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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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배우.
2. 활동[편집]
연기의 폭이 상당히 넓어서 <태조 왕건>의 견훤이나 <무인시대>의 이의방, <정도전>의 최영 등과 같은 배역에서는 호방하고 거친 성격의 호걸 연기를 능숙하게 해내는 반면 현대극에서는 비교적 부드러운 모습을 연기하는 경우도 있다. 젊은 세대들은 그를 견훤이나 <제5공화국>의 노태우 역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그 이전 세대들은 평범한 직장인 역할인 <TV 손자병법>의 유비 역이 인상깊게 남아있다.
의외로 젊을 때에는 무관이 아닌 얌전한 배역도 연기했었다고 한다. 1979년의 <토지>에서 길상 역이라든가 1991년 <동의보감>의 허준 역이 그 예. 다만 이 버전의 허준은 이후의 전광렬 버전에 비하면 히스테리컬한 성격이었다. 물론 의술이 깊어지고 나이들면서 성격이 죽긴 한다. 의서 지고가다 왜군 만나 위기에 처했을때 전광렬 버전은 일행의 희생으로 빠져나오고 서인석 허준은 직접 조총들고 쏴죽여버리는 정도의 차이다.[2] 요즘 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애초에 서인석이 지상파에서 포텐이 터진 것은 1987년 <TV 손자병법>에서 '유비'역을 맡으면서였다. 1998년에는 이영자, 홍진경, 윤다훈 등과 함께 시트콤 <행복을 만들어 드립니다>에 출연해 코믹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사극에서도 자주 눈에 띄며 <삼국기>의 김유신과 <한명회>의 세조 역을 맡았다. <태조 왕건>에서는 견훤 역을 맡았는데, 연기력은 절륜했고 견훤을 매력적으로 그려냈지만 견훤 자체가 버프를 못받은 캐릭터였고 어마어마한 임팩트의 적과 주인공에게 밀려 방영 당시에는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종영된 지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인터넷을 중심으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3] 이 견훤으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어 2001년 KBS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후 <무인시대>의 이의방과 <연개소문>의 당태종역을 맡기도 했다.
그 외, 사극은 아니지만 1995년도에 방영한 교양 프로그램인 역사의 라이벌 에선 세종대왕 역을 맡기도 했다. 이 때 상대 역으로 나온 최만리의 배우는 훗날 무인시대에서 함께 연기를 한 김흥기.
<제5공화국>에서 노태우를 연기할 때는 노태우 특유의 미묘한 물스러운 느낌을 잘 표현하며 호평을 받았다. 극 중 절대로 자신의 의견을 단정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4] 우선 일반적인 여론을 겸손하거나 비굴하게 얘기한 후 상대방의 반응을 보아서 주변 환경과 전두환의 의견을 계산한 뒤 그에 맞추어서 권력이 흐르는 곳에 힘을 실어준다. 초반에 전두환에게 충성을 다한 것, 대권을 향해가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힘을 실어준 것, 1988 서울 올림픽 개최식에 국민들과 국제 여론을 눈치보며 전두환이 나오지 못하게 한 것 모두 그의 그런 처신에서 나온 행동이다. 쓰리허 중 허화평, 허삼수가 몰락할 때는 그 둘을 몰아붙였고 그의 상급자가 절대권력을 쥐고 있을 때는 그의 말을 적당한 수준에서 맹신해주는 충성스러운 모습을 잘 연출했다. 마지막 41화의 첫 장면[5] 과 마지막 장면[6] 도 백미다.
2006년엔 <연개소문>에서 당태종으로 출연했는데, 애초에 드라마 제목을 '양제소문' 혹은 '주말시트콤 수나라 사람들'로 바꾸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고구려의 비중이 없었다. 수나라만큼은 아니지만 당나라 얘기도 고구려보다 재밌어서 분량은 많이 확보했고, 연기력도 보여줬다.
<근초고왕>과 <대왕의 꿈>에선 왕족인 김숙흘종[7] 으로 나와 자식을 걱정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젊은 층에게는 <정도전>의 최영 역으로도 유명하다. 방영 전과 초반부 견훤의 재림을 우려하는 반응이 있었으나 드라마가 진행되며 견훤과는 다른, 강직하면서도 독단적인 최영의 모습을 잘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도전 이후 한동한 활동이 뜸하다가 4년 만인 2018년에 드라마 비밀과 거짓말에 출연했다.
사극에서는 유동근과 3번 적수로 만나, 1승 2패를 기록했다.
- KBS <삼국기>(1990): 김유신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에 승리.
- SBS <연개소문>(2006): 당태종 안시성 전투에서 연개소문에 패배.[8]
- KBS <정도전>(2014): 최영 위화도 회군에서 이성계에 패배.
또한, 이덕화와 만나면 쿠데타 콤비가 된다.
- KBS <한명회>: 세조 - 서인석, 한명회 - 이덕화(계유정난)
- KBS <무인시대>: 이의방 - 서인석, 이의민 - 이덕화(무신정변)
- MBC <제5공화국>: 노태우 - 서인석, 전두환 - 이덕화(12.12 군사반란, 5.17 내란)[9]
3. 명대사[편집]
대부분 다 사극 혹은 시대극에서 나왔다.
어쩌다가 상황이 이 지경으로 된 것이야... 어쩌다가!!!
아니!!! 뭐야?! 죽었어!? 수달이가 죽었어! 수달이가!!!
이보게, 파진찬!
방장군이 죽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2000년 태조 왕건 / 2002년 제국의 아침[11] - 견훤이게 무슨 소리야?! 또 졌어어어!!! 이젠 아예 전멸을 했다고?! 으이구!!!
"내 이 철퇴가 용서치 않을것이야!"
정균!!! 네이노오옴!!! 거 사내라면 나와 당당히 맞서서 내 목을 가져가보거라!!! 그만한 배포도 없는 놈이 황실과 사직을 지키겠다고 하였느냐...?!
나는... 황제를 옹립한... 벽상공신 흥위위섭대장군 지병부사 전중감 겸 위위경 이의방이다!!! 내 위태로운 사직을 바로세우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자 거병을 하였으니... 누구도 대고려의 벽상공신의 목을... 가져갈 수는 없다...
즌장군, 마 그라모, 우예 하면 좋겠십니꺼?
물이라 카니까 진짜 물인줄 아나?
내가 어데 모, 진짜 물이가?
사실 여기선 따로 명대사는 나오지 않았다.[13]
도대체 도당의 중신이란 작자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14]
마마께서 고려의 임금이시라구요? 하면 어디, 소장에게 명을 내려보세요. 추상같이 호령을 해보세요! 이 부월을 당장에 내려놓으라고! 어서요!
세력 따위 관심도 필요도 없소이다. 나는 내 길을 갈 뿐이오.
내 이번에 겪은 치욕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내가 정치에 서툰 것을 다행으로 여기시오. 조정이 아니라 전쟁터였다면 대감은 내 손에 목이 떨어졌을 것이외다![15]
내 평생에 단 하나의 실수가 있다면 널 믿은 것이다! 역적을 알아보지 못한 내 눈알을 뽑아내고 싶은 심정이니라...!
이성계, 넌 만고의 역적이다!!
나 최영, 이 자리에서 다짐을 하겠소이다. 내 평생 단 한 순간이라도 사사로운 욕심을 품었다면은, 내 무덤에서 풀이 자랄 것이로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었다면은, 풀이 나지 않을 것이외다. 다들 똑똑히 들어두시오...! 대고려국... 만세...
4. 출연작[편집]
4.1. 드라마/시트콤[편집]
- 1976년 KBS 산비둘기
- 1977년 MBC 후회합니다 - 김기태
- 1979년 KBS 전설의 고향 이어도편.
- 1979년 KBS 토지 - 성인 김길상
- 1981년 KBS1 옛날 나 어릴 적에
- 1981년 KBS2 무지개 - 준호
- 1982년 KBS1 산하
- 1982년 KBS2 순애
- 1982년 KBS2 세자매
- 1983년 KBS2 고교생 일기
- 1983년 KBS2 객주
- 1984년 KBS1 독립문 - 이승만
- 1984년 KBS2 봉선화
- 1985년 KBS1 새벽
- 1985년 KBS2 빛과 그림자 - 성구
- 1986년 KBS2 그대의 초상
- 1986년 KBS2 뜨거운 강 - 서현
- 1987년 KBS1 사랑이 꽃피는 나무
- 1987년 KBS2 TV 손자병법 - 유비
- 1988년 KBS2 순심이
- 1989년 KBS2 달빛가족 - 첫째 조카[16] 김준호
- 1990년 KBS1 징검다리
- 1990년 KBS1 왕조의 세월 - 이은
- 1991년 MBC 내 마음은 호수
- 1991년 MBC 동의보감 - 허준
- 1992년 KBS1 삼국기 - 김유신
- 1994년 KBS2 한명회 - 세조
- 1994년 KBS1 사랑이 꽃피는 교실
- 1995년 KBS2 서궁 - 이이첨
- 1996년 KBS2 드라마 게임 아빠와 영혼(600회 특집)
- 1996년 KBS1 은하수 - 김만득
- 1997년 KBS1 정 때문에 - 홍우표
- 1997년 SBS 꿈의 궁전 - 한동수
- 2000년 KBS1 태조 왕건 - 견훤
- 2001년 SBS 자꾸만 보고싶네 - 장세윤
- 2002년 SBS 그 여자 사람잡네 - 백수산
- 2003년 KBS1 찔레꽃 - 최명욱
- 2003년 KBS1 무인시대 - 이의방
- 2004년 SBS 매직 - 선모 부 이대해
- 2005년 MBC 제5공화국 - 노태우
- 2005년 KBS2 걱정하지마 - 최경준
- 2006년 SBS 연개소문 - 당태종 이세민
- 2007년 MBC 깍두기 - 이승용
- 2008년 SBS 가문의 영광 - 하석호 # 이때조차도 조선 복장!
- 2010년 SBS 제중원 - 백태현
- 2010년 KBS1 근초고왕 - 흑강공 사훌
4.2. 영화[편집]
- 1980년 땅울림
- 1984년 저 하늘에도 슬픔이
4.3. 연극[편집]
- 두 교황 - 베네딕토 16세 교황
4.4. 광고[편집]
- 1982년 태평양화학 탁틴 - 무한도전 남자다잉 특집에서 무도 활력남들이 스킨바르기를 할 때, 그 시절 CF 영상이 지나가며 한창 젊은 시절의 서인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함께 출연한 배우는 훗날 왕후 박씨 역으로 태조 왕건에 함께 출현한 탤런트 금보라
- 1988년 허브큐
- 1988년 헬민200(동화약품) - 탤런트 장용과 함께 출현하였다.
- 1991년 통신공사 특수서비스
- 1997년 애경 동의생금 치약
- 2021년 산양산삼 대표브랜드 다온 - 19년만에 녹슬지 않은 견훤 연기를 보여주셨다.
5. 수상[편집]
6. 사건사고[편집]
- 1998년 2월, 음주 후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중 택시기사와 쌍방폭행으로 불구속 입건된 바 있다. 기사
- 태조 왕건 촬영 도중 추허조 역의 강재일과 마찰이 있었고, 덕분에 추허조는 이 드라마에서 12년이나 빠른 대야성 전투에서 전사 처리 되었다. 강재일은 사실 견훤 역의 배우 서인석과 마찰이 있었다. 마찰이 있을만큼 둘 다 성격이 터프한 사람들이기는 했는데 어느 날 새벽 촬영이 끝난 뒤 회식 장소에서 소주를 마시던 중 입씨름을 벌였다고 한다.[20] 문제는 입싸움으로 끝났으면 될 것을 강재일이 여관방으로 찾아와 서인석에게 발길질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강재일은 서인석이 출연하던 SBS 아침드라마(자꾸만 보고싶네) 촬영장으로 와서 정식으로 서인석에게 사과를 했으나 이후 2006년 KBS 드라마 <대조영>에서 묵철 역으로 복귀할 때까지 한동안 사극 출연을 하지 못했다.
- 서인석은 1949년생이며, 강재일은 1957년생으로 나이도 8살이나 차이가 난다. 서인석이 배우 경력도 7년 앞서는 선배이며 태조 왕건에서 견훤 역을 맡아서 최수종, 김영철과 더불어 주연이었다. 촬영장에서 갈등이야 있을 수 있었다고 해도 분을 참지 못하고 서인석이 잠자고 있는 여관방까지 찾아가서 서인석을 발길질을 하며 구타한 것은 선을 넘은 것이었다. 특히 배우들의 세계에서 위계질서는 엄격한데 선배를 구타했기에 촬영장이 김기복 씨의 말대로 발칵 뒤집어졌다고 한다. 결국 강재일이 드라마에서 하차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 근초고왕에 출연 중이던 2011년 1월 10일엔 같이 출연한 동료배우 안재모의 결혼식에 참여한 뒤 자택으로 돌아가던 중 대리기사가 잘 모시겠다고 인사를 하자 뺨을 때린 적이 있다. 다만 언론사 단독 인터뷰에서 "당시 대리운전기사가 정말로 잘 모시겠다는 뜻으로 말했다면 이런 일이 발생했겠느냐"면서 다소 억울한 심경을 내비친 바 있다. 서인석은 "당시 기사분이 내뱉은 말의 뉘앙스가 마치 연예인이면 세상을 다 아느냐는 식의 부정적인 느낌이 강했다"며 "이 말을 듣고 나도 순간 감정이 격해져 그런 행동을 했던 것 같다"고 밝혀 자신의 우발적 행동이 신씨의 불친절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했다. 물론 두 경우 모두 명백한 잘못이지만 사실 상식적으로 따지고 보면 이쪽이 더 그럴 듯 하다.[23] 요약하면 대리기사의 주장은 자신이 잘 모시겠다고 인사를 했는데 이유없이 서인석이 뺨을 때렸다는 것이고, 서인석의 주장은 자신이 길을 알려주니 자기가 알아서 잘 가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서인석 측은 "비판하기에 앞서 양쪽 쌍방의 말을 다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 어디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한번 손찌검을 했는지 기억도 잘 안나는 사람을 대상으로 고소를 한 건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된다"며 "서인석씨만 너무 일방적으로 억울하게 당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또한 서인석은 대리기사와 합의를 하지 않았는데, 피해자 측인 대리기사가 합의에 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서인석이 합의를 하지 않은 것이다. 서인석이 합의를 하지 않은 이유는 "상대방이 뺨 한대 맞았다고 경찰서에 집어넣고 고소를 했는데, 이를 두고 잘못했으니 제발 합의하자고 제안을 하는 것도 말이 안되는 일"이라고 강한 반발을 보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서인석은 대리기사가 자신에게 뺨 한대 맞았다고 하는데 자신은 때린 기억도 없기에 합의에 응하지 않았다는 입장었으며 결국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24] 그 전에도 부여화 역할을 맡은 김지수가 음주운전도 모자라 뺑소니까지 쳐버린 것에 이어 근초고왕 출연진에 또 한 번의 악재가 되었다. 이러한 사건으로 중견배우로서 본인의 명성에 흠이 갔다. 이후 세계일보 기사에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 공인으로서의 면목이 없다며 사과의 입장을 밝혔다.
7. 여담[편집]
- 불사조로 유명한 이인제와 가까운 사이이다. 이인제가 변호사였던 1986년에 서인석의 친구를 무료로 변론해준 것을 계기로[25] 이인제를 지지하게 되었다고.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를 지지했으며,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이인제를 밀었다. 한나라당에서도 비슷한 일을 하여 비판받았다. 2007년 대선에는 친분을 이유로 이명박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지만 또 이인제 후보의 민주당 경선장에 나타나서 견훤 드립까지 쳤다.
"난 왕을 했던 사람이야! 무진주와 완산주를 다스리고 논산에서 죽었어!" (참고로 그 논산이 지역구인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바로 상기한 이 사람이다.) "나는 왕은 했지만 가짜왕이야! 이젠 진짜를 뽑아야해! (이하 지지 발언)" 당시 지지 연설 영상
- 의외로 이재오 전 의원하고도 친분이 있다. 그 예로 2004년, 참여정부 시절,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핵심이었던 이재오 당시 의원이 참여정부를 깐답시고 환생경제라는 연극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결과는 폭망했다), 이때 출연한 국회의원들에게 연기를 가르친 것도 바로 서인석이었다.
- MBC의 과거 예능 프로그램인 앗 나의 실수!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실수의 에피소드를 말하는 편에서 깨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중앙대 연영과 시절에 교수 앞에서 즉석 연기를 하는 자리가 있을 때, 각각 학생들이 분장을 하면서 연극톤으로 교수앞에서 심사를 받는데 깜빡 잊고서 아무것도 준비 못한 서인석은 즉석에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옷을 전부 벗은 다음 빤스바람에 선글라스 하나 끼고서 백사장에서 작업하는 남자 캐릭터 연기라고 아무렇게나 대사를 쳤다고 한다. 교수와 당시 학생들이 보고 경악하고, 이후로 바바리맨이라고 놀림을 받으며 학교내에서 아싸가 되었다고 한다.
- 태조 왕건 전쟁 씬 야간촬영 중 사고로 불화살을 맞아서 목 밑 부분에 화상을 입었고 아직도 주먹크기만한 화상자국이 남아있다. 송승환의 유튜브 인터뷰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밝혔는데, 남한산성에서 촬영 중에 불화살을 일제 발사하는 장면을 찍던 중, 최전방에 말을 타고 있었던 서인석의 목 부분 갑옷 천에 불화살이 맞아 불이 옮겨붙었다고 한다. 서인석은 급히 갑옷을 벗으려 했지만 촬영용 갑옷은 끈이 등 뒤에 있던지라 혼자서 벗을 수가 없는 구조였고, 결국 낙마했다. 급히 소방팀이 달려와 소화기로 불을 껐지만 천이 목에 눌어붙은 상태였고, 급히 현대아산병원으로 긴급후송되었다. 하지만 새벽 2시라 의사도 없고, 누락되면 안되는 씬이었기 때문에 천을 떼어내고 필수 응급처치만 받은 뒤 다시 돌아가서 촬영을 마쳤고, 촬영이 끝난 후 날이 밝아서야 병원에 가서 성형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거기다 본인은 방송국 측에 배상을 요구할 생각같은 것도 안 들었고, 그저 영광의 상처(!)라고 여긴다고 하니 그야말로 프로정신이자 대인배.
그러는 양반이 술만 자시면....
- 서라벌고등학교 동창생인 성우 조동희가 고교 시절 연기를 하며 잘 나가는 모습을 보고 연기를 지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 1970년 - 1973년 제2군수지원여단(구.제1군수지원사령부) 82정비대대에서 복무했다. # 군 시절 중 상병 달았을 때 목소리가 우렁차고 뛰어난 통솔력, 어떠한 군기훈련에도 끄떡없어서 오뚜기라는 별명이 붙여져서 중대장에 의해 5분 대기조 조교로 지정되었었다. 조교 임무를 수행하던 중 후임대원들을 마구 굴리며[26] 군기를 잡았고 계속된 훈련과 평가 끝에 출동시간이 4분대로 줄어드는 최강의 5분 대기조를 만들었다고. 그 결과 후임대원들에 의해 야외 재래식 변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