일:정게 레전드 투니버스 여론조사.jpg [7] 파일:정게 할아버지들 5년뒤.jpg [8] 파일:정게 고려장.jpg [9] 오늘의유머 같은 진보 성향 커뮤니티들의 노인 비하 드립에 분노하며 이를 패륜이라고 경멸하던 정게에서조차 불과 몇 달 만에 노땅드립에 동조하는 상황이 일어날 정도였으니 노인 유저층들의 수준이 얼마나 악질적이었는지 짐작이 되는가?[10] 당시 일베에서 중복자료 재업은 금기시되던 행위였고 저격과 ㅁㅈㅎ 대상이었다. [11] 정치성이 짙은 글은 설령 하자가 있더라도 눈감아 주는 정서가 만연해진다면 커뮤니티의 질적 수준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컨텐츠의 완성도를 평가하지 않고 진영논리에 편승해서 추천을 쉽게 받고 반대 여론을 쉽게 묵살할 수 있다면 창작물들 사이에서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해진다.[12] 커뮤니티도 기본적으로는 유저층 확보를 통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다. 풀어서 말하자면 시장원리에 기반해서 우수한 컨텐츠를 경쟁적으로 생산하여 소비자들을 확보하는 사업체라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이념이나 유행에 편승해서 고정적 소비층들을 확보하는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유용한 전략일 수 있겠으나 장기적으로는 컨텐츠의 질적 수준을 저하시키는 리스크를 유발한다. 실력이 부족해도 이념 마케팅으로 호응을 받기 쉬우면 창작자들은 컨텐츠의 완성도에 쏟는 노력을 소흘히 할 테니 자연스럽게 이념 마케팅에 의존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억지 유행어를 양산형으로 제조하려 하고 편향적인 정치풍자를 찍어내던 개그콘서트가 재미를 잃고 몰락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13] 영화계에도 비슷한 예시들이 존재하는데 낮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애국이라는 진영논리를 통해서 과분한 주목을 받게 된 디워암살(2015)이나 자전차왕 엄복동 같은 양산형 국뽕 영화들이 현재까지도 넘쳐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영논리가 얼마나 컨텐츠의 질적수준과 자정작용을 망치는지 알 수 있다. 군대식 웃음벨처럼 자신이 소속된 집단 내부로부터 충성심을 신앙고백하듯이 호응해 주며 내가 소속된 진영 내부에서 무슨 헛소리가 나오더라도 허물을 덮어 주려고만 한다면 그 집단 전체는 자성적 비판이 사라지며 집단 전체가 경직될 수 밖에 없다.[14] 당시에는 대체로 지만원이 그 문제의 오피니언 리더였다. 2020년대로 치면 가로세로연구소 같은 포지션이라고 보면 된다.[15] 파일:요즘의 일베는 일베가 아니지.jpg https://archive.vn/d7Mll 파일:나이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자면.jpg https://archive.vn/61te2[16] 파일:Screenshot_20210502-185847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sAEpq 파일:Screenshot_20210502-191041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yE5uc 파일:Screenshot_20210502-191148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fwxZu [캡쳐본] 파일:Screenshot_20231002_012443_Samsung Internet.jpghttps://m.ilbe.com/view/1153121596 [17] 파일:애게 갓침 1.jpg https://archive.vn/qGU6l [18] 파일:애게 갓침2.jpg https://archive.vn/WAdzR [19] 파일:박사모의 잦은 일베 간섭에 대한 반발 여론.jpg http://www.ilbe.com/1036234718 [20] 사게 유저들이 다른 일베 유저들로부터 외면을 받은 주된 이유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시각 차이도 한 몫 했다. 구 정사게시판의 후예들답게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토론을 지향했던 사게 유저들은 5.18에 대해서 공통적인 견해가 아니라 자신들끼리도 여러 시각 차이를 가지고 있었으며 지만원의 근거 없는 주장들을 비판했는데 이미 우좀화가 완료된 일베 유저들의 다수가 보기에 "5.18을 단순히 폭동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던 사게 유저들은 분탕종자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이는 결국 정게의 노땅화에는 반감을 가진 일베 유저들도 사게 유저들을 외면하는 계기가 되었다.[21] 2012부터 2013년까지 일베에서 각종 해외 학자들의 자료를 번역하면서 김용민 막말사건과 문재인 고가 의자 등을 저격하는 등 일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그들이 틀딱들에게 밀리고 사회게시판으로까지 쫓겨나면서 같은 일베 유저들에게 외면당하고 분탕홍어 소리까지 들으며 쫓겨났다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22] 특히 짤게 유저들 중 정게할배들에게 선동당한 이들은 정게에 대해서 비판하는것 조차 분란 조장으로 치부하는등 정게 우좀화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23] 글리젠은 애게가 우월했지만 대부분이 의미 없는 뻘글들이었고 짤게가 일베를 대표하는 게시판이었다 보니 파급력이 가장 큰 게시판은 짤게였다.[24] 심지어 정게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이 올라와도 내용적 측면을 진지하게 검토하기보다 추천구걸을 위해 링크를 찍고 홍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비추천을 누르는 등(물론 일반적인 경우라면 비추천을 먹어도 할 말이 없겠지만 일베에서 2개뿐인 메인 게시판 중 정베가 몰락한 이례적인 상황인데도 비추천이 다수였다는 것은 짤게 유저들 대다수는 정게의 우좀화가 일베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 심각성을 몰랐다는 의미밖에 안 된다. 사게 유저들이 오죽했으면 욕먹을걸 무릅쓰고 링크를 찍었을지 조금만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는 문제였다.) 정게의 우좀화가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제대로 이해한 유저는 많지 않았다. [25] 사게 유저들이 어쩌다 가끔 정게에 글을 쓰는 경우도 존재했지만 이는 정게할배들과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행위일 뿐이었다. [26] 파일:Screenshot_20210603-033117_Samsung Internet.jpg https://archive.vn/1nhbr [27] 새부도 정게 정상화는 진작 포기했지만 그래도 정치 일간베스트에 의미 없는 단 한줄의 글이 올라오는 건 발견할 때마다 삭제하는 등 최소한의 관리는 했다.[28] 뉴제네 플레이스, 팩트위키, 신선한닷컴, 디시인사이드, 개드립넷, 등등...[29] 위 이미지에 등장한 정게 유저는 정게할배들의 등쌀에 못 견디고 해당 글을 작성한 지 몇 달 뒤에 정게를 나가게 되었다. https://www.ilbe.com/view/1157494144 [30] 물론 틀딱식 망상글은 논외[2011년_일베_분위기] 파일:2011년 일베의 박근혜 여론.jpg [31] 파일:랜역게 일게이의 후회.jpg https://archive.vn/Vsx7o [32] 파일:돌아오기를 염원하는 일게이.jpg https://archive.vn/fAwVl [33] 애초에 2013년에 일어난 사건이라는걸 감안하면 무리도 아니다.[34] 물론 사게에 합류한 좌파들은 진영논리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을 즐기는 유형의 사람들이 대다수였다.[35] 이들 중 몇몇은 보수 성향만 아닐 뿐이지 어지간한 일베 유저들과 가입일을 놓고 비교해 봐도 올드비들이었고 웬만한 일베 유저들보다 일베의 과거 역사에 해박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물론 정치성향의 차이 때문에 일베에 딱히 동질감이나 깊은 소속감을 느끼진 않겠지만[36] 맥주병으로 머리를 친다는 대목 때문에 장난으로 쓴 글이 아니냐고 반문을 할 수 있겠지만 해당 유저가 평소에도 작성한 글을 보면 저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https://archive.vn/XUcNv https://archive.vn/ZwytO https://archive.vn/vfBGB https://archive.vn/pj79T [37] 물론 장소가 일베인 만큼 사게에도 폭동설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존재했다.[38] 물론 장난으로라도 빠는 인간들 역시 문제가 있는 것은 맞으나 처음부터 전두환을 진지하게 옹호하는 인간들의 수는 극히 미미했다.[39] 해당 글의 글쓴이는 뉴라이트 성향의 사게 유저다. 다만 저 사람이 뉴라이트라고 해서 모든 사게유저들이 다 뉴라이트에 우호적인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40] 다만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사게 유저도 일부 존재했다. [41] 수혜론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조선인들에게 도움이 되었고 도덕적으로도 올바르다는 류의 주장을 일컫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식민사관을 의미한다.[42] 한국의 고도성장은 식민지 시기보다는 광복 이후 군부독재 시기에 일궈낸 것이다. 물론 이 역시 해외 원조가 뒷받침해 준 덕이 크지만[43] 왜냐하면 이는 자연주의적 오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44] 다만 이것이 일본 제국의 의도라고 보긴 힘든 게 일본 본토조차도 다이쇼 시대까지 시골에는 마비키 같은 악습들이 잔존했고 부라쿠민 차별 등의 문제는 현재진행형인 것을 보면 일본 제국은 조선의 전근대적 사회 풍토를 완전히 갈아엎을 능력도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