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용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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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번의 모습. 사진속 차량은 좌석 133번 출신이다.
330-1번의 모습.

1. 개요
2. 탄생부터 도산까지
2.1. 경춘로의 터줏대감
2.2. 경쟁자의 입성
2.3. 몰락
2.3.1. 안간힘
2.4. 도산
3. 폐업 직전까지의 운행 노선 목록



1. 개요[편집]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일부 올드비나 경기 동북부권에 거주하는 버스 동호인들에게는 전설로 남아 있는, 남양주/가평 지역에서 끗발 날리던 버스 회사[1]. 주력 노선은 마석에서 청량리를 운행하던 30번과 서울-춘천간 시외버스였다.


2. 탄생부터 도산까지[편집]



2.1. 경춘로의 터줏대감[편집]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옛날 경충버스[2] 시절부터 경춘로를 거쳐 동마장으로 가는 완행버스를 운행했다는 걸로 미루어보아 해방 직후라든가 아니면 이러한 베이스를 둔 노선이 창립 때부터 운행했다면 일제강점기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지금의 30번, 330-1번, 1330번과 그 지선들 등 마석(화도읍)과 가평군 버스들의 시초는 여기서부터이다. 또한 현재 강원고속의 주력 노선인 동서울-춘천 노선의 시초가 되는 동마장/상봉-춘천 노선 역시 강원운수(90년대 초반까지 강원고속 사명)와 공동배차했었다.

1965년에 경기고속(대원여객에게 인수 되기 전이다.)에서 삼용버스가 분리되고 1991년에는 진흥여객(현 가평교통)으로 사명 변경되었다. 이 때 가평군 및 남양주 화도지역 시내.농어촌버스 노선들은 동양버스로 독립된다. 그후 임금 체불로 인해 동양버스 대표가 구속되면서 새로운 사업자가 인수하면서 예전 모 회사의 이름인 삼용버스로 환원되었다.

한편 이 회사의 시외 노선들 중 마석 - 동마장 시외완행은 1989년(동마장터미널 개업 종료와 같은 해이다.) 30번 시내버스로 전환되었으며, 좌석형은 330번이 되었다. 거기에다가 시외시절부터 있던 지선들까지 흡수하였으며, KD로 넘어온 현재 30번대(-1~-14) 화도/수동 지선버스다.[3] 1994~5년경에는 330번의 연장판이자 직행좌석 버전인 1330번이 신설된다. 후에 1330번의 일반좌석형인 133번도 잠시 운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화도읍과 가평군의 시내/농어촌버스를 주름잡는 향토기업으로 그럭저럭 잘 돌아가는 듯 싶었으나... KD 운송그룹 대원여객이 망우리고개 사고 사상자 보험처리문제로 부도난 금성교통을 1996년에 인수하고 대원교통으로 바꾸면서 KD 남양주 제패에 신호탄이 울린다.


2.2. 경쟁자의 입성[편집]


1996년에 대원교통을 설립하면서 구리/남양주에 입성한 KD 운송그룹이 주변 업체와 붙어보려고 몇 가지 작전을 폈는데, 들어오고 나서 먼저 편 게 이 30번을 견제하기 위한 165-2번구간요금 폐지. 이게 영향력이 있었던 게 금성교통 시절 금곡에서 출발하는 165번은 구간요금이 없었으나 호평동에서 출발하는 165-2번은 금곡까지는 똑같이 기본요금인데 그 이후로 정류장 지날때마다 돈이 붙는, 비슷하게 구간요금을 철저히 받아내는 식으로 운행되었는데 이게 없어지니까 바짝 긴장하게 됐다. 호평과 평내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허허벌판이었으니 큰 타격은 없었다만... 금곡이 문제였고[4] 이때부터 내리막길의 조짐이 보였다.

하지만 몰락의 신호탄을 울린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차산리 영업소의 매각이었다.[5]


2.3. 몰락[편집]


이후 대원교통 뿐 아니라 2001년에 구리에 진출한 대원여객[6]도 구리/남양주권에서 승객 쓸어담기에 나서면서, 이 회사의 입지가 불안해지게 된다. 대원여객55번이 구리 쪽에서 승객을 쓸어가기에 이르면서, 사실상 구리-청량리 근거리 수요도 없어졌다. 물론, 그 전에 구간요금을 없앤 165번이 나머지 구간의 구간수요를 가져갔고, 도농동에 아파트들이 줄지어 들어오면서 그 많은 신규 수요는 KD가 가져가 버렸다. 호평/평내지구 수요를 기대해볼만도 했지만 공사중이였기에...[7]


2.3.1. 안간힘[편집]


패색이 짙어질 무렵 마석 - 구리 간 수요라도 되찾아오기 위해서였는지 30번에서 가지치기를 마구 하게 된다. 30-2번(구암리 - 구리농수산물시장), 30-3번(마석 - 구리시청), 30-4번(마석 - 망우리고개)을 만들었지만 성과는 그다지 좋지 않아서 30-2번을 제외한 가지치기 노선들은 얼마 못 가 폐선되고 도로 30번으로 흡수됐다. 그리고 진흥여객 공략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좌석버스 330번에서도 가지를 쳐서 330-2번(설악 - 구리농수산물시장)을 운행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가지치기 노선들이 많았을 때는 330번과 노선은 같은데 금곡 예비군훈련장으로 돌아가는 330-3번이라는 노선도 굴렸는데, 당연히 얼마 못 가 없어졌는데 지금의 30번이 훈련장을 들어가게 된 게 우연이라 할 수 있겠다.


2.4. 도산[편집]


결국 2001년, KD의 공세 앞에 삼용은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다. 사실상 자기의 본진이던 마석 바로 아래 차산리에도 KD가 들어와서 진을 쳤고[8], 마석에서 마치고개를 넘어가면 있는 옛 미금시 지역(평내호평 지역)은 오래 전부터 KD가 장악한 상황이어서 게임이 될 리가 만무했다.

당시 이 회사 버스 기사마석만 넘어가면 보이는 건 전부 노란색 차[9] 뿐이라고 했을 정도로 이미 남양주시의 웬만한 지역은 죄다 KD 운송그룹이 먹은 상태였다. 그나마 남은 청정지역은 오남읍이나 진접읍[10], 별내면[11][12]정도였지만 그 일대는 당시만 해도 현재 수준의 아파트촌과는 거리가 먼 지역이었다. 청학리 택지지구는 2002년 개발이 마무리되었고, 덕송리와 화접리는 2006년부터 재개발이 시작해 2022년 별내신도시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끝났다. 게다가 이 지역들은 명목상 같은 남양주시지만 정 반대에 있어서 국회의원 선거구나 관할구역 등이 달랐다.

더 버티기 힘들어지자, 경기교통처럼 회사는 부도나고 차량 압류가 이루어졌다.[13] 그리고 운행하던 노선들은 KD 운송그룹[14]진흥고속이 가져갔다. 불행히도 그 이후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마석의 시내버스 배차간격은 막장을 달리다가[15], 경춘선 전철 개통이 되면서 좌석버스들을 서서히 정리하여 많이 개선되었다. 시기상 이미 마지막 경쟁자 선진그룹이 철수한 걸 감안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고 할 수 있을 정도.

참고로 가평교통(진흥고속)이 본래 삼용버스였지만, 이후 진흥여객으로 사명을 바꿨고 떨어져나간 동양교통이 이후 삼용버스로 이름을 바꿨기 때문에 가평교통의 설립은 1965년,삼용버스의 설립은 1991년으로 되어 있다.

3. 폐업 직전까지의 운행 노선 목록[편집]



3.1. 시내버스[편집]


  • 30 - 이 회사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던 노선.
  • 30-2 - 구암리에서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까지 운행하던 노선. KD그룹으로 넘어가고 얼마 안 있어 폐선됐다. 65-1번과 유사한 노선.
  • 마석순환버스 - 위 30번의 지선 노선들이었다. 마석순환버스들이 전부 30으로 시작하는 것도 위의 30번이 원래 본선이었기 때문.
  • 34 - 마석에서 차산리를 거쳐 산 넘어 월문리, 덕소를 경유하여 팔당대교 건너 하남시청까지 운행하던 노선이었다. KD로 넘어가서도 몇년간은 1대로 하남까지 운행했지만, 2009년 7월에 30-15번으로 노선번호를 바꾸고 와부읍으로 단축.
  • 가평군 농어촌버스 다수링크

3.2. 일반좌석버스[편집]


  • 133 - 청평에서 청량리로 향하던 노선. 가평 버스 1330 시리즈들의 하위호환 노선이었다.
  • 330 - 마석터미널 청량리로 향하는 노선 훗날 KD에 인수되면서 3300번으로 고급좌석으로 형간전환해서 청평까지 연장운행하다가 폐선되었다.
  • 330-1 - 수동면에서 청량리로 가던 노선. 경기고속을 거쳐서 대원운수로 넘어가 현재까지 잘 운행되는 중이다.


3.3. 직행좌석버스[편집]


  • 1330 - 삼용버스의 유일했던 직행좌석버스 노선. 진흥고속이 인수하여 현재의 형태로 다니고 있다.


3.4. 그 외 노선들[편집]


해당 노선들은 폐업 직전보다 약간 이른 시기거나 동양버스 시절에 타사에 넘어간 노선들이다.
  • 10: 차산리, 창현리에서 녹촌리, 마치 옛길, 서울리조트를 지나 청량리까지 가던 시내버스. 마석순환버스 중 맹골 노선이 10-2라는 번호도 여기서 유래. 여담이지만 2000년 대원운수 차산리영업소 노선들이 초창기에 이 노선과 유사하게 창현택지에서 마치터널 대신 옛 고갯길로 빠졌던 적이 있다.
  • 30-1: 위 10번과 달리 마석 시내를 경유하여 차산리 - 청량리를 운행하던 노선. 現 65.
  • 30-2: 현 65-1번과 비슷하게 구암리 - 구리도매시장 간을 운행하였으며, 과거 남양주시 버스현황에서는 가평터미널 지선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 30-3: 마석 - 교문지구, 우연의 일치로 현재 93번과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 역시 과거 버스현황 안내에서 현리 지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 30-4: 태화상운 아웃서울 400번처럼 망우리고개(남일주유소)까지만 운행하던 노선.
  • 38: 마석 - 월문리 - 덕소 - 청량리 간 운행. 서울 구간을 단축하고 얼마 못 가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 330-1: 마석 - 천마산 - 평내동 - 호평동 - LG백화점 구리점 - 상봉역 - 청량리역, 현재 330-1번은 원래 꼬리번호가 없이 330번에 팻말을 달고 다니다가 이후에 번호가 부여됐고 원래 창현지구를 운행하던 노선이었다. 대원운수에서 650번으로 운행하다 765-1번과의 중복으로 폐선.
  • 330-2: 설악 - 농수산물시장 : 30-2번의 좌석버전.
  • 330-3: 마석 - 훈련장 - 청량리
  • 990: 백월리 - 양수리 - 청량리
  • 1990: 마석~강변역 - 1115-2번이 저 노선과 유사했지만 폐선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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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날에는 여주까지 운행했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참고[2] 경충버스 → 경기여객 → 경기고속 → 경기고속(대원여객이 인수 = KD).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전북여객, 강원여객, 동해상사고속에 이어 네 번째로 오래된 버스 회사이다.[3] 다만 당시에 있던 지선 인가들은 마이카 보급이 조금 늦었던 농어촌 특성상 훨씬 다양했다.[4]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금곡동은 남양주에서 인구가 많은 편이었다. 도농동 부영아파트도 그제서야 완공했던 시기.[5] 차산리 영업소에는 30-1번(차산리-청량리, 시내), 330-1번(30-1번의 좌석버스 판)과 1990번(차산리-강변역) 세 개의 노선이 있었다. 이들은 각각 65번, 650번, 1115-2번으로 번호가 바뀌었고 기존에 운행하던 차량들은 넘어가지 않았다. 좌석버스 650번은 765-1번과 청량리 회차구간을 제외하고 완전히 겹쳤기 때문에 폐선됐다. 참고로 현재 운행중인 330-1번은 차산리 매각 이후 비금리 지선에 붙은 것이다.[6] 진화운수 구리영업소(옛 부흥교통)를 인수하여 진출한 형태다.[7] 아파트라고는 경춘로변에 진주아파트, 장내마을에 무궁화아파트, 천마산 입구에 라인아파트가 전부였고 지금의 양정동처럼 시골 풍경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택지지구의 입주가 시작된 시기는 2004년 하반기로 KD가 이 일대에 정착한 지 시간이 좀 지났을 때.[8] 물론 삼용버스가 돈 없다고 팔았으니 자업자득에 가깝기는 하다.[9] 이게 당시 KD의 도시형버스 도색이었다. 정확히는 서울 몬드리안 도색과 같다.[10] 삼용버스가 영업하던 당시는 오남은 세진버스, 진접은 대진운수가 영업을 했으며, 이 두 회사는 삼용버스 파산 이후인 2004년에 선진네트웍스 계열로 인수됐고, 2009년 까지 KD그룹과 경쟁했다.[11] 현재로선 거의 유일한 남양주 비 KD 점령지. 물론 실제론 KD가 더 많지만 기타 회사들의 비중도 아직 돋보이기 때문.[12] 2002년 당시에는 별내지역 자체가 산으로 타지역과 떨어진 탓에 서울시내버스 업체인 태릉교통이 이 동네를 장악하고 있었고, 청학리는 의정부 생활권인지라 의정부 업체인 명진여객과 평안운수의 비중이 높았다. 우정운수와 흥안운수의 마을버스도 있긴 했지만 이건 논외.[13] 1330번에서 다니던 일부 차량(에어로 스페이스 LS)은 보영운수(안양)에서 인수하여 1917번 직행좌석에서 다녔다.[14] 처음에는 KD가 아닌 명진운수에서 운행을 맡았다. 1-2개월 정도 임시운행을 맡다가 명진운수가 임시운행을 때려치고 2001년도 경에 경기고속이 운행하게 된 형태라고 보면 된다.[15] 서울 나가던 직행좌석버스인 765, 765-1번은 잘 오는데 비해 시내버스인 30, 65번은 배차간격이 썩 좋지 않았다. 장거리 수요는 비싼 좌석버스로 굴려도 충당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