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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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배우자이자 대한민국의 제14대 영부인.
2. 생애[편집]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출신으로, 이순자와 마찬가지로 이화여대를 다니다가 남편을 만났다. 당시 이화여대는 금혼 학칙이 있어서 재학 중에 결혼하면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는데[2] ,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에 다니다 중퇴하고 결혼한 이순자와 달리, 결혼 사실을 학교에 끝까지 숨기고 다녀 졸업한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는 천으로 배를 두르는 고생을 해 가면서 겨우 약사 면허증을 땄지만, 약국을 개업한 적은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가 되면서 결국 장롱면허가 되었다.[3] 결혼 후에도 남편을 총재님 또는 대통령 각하 등 존칭으로 높여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가 남편의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에야 말을 놓았다고 한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4명의 전직 대통령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이 청와대 만찬 자리에 함께 한 일이 있는데 당시 최규하 전 대통령의 아내인 홍기를 제외한 이순자, 김옥숙, 손명순, 이희호 4명의 영부인도 한 자리에 모였다.
손명순과 이순자가 나란히 붙어 앉은 사진 기록에는 서로 눈길도 주지 않는 등 여러모로 껄끄러웠던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관계를 고려한다면 그 부인인 둘의 관계 역시도 마냥 화기애애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비교적 단란한 모습을 보인 김옥숙, 이희호와는 비교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계속 상도동 사저에서 살고있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식사 및 간단한 운동까지 하며 구순이 넘었으나 건강에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본인보다 3살 연하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2008년 경 소뇌위축증 발병 등 다양한 병환으로 10년 넘게 투병하다가 2021년 10월 26일 사망한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그로부터 4주 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빈소에 조화를 보냈다. 그래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망 당시 조문을 와 주었기에 최소한의 성의를 보인 듯 하다.
3. 가족관계[편집]
- 아버지(1902~1977)
- 김영삼(1929~2015)
배우자.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이다.
- 김혜영(1952~71세)
이덕화의 친구이자 딸이다. 둘은 초등학교 6학년 때(1964년) 같은 반이었다. 이때의 인연으로 이덕화가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영삼 정치인의 지원 유세에 나섰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광명시 갑 선거구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지만 낙선하면서 정치권에서 발을 끊었다.
- 김은철(1956~67세)
동생과 달리 정치 근처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으며, 미국에서 옷장사를 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다. 본래 평범하게 살고자 했으나 서슬퍼런 제5공화국 시대에 대학 졸업후에도 야당 정치인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도저히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고, 심지어 김영삼이 5공 정권에 의해서 가택연금중이었기 때문에 결혼식도 아버지 없이 치러야 했다. 그 뒤에 곧바로 미국으로 이민가서 언론과 접촉을 피하면서 살고 있다. 사실상 미국으로 망명을 간 셈이다. 언론에 나온것도 국회에서 열린 남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모자가 나란히 앉아있었던 장면이 전부였다. 5공때 미국으로 갔으니 무려 40년 이상을 한국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대통령의 아들임에도 근황이 거의 공개되지 않는 매우 특이한 케이스다.
- 김현철(1959~64세)
형인 김은철과 달리 활발히 정치 활동을 했다.
- 손주환(1939~2022)
제3대 공보처 장관이자 사촌 동생이다.
4. 둘러보기[편집]
5. 창작물에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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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1928년 12월 6일.[2] 이것은 이화학당 시절에 생겨난 교칙으로, 신체적ㆍ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소녀들이 조혼(강제결혼)으로 학업을 중단당하는 사태를 막기 위하여 당시 미국인 선교사들이 제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뀜에 따라 금혼 학칙은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고, 2003년에 폐지되었다.[3] 남편 김영삼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20대 때부터 야당 국회의원 생활을 했을만큼 금수저 집안이었다. 서슬퍼런 시대에 아들을 야당의 정치인 시킬 수 있을 정도로 시가의 살림살이가 워낙 부유했고 친정 역시 대지주 집안이었기에 일부러 약국을 개업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