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논란/과학과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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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모순의 양상
3. 창세 관련
3.1. 우주
3.2. 진화론과의 모순
3.3. 지구의 천체물리적 특성과의 모순
3.4. 지질학 및 고생물학과의 모순
3.5. 노아의 홍수
3.6. 관련 문서
4. 탈출기의 장대한 행렬
5. 생물 분류
6. 모든 동물은 인간을 두려워한다?
7. 곤충의 다리가 4개?
8. 땅의 네 모퉁이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이 문서는 성경/논란 가운데 성경의 내용과 그에 대해 기독교 교리에서 해석하고 주장하는 내용들이 실제 관측이나 과학이론과 모순되는 점에 대해 다룬다.


2. 모순의 양상[편집]


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현대 과학과 충돌하며, 성경을 해석하는 관점 가운데서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문자주의, 축자영감설에 의거한 성서무오설은 현대의 과학 지식에 비추어 볼 때 그 위배의 정도가 심각하다.[1] 그러나 그 밖의 관점을 취한다고 하여 과학적 모순이 완전히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모순이 근본적으로는 기독교 교리의 양보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 나아가 종교 그 자체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근본주의 계열을 제외한 기독교계에서는 "성경에는 문자적인 의미로서가 아닌 비유적, 서사적으로 기록된 부분이 있으며, 또 신의 영감을 받았으나 결국 기록한 것은 사람이므로 자잘한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이나, 여전히 성경의 핵심적인 메시지에는 오류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독교의 입장은 과학적 모순을 지적하는 측에게 여전히 비판받는다. 기독교가 말하는 성경의 '비유적, 서사적' 해석은 대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으며, 이 구분이 다분히 종교 측에게만 유리하게 쓰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긴다는 것이다.[2]

극단적으로는 성경은 무오하거나 무의미하거나 둘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애초에 성서의 내용 중 일부가 과학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거짓[3]이라 가정한다면, 성서의 근본이 되는 야훼 조차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순한 비유일 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제우스가 티폰을 시칠리아 섬의 에트나 화산 밑에 가둬서 지금도 화산이라고 전해지는데, 화산 밑을 까봐도 티폰이 나올리가 만무하다. 이걸 통해 '티폰을 가뒀다는 제우스, 더 나아가서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상한 논리는 아니다. 티폰이 없는데 제우스는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히 이중잣대이기 때문이다.

신자들의 신앙에도 장기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다. 성경의 해석이 세속적인 관점 때문에 바뀔 수 있는 것 자체가 성경의 확고함, 절대성에 대한 의심을 하도록 만들 수 있다. 즉, 성경의 권위가 떨어진다. 기독교에서 성경은 최고이자 유일한 경전이므로, 이런 권위의 하락을 다른 경전으로 분산시킬 수도 없다.[4] 이는 결국 개인 신앙의 포기에 따른 신자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상당수의 개신교 목사들이 근본주의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 문서에서는 과학과의 모순을 다루는 것이 목적이므로, 원칙적으로 성서무오설에 따른 해석을 전제하여 모순을 지적한다. 또한 토론 합의에 따라 과학적 근거 없이 단지 교리 해석에서 비롯되는 반론을 서술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나무위키는 비(非) 종교위키이기 때문에 세속적 관점에서 쓰이도록 규정되어 있으며[5], 세속적 관점과 종교적 관점이 충돌할 경우, 세속적 관점을 우선시하여 서술한다.


3. 창세 관련[편집]



3.1. 우주[편집]


성경에 따르면 태초에 천지가 규명되었고 빛이 창조되었다 한다.[6] 하지만 빅뱅이론에 따르면 빅뱅 이후 약 40만 년 뒤 대전 입자에서 전자기파가 분리되었으며, 태양계는 이로부터 한참이 지난 기원전 50억 년경에 탄생하였다. 빅뱅에 의한 팽창 속도를 기반으로 우주의 나이를 계산하면 약 137억 9800만 년(±3700만 년) 정도이며 지질학자들이 밝혀낸 지구의 나이만 해도 45억 년이다. 근본주의자들은 이런 근거를 모두 무시하고 젊은 지구 창조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창세기의 천지 창조에 관한 설명은 그것이 실제 물리적인 제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사용된 관용어이거나 혹은 상징적인 의미임을 주장하는 교파도 있다.

3.2. 진화론과의 모순[편집]


성경의 창세기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의 기원에 대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진화론과는 전혀 다른 설명을 하고 있다. 창세기에 따르면 지구는 6일 만에 창조되었으며, 그 중 모든 식물은 셋째 날에, 물에 사는 동물과 하늘을 나는 동물은 다섯째 날에, 땅에 사는 동물과 사람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다. 사람을 제외한 모든 생물은 하느님이 말씀을 통해 창조했으며, 사람은 하느님이 흙으로 만든 뒤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창조했다고 한다.

이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으로 모든 생물종의 출현을 설명하는 진화론과는 완전히 다른 설명이다. 진화론과 여러 과학적,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최초의 생물체의 탄생에서부터 인간의 탄생까지는 수십억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 진화를 통해 미생물로부터 시작해 점차 복잡한 생명체가 탄생한 것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사람 또한 유인원과 공통된 조상에서부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등을 거쳐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 또한 여러 형태로 진화했는데, 그 중에서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 성경의 설명과는 달리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특별한 방법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최초의 현생 인류의 출현은 약 30만 년 전으로, 창세기에 기록된 족보를 통해 계산되는 최초의 사람인 아담의 출현 시기인 약 6000년 전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처럼 진화론과는 상당한 모순이 발생하게 되므로, 일부 기독교 계에서 진화론을 부정하기 위해 창조설이란 궤변을 들고나왔다. 하지만 창조설은 과학적 근거에서 출발해 이론을 도출하는 것이 아닌 성경의 내용에다 이론을 끼워맞춘 것으로 전형적인 유사과학이다. 소위 창조과학의 주장과 이에 대한 반박은 창조설/비판진화생물학/비방에 대한 반박을, 신봉자들에 대한 비판은 창조과학회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를 참고하길 바란다.


3.3. 지구의 천체물리적 특성과의 모순[편집]


성경의 기록을 이용해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면 약 6000년이 나오는데, 지구상에는 나이가 적게는 1만 년에서 많게는 수십억 년에 이르는 수많은 화석들이 존재한다. 화석의 연대 측정은 과학적으로 이미 검증된 방법을 사용하며,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의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해 측정을 하므로 그 결과는 신뢰할 수 있다.[7] 즉 오래된 연대의 화석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성경의 서술과 모순이다.

또한, 이나 수은, 우라늄 같은 무거운 원소들의 존재는 지구조차 없었던 까마득한 옛날에 별이 수명을 다해 폭발하고 남은 흔적이지만, 성경에서는 이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


3.4. 지질학 및 고생물학과의 모순[편집]


게다가 창세기의 천지 창조에는 지질학적 연대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가장 대표적인 모순이 바로 공룡의 존재이다. 창세기에는 천지 창조 7일 중 여섯 째 날에 모든 땅에 사는 동물과 사람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탄생하기 전에 멸종한 동물들, 대표적으로 공룡은 어떻게 된 것인가? 하느님이 여섯 째 날에 모든 동물을 만들고 나서, 사람을 흙으로 빚어서 만드는 동안 멸종해 버린 것인가? 완벽하다는 하느님이 창조 도중에, 그것도 만들어진 지 하루도 안 돼서 멸종하는 동물을 만들 리는 없을 것이다. 즉 창세기에 따르면, 공룡을 비롯해서 사람이 탄생하기 이전에 멸종한 동물들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8]

이에 대해 근본주의자들은 화석의 연대 측정을 비롯한 모든 생물학적·고고학적 증거들을 무시하고, 인간과 공룡이 공존하던 시기가 있었으며, 공룡은 노아의 홍수 때 멸종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룡과 인간이 공존하던 시기가 있었다면 공룡에 대한 인간의 기록 또는 설화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9], 성경을 포함한 그 어느 고대 문서에도 공룡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고, 공룡이 등장하는 설화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레비아탄, 베히모스, 또는 가돌 타닌이 공룡을 뜻한다고 변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을 공룡으로 해석할 만한 근거는 부족하다. 우선 이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가 없기에 당시 사람들이 허구로 창작한 상상의 동물로 판단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며 레비아탄은 입에서 불을 뿜는다고 하는데 입에서 불을 뿜는 생명체는 이제껏 발견된 바가 없으며 당연히 불 뿜는 공룡도 없다.실제로 존재했던 생물이 아닌 용과 같은 가상의 생물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조류가 공룡임이 밝혀진 현재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공룡과 사람이 공존했다는 말 자체는 틀린 건 아니나, 적어도 대중들이 생각하는 공룡은 사람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주장은 그 근거가 빈약하다. 근본주의 일각에서는 '이건 진화론 소리다. 다른 과학 동원해 봐야 결국 진화론 연대 아니냐.'라 하며 공룡을 포함한 해당 비판을 진화론에 한정된 것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제목에도 있다시피 이는 진화론에 한정된 비판이 아니다.

사실 젊은 지구설은 고생물학뿐만이 아니라 현존하는 생물로도 반박이 가능한데 예를 들면 스웨덴의 독일가문비나무인 올드 티코(Old Tjikko)는 수령이 9500년이다. 미국 유타-콜로라도에 걸쳐 있는 피시레이크 국유림에 있는 판도(Pando)는 수령이 8만 년이고 지중해에 퍼져있는 냅튠그라스는 수령이 10만 년이다.

3.5. 노아의 홍수[편집]


창세기에서 노아의 홍수 사건은 매우 커다란 사건이다. 성경에 따르면 전지구적인 홍수로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명체가 죽고, 방주에 탄 노아의 가족과 일부 동물들만 살아남는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노아 사건은 그 스케일만큼이나 과학과 충돌하는 부분이 매우 많다. 성경에 쓰여있는 크기대로의 목재 방주가 물에 뜨는 것은 불가능하며, 성경 그대로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을 종별로 전부 모아서 집어넣는 것도 매우 어렵다. 지구상에는 성경에서 묘사된 수준의 홍수를 일으킬 만한 물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 물들이 외부에서 왔다가 외부로 사라졌다는 일련의 주장들[10]은 전부 반박되었다. 또한 성경에서 물고기와 식물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는지 아예 언급이 없다. 마지막으로, 이런 거대한 사건이 벌어지면 아무래도 증거가 남아야 하는데, 노아 사건은 그런 증거가 없다. 이 때문에 노아의 방주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려면 성경에 쓰인 거의 모든 묘사가 비유와 상징이라고 해석해야만 한다.

3.6. 관련 문서[편집]




4. 탈출기의 장대한 행렬[편집]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은 라므세스를 떠나 숙곳으로 향했는데, 딸린 식구를 빼고 장정만도 60만가량이 되었다. 그 밖에도 많은 잡식구들이 따라 나섰고 등 가축들도 떼지어 따랐다. (탈출기 12:37~38)


먼저 짚고 넘어갈 내용이 있는데, 40년간의 고난의 행군은 이집트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데 걸린 시간이 아니다. 민수기 14장에서는 이집트를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아론과 모세 모두 살아있을 무렵 이들은 가나안 입구에 도착했으나 입구까지 도착한 이후 정작 이들이 주저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게 되고, 이후 벌로서 40년간 광야를 떠돌게 되었다고 나온다. 즉 가나안을 향해 끝없이 전진하면서 40년을 보낸 것이 아니라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한 채 목표 없이 40년을 떠돈 것이다.[11] 이를 금송아지 사건에 대한 벌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금송아지 사건에 대한 벌은 사건이 일어난 바로 직후에 받았고, 이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인들이 야훼의 인도를 받아 탈출할 때, 첫날은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숙곳이란 곳까지 행군했다고 한다. 이집트 탈출에 동참한 사람은 유아와 여자 및 잡족을 제외하고, 장정만 헤아려도 60만가량이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장정이란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군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집트 탈출 때의 히브리인은 줄잡아도 300만 이상은 됐을 것이다.[12] 젊은 장정에게는 부모가 있었을 것이고, 늙은 장정에게는 자식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각종 가축들까지 포함하면 생명체가 적어도 1,000만 이상은 됐을 것이다. 이집트 탈출은 히브리인의 생활 자체였으므로, 거기에는 가재 도구를 비롯한 생활 필수품 일체가 함께 움직이는 거대한 집단이었을 것이다.

실제 라암셋과 숙곳의 거리는 약 40km쯤 된다. 행군할 때의 앞뒤 사람(생명체)의 거리를 1m로 가정하면, 60만 명 항오(行伍)[13]의 길이는 600km가 되며, 300만 명 항오의 길이는 3,000km가 된다. 가축까지 포함된 생명체가 1,000만이라면, 그 항오의 길이는 자그마치 10,000km가 된다. 여기서는 간단히 계산하기 위하여 60만과 1,000만을 빼고 가장 그럴싸한 300만 명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다시 말해서, 히브리인 300만 명의 항오 행렬의 길이가 3,000km라는 말이다. 그러면, 라암셋과 숙곳 사이(40km)에는 75열 종대로 늘어서야 된다.

이렇게 75열 종대로 서고도, 맨 앞사람은 숙곳에 이르렀으나 맨 뒤의 사람은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 탈출 사건이 있을 법했던 시절에는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지방 사이에는 좁은 길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75열 종대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남녀노소, 병자, 임산부, 가축 및 가재 도구 등 일체가 포함된 사람과 가축과 가재 도구 등 일체를 계산에 넣으면, 적어도 2,000만 생명체의 움직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즉 모세의 기적으로 갈라진 홍해에 유대인이 다 건너간 다음에 들어온 파라오의 군대가 몰살당했다고 출애굽기(탈출기)에 나오는데, 유대인만으로도 며칠이 되어도 다 건널 수가 없다.

이집트의 라암셋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400km쯤 된다. 따라서, 여기에다 300만 명을 늘어 세워도 7~8열의 종대가 된다. 2,000만 명을 400km 거리에 늘어 세우면 50열 종대가 된다. 맨 앞의 50명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고 해도, 맨 뒤의 50명은 아직 이집트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게 된다.

참고로 실제 전근대 역사상 그나마 비슷해 보이는 규모의 기록을 찾자면, 수양제고구려 원정에 대한 기록을 들 수 있다.[14] 제1 차 세계대전 이전 기록된 재래식 전쟁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무려 100만 명이 넘는 대군이 동원되었으며 행렬의 길이만 자그마치 1천여 리(약 400km)에 달했다고 하는 이 전쟁으로 인해 국력을 엄청나게 소진한 수나라는 결국 멸망하게 된다. 로마 제국을 제외하면 대대로 전근대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던 중국 통일 왕조에서 국가 주도로 출병까지 해도 이 지경이니, 위에서 설명한 대로 출애굽기의 수백만 명의 난민이 피난 행렬을 잇는 상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굉장히 어렵다. 백 보 양보해서 상식적으로 이 정도 규모의 유민 이동이 있었다면 아무리 고대라지만 역사 기록이든 고고학적 근거든 뭐든 남아 있어야 하는데, 알다시피 출애굽기를 제외하고는 그런 근거는 아직까지 나오고 있지 않다.


5. 생물 분류[편집]


레위기 11장에 보면 야훼가 직접 내리는 명령에서, '낙타토끼는 되새김질을 하지만 굽이 갈라져 있지 않으므로 먹지 말라'는 말이 있다.

새김질하는 짐승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이라도 다음과 같은 것은 먹지 못한다. 낙타는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사반도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토끼도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레위기 11:4~6)


그런데 낙타는 굽이 갈라졌으며, 토끼는 발가락이 갈라져 있는 데다 그 전에 아예 굽이라는 것이 없으며, 토끼는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 아니다. 히브리어 원어 단어를 살펴보면 '찢어지다'란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문제없다는 말도 있지만 이것도 성립이 안 되는 게, 토끼의 발은 찢어져(갈라져) 있다. '토끼가 자기 똥을 먹는 행위를 되새김질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지만, 생물학의 기본만 알아도 이런 말은 못 한다. 혹시나 해서 설명하자면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은 반추위(ruminant stomach) 또는 되새김위를 가진 포유류 소목(偶蹄目)의 일부(기린··사슴 등)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소화관(위)을 가지고 있는 동물에서만 이루어진다. 당시 기준에선 어쨌든 되새김질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다는 근거가 없기에 무의미한 주장이다.

토끼는 초식 동물이기는 하지만, 초식 동물 모두가 되새김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목의 일부 동물만이 되새김질을 한다. 토끼는 토끼목 토끼과에 속하는 동물로서 되새김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토끼는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 아니다.

이처럼 문헌에서 생물을 관찰하고 묘사한 글들은 현대에 와서는 대단히 모호하고 부정확해 보이는데, 이는 당연하게도 성경이 작성된 시기에 현대와 같은 과학적 계통 분석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전혀 조상이 다를 것 같은 조류공룡과 같은 계통이라는 것이 골격의 진화 연구를 통해 밝혀졌으나, 고대인은 공룡이라는 생물군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뜬금없이 박쥐라고 부르는 것도 당대 유대인의 지식 수준으로는 날개가 달리면 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생물을 묘사하는 부분은 이런 식으로 당대의 저자가 가진 지식과 그 한계가 반영되었다. 현대 생물학에서 쓰이는 '종(種, species)'의 분류는 17~18세기에 대략적으로 정립되었으며, 이후로도 지속적인 연구를 거치면서 새로운 지식을 쌓으며 세부적인 변화를 거쳤다. 반면 생물학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던 고대인은 이러한 내용을 서술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6. 모든 동물은 인간을 두려워한다?[편집]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 위를 기어 다니는 길짐승과 바닷고기가 다 두려워 떨며 너희의 지배를 받으리라.

창세기 9:2

라고 서술한다. 허나, 현실에서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동물은 상당히 많다. 오히려 반대로 인간이 동물을 두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보일 정도이다. 사실 위 구절은 동물보다 인간을 더 위로 표현한 문학적 표현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성경의 저자들도 '맹수가 인간에 맞선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다는 주장이 있고, 여기서 '무서워하다.'는 것은 다른 짐승을 가축화하거나 통제하는 고등 생명체로서의 인류의 지위(위계)를 나타내는 것이라 해석된다.

두려워하는 것은 어느 정도 맞다. 개는 훌륭하다와 세나개를 보면 무서워서 공격하는 성향의 개들이 있다. 곰도 새끼를 지킬려고 공격적일 때가 많지만 새끼가 위험할까봐 무서워서 그런 것이고, 물론 성체는 배고파서 공격하거나 영역침범, 혹은 라이벌로 생각해 공격하겠지만... 하지만 인간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죄악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의 죽음의 기사 또한 기근, 전염병, 전쟁 그리고 짐승이 있듯이 징벌의 도구로 짐승들을 쓰신다. 그래도 신체 전투력으로 따지면 인간은 후달리지만, 총기의 등장으로 동물들은 이제 왠만하면 인간에게 개길 수가 없어졌다. 코끼리도 탱크나 공격헬기 앞에서는 얌전해져야 한다.

7. 곤충의 다리가 4개?[편집]


네발로 걸으며 날개가 돋은 곤충은 다 너희에게 더러운 것이다. 그러나 네발로 걸으며 날개가 돋은 곤충 가운데서도 발뿐 아니라 다리도 있어서 땅에서 뛰어오를 수 있는 것들은 먹을 수 있다. 그러니 곤충 가운데서 너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각종 메뚜기, 각종 방아깨비, 각종 누리, 각종 귀뚜라미이다. (레위기 11:20-23, 공동번역성서)

All fowls that creep, going upon all four, shall be an abomination unto you. Yet these may ye eat of every flying creeping thing that goeth upon all four, which have legs above their feet, to leap withal upon the earth ; Even these of them ye may eat; the locust after his kind, and the bald locust after his kind, and the beetle after his kind, and the grasshopper after his kind. But all other flying creeping things, which have four feet, shall be an abomination unto you. (Lev. 11:20-23)


일단 이 구절에서, 한글 성경에 곤충으로 번역된 단어가 20절과 21절의 원래 단어로 살필 때도 날개가 있는 생명체를 가리키는 말로서 곤충이나 벌레 등속을 총칭하는 것이 옳다고 기독교인들과 창조과학자, 주류 신학자들은 인정하고 있다.

이 구절에 대해, 왜 곤충의 다리가 4개라고 기술되었느냐고 따지면, 창조과학자들을 비롯한 기독교인들은 그것은 곤충의 다리가 4개라는 것이 아니라, 4개의 발로만 기어다니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해명한다.

문제는 날개가 있는데 기어다닐 때 뒤의 3번째 1쌍을 쓰지 않고 4개의 다리로만 기어다니는, 그러한 곤충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15] 그리고 거기에 앞서 발만 있고 다리가 없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창조론자들은 먹을 것이 허가된 메뚜기와 베짱이, 귀뚜라미 같이 뛰는 다리가 있는 곤충들의 경우, 그 뛰는 다리를 별도로 취급하는 것이라는 변명을 한다. 다리이긴 하지만 단지 '발'의 기능만 하는 '4개의' 다리와는 다른 의미의 다리라는 것이다. 즉, 2가지 종류의 다리가 있는데, 네발로 기어 다니는 데 이용되는 다리와 '뛰는 다리(21절)'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메뚜기과 곤충들은 기어 다닐 때도 3번째 다리를 같이 사용한다. 메뚜기가 기어 다닐 때 3번째 다리 1쌍을 땅에 안 닿게 치켜들고 앞의 네 다리로만 기어 다닐 리가 없다. 게다가 먹는 것이 허가되지 않은, 날개가 있고 네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이 대체 어떤 곤충이나 벌레를 의미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창조과학자들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창조과학자들은, 위의 질문에 하라는 대답은 안 하고 뜬금없이 꿀벌의 3번째 다리의 해부학적 구조가 앞의 4개의 다리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꺼내지만, 그렇다면 꿀벌이 기어다닐 때 3번째 다리는 땅에 닿지 않게, 앞의 2쌍으로만 기어 다니느냐고 물어보면 또다시 데꿀멍을 시전한다. 그리고 날개가 없는 곤충(대표적으로 개미류), 곤충이 아닌 절지류(거미, 전갈, , 톡토기[16] 등)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또한 일부는 다리 4개와 손 2개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 이런 주장은 성경은 물론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데다가 앞에서 설명한 내용에 대한 유효한 반박을 하지 못한다. 즉, '뛰는 다리'가 먹히지 않으니 은근슬쩍 말을 바꾼 것이다.

8. 땅의 네 모퉁이[편집]


파일:img20231119.png
창세기를 바탕으로 구성한 당시 유대인들의 우주관이다.

요한의 묵시록 7장 1절[17]과 이사야서 11장 12절[18] 등에도 지구가 평평한 것처럼 묘사된[19] 구절들이 있지만, 해석하기 애매해지거나 번역에서 원래 의미가 희미해진 것들이 많다.[20] 단, 히브리어본으로 볼 때 번역이 잘못되지 않았으며 그냥 성경의 과학적 오류라는 주장도 있다.

사실 중세의 모든 학자들이 이 구절을 곧이곧대로 믿을 정도로 관찰력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중세는 고사하고 고대 그리스부터 춘추시대 중국인까지 지구가 둥근 건 알았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재판 당시의 학계의 주류 견해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을 근거로 한 천동설이 대세였고, 이는 당연히 둥근 대지를 바탕으로 했다. 플랫 에러 참조. 다만 이 구절들을 곧이곧대로 믿어서 탄생한 것이 평평한 지구 학회다.


9. 관련 문서[편집]


[1] 이러한 성서무오설은 대개 근본주의 계열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 근본주의 개신교가 득세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해석할 때 성서무오설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2] 쉽게 말해서, 불리한 부분만 비유적이라는 명목으로 변명하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3] 옹호하는 측에서는 '비유' 혹은 '인간의 한계로 인한 오류'[4] 이 경전은 조금 부정확할 지 몰라도, 다른 경전은 좀 더 정확하다는 식의 주장을 펼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렇게 성경을 부정하는 순간 이단이 된다.[5] 나무위키:편집지침/특정 분야/인문사회 [6] 천지, 혼돈, 공허, 낮, 밤, 궁창 등의 형태가 명확하게 묘사되지 않아 고찰이 생기기 일쑤이다.[7] 화석의 연대와 화석이 된 생물의 유전자를 분석해 보면 진화론과 매우 잘 들어맞는 것은 덤이다. 측정법이 잘못되었는데도 "우연히" 이론하고 잘 들어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8] 이에 대한 반박이라며 성경을 쓰던 당시에는 비조류 공룡 등 인류 이전의 고생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였기에 공룡이 묘사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게 바로 성경이 한계와 오류가 있다는 소리다(...).[9] 특히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언어 능력을 지닌 채로 창조되었으므로.[10] 빙하, 물층, 지하의 물 등[11] 때문에 이 40이라는 숫자는 기독교 신학 내에서 신앙과 희생이라는 의미로 대단히 중요한 숫자다.(사순절 등)[12] 여기서 이미 결판났다. 당시 (피지배 민족 포함) 이집트 인구가 240만 명이다. 그러니까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이집트 국민 전체가 다 히브리인이며 그들 모두가 통째로 움직였다고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해도 60만 명이 모자란다(...)[13] 1줄에 5명씩 세우는 방식[14]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으로 유명한 그 전쟁이다.[15] 딱 한 무리, 네발나비과의 나비들은 다리가 4개이고, 오색나비아과, 왕나비아과, 표범나비아과, 줄나비아과 등 수많은 아과가 속해 있기는 하다. 다만 이 나비들은 가장 앞에 있는 다리를 아주 짧게 퇴화시켜 버린 것으로, 다리 6개가 모두 달려 있다. 걸어다닐 때는 4발만 쓰고, 앞의 2발은 아주 특수한 용도로만 사용한다. 그러니 본문의 예는 딱 이 나비들이 걸어다닌다는 특수한 경우에만 성립한다. 네발나비는 정말 다리가 4개일까? 사마귀조차 걸을 때는 앞다리까지 사용해서 걷는다. [16] 톡토기는 본디 곤충으로 분류되었으나 내구강이라는 별도의 종으로 분리된 케이스이다.[17] 그 뒤에 내가 보니 땅 네 모퉁이에 천사가 하나씩 서서 땅의 네 바람을 제지하여 땅에나 바다에나 어떤 나무에도 불지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18] And He will lift up a standard for the nations And assemble the banished ones of Israel, And will gather the dispersed of Judah From the four corners of the earth.(NASB), נֵס לַגּוֹיִם, וְאָסַף נִדְחֵי יִשְׂרָאֵל; וּנְפֻצוֹת יְהוּדָה יְקַבֵּץ, מֵאַרְבַּע כַּנְפוֹת הָאָרֶץ. (히브리어본)[19] 모퉁이, 즉 가장자리가 있는 것은 평평하기 때문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안다면 땅의 모퉁이라는 표현은 나오면 안 된다.[20] 혹자는 네 모퉁이가 방향이나 경위도를 뜻한다고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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