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고온/사례/대한민국/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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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세기한반도에 찾아온 이상 고온을 정리한 문서.

  • 해당 기간의 기온의 평균값 기준으로는 고온이지만 중앙값으로 보면 고온이 아닌 경우 ☆ 표시
  • 볼드체는 평년과의 차이가 큰 경우
  • 붉은색 볼드체는 평균 기온 편차가 역대급으로 큰 경우


2. 1900년대[편집]


  • 1902년 11월~12월 인천, 부산 - 비공식이기는 하지만 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한 블로그에 의하면 1902년 11월 인천의 월평균기온이 11.1°C 로 기상관측사상 가장 높았던 2011년 11월 11.4 °C 다음으로 높은 초이상 고온이었다. 부산의 경우도 심각해서 13.8 °C 를 기록, 2022년 11월 14.4 °C, 2011년 11월 14.1 °C, 1990년 11월의 13.9 °C 에 이어 역대 4위에 해당하는 이상 고온을 보였다. 또한 해관기상자료를 볼 때, 인천에서 2004년 11월과 함께 11월 최저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또한 이쪽이 더 심한 것으로 보이는데, 반올림값으로 추정되지만 인천에서 11월 최저기온이 0 °C대인 날도 없었다. 그래도 2004년에는 0.5 °C까지 내려갔는데 이와 같은 초이상 고온은 2011년 11월과 동급이거나 더 심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미 10월 말부터 최저기온이 10 °C, 최고기온 20 °C 이상의 고온을 보이더니 11월 2일에 21.1 °C를 기록하였고 16~17일에는 기온이 1 °C까지 떨어지고 최고기온도 10 °C 이하를 기록하는 등 쌀쌀해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곧바로 올라 11월 말에도 느린 기온하강으로 당시 거의 연례행사나 다름없었던 월말 한파는 커녕 최고기온이 10 °C 아래인 날이 없었다. 11월 28일에는 최고기온 13.9 °C, 최저기온 8.0 °C를 기록하였다. 쌀쌀한 여름과 이와 같은 11월 초이상고온은 2011년을 연상케 한다. 또한 12월도 최고기온은 11월에 비해 꽤 낮아졌지만 이렇다할 한파 기록 없이 최저극값이 고작 -5.5 °C에 불과했다. 이정도의 최저극값이면 사실상 1904년 공식 기상관측 이래 1958년 12월을 제외하고 거의 대적할만한 달이 없는 초이상 고온에 속한다. 그리고 다음해 1~3월까지 고온이 지속되었다.

  • 1904년 10월 초순 - 2일 인천에서 27.5℃까지 치솟았다. 일평균도 20℃를 초과. 이 당시 서울이 9월 하순에 일평균 20℃ 이하를 기록하지 않았다면 10월 초순에 가을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 1904년 12월 초순 - 6일과 7일에 인천에서 각각 13.3℃, 13.2℃를 기록. 특히 7일 최저가 9.7℃로 잡혀 12월 답지 않은 날씨를 보였다. 10일에도 9.1℃, 4.4℃, 일평균 6.0℃로 상당히 온화한 날씨를 보였다. 이후 한기가 내려오며 그대로 겨울이 제대로 시작되는 줄 알았으나... 바로 아래에 서술된 1905년 1월 참조.

  • 1905년 1월 - 관측지점은 거의 없었으나 이상 고온이 매우 심했다. 부산의 월평균기온이 6.0°C[1] 를 기록하여 2020년 1월 6.4°C 다음인 역대 2위로 남아있다. 부산은 1904년 공식 기상관측을 시작했기 때문에 심지어 이건 공식 기록이다. 현대 기준으로도 초이상 고온인데 지구온난화와 열섬이 미미하던 시절인 119년 전에 왔다는게 흥미롭다.[2] 인천 역시 0.9°C로 인천의 1981~2010년 1월 평년 기준으로 3.0°C[3]씩이나 높은 편차를 가지고 있다.[4] 하지만 2월은 정반대로 추웠고, 그래서 1905년 겨울은 1월보다 2월이 기온이 더 낮았다. 대략 하코다테의 1905년 1월(0.4℃)과 2월(-4.2℃) 평균값과 흡사했을 것으로 추정.

  • 1905년 9월 10일~15일, 27일 부산 - 7~8월에는 가장 높아도 30.4 °C에 그쳤던 기온이 9월 중순에 갑자기 올라가 10일에 최저기온이 24.7 °C, 최고기온도 11일에 32.0 °C로 뒤늦게 극값이 갱신되었다. 12일~15일에는 28~29 °C를 유지하다가 16일에 꺾이고, 그 뒤 서서히 기온이 올라가 27일에는 최고 27.5 °C, 최저 20.2 °C를 기록하고 다시 꺾였다.[5]

  • 1906년 1월 상순 부산 - 1월 10일 부산 최고기온이 18.4 °C로 역대 1위, 거기에 1월에 대폭우가 내리면서 이날 강수량이 209mm로 압도적 1위에 거의 장마철에 준하는 비정상적인 강수량을 보였다. 인천은 저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비가 오면서 최저기온이 영상으로 올라 이쪽도 고온이 꽤 강했다. 다만 이후 기온이 매우 급락해 중하순은 기록적은 아니나 다소 추운 날씨가 찾아왔다. 사실상 2020년 11월 중순 폭우+초이상고온의 상위호환인 셈이다(...)

  • 1908년 12월 - 서울의 12월 평균기온이 -0.8 °C.[6] 14일에 11.7 °C까지 올라갔다.

  • 1909년 11월 - 11월 3일 서울의 최고 기온 20.3 °C, 23일 최고 기온 18.5°C.


3. 1910년대[편집]


  • 1910년 5월 하순 - 월평균으로는 고온이 아니나, 하순 말에 고온 현상이 있었다. 25일에 기온이 올라 27일에 29.1°C, 28일 31.0°C[7], 29일 28.9°C, 30일 27.2°C, 31일 30.6°C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최고기온 한정이고, 최저기온은 5월 하순까지도 14°C 이하를 벗어나지 못 했다. 즉 2019년 5월 24일의 사례처럼 일교차가 매우 크게 벌어졌다.

  • 1912년 2월 - 서울의 월평균기온이 1.0°C. 2023년 기준으로 23위에 해당된다. 2월 14일 최고기온이 11.2°C까지 올랐고, 월말에 다시 한번 기온이 크게 올라 25일~28일에 최고기온이 10°C를 넘었으며, 26일에는 최고와 최저가 각각 14.7°C, 5.9°C로 크게 올라 3월에 해당하는 날씨를 보였다. 일평균도 9.6°C로 10°C에 가까웠다. 27일에도 최고기온이 14.0°C를 기록했다가 다시 기온이 떨어졌다. 2월이 유독 돋보이는 점은, 1912년 한 해가 거의 저온으로 점철된[8] 상황에서 유달리 2월만 현대에 와도 위화감이 없을 만한 고온을 기록했기 때문. 월평균기온 1.0 °C라는 수치는 2015년, 2019년 2월하고 같다.

  • 1913년 9월 30일~10월 3일 - 9월의 이상 저온과 달리 9월 29~30일부터 기온이 올라 10월 3일 서울의 최고기온 30.1 °C. 역대 10월 일최고기온 1위이자 유일하게 10월에 30 °C를 넘었으며, 이상 고온이 판치는 현대에도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9] 그러나 이후 기온이 급락해서 1913년답게 이상 저온현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 1914년 9월 상순~중순[10] - 서울 기준 9월 상순 평균기온 25.5°C역대 최고 2위.[11] 8월 25~26일에 수그러든 폭염이 29일부터 다시 고개를 들어 서울은 2일에 32.4 °C를 기록하고 3일 새벽에 첫 9월 열대야를 보였다는 등 6일까지는 31 °C 이상을 기록하였다가 폭염이 꺾였다. 하지만 최저기온은 꺾이는데 시간이 좀 걸려 12일에야 비로소 20 °C 아래로 내려갔다. 대구는 한 술 더 떠서 9월 초순 중 4일 동안이나 34 °C를 넘는 폭염[12]이 기승을 부렸다가 7일에야 비로소 폭염이 꺾이고 최저기온도 서울과 같은 날에 내려갔다. 그 이후 서울은 이상 고온을 보이지 않았지만, 대구는 중순에도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16일에 31.4 °C를 기록하였다. 결국 19일에 29.3 °C를 기록한 후, 20일이 되어서야 늦더위도 완전히 꺾였다. 인천에서도 2일에 31.0 °C를 기록하고 최저기온도 24 °C에 육박하는 늦더위가 찾아왔다가 9일의 29.4 °C를 끝으로 10일부터 꺾였다. 강릉도 9월 초에 32.2 °C에 이르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고, 12일 28.5 °C, 19일 29.0 °C 순으로 띄엄하게 폭염이 찾아왔다가 20일부터 꺾이게 되었다. 부산에서도 7일에 30.6 °C까지 올라갔고, 8일부터 11일까지는 일최저기온도 24 °C를 넘었으며, 19일까지 최대 27 °C에 이르는 늦더위가 이어졌다. 목포는 한술 더 떠서, 2일부터 9일까지 31~32 °C에 이르는 폭염이 계속 이어졌으며, 10일에는 최저기온이 25.3 °C열대야까지 관측되었다. 직후 기온이 떨어졌지만 14일부터 다시 27~28 °C 정도의 늦더위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가 20일에 완전히 기세가 꺾였다.

  • 1914년 12월 - 11월 월말에 -7 °C의 추위가 왔지만 12월 1일부터 14.1 °C를 기록한 뒤 고온 현상은 끝났으나 여전히 별다른 한파 없이 기온변동이 적어서 서울의 월평균기온 -1.0 °C로 별로 춥지 않았다. 최저기온 극값은 이 때문에 -10.2 °C[13]에 불과할 정도로 1910년대 12월 치고 매우 높았다. 다음해 1월 중순의 강력 한파를 생각해보면 참 대비된다.[14] 다만 대한민국 한정이고, 만주 이북 지역은 1914년 12월부터 강력한 한기를 축적 중이었다.

  • 1915년 1월 25~27일 - 1월 중순의 역사적 한파가 18일에 풀린 이후 나머지 1월은 평년 수준을 유지했으나 이 기간 한정 기온이 매우 크게 올라 1월 27일에 서울 12.0 °C로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빠르게 1월 12도를 넘겼다.[15] 다만 이 기록도 다음해 겨울에 깨지고 만다. 그러고는 28일 저녁부터 한기가 와서 2월도 대단한 한파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 1915년 12월 ~ 1916년 2월 - 서울의 12월 평균기온 0.8 °C, 이듬해 1월 평균 0.0 °C[16], 2월 평균 -0.8 °C. 12월 6일에 13.5 °C까지 올라갔고, 13일에도 10.0 °C로 올라갔다. 중간에 한파가 있었으나 24일부터 다시 기온이 올라갔고, 12월 29일~31일에는 최고기온이 연속으로 10 °C를 넘어가며 1915년을 마무리했다. 이듬해 1월에도 12월 말의 고온이 이어져서 1월 8일에 12.2 °C까지 올라가 고온현상의 정점을 찍었고[17] 서울의 1월 상순 평균기온도 3.1 °C2017년1979년 이후 역대 3위에 속하는 값을 보였다. 이후 남은 1월도 23일~24일 반짝 한파를 제외하면 그다지 큰 추위없이 넘어갔고, 2월은 한술 더 떠서 최저기온 -10 °C를 밑돈 날이 하루도 없었을 정도였다.[18] 그러나 이런 1~2월의 이상고온을 비웃듯이 3월에는 이상 저온이 발생하여 3월 2일에는 최저기온 -10.1 °C로 뒷북 추위가 찾아오기도 했다. 게다가 3월 평균기온이 0.4도로 그해 1월, 평년 2월과 비슷했다.[19]

  • 1916년 5월 - 11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33.5 °C[20], 12일 대구의 최고기온이 30.4 °C, 서울도 13일에 최고기온 29.7 °C를 기록했다.

  • 1916년 8월 중~하순 - 상순에 있었던 32도의 날씨가 중순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져 8월 18일과 23일에 32.8 ℃를 기록하고 이후 폭염을 기록할듯 말 듯 하다 27일에 33.0 ℃를 기록하면서 폭염일수에 기록되었다. 8월 말인 30~31일을 제외하면 8월 하순에 전부 30도 이상의 기온을 기록했다. 8월 월평균기온도 25.5℃로 일제 시절 치고는 꽤 높았다.

  • 1916년 11월 초 - 11월 3일 목포의 최고기온 23.9°C, 11월 6일 서울의 최고기온 23.3°C를 기록했다. 게다가 11월 치고는 드문 폭우가 내린 것도 특징.

  • 1916년 12월 초 - 1916-1917년 겨울은 현재까지도 한파로 매우 악명높은 겨울로 남아있지만 의외로 겨울 시작은 따뜻했다. 11월 말에 -10℃ 가까이 떨어지며 한파가 다소 강했지만 12월이 되자 풀려서 12월 4일 11.6 °C까지 올랐고 3일부터 7일까지 5일 연속 최고기온 10 °C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중순부터 슬그머니 추워지더니 크리스마스가 지나자마자 돌변하여 본격적인 한파의 길로 들어섰다.

  • 1918년 2월 일부[21] - 1916년 12월(26일) ~ 1917년 2월과 함께 기록적으로 추웠던 1917년 12월(15일) ~ 1918년 1월이었지만[22] 2월로 넘어가며 서울 기준으로 2월 1일 최고기온 8도를 기록하며 현재 2월 하순~3월 초에 해당하는 날씨를 보였다. 특히 6일에는 서울 최저기온도 0.5°C로 영상권을 기록하며 3월 같은 날씨가 벌써 찾아오나 했더니 7일부터 점차 최저기온이 낮아지기 시작해 1월 한파의 후유증이 와서 2월 18일에는 서울 최저기온 -11.4 °C로 영하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23] 이후 2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해 25일에는 서울 최고기온 14.4 °C까지 올랐다. 최저기온도 점차 평년 수준으로 높아졌다.

  • 1918년 4월 - 18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28.1 °C, 대구의 최고기온 25.9°C까지 올랐다.


4. 1920년대[편집]


  • 1920년 3월 19~21일 - 19일 서울 최고기온 19.2 °C, 21일에는 22.2 °C를 기록했다. 3월 초중순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낮았으나 일시적으로 기온이 크게 올랐다. 심지어 인천은 21일 21.9 °C를 기록해 역대 1위이다. 3월에 고온 현상이 흔해진 현대(특히 2014년, 2018년, 2021년, 2023년 3월 등)에도 넘지 못한 기록이다.

  • 1920년 4월 - 28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28.2 °C, 부산의 최고기온 25.6°C까지 올랐다.

  • 1920년 6월 - 9일 서울의 최고기온이 33.4 °C.

  • 1920년 9월 - 9월 5일 서울 최고기온 33.0 °C, 기상관측사상 가장 빨리 9월 폭염을 기록했으며 월평균기온도 21.1 °C로 1981~2010 평년 수준으로 높아 당시 기준 상당히 높았다. 기상관측 사상 첫 21도대를 기록하였다. 1948년 이후 21세기에는 9월 늦더위 현상은 심해졌지만 폭염일수를 기록한 9월이 전무하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대단한 기록이다. 열섬 현상이 흔해진 100년 후 2020년 9월의 21.4°C과 별반 차이가 없다.

  • 1920년 11월 - 1~3일에 서울 최고기온 21 °C의 날씨가 계속 이어졌으며, 5일에 잠시 -0.9 °C로 떨어졌지만 곧바로 올라 8일 최저기온 15.5 °C, 9일에 다시 최고기온 20.2 °C 까지 올랐다. 특히 2일과 8~9일에 전국적으로 극값이 갱신되었는데, 전주 27.0 °C로 역대 2위, 강릉 26.2 °C로 공동 2위(= 1940.11.06) 그 밖의 기상관측을 했던 지역에서도 2011년 등과 같이 순위권에 등록되었다. 한편 인천, 부산 지역은 순위권 기록이 많이 갱신되어서 대구, 목포, 강릉, 전주 등에 비해 순위가 낮지만 그래도 여전히 17위로 매우 높은 순위에 있다[24] 이후 남은 11월도 추위가 심하지 않아 서울 기준 -4.6 °C가 최저였고 월말 한파도 없었다. 이렇게 해서 서울의 평균기온 7.3 °C로 현대 11월과 비슷하며 9월과 비슷하게 서울에서 가장 먼저 평균기온 7도 이상을 경신한 해가 되었다. 이후 11윌 영향으로 12월도 7일까지 계속 난동이 이어지다 9일 한파로 낮아졌고 이후 풀렸지만 하순에 또 강한 한파가 지속되었다.

  • 1921년 9월 1일~17일 - 하순의 기온 하락이 극적이었을 뿐, 1일부터 17일까지 한낮에 28~30℃는 기본이고, 최소 26.5℃ 이하로 내려간 날이 없을 정도로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한달중 제일 가운데인 15일에는 기어이 일평균 24℃까지 치솟았으며, 일최고기온도 30.0℃로 상당히 높았다. 결국 18일부터 기온이 내려갔고, 19일에 기상학적인 가을이 시작되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27일 최기온이 14.3℃에 불과했다.[25][26]

  • 1922년 4월 - 26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27.5 °C, 27일 31.2 °C, 28일 31.3 °C. 서울도 29일 28.4 °C[27]를 기록해 평년보다 기온이 높았다. 월평균 기온도 12.3°C로 일제강점기를 감안하면 상당히 높았다.

  • 1924년 5월 - 30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32.0 °C, 31일에도 31.7 °C를 기록했다. 단 서울은 26.4°C로 크게 높진 않았다.

  • 1924년 11월 - 29일 서울의 최고기온이 16.5 °C. 11월 하순 치고 매우 높다.

  • 1925년 5월 초 - 특히 5~6일에 고온이 강하게 찾아와 5일 강릉의 최고기온 30.9 °C, 서울도 29.6 °C[28]까지 오르며 현대 기준으로도 매우 높은 기온을 보였다.

  • 1926년 2월 - 9일 제주의 최고기온이 15.0 °C, 강릉도 12.5 °C를 기록하며 초봄처럼 따뜻했다.

  • 1927년 1월 초 - 4일부터 6일까지 따뜻한 날씨가 찾아왔고, 특히 6일에는 인천의 최고기온이 13.0 °C, 전주는 무려 15.5 °C를 기록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7일경부터 평년과 비슷해졌다가 1월 중하순부터는 한파가 찾아와서 서울은 22일 -17.7 °C를 기록했다. 그 밖에도 북한 평안북도 지방이 18~23일 한파동안 기온이 크게 낮았는데 이는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 1927년 4월 - 27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30.7 °C. 서울도 24.8 °C로 평년보다 높았다. 이후 5월에는 강릉은 하순에 고온현상이 있었으나 정작 서울에는 이상 저온 현상이 찾아와 하순까지 평년 4월 같은 날씨를 보였다.[29]

  • 1928년 4월 - 서울의 평균기온이 12.1℃. 1922년 4월 이후 6년만에 12℃대 기록. 비록 최고기온은 크게 높지 않아 4월 15일에 24.3℃를 기록한 것이 다였지만, 최저기온은 어쩐 일로 영하가 기록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온풍 유입?으로 인해 흐린 날이 좀 많았던 흔적이 보인다.

  • 1929년 6월 - 서울 월 평균기온 22.9°C로 순위는 2023년 기준 17위이며, 특히 하순에는 2020년 6월처럼 강한 폭염이 찾아와 23~24일에 33.7℃, 25일에는 35.5℃를 기록하였다.

  • 1929년 12월 - 9월은 1912년 다음으로 평균기온이 낮은 이상 저온 현상이 기승을 부렸고 그 영향으로 가을철 전체가 평년보다는 낮은 편이었으나 12월은 11월과 비슷한 기온이 이어지면서 평년보다 높았다. 서울 기준으로 기온자료 설명을 해보자면, 12월 1일에 14.4°C까지 올라갔으며, 5일부터 평년 수준으로 기온이 내려가는 듯 했으나 10일부터 다시 올라 최저 -1.4 °C, 최고 12.1 °C까지 올랐으며, 아예 12월 중순에는 12월 18일에 기록된 -3.7 °C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최저기온으로 인해 평균기온이 매우 높았다. 더군다나 12월 10~14일은 최고기온이 10 °C 이상이었다. 이 때문에 서울의 12월 중순 평균기온이 무려 5.0 °C를 기록하며 후술할 1958년을 능가하는 역대 1위에 해당하는 값을 보였다. 이후 최고기온이 점차 낮아지며 21일부터는 한파가 찾아와서 크리스마스에 최저 -16.8 °C까지 내려갔으나 월말에 또 최저기온이 올라가서 결국 12월 평균기온은 1.5 °C로 2019년 12월보다도 0.1 °C 높았으며 중순까지는 후술할 1948년, 1958년, 1968년을 맞먹는 기록적인 이상 고온을 보였다.[30][31]


5. 1930년대[편집]


  • 1930년 3~4월 - 3월 서울 평균기온이 6.4°C로 관측 사상 최초로 6°C를 돌파하였다. 현대에 와서도 높은 축에 속하는 기온이다. 당시 평년보다는 무려 2~3°C 높았다. 3월 한달을 통틀어 일최저기온이 -3.5℃[32] 이하로 내려간 날이 없었다. 4월에는 18일에 강릉의 최고기온이 28.7 °C를 기록했고, 1930년 4월 서울 월평균기온도 12.4°C로 일제강점기 치고 꽤 높았다.[33]

  • 1931년 9월, 11월 - 7월은 초이상 저온으로 폭염이 없었지만 서울은 8월 9일에 36.0 °C를 기록했으며[34] 이후 9월이 되어서도 최고기온이 쉽게 낮아지지 않았고, 급기야 9월 23일에는 31.4 °C까지 올라갔다.[35] 기록적인 한파로 시작된 1931년 1월~4월, 7월의 이상 저온 현상이 무색하게 평년보다 기온이 높았고 1931~1932년 겨울도 따뜻한 편이었다. 이후 10월은 이상 저온이 찾아와서 추워졌으나 11월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11월 평균기온이 7.7°C로 나왔으며, 기온 분포만 보면 2011년, 2022년 11월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비슷하다. 11월 14일에 20.2°C까지 올랐다가 18~19일 경에 한파가 찾아왔고, 20일부터 금세 날씨가 따뜻해지는 양상을 보였다.

  • 1932년 1월 - 강한 한파가 왔던 1931년 1월과 달리 1월 6일, 즉 소한 무렵에 서울 최고기온 14.4°C[36]까지 올라 역대 서울 1월 최고기온을 경신했다.[37] 평균기온도 -0.6°C로 1916년보다는 낮지만 현대에 와서도 이상 고온이다.

  • 1932년 5월 - 21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33.5 °C, 30일에 31.5 °C를 기록했다. 서울에서는 2일30.2°C를 기록하였고[38], 특히 17일에 33.5 °C[39]를 기록하여 역대 가장 이른 시기에 폭염일수가 관측되었다. 월 평균기온은 17.0°C인데 일제강점기 당시를 감안하면 높은 기온이다.

  • 1933년 4월 - 24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28.1 °C, 29일에 28.3 °C를 기록. 특히 26일의 최저기온이 3.5 °C를 기록해 일교차가 25 °C나 벌어졌다.

  • 1933년 12월 - 한파로 시작한 1933년이지만 12월에는 서울 평균기온 0.4℃로 다소 따뜻한 날씨를 보였다. 그러나 이달 말부터 기온이 크게 떨어져 다음해 1월에는 전대미문한 한파를 기록해서 큰 대비를 보였다. 즉 전년도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 1934년 12월 - 이 해는 11월 이상 저온 현상으로 한강이 12월 4일로 가장 빨리 얼었음에도 불구하고[40] 12월 서울의 월 평균기온이 0.8°C를 기록해서 일제강점기 치고 꽤 높았다. 현대에 와서도 조금 높다. 흐름을 보면 일제 시절 겨울 중 가장 순탄하고 무난하게 흘러간 12월이었다. 12월 내내 롤러코스터처럼 급작스럽게 기온이 오르내리는 현상이 관측되지 않았다. -10°C 이하의 한파도 없었고, 최고기온 영상도 한달 31일 중 30일이나 관측되었으며, 그렇다고 10°C를 넘는 고온 현상도 없었다.

  • 1935년 3월 - 전년도와 다르게 기온이 올라서 서울 평균기온 5.7°C를 기록했다.[41]

  • 1935년 4월 - 26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30.0 °C, 전주도 27.7°C까지 올라 평년 6월 수준을 보였다.

  • 1935년 9월 상순 - 늦더위가 심해 서울은 9월 상순에 30~32도를 연일 기록하였고 결국 9월 8일 33.0 °C로 폭염이 나타났다. 게다가 열대야가 기록되었으며[42] 오전 10시에 이미 30 °C를 찍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무서운 난기를 보였다. http://agora.ex.nii.ac.jp/cgi-bin/weather-chart/search_day.pl?lang=en&year=1935&month=9&day=8 이것을 보면 태풍이 서해상으로 올라가면서 다량의 난기가 공급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태풍은 전라도 부근에서 동해로 방향을 틀어서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여파로 서울 9월 상순 평균기온은 24.9°C로 매우 높았으며, 역대 최고 7위이다. 그리고는 며칠 뒤 큰 한기가 남하하면서 9월 14일에는 6.1 °C라는 중순 역대 최저기온을 달성하는 극과 극의 날씨를 보였다. 남은 하순도 딱히 고온은 없었던 모양.

  • 1936년 5월 - 11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32.2 °C, 29~30일에도 30°C를 넘기며 초여름 더위가 다소 심했다. 서울도 18일에 27.4°C까지 올랐다.

  • 1936년 12월 - 최악의 한파의 서막을 알린 1935년 12월과 다르게, 12월 17일에 서울 최고기온이 14.6 °C를 기록했다. 서울의 12월 최저기온도 22일 -9.3 °C로 영하 10도 이하를 기록하지 않았으며, 서울 기준 월평균기온도 -0.5 °C로 일제강점기 치고 꽤나 높았다.[43] 제주도 역시 12월 17일에 최고기온 23.3℃를 기록했기에, 이 당시의 고온 현상은 강력한 남풍이 북상해 온 영향으로 여겨진다. 습하고 더운 남풍이기에 체감 온도는 겨울답지 않게 상당히 높았을 것이다. 다음해 1월은 한파가 있기는 했으나 일제 강점기 치고는 심하지 않다보니 평균기온 -3.4°C로 일제시대 치고는 높은 편이었다.

  • 1937년 3월 - 2일 최고기온이 무려 15.2℃로 3월 2일 극값 중 역대 1위. 바로 1년전 3월이 유래없는 대한파에 몸살을 앓았던 것과 완벽하게 대치된다. 아이러니하게 3월 전체로는 이상저온 축에 속해 있다.

  • 1937년 5월 - 13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34.2 °C까지 치솟았다. 반면 서울은 23.9℃로 평년 수준을 보였다.

  • 1938년 2월 28일~3월 1일 - 2월 28일에 날씨가 풀려 14.7℃까지 오르더니, 3월 1일에는 15.9℃를 기록하였다. 이는 3월 1일 극값 중 1위이다.[44] 2년전 3월이 대한파로 3월 극값을 줄줄이 세웠는데[45], 반대로 다음해 3월은 상술되었고, 또 다음해 3월은 첫날에 극값 1위를 세웠으니 아이러니하다.

  • 1938년 4월 ~ 5월 - 강릉에서 4월 19일에 30.9 °C, 30일에 30.5 °C, 5월 5일에 31.2 °C, 14일에 33.1 °C를 기록했다. 서울 역시 5월 하순에 고온 현상이 있었고 27일에 최고 30.4°C, 평균 23.0°C로 사상 2번째로 평균 23°C를 기록했다.

  • 1939년 9월[46]~10월 18일 - 9월 초중순에는 강한 늦더위로 2일 서울에서 35.1°C를 기록했고 9월 상순 평균기온도 25.3°C로 역대 최고 3위를 기록하는 등 다소 더웠으나 9월 말에 매우 내려가더니 다시 크게 올라 10월 11일 ~ 14일에 28 °C에서 32 °C 사이의 기온을 기록한 뒤 내려갔다. 서울도 10월 14일에 29.3°C까지 올라 10월 중순 역대 1위를 기록했다.


6. 1940년대[편집]


  • 1940년 5월 - 21일과 22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32.8 °C, 27일에 31.2 °C를 기록했다. 그 밖에도 높은 기온을 기록한 날이 많아 강릉 5월 평균 기온이 19.1 °C로 기록되었다. 서울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5월 10일에 30°C를 기록하여 5월 상순에 30도 이상을 기록했다.

  • 1940년 11월 상순[47] - 10월부터 이어진 이상 고온이 11월에도 이어져 11월 1일에 강릉의 최고기온 25.1 °C, 부산 23.7°C 등을 기록했다. 2일에도 제주 25.0°C, 목포 24.5°C, 부산 24.2°C, 대구 23.8°C까지 올랐고, 서울 23.6°C, 전주와 광주도 23.5°C까지 오르는 등 전국적으로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3일에는 서울은 약간 내려갔지만, 제주 25.7°C, 부산 25.2°C 등 남해안을 중심으로 고온이 지속되었다. 이후 4~6일에는 2011년과 맞먹을 정도로 고온이 매우 심했다. 4일에 전주의 최고기온이 무려 26.7°C를 기록했고, 인천에서도 26.2°C[48][49], 제주 26.1°C, 목포 25.3°C 등을 기록하며 도저히 11월이라 할 수 없는 날씨를 보였다. 서울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최고기온이 25.2°C를 기록하면서 2011년 11월 5일, 2023년 11월 2일과 함께 11월에 25도를 초과했다. 이는 평년 9월 중하순 수준이다. 그 밖에 광주 24.6°C, 부산 24.5°C 등을 기록하였다. 5일에도 고온이 계속 이어져 제주 25.5°C, 인천 25.2°C, 전주 24.7°C까지 올랐고, 서울도 23.7°C를 기록하며 전날보다는 낮았지만 여전히 평년보다 6°C 이상 높은 초이상 고온을 보였다. 특히 제주의 경우 4~5일 이틀 연속으로 일평균 기온이 20도를 초과하면서 사실상 여름 날씨나 다름없었다. 6일에도 강릉 26.2°C, 제주 24.3°C, 대구 23.9°C 등을 보이며 전국적으로 20°C를 넘는 포근한 날씨를 보였다. 이후 7일부터 고온이 해소되고 평년 수준을 회복했다.

  • 1941년 1월 상순 - 2일부터 9일까지 따뜻한 날씨가 찾아왔고 낮아도 영하 5도 정도였으며 1월 7일에는 고온이 가장 강력해 12.3 °C까지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중순에 접어들자 다시 추워졌고, 1월 하순에 본격적인 맹추위가 기승을 부렸다.[50]

  • 1942년 3월 - 서울의 평균기온이 5.9°C. 당시 평년보다 매우 높았다.

  • 1942년 4월 - 25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29.3 °C, 27일에 30.7 °C를 기록했다.

  • 1942년 6월[51] - 서울 월평균기온이 22.0°C로 1940년대 6월 중 가장 높았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평범했지만 5일 서울 최고기온이 30.5°C로 폭염의 시작을 알리더니 6일에는 33.6°C, 6월 12일에는 무려 34.7°C[52]를 기록하였다. 이후 19~23일에도 32°C를 넘기는 더위가 나타났으며, 특히 20일에는 34.6°C로 다시한번 35°C에 근접하였다. 강릉은 고온이 더욱 심했는데, 16~17일에 무려 36.8°C라는 대기록을 이틀 연속으로 세우게 된다. 이는 강릉의 6월 역대 최고기온 3위에 해당한다. 대구광역시의 경우도 5일 33.6°C, 11일 33.8°C를 기록하여 당시 치고는 심한 폭염이 있었다.

  • 1943년 3~4월 - 3월 서울 평균기온 5.4°C로 일제 시대 치고 평년보다 매우 높으며 4월 말에는 25~28°C의 초여름 날씨를 보였다.

  • 1943년 7~8월 - 1943년 여름이 더운 편이었으며 특히 8월 말에는 24일 38.2°C, 28일 37.9°C를 기록하여서 평년보다 9~10°C 가까이 높았으며, 9월 초까지 열기가 식지 않아 9월 1일에 33.4°C까지 올랐다. 그러나 9월은 일교차가 커서 20도대로 그맘때 수준이었다. 자세한 것은 1942-1943년 폭염 참조.

  • 1944년 8월 하순~9월 상순 - 9월 1일 대구의 최고기온이 무려 37.2°C를 기록하였다.

  • 1944년 11월 1~3일, 23일~30일 - 11월 1일~3일에 갑자기 한낮 기온 20~23°C의 날씨가 찾아왔다가 중순에 다시 평년 이하의 추위를 보여 기온이 내려갔으며, 23일부터 다시 따뜻한 날씨가 찾아왔다. 특히 11월 24일 최고기온 20.8°C,[53] 다음날 최저기온 기록도 10.5 °C로 현대 11월 25일 평년(1991-2020년 평균) 최저기온 1.1 °C보다 9도 이상 높은 강력한 이상 고온에 속한다.[54] 25일의 일평균기온 수치도 강력한 이상 고온을 보인 2011년 다음으로 역대 2위인 14.2 °C를 기록하였다.[55] 최고기온도 20.0 °C로 이틀 연속으로 20°C대를 기록했다. 그나마 21~22일이 비교적 낮고 27일부터 월말까지 점점 낮아져서(그럼에도 최저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상당한 고온을 보였다.) 하순 평균기온 9.3 °C(3위)로 당시는 1위였으나 현재는 3위로 내려갔지만[56] 11월 하순까지 매우 따뜻한 날씨를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57]

  • 1945년 4월 - 16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28.4°C, 22일에 29.6 °C를 기록. 서울 역시 29일에 28.9°C를 기록했다. 정작 다음달인 5월은 31일 29.2°C의 고온 현상을 빼고 온통 저온으로 도배되어 5월 평균 최하위를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체감 기온도 4월 말이 5월보다 더 더웠을 것이다.[58]

  • 1945년 9월 - 서울의 9월 평균기온 21.3°C로 순위는 상위 28위이며 1981~2010년 기준으로도 조금 높다. 1~3월과 5~7월에 이상 저온을 기록한 것과 상반되게도 8월에는 중순부터 늦게나마 무더위가 찾아왔으며, 9월에도 그 여파가 남아 나흘 남짓한 기간 빼고 27~29°C에 이르는 날씨가 계속되었는데, 특히 9월 29일29°C를 기록했을 정도였다. 결국 30일이 되어서야 늦더위가 끝나고 기상학적 가을로 접어들었다.

  • 1946년 9월[59]~10월 2일 - 주석에 표시된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27~30°C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늦더위가 계속 되었으며, 9월 16일에는 30.4°C를 기록, 특히 9월 30일30.2°C, 10월 첫날에도 29.9°C를 기록하였다.[60] 2일에 비가 온 것으로 보이는 날씨를 보인 뒤 기온이 급락하였다. 특히 5일에 무려 일평균이 9°C대까지 떨어진 것이 압권.

  • 1946년 11월[61] - 서울 월 평균기온 8.8°C, 특히 월 일평균 최고기온이 14.9°C로, 2011년 11월보다 높으며 2022년 11월(15.4°C) 전까지 76년간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1946년 11월은 역대 11월 강수량 하위 1위(1.5mm)이다. 즉 2019년 1월처럼 비가 거의 내리지 않은 고온건조한 날씨를 보였던 셈이다. 또한 11월 21일에는 서울의 최고기온이 무려 19.5°C를 기록하여 11월 하순에 20도에 근접했다.

  • 1948년 9월 - 늦더위로 1일 최고기온이 33.6 °C, 의외지만 이 해를 끝으로 75년이 지난 현재까지 9월에 33℃가 넘는 폭염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62][63]

  • 1948년 12월 - 전국적으로 유난히 따뜻한 날씨를 보였다. 특히 서울은 12월임에도 최고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없어 평균 기온이 3.8 °C로 기록되며 1958년 12월 이후 역대 2위에 해당한다.[64] 부산은 월 평균기온 9.2°C를 기록해 역대 12월 1위이다. 11월 말~12월 초의 작은 한파를 제외하면 그다지 춥지 않은 날씨가 계속 이어졌고 다음해 1~2월도 이만큼은 아니지만 따뜻했다. 오히려 11월 28일 관측된 11월 최저기온 -8.7 °C가 12월 3일에 관측된 12월 최저기온 -7.7 °C보다 1 °C나 낮은 기현상이 벌어졌을 정도이다. 12월 4일 이후 추위가 풀리면서 11월 말 정도의 기온이 계속 이어졌다. '장기 11월'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 이 해 첫눈은 따뜻한 날씨 때문에 관측 사상 가장 늦게 내렸다.(12월 31일)

  • 1949년 5월 - 9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31.1 °C, 10일 29.4 °C, 11일 33.1 °C, 18일 33.0 °C. 서울 역시 11일에 최고 30.6°C, 일평균 23.5°C를 기록했는데, 주목할만한 점은 2012년 5월 2일에 일평균 23.1°C를 기록하기 전까지 63년 동안 5월 중 가장 빠른 시기에 높게 기록된 일평균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7. 1950년대[편집]


  • 1950년 1월 - 17일 서울 10.1°C, 제주 21.8°C, 한편 하순에 폭우가 왔다. 월초에 강한 한파가 있었지만 이 여파로 인해 -1.3°C로 현재 치고도 따뜻한 1월이다.

  • 1950년 4월 - 서울의 월평균기온 13.1°C. 관측 사상 최초로 13°C를 넘어섰다. 현대에도 평년보다 높고 당시 기준으로는 그냥 고온도 아니고 초이상 고온이다. 전후 49년과 51년 4월 월평균 9℃에 머물러서 더욱 눈에 띈다.

  • 1950년 5월 - 15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32.0 °C. 29일에는 서울에서 33.7°C를 기록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5월 중 제일 높은 기온[65]을 기록한 것인데, 다음날은 한술 더 떠서 34.4 °C로 자체 경신하고 말았다. 이 온도는 지금까지도 역대 서울의 5월 최고기온 1위로 남아있다.[66][67] 이 여파인지는 몰라도 서울 평균기온이 17.5°C를 기록해서 당시 치고는 상당히 높았다.

  • 1952년 4월 - 9일 울산의 최고기온이 28.0 °C. 서울도 10일에 무려 26.0 °C에 가깝게 예보한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2022년 4월 같은 시기와 거의 동급인 당시 기준 매우 심한 초고온이다.#

  • 1952년 5월 - 비공식 기록에 따른 서울의 평균기온은 19.0°C. 4월은 이상 저온이었고 30일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봄날씨가 이어졌는데, 5월 첫날에 갑자기 최고기온이 26.8°C까지 치솟아 일평균기온이 17.2°C를 기록.[68] 3~4일에 구름이 끼어서인지 낮기온 26°C대는 물론이고 최저까지 16°C를 기록하여 2012년, 2017년, 2020년, 2023년처럼 5월 상순에 일평균기온이 20°C대를 넘겼다. 6일 최고기온이 28°C까지 치솟아 역시 일평균기온이 20.4°C로 기록되었다. 그뒤 15일, 22일, 29일에 최고기온 30.2°C까지 치솟았고, 일평균기온이 21°C를 기록했다. 5월 한달을 통틀어 가장 낮은 최고기온과 평균기온이 월말인 30일의 19.6°C, 16.7°C였을 정도로, 5월 내내 계속 고온 현상이 일어났었다고 한다. 다만 이 고온현상이 중서부지방에만 국한되었는지, 동시기 대구의 공식 월평균기온은 17.6°C에 불과하였다. 중서부에만 국한되었다는 점을 볼때 2003년 5월의 전례인 것으로 추측. 이 사이트(ecmwf 모델의 재해석본)을 참고하면 서울은 5월 1일 28.0 °C, 15일에 32.0 °C를 기록하였고 서울에서 단 하루도 5월 최고기온이 23도 이하를 기록한 적이 없는 매우 심한 초고온 현상이 월 내내 일어났다고 한다. 사실상 23~25도는 잠깐 보였던 수준이고 대부분이 26도 이상이었으므로 사실상 6월 날씨를 보인 셈이다.

  • 1952년 11월 - 역시나 이 사이트를 참고하면 17일~22일의 반짝 추위가 있었지만 초순과 하순이 매우 심한 고온이었다. 서울은 11월 5일에 21.0 °C, 특히 하순이 압권으로 28일에 17.0 °C를 기록할 만큼 추위가 풀리고 최고기온 두자릿수 이상의 심한 이상 고온이 21일 이후부터 내내 이어졌다고 한다. 게다가 반짝 추위조차 겨우 영하 3도에 그쳐 평범한 수준이었으며, 공식 기록이 남았다면 11월 평균 9도대가 2년 먼저 깨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69] 이 고온 현상은 12월 1일까지 이어지다 2일에 영하 10도의 큰 한기가 와서 해소되었다. 1998년 11월과 기온 양상이 비슷하나 고온 강도는 1952년이 훨씬 심했다.

  • 1953년 1월 9일~11일 - 10일 울산의 최고기온이 19.3°C[70]. 대구도 10일에 15.5 °C를 기록했고, 부산은 10일에 13.3 °C, 11일에 17.2 °C를 기록했다. 광주는 9일에 12.2 °C, 10일에 14.7 °C, 11일에 10.2 °C를 기록. 이 따뜻한 날씨는 수도권에서도 마찬가지였는지 인천에서 9일과 10일에 8.0 °C를 기록했다. 다만 인천을 제외한 수도권은 이 사이트에서 알 수 있듯이 딱 이 시기에만 잠시 고온 현상이 일어났고 나머지는 -13~-18°C의 매우 추운 겨울 날씨가 이어져서 비공식 기록으로 서울의 월평균기온 -5 °C 정도를 기록했다.[71] 수원에서도 1월 9일에 10.2℃까지 올라갔다.

  • 1953년 9월 하순~10월 상순 - 이 사이트에서 9월 25일 30.0 °C, 10월 초순에는 최고기온 27~28도로 도배되어 마치 2021년 10월 초순의 심한 고온을 연상시키는 날씨를 보였다. 9월 초의 날씨가 중순과 하순에 가서도 계속 이어진 양상을 보인다. 10월 10일 이후 그나마 고온이 해소되어 평년 수준의 날씨를 보였다.

  • 1953년 12월 - 1일 전국이 초이상 고온이었으며 포항, 전주, 강릉 등에서는 평년 10월 수준인 일평균기온 16~18.2°C의 날씨가 찾아왔으며 전주가 23.0°C, 강릉이 21.8°C를 찍었다.

  • 1954년 11월[72] - 서울의 11월 평균기온이 9.5 °C로 역대 4위. 2003년 11월과 같고, 당시 평년에 비하면 무려 3°C 이상 높다.[73] 특히 11월 23일에는 서울의 최고기온이 무려 19.1 °C를 기록했고, 28일에도 18.1℃까지 올랐다. 이로 인해 11월 하순 평균기온은 10.8℃유일하게 10℃를 넘겼으며 역대 1위이다.[74]

  • 1955년 4월 - 12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30.6 °C. 같은 날 서울에서도 25.0℃까지 올라갔고, 당시 미군이 관측한 수원의 기온은 무려 28.0℃.

  • 1956년 4월 16일 제주도 - 제주시의 최고기온이 30.9 °C로 기록되었다. 단 서울은 이상 저온이 심해서 고온이 없었다.

  • 1957년 11월 - 서울의 11월 평균기온이 8.3°C로, 순위는 2022년 11월 기준 21위이다. 중순부터 영하의 날씨가 찾아오기 일쑤인 11월인데도 놀랍게도 26일까지 영하가 관측되지 않았으며, 최고기온은 비록 18도를 넘진 않았지만[75] 13~17도의 날씨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27일부터 기온이 낮아져 영하 1도를 기록했고, 28~30일에는 영하 5도를 기록해 겨울 날씨가 관측되었다.

  • 1958년 5월 - 중순에 서울의 최고기온이 27.6 °C까지 오르더니, 더위가 점점 심해져 29일에는 29.9 °C까지 치솟았다. 이때 전국에서도 불같은 폭염이 찾아와 광주 31.8 °C, 울산 33.6 °C, 포항 33.7 °C[76], 대구 33.8 °C[77], 강릉 34.5 °C를 기록했다. 고온 현상은 6월에 더 심해져서 7~8월보다 기온이 높은 폭염이 찾아오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폭염/사례 문서 참조.

  • 1958년 12월 - 1948년 12월과 마찬가지로 전국에서 12월에 유난히 따뜻한 날씨를 보였다. 이때도 서울에서 최고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없어서 10년 전보다 조금 높은 4.0 °C로 관측 사상 가장 높은 12월 평균기온을 기록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1991-2020년 평년치 기준 평년보다 3.8도나 높아서 현재도 평년대비 이상 고온 편차가 지금까지 1위를 기록하고 있는데(2위는 1948년 12월과 2020년 1월의 +3.6°C) 1931-1960년 평년치에 따르면 서울의 12월 평균기온은 -1.2 °C로 당시기준 평년보다 5.2°C나 높은 셈이 된다 최악의 이상 고온으로 불리는 2020년 1월이 당시 평년보다 4.0도 높아서 당시 기준으로 비교하면 1958년이 훨씬 심했다. 심지어 현대 편차로 비교해도 열섬현상도 훨씬 덜했던 1958년 당시에 2020년 1월보다 조금 더 심한 이상 고온이 나타났던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12월까지 늦가을정도로 느껴진 셈이다. 그리고 최저기온 평균도 0.0도로 영상이다. 또 서울의 12월 최저기온이 12월 6일 고작 -3.2 °C에 그쳐 오히려 11월 20일에 관측된 11월 최저기온 -3.3 °C보다도 높았다.[78][79] 부산과 목포의 경우 아예 최저극값이 영상이었다. 그리고 12월 23일에는 최고기온이 12.1 °C를 기록할 정도였다.[80] 즉 11월 말의 날씨가 계속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1월이 되자마자 한파가 와서 서울은 5일 -19.8 °C를 기록하였으며 최고기온조차 -13.1 °C를 기록하며 엄청난 대비를 보여주었다(...) 한파는 1월 중순까지 이어졌다.[81] 1월 한파의 자세한 내용은 한파 문서 참조.

  • 1959년 2월 - 서울의 평균기온이 2.4°C로 1989년 2월과 같으며, 순위는 10위이다. 1월 21일에 강력한 한파가 간 이후로 가장 낮은 기온이 1월 31일의 -8.4°C일 정도이며, 2월 12일 이후로는 겨울이 다 갔다고 봐야 할 정도로 기온이 서서히 높아졌다. 전년 12월이 12월 중 최강의 고온 현상을 보인 것을 생각하면, 1958~1959 겨울 시즌은 1월을 제외하곤 한파가 힘을 못 쓰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만약 1월의 한파가 없었더라면 2019~2020년 겨울과 맞먹었을 뻔 했고 1월마저도 초고온이었다면 능가했을 뻔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2월부터 초봄과 다름없는 셈이다.

  • 1959년 5월 - 28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32.1 °C. 서울 평균기온도 17.9°C로 1950년대 치고 꽤나 높고 1981~2010년 평년보다도 0.1°C 높았다.

  • 1959년 12월 - 12월 1일 최고기온이 12.7°C였으며, 2일 최저기온은 6.3°C까지 올라갔다. 그 후 며칠 간 평년 수준으로 내려갔다가 8일부터 1주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다시 기온이 올라갔다. 특히 이 기간 내내 최고기온이 10°C을 넘은 것이 압권. 12월 10일에 14.3°C까지 올라갔으며, 나머지도 11~13°C를 기록하였다. 13일에는 최저 기온이 7°C를 기록했을 정도다. 그러나 전년 12월처럼 이상 고온이 오래 이어지지는 못 해서, 15일 이후 이상 고온이 끝나서 며칠만에 -13°C까지 급격하게 떨어지는 한파가 찾아왔다. 그러나 이 이상 고온이 심해 서울 평균기온은 1.1°C로 다소 높았다.


8. 1960년대[편집]



8.1. 1960년[편집]


  • 3월 - 서울의 평균기온이 6.7°C. 30년 만에 기록이 갱신되었다. 당시 1위였으나 이후 63년이 지난 현재까지 수많은 해들이 이 해 기록을 넘기면서 현재는 15위로 추락했다.


8.2. 1961년[편집]


  • 9월~11월 - 서울의 9, 10, 11월 평균기온이 각각 21.5℃︎, 15.6℃︎, 8.9℃︎이고 일부 날들에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8.3. 1962년[편집]


  • 5월 - 특히 31일 광주의 최고기온이 33.7 °C, 전주는 무려 폭염경보 기준에 충족한 35.1°C[82]까지 기록하며 호남 지방을 중심으로 5월 폭염이 기승을 부렸고, 같은 해 6월 최고 극값보다도 높았다. 서울의 경우도 최고기온 30.7 °C, 일평균기온도 22.8°C로 평년보다 다소 높았다.

  • 6월 - 6월 중순 일부에 강력한 6월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특히 강원도 일부, 영남 지방의 기온이 크게 올랐는데, 6월 17일 강릉의 최고 기온이 무려 37.0°C까지 기록하였고, 대프리카로 유명한 대구에서도 35.4 °C[83]를 기록하며 폭염경보 수준에 해당하는 무더위를 보였다. 서울도 32.4 °C로 폭염 기준에는 못 미쳤지만 여전히 평년보다 더운 날씨였다.

  • 12월 - 서울의 12월 평균기온이 1.1°C였다.[84] 연말에 한파가 오기 전까지는 최저 극값이 12월 6일에 기록된 -8.4 °C로 -10 °C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으며, 최고기온도 대부분 영상권이었다. 다만 새해를 이틀 앞둔 30일부터는 강한 한파가 찾아와서 다음 해 1월에는 최악의 한파가 와서 서울 평균기온 -9.2°C를 기록해서 10 °C 이상 하락했다. 대략 중순 추위가 사라진 2020년 12월이라 보면 된다.


8.4. 1963년[편집]


  • 3월 일부 - 27일 포항 최고기온 23°C, 31일 서울 최고기온 19.2°C, 서울 월평균기온은 5.5°C로 당시 기준을 감안하면 평년보다 높았다. 최고기온 평균은 1981~2010년 평년보다도 높았다. 그리고 이유 불명으로 한강 결빙/해빙 기록이 누락되었는데, 해빙은 이 3월 중에 풀렸을 가능성이 높다.


8.5. 1964년[편집]


  • 1월 - 서울 평균기온 -0.1°C로 21세기에도 매우 높은 수준의 고온이다. 게다가 당시 평년치 기준으로 평년보다 4.6°C[85]나 높은 값이였다. 전년 1월은 당시 평년치보다도 4.5°C나 낮아 불과 1년만에 평균기온 차이가 무려 9.1°C에 달했다.[86] 1월 12일에 10.0℃를 기록했고, 최저마저 4.2℃로 1월이라 보기 어려운 평년 3월 수준의 온화한 날씨[87]가 기록되었으며, 전반적으로 -10℃ 이하는 커녕 -8.2°C 미만으로 떨어지지 못 하는 어정쩡한 날씨가 계속되었다가, 2월 11일에서야 -10℃ 이하를 내려가게 되었다.

  • 4월 - 서울의 4월 평균 기온이 14.1 °C로 당시 기준 상위 1위이고, 현재도 6위이다. 수원은 기상 관측 시작부터 4월에 이상 고온을 맞이해 4월 평균 13.7 °C를 기록, 역대 4월 평균 5위이다. 전주는 무려 16.3°C로 당시 기준 상위 1위이며 공동 상위 1위를 기록. 제주시도 16.2°C로 아예 상위 1위이다.[88] 반대로 동해안은 강한 이상 저온이 나타났으며 강릉은 7.9°C로 하위 1위이다. 당시 기준 월평균기온 상위 1위와 하위 1위가 동시에 나타나는 전무후무한 현상이 나타났다. 아무리 이상 고온이나 이상 저온이 심해도 한달 내내 어디는 초이상 고온, 어디는 초이상 저온이 나타나는 현상은 1964년 4월 외에는 없다.[89][90] 즉 이 달은 한 달 내내 동풍이 불어 매일 푄 현상이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8.6. 1965년[편집]


  • 5월 하순 일부 - 대체로 큰 더위 없었던 5월이었지만 5월 28일에 29°C, 5월 29일에 31°C를 기록하며 반짝 더위가 있었다.

  • 9월 하순 ~ 10월 4일 - 9월 21일9월 24일에 서울의 최고 기온이 각각 31.0°C, 30.2°C를 기록하며 2015년, 2017년처럼 9월 하순에 30°C를 초과하며 늦더위가 찾아왔다. 월평균기온도 20.9°C로 당시 치고는 높은 편이다. 10월 상순 일부에도 늦더위가 찾아와 10월 2일에 서울에서 29.2°C를 기록하는 등 10월 1~4일에 26°C를 웃도는 이상 고온이 나타났다.


8.7. 1966년[편집]


  • 2월 일부 - 평년과 비슷했던 1월과 달리 2월에는 평년보다 따뜻한 날씨를 보인 날들이 많았다. 2월 2일에는 2월 상순임에도 불구하고 제주이 무려 17.1°C를 기록하는 등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15°C를 웃도는 고온을 보였고, 서울에서도 11.8°C를 기록하며 평년보다 따뜻했다. 그리고 2월 마지막 날에도 마치 겨울의 마지막 날이고 봄이 시작되는 날인듯 평년보다 높은 날씨를 보였다.


8.8. 1967년[편집]


  • 5월 - 서울의 평균기온이 19.3 °C[91]로 역대 6위이다. 비록 30 °C를 초과하는 초이상 고온은 없었으나,[92] 낮아도 23~24 °C는 기본이고 27~29 °C를 기록한 날도 은근히 많았다.[93] 게다가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봄인지 여름인지 헷갈릴 정도로 이상 고온이 기승을 부렸다.[94] 물론 추측이지만 아마도 이때 전국 기상관측을 시작했다면 전국 평균기온이 18°C대 초반을 기록해서 2014년까지는 5월 신기록을 깨지 않고 2015년부터 5월 평균기온을 경신했을 수도 있다. 좀 더 과장하면 2017년을 넘겼을 수도 있다.


8.9. 1968년[편집]


대전, 강원도 속초, 충청남도 서산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 1월 5~6일 - 1월은 전년도 12월과 다르게 중순 일부를 제외하고는 한파가 거의 없었고 대체로 평범한 날씨를 보였으며, 이 기간에는 이상 고온이 나타났다. 1월 5일 서울의 최고기온 8.0℃, 전주는 13.5 °C까지 오르며 평년 2월 하순의 포근한 날씨를 보였고, 다음 날에도 서울 8.2℃, 광주 11.8℃ 등 1월 초순 치고 따뜻한 날씨를 보였다.

  • 3월 20일 - 서울 최저기온 10.2℃, 3월 중순에 두자리수 최저기온 기록. 같은 날 제주의 최저기온보다도 높았으며, 최고기온도 16.8℃로 높은 편이다.

  • 5월 일부 - 5월 첫날부터 기온이 초여름 수준으로 올라 서울 26.5℃, 전주 28.7℃, 대구 28.4℃ 등을 기록했다.[95] 이후에도 극단적인 고온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5월 15~16일에도 각각 28.2℃, 28.0℃의 초여름 더위가 이어졌다. 이에 따라 기상학적 여름이 5월 15일에 시작되었다.[96] 이후 5월 하순은 흐린 날씨로 일사가 차단되어 기온이 낮아졌다.

  • 6월 일부 - 6월 극초반에 잠깐 저온이 찾아온 뒤 이후 기온이 크게 상승하여 6월 6일 대구의 최고기온이 34.2℃를 기록하며 6월 상순에 폭염일수를 기록하였고, 서울은 28.4℃로 평년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었다. 이후 6월 9~11일에 잠깐 낮아진 뒤 6월 중하순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날씨를 보였다.[97]

  • 7월 하순 - 7월 초중순은 장맛비가 자주 내리면서 기온이 크게 오른 날들이 없었으나, 7월 하순부터 본격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대프리카로 유명한 대구에서는 7월 22~26일 5일 연속으로 최고기온이 폭염경보 기준인 35℃를 넘겼으며, 그 중 7월 26일에는 37.2 °C까지 치솟았다. 경상북도 포항에서도 7월 23일에 35.9℃까지 올랐으며, 서울7월 27일에 34.2℃까지 기록되었다. 당연히 열대야가 나타난 지역들도 다수 존재했다. 이로써 7월 하순은 초중순과 달리 무더웠던 날들이 많았다. 이 무더위는 8월 초반까지 이어졌다.

  • 9월 초중순 - 9월 초중순은 며칠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늦더위가 찾아왔다. 서울의 경우 9월 8~18일까지 12일을 제외한 모든 날의 최고기온이 28℃ 이상이었으며, 그 중 9월 18일에는 31.4℃까지 올랐다. 이후 9월 하순은 대체로 저온을 보여 다소 더웠던 초중순에 비해 확실히 선선했다. 그나마 9월 26일에 잠깐 26.8℃까지 오르긴 했다.


  • 11월 상순, 하순 - 11월은 상순과 하순 일부에 이상 고온이 나타났다. 11월 3일 서울의 최고기온 20.6℃를 기록하였고, 11월 5일에는 최저기온이 11.0℃를 보이며 두자리수를 기록했다. 이후 11월 9일부터 추워지기 시작하여 11월 중순은 평년보다 비슷하거나 다소 낮았다가 하순에 다시 기온이 올라 11월 24일에 최고기온 18.1℃까지 올랐고, 이틀 뒤인 11월 26일에는 최저기온이 12.1 °C를 보이면서 12월을 나흘 앞두고 11월 하순에 두자리수 최저기온을 기록하였다.[98]고온 현상12월에도 계속 이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바로 아래 참고.

  • 12월 - 서울의 평균기온이 3.1 °C로 역대 12월 평균 3위[99]이며 기록적인 한파가 왔던 전년도 12월과 완전 대조되었다. 특히 7~9일에는 서울의 일최저기온10 °C 이상을 연속 기록했다. 9일은 최고기온이 17.7 °C를 기록하고[100] 이후 11일에도 14.5 °C를 기록했으며 13일까지 일최저기온조차 영하로 떨어진 적이 1번도 없었다. 이후 14~16일, 22~23일에 잠시 -7~-9 °C로 떨어지는 한파가 있긴 하였으나 금세 이상 고온으로 돌아갔고 12월 30일까지 평년 수준이거나 고온을 유지하다가 31일에 기온이 -11 °C로 급격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101] 하지만 다음 해 1, 2월에는 최저 -15 °C 미만의 한파가 엄청난 폭설과 함께 찾아온 것이 2019~2020년 겨울과 대조되었다. 물론 이쪽도 강수가 많았다.당시 기사 신문에 적혀있는 이유로는 시베리아 고기압, 몽골 한랭 대륙고기압의 세력이 약했고 제트기류도 북위 50°에서 맴돌아 그나마 있는 찬 공기의 남하를 막았다.[102] 그외에도 1957년 이후로 태양의 흑점수가 가장 많이 나타났기도 했다.


8.10. 1969년[편집]


전라북도 부안, 임실, 정읍, 경상남도 진주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서울은 이상 저온이 심한 해이나 남부지방은 이상 고온 기록이 많이 있어 위도차가 심한 해인듯 하다.

  • 1월 중하순, 2월 중순 일부 - 1월의 경우는 1월 16일까지 한파가 길게 이어지다가 1월 18일부터 기온이 올라 하순에는 대체로 이상 고온을 보였다. 1월 19일서울의 최고기온이 10.7℃, 제주13.3℃까지 올라 1월 치고 다소 포근한 날씨를 보였으며, 최저 기온 극값도 1월 24일에 기록된 -6.8℃로 큰 한파 없이 1월 하순이 지나갔다. 이후 월말에 폭설이 내린 뒤 기온이 다시 급락하여 2월 상순부터 다시 한파가 찾아왔다. 이로 인하여 2월 상순은 강추위가 이어지다가 2월 중순에는 다시 따뜻한 날씨를 보여 2월 10~13일에 최저기온이 영상권을 기록하고, 최고기온도 전국적으로 영상 10℃를 웃돌았다. 특히 제주2월 13일19.4 °C까지 올라 평년 4월 수준의 기온을 보였으며,[103] 부산에서도 2월 12일에 17.2℃까지 올랐다. 이로 인해 2월 중순은 대부분 지역에서 평년보다 1~2℃ 이상 높은 이상 고온을 보이면서 포근한 날씨를 보였다. 이후 2월 20일부터 기온이 다시 낮아지기 시작하여 2월 하순은 다시 강추위가 찾아오며 겨울이 끝났다.

  • 3월 하순 ~ 4월 일부 - 3월에는 초중순에는 대체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은 기온 분포를 보이다가, 3월 하순 일부에는 바람의 방향이 따뜻한 서풍으로 바뀌며 기온이 올라 3월 26일대구의 최고기온 24.0℃, 경상북도 포항 23.3℃, 강원도 강릉 22.4℃ 등을 보이며 평년보다 다소 높은 날씨를 보였다. 그리고 4월 상순에는 4년만에 영하권을 기록하는 등 꽃샘추위가 있었으나 4월 중순에 기온이 다시 상승하여 일부 지역에서는 초여름 날씨까지 보였다. 특히 4월 13일대구에서는 최고 기온이 무려 28.7 °C까지 상승하며 4월 중순에 고온건조한 초여름 날씨를 보였으며, 포항에서도 28.5℃, 전라북도 전주에서도 27.9℃까지 올랐다. 그리고 강릉에서는 아예 최저 기온이 20.3°C[104]라는 강력한 초고온 현상을 보이는 등 4월 14일까지 이상 고온을 보이다가 이후 4월 15일부터는 대체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분포를 보였다.

  • 5월 상순 일부 - 5월 상순 일부에도 동쪽 지방 중심으로 평년보다 더운 날씨를 보여 5월 9일경상북도 포항의 최고 기온 31.7℃, 강원도 강릉 31.4℃, 대구 30.8℃ 등을 기록했고, 서울에서는 26.0℃로 여전히 평년보다는 높지만 초이상 고온은 아니었다. 5월 10일에도 최저기온 한정 고온이 이어져 전라북도 전주 19.8℃, 광주 18.9℃, 대전 17.6℃ 등으로 평년보다 높은 최저 기온을 보였다. 이후 5월 중순은 극단적인 고온 없이 대체로 평년과 비슷했고, 하순은 평년보다 낮은 이상 저온을 보였다.[105] 그리고 6~8월은 극심한 폭염 없이 대체로 평범한 여름이었다.[106]

  • 8월 12일 제주 - 일 최저기온 29.5℃로 초열대야에 근접했다.

  • 9월 상순 - 9월에는 상순 중심으로 늦더위가 이어져 9월 3일전라북도 전주의 최고기온 32.3℃, 경상북도 포항 32.1℃ 등을 기록해 폭염 기준에 근접한 더위를 보였으며, 다음날인 9월 4일에도 대구 32.7℃, 광주 31.8℃ 등으로 남부 지방 중심으로 30℃를 웃도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서울의 경우도 9월 2일에 30.0℃, 9월 7일 29.2℃를 기록하며 남부 지방만큼은 아니지만 대체로 고온을 보인 날들이 있었다. 이후 9월 중순은 평년과 비슷했고, 하순은 몇몇 날을 제외하면 이상 저온을 보였다. 하지만 상순의 늦더위 여파로 9월 평균기온은 대체로 저온이었던 6월보다 조금 높았다.[107]

  • 10월 중하순 일부 - 10월에는 상순에는 기온이 매우 낮아져 평균 12.7℃로 하위 1위를 기록했고, 중순 이후부터 기온이 올라 하순에는 대체로 고온을 보였다. 10월 15일에는 광주의 최고 기온이 26.0℃까지 올랐고, 10월 19일10월 21일에는 서울의 최고 기온이 모두 24.4℃를 기록했으며, 그 중 21일에는 최저 기온도 14.1℃를 보였다. 이후 10월 25일까지 최저 기온이 두 자리수를 보이며 평년보다 2~3℃ 이상 높은 이상 고온을 보였으며, 이 여파로 10월 하순의 평균기온이 10월 상순보다 1.8℃ 높게 기록되었다.

  • 11월 일부 - 11월에도 기온은 평범한 편이나 일부 날짜에 고온이 오기도 했다. 11월 4일 7.4℃에 그쳤던 서울의 최고 기온이 날마다 오르면서 11월 8일에 16.3℃, 11월 9일에는 16.9℃까지 올랐다. 이후 11월 10일에 반짝 추위가 온 뒤 11월 11일부터 다시 올라 11월 13일에는 서울의 최고기온 17.8℃, 일평균기온도 12.1℃를 기록하며 11월 중순 치고는 다소 높았고, 특히 강원도 강릉에서는 무려 22.1℃[108]까지 오르면서 평년 10월 초에 볼 법한 기온이 기록되었다. 이 외에도 경상북도 포항 22.0℃, 대구 21.0℃ 등을 기록하며 예년 이맘때보다 온화한 날씨를 보였다. 이 고온 현상은 11월 15일 비가 내린 뒤 11월 16일부터 찬 공기가 유입되면서 해소되었고, 이 한기의 영향으로 11월 하순은 평년보다 다소 낮았다.



9. 1970년대[편집]



9.1. 1970년[편집]


  • 5월 - 서울의 월평균 기온 18.7℃︎. 특히 상순은 무려 19.1℃︎를 기록해 역대 2위이다. 참고로 1위는 2012년의 20.2°C.


9.2. 1972년[편집]


  • 1월[109] - 서울 평균기온이 0.8 °C. 부산은 6.0 °C로 평년보다 3도 정도 높다. 1941~1970년 기준 평균기온인 -4.4°C보다 무려 5.2°C 높았으며 한강이 얼지 않았으며 최저 기온 극값도 -9.1°C에 그쳤다.[110][111] 고온이 가장 심했던 1월 9~13일에는 마치 초봄 같은 날씨를 보였는데, 서울의 경우 9일 최고 기온이 11.5°C, 11일에는 13.0°C까지 올라 평년 3월 수준에 해당하는 기온을 보였다.

  • 5월 일부[112] - 5월의 경우는 심한 고온은 없었지만 서울에서 5월 9~10일에 최고 기온 25.6°C를 보였고, 5월 23일에 다시한번 26.2°C를 기록했다. 이후 6월도 극심한 고온 없이 대체로 평범했다.

  • 7월 중하순 - 7월의 경우는 초반은 몇몇 날에 선선한 날씨를 보이는 등 대체로 평범하거나 조금 낮았으나, 제헌절인 7월 17일을 기점으로 폭염이 본격화되었다. 서울은 7월 20일에 최고기온 35.6°C, 21일에도 폭염경보 기준을 충족한 35.2°C까지 올랐고, 22~23일에도 34°C를 넘겼으며, 밤에도 열기가 식지 않아 열대야도 4일 연속 지속되었다. 전라북도 전주시는 35.9°C까지 올랐고, 같은 날 광주광역시36.0°C까지 기록되며 더위가 절정을 보였다. 대구광역시의 경우는 7월 18일 34.2°C를 기록했다가 이후 기온이 조금 낮아진 뒤 다시 상승해 7월 29일부터 8월 1일까지 34~35°C의 분포를 보였다.[113]

  • 8월 초중순[114] - 8월은 서울 등 서쪽지방은 7월보다 더위가 확실히 약해졌고 심지어는 이상 저온 현상까지 발생하며, 서울에서는 8월 평균기온이 최저 3위에 기록하는 등 수도권은 대체로 선선했지만, 일부 동쪽 지방에서는 8월 초중순까지 무더위가 계속 이어졌다. 강원도 강릉에서는 8월 1~7일까지 4일을 제외하면 최고 기온이 모두 33°C 이상이었으며, 그 중 1~3일에는 최저 기온도 27°C에 육박했다. 이후 잠깐 기온이 하락했다가 다시 올라 15~16일에 막바지 폭염으로 각각 34.8°C, 35.6°C를 기록하다가 8월 18일 강한 폭우[115]가 내리면서 더위가 해소되었다. 더위의 아이콘인 대구광역시에서도 일부 날들을 제외하면 8월 17일까지 30~35°C 내외의 무더위가 이어졌다.[116]

  • 10월 - 하순을 바로 앞둔 20일에 관측 사상 가장 늦게 일평균 20.2℃를 기록하였다. 가을이라 부를 수 있는 기준을 따진다면 10월 20일에도 여름 날씨가 찾아온 셈. 하지만 이후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22일에 최저기온이 1.3 °C까지 굴러떨어졌다.[117]

  • 12월 일부[118] - 11월 하순에 이상 저온이 장기간 지속된 이후 12월이 되자 평년 수준을 회복하더니 12월 5~6일에 최고 기온이 각각 12.0°C, 9.6°C를 기록하는 고온 현상을 보였고, 전라북도 전주시는 무려 17.9 °C까지 올라 마치 10월 말~11월 초에 해당하는 기온을 보였다. 이후 12월 10일에도 서울의 최고 기온이 10°C에 육박했고, 크리스마스 연휴에도 이상 고온이 찾아와 24일에 11.9℃까지 올랐다. 이 여파로 서울의 12월 하순 평균기온은 1.6℃로 당시 평년보다 3℃ 이상 높았다.


9.3. 1973년[편집]


  • 1월 - 서울 평균기온이 0.4 °C. 유일하게 한강이 2년 연속으로 얼지 않은 해이고 당시 평년치보다 무려 4.8°C나 높다. 1월 2~3일의 반짝 한파를 제외하면 최저기온 극값이 -6.9°C에 그쳤다. 이 여파로 1916년 1월이 3위로 밀려나게 되었고, 비록 1972년이상 고온이 없었더라도 이 해 때문에 2위로 밀려났을 것이다.


9.4. 1974년[편집]


  • 12월 26~30일[119] - 서울 기준 최저기온 -2~0°C 내외, 최고기온 6~8°C 내외로 강하지 않은 고온이 나타났다.


9.5. 1975년[편집]


라니냐의 해임에도 불구하고 전년도와 달리 고온이 매우 심했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2.6°C로 1981~2010 기준으로 고온인 첫 해이며 당시 치고는 1도정도 높으며 고온이 강한 해이고 끈질기게 이어지고 한파일수도 없었으나 12월에는 저온도 있었다.

  • 1월 상순, 하순 - 서울 월평균기온 -2.7°C로 당시치고는 다소 높은편이며 상순과 하순에 큰 고온은 없었지만 따뜻했고 그렇다고 유의미한 저온도 없었다.

  • 4월[120] - 서울 평균 기온이 13.3도로 13도를 넘었고[121] 상순에는 다소 저온이었으나 중순 들어서부터 초이상고온이 찾아왔고 급기야 30일에 29°C[122]를 기록했다.

  • 7~8월 - 폭염/사례 문서 참조. 유의미하지는 않으나 폭염이 다소 길게 이어지면서 평균기온이 높게 나왔다. 서울 8월 평균은 27.0°C로 2012년, 2019년 8월과 비슷하다.

  • 9~11월 - 9월 평균기온이 22.1°C역대 9월 전국 평균기온 1위[123] 서울도 22.6℃를 기록해 2019년 9월과 같은 기온이다. 2019년 상위 호환으로, 10월 초까지 더위가 식지 않아 기상학적인 여름이 10월 초[124]까지 갔다. 게다가 최저 기온은 매우 높았다. 2019년과 비슷한 케이스. 정작 다음 해에는 18.8°C로 최저 2위를 기록했다는 점이 아이러니. 이후로도 고온이 지속되어 10월~11월도 꽤 높은 편이었다.(10월 15.4도, 11월 9.0도) 결국 가을철 전국 평균 기온 1위 달성. 1961년 9월~11월의 상위호환이다.


9.6. 1976년[편집]


  • 2월 - 서울의 2월 평균 2.8 °C로 역대 5위. 이미 1월 24일부터 일최고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았고, 일최저기온마저 1월 말을 끝으로 한파가 끝났다고 보아야 할 정도로 따뜻했다.

  • 5월 하순 - 특히 하순 말기만 보면 2015년 5월[125]과 거의 유사하다. 27일에 일평균기온이 25.1℃[126]까지 치솟는 강력한 고온 현상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5월 상순이 강한 저온을 보였는데 하순에 크게 오른 것이다.[127] 저온으로 점철된 1976년 속에서 2월, 12월과 함께 얼마 안 되는 고온 현상.

  • 12월[128] - 8~9일의 한파를 제외하면 따뜻한 초봄 날씨를 보였다. 다만 크리스마스부터 강한 한파가 찾아와서 평균기온은 1991~2020년 평년보다 0.2°C만 높았다.[129] 그러나 당시 치고는 1~1.5°C 정도 높았으며 현대에 왔다면 영상 1°C대로 추정된다.


9.7. 1977년[편집]


  • 10월 - 전국 15.7°C, 서울 16.7°C로 역대 3위. 당시에는 1위 달성이었다. 10월 4일에는 2021년 10월 3일처럼 28.8°C의 기온이 관측되었다. 특히 포항이 압도적인데 11월을 이틀 앞둔 10월 30일에 일평균 23.7°C, 최고 28.1°C이며 전국적으로 늦여름~초가을 날씨를 보였다. 서울도 19.9°C로 20°C에 근접했다.

  • 12월 - 전국 12월 평균기온은 3.0°C로 역대 2위, 서울은 2.4 °C로 4위이다. 12월 21~23일과 25~26일에는 기온이 내려가긴 했지만 영하 두자릿수를 기록하지는 않았고 금세 이상 고온으로 돌아갔다. 이후 1월은 몇 번씩 영하 10~11 °C의 기온을 기록하고 나머지 날들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날씨로 서울 월평균기온 -2.4 °C로 1981년~2010년 평년에 완전히 들어맞았다.[130]


9.8. 1978년[편집]


  • 5월 - 서울 기준으로 중순과 하순에 29.7 °C와 29.8 °C를 기록하였고, 이는 남부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심화되어 하순에는 최고 33 °C에 이르는 폭염으로 발전했다. 서울 기준 5월 평균 18.5 °C로 상위 15위이다. 단, 일최저기온 제외.[131]

  • 11~12월 - 11월은 일평균기온이 10도를 넘는 날이 꽤 있었으며 12월은 서울 평균기온 1.6℃이며 8~9일에 최저 8~9℃ 최고 13~15℃로 매우 온화했으며 이후 뚜렷한 한파가 없었다. 그러다가 세밑 한파가 찾아왔지만 새해가 되자 바로 누그러졌다.


9.9. 1979년[편집]


  • 1월 - 1월은 전국 평균 기온 1.4°C로 1월 평균 기온 역대 2위를 기록했고, 서울도 평균기온이 0.9°C로 2020년 다음으로 높으며, 당시 기준 평년보다 약 5°C 높았다. 한강 역시 얼지 않았다. 이로써 1948년 - 1958년 - 1968년 12월급은 아니어도 1978년 12월 역시 40년 연속 고온 반열에 들게 되었다.

  • 5월 - 29일 부산의 최고 기온이 무려 34.0°C를 기록했다. 이는 1979년 부산의 연 최고기온 이기도 하다.

  • 11월 상순 - 전국적으로 낮 기온이 23~25°C를 넘는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11월 2일 대구가 26.6°C, 울산이 27.5°C를 기록했고 11월 3일에는 서울이 23.5°C를 기록했다. 그러나 11일 뒤에는 수도권에 -10~-12°C에 달하는 엄청난 한파가 찾아온다. 그래서 1979년 11월은 서울 월교차 1위(34.6°C)인 달이다.

  • 12월[132] - 반짝 한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포근한 날씨가 지속되었다. 심지어 최저기온 극값이 11월 중순보다 높았다.[133]


10. 1980년대[편집]



10.1. 1980년[편집]


  • 5월~6월 강원도 영동 - 전국적으로 5월에도 이상 저온이 찾아왔으며 서울은 4월의 여파로 16.5°C를 기록했으나 강릉의 경우 정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134] 5월 10일에 32℃를 기록하더니, 5월 22일에 32.6 °C를 기록하였고, 5월 평균 기온은 19.5 °C로 당시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135] 6월 역시 이상 고온이 찾아오며 6월 평균이 23.5 °C로 당시 기준 1위였다.[136]

  • 11월 - 연도 대부분이 기온이 낮았던 1980년이지만 11월은 예외적으로 이상 고온이 나타났다. 중반 일부 반짝 추위 빼고는 평년보다 높아서 서울 평균기온 8.6 °C를 기록했다. 당시 평년보다는 2도 정도 높았다. 그러다가 12월에 10 °C 이상 급격하게 떨어져서 강한 한파가 찾아왔다.[137]


10.2. 1981년[편집]


  • 3월 중순~하순 - 3월 초순까지는 지난 1~2월이 워낙 추워서 다소 쌀쌀한 편이었지만 중순부터 기온이 큰 폭으로 올라 3월 13일21.7 °C를 기록했다. 15~16일, 26~27일에 꽃샘추위가 나타났지만 19일에 다시 19.0 °C를 기록하였고 21, 23일에도 19.4 °C를 기록하면서 24일까지 평년보다 높았다. 27일 이후로도 기온이 다시 올라 평년보다 다소 높았다. 결국 월평균기온도 5.7°C로 다소 높았으며 이렇게 해서 1981년은 기상관측이래 최초로 3월 전반기(1~15일)에 서울에서 21도 이상을 찍은 해가 되었다.[138] 게다가 그 해 11월은 3.6°C매우 낮아서,[139] 결국 3월이 11월보다 높게 기록되었다.

  • 5월 26일 포항 - 최고 기온이 34.0 °C. 그러나 서울은 고온이 전무할 정도로 매우 낮았다.


10.3. 1982년[편집]


  • 5월 하순 - 25일에 서울 최저 기온이 19.4°C, 30일에는 무려 20.8°C로 당시에 가장 빠른 최저 20°C대 기록을 보였다.

  • 10월~11월 - 일시적인으로 기온이 내려갈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유지했다. 서울 기준 10월 15.8°C, 11월 7.9°C.


10.4. 1983년[편집]


  • 1월 상순, 하순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1.7 °C로 당시 평년치보다 1°C 이상 높았지만 중순에는 한파일수도 있었다.

  • 3~4월 - 서울 평균기온 각각 6.4°C, 13.6°C. 4월 10일에 서울에서 26.7°C를 기록했는데, 이는 114년간 관측된 4월 10일의 기록 중 가장 높은 수치이다.[140] 이후 40년 가까이 지나도 전혀 경신될 기미도 없어보인다.

  • 5월 - 29일 포항의 최고 기온이 32.9 °C였고, 31일에는 36.1 °C까지 치솟았다. 대관령도 29일에 무려 31.0°C를 기록하였다.[141]

  • 8월 3일 강릉 - 일 최저기온이 무려 29.7°C로 초열대야에 근접한 기온을 보였다.


10.5. 1984년[편집]


이상 저온이 잦았으나 5~8월, 11월~12월 중순에는 이상 고온을 보였다.

  • 6월 - 서울 월평균 기온은 22.6℃로 현대 평년치와 비슷했으나 당시 기준으로는 평년보다 높았다. 우선 상순인 6월 2일부터 32.4℃를 기록해 폭염일수에 근접했으며, 급기야 6월 13일에는 폭염이 심화되어, 최저 기온부터 22.0℃를 기록하였고, 최고 기온이 34.2℃, 일평균 기온이 28.1℃를 기록하여 현대의 7월 하순~8월 상순에 해당되는 날씨를 보였다.

  • 8월 - 상순에는 8월 2일을 제외하고 8월 14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30~35℃를 기록하는 폭염이 발생했다. 이후 18~19일에도 연속으로 34℃ 이상을 기록한 뒤 8월 하순이 되어서야 폭염이 꺾였다. 서울 기준 월평균기온도 평년보다 다소 높아 2015년 8월과 같은 26.3 °C를 기록했다.

  • 11월~ 12월 중순 - 상순에 20 °C를 넘나드는 날씨가 지속되었다. 16일에도 16.5 °C를 기록했다. 서울의 월평균기온은 8.1 °C로 평년보다 약 1.5°C 높았다. 그리고 2021년 11월과 비슷한 기온과 양상을 보였으며 이 이상 고온은 12월 중순까지 이어지다가 하순부터 강한 한파가 왔고 고온 현상은 끝이 났다.


10.6. 1986년[편집]


  • 12월 - 1월부터 11월까지는 뚜렷한 이상 고온이 없었던 1986년이지만 12월에는 유일하게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그리고 1986-1987년 겨울을 기점으로 겨울이 포근한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142]


10.7. 1987년[편집]


  • 9월 30일 ~ 10월 일부 - 9월 동안 길게 이어졌던 이상 저온이 30일에 최고기온이 26.0℃까지 오르면서 점차 해소되었으며, 10월 초에도 9월 수준의 기온이 계속 이어지면서 10월 1일에 서울 26.3℃, 5일과 10일에는 각각 27.2℃, 27.3℃가 기록되며 2019년, 2021년 10월 상순만큼은 아니지만 대체로 고온을 보였다. 또한 7일과 10일은 일평균기온도 20℃를 넘겼다. 서울의 10월 상순 평균기온은 2008년과 동일한 18.9℃를 기록했다. 이후 10월 16일에도 24.1℃를 기록한 뒤 18일부터 기온이 하락하며 이상 저온을 보였다가 월말에 다시 올라 30일에 19.9℃를 기록했다. 대구 역시 상순 중심으로 고온을 보였는데, 10월 3일에 28.8℃, 10월 6일에는 30℃에 초근접한 29.9℃가 기록되었다. 또한 상순 열흘 동안 일최고기온이 25℃ 아래로 떨어진 날이 하루도 없었다. 대구의 10월 상순 평균기온은 19.7℃로 상위 9위이다. 이후 17일에도 26.3℃를 기록하였고, 27~29일에는 30년 뒤인 2017년 10월 27~28일의 서울처럼 24~25℃대의 기온이 기록되었다. 강원도 강릉 역시 10월 6일에 30℃를 찍는 등 늦더위가 강했다.

  • 11월 일부 - 11월 1~2일에 이틀 연속으로 서울의 최저 기온 10℃를 넘겼고, 4~7일은 대체로 낮았다가 9일부터 기온이 상승하면서 특히 12일에는 복사냉각이 약해지면서 최저기온이 12.1℃가 기록되었다. 날씨가 대체로 흐려서 최고기온은 17.2℃에 그쳤지만, 만약 날씨가 맑았더라면 20℃를 넘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순에도 몇몇 날에 고온이 이어져 22일과 25일에 각각 15.7℃, 15.1℃를 기록한 뒤, 28일부터 기온이 급락하여 초이상 저온을 보였다.

  • 12월 중~ 하순 - 특히 25~28일 남부지방 일부는 20 °C까지 올라갔다. 1948년부터 계속 9~10년 단위로 12월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143]


10.8. 1989년[편집]


한반도의 지구 온난화가 본격화된 해이다. 이 해부터는 현재에서 봐도 기후가 크게 이질적이지 않다.

  • 1~4월 - 특히 1월은 1973년 전국 기상 관측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전달보다 기온이 높았고, 10년 만에 한강이 얼지 않았으며, 강수량은 역대 1월 최다 1위를 기록했다. 1월 27~29일의 반짝 한파를 제외하면 서울 기준 최저극값이 -7.9°C에 불과했다. 특히 1월 7~8일에는 최저 기온 6.7°C라는 평년 4월 상순 수준의 초고온을 보였다. 최고 기온은 11.2°C를 기록했는데, 문제는 이 날의 날씨가 흐렸다는 점이다. 복사냉각이 약했고 일사가 거의 없었는데도 이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144] 이 여파로 1월 상순 평균기온은 2.8°C로 역대 최고 4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중순도 평균 0.7°C로 상당히 높아 상위 10위에 속하는 값을 보였다. 이후 2월도 전국 월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1.6°C 높았고 서울도 2.4°C로 2023년 2월과 비슷했으며, 3월에는 서울 평균기온이 6.1°C로 당시치고 꽤 높은 편이었으나 고온이 심하지는 않았으며 기온 양상이 2017년 3월과 판박이다. 4월에는 서울의 평균 기온이 14.3 °C를 기록해 역대 4위이다. 중순에 최고기온이 25 °C까지 치솟더니, 21일에는 무려 29.4 °C2021년 같은 날보다 더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사실상 2021년 4월의 상위호환인 셈.

  • 5월 일부 - 4월 말에 평년 수준을 보였던 기온이 5월이 되자 다시 상승하여 5월 5일 서울 최고기온이 28.5°C를 보였고, 다음날인 6일에는 29.6°C까지 올랐으며, 일평균도 23°C에 육박했다. 이는 5월 상순 일평균기온 기준 2012년 5월 2일 다음으로 역대 최고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일최고기온 역시 5월 상순 기준으로는 역대 최고 4위에 해당한다. 이후 5월 18일, 27일에도 28.3°C의 고온을 보였지만 상순의 기록을 넘지 못하여 결국 이 해 5월 최고극값이 중순 및 하순이 아닌 상순에 기록하게 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 12월 - 서울 월평균기온 1.4°C로 2019년 12월과 같다. 서울 기준 최저극값도 -8.7°C에 그쳤다. 다만 다음달에는 강한 한파가 찾아왔다. 그러나 2월에는 아래에 후술할 듯이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이렇게 1986년까지 밥먹듯 이어지던 한랭화 시대가 1987년~1988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가기 시작하던 차에, 1989년에는 아예 연평균 기온이 눈에 띄게 뛰어오르며 본격적으로 온난화의 시대가 한걸음 가까워졌음을 알리게 되었다.


11. 1990년대[편집]



11.1. 1990년[편집]


  • 2~3월 - 서울의 2월 평균 기온 2.7 °C로 역대 6위[145]. 전달인 1월에는 매우 강한 한파가 찾아왔지만[146] 2월이 되자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2월에도 한파가 찾아오기 일쑤인 그 서울에 최고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이 없었고, 최저기온 극값조차 -5.2 °C가 최하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특히 2월 18일 서울에서는 최저 기온 5.5°C라는 강력한 고온을 보였다. 다만 흐리고 비가 온 탓에 최고기온은 크게 높지 않았다.[147] 3월 역시 고온이 이어져 월평균기온도 7.2°C를 기록해 관측 사상 최초로 7°C를 돌파하였다. 이번에도 30년 만에 기록이 갱신되었다. 1930 / 1960 / 1990 30년 법칙인가 그러나 1990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동안 기록이 일곱 번이나[148] 깨졌고, 이제는 2020년~2050년을 세는 것도 의미없을 정도로 해마다 깨지는[149] 사태가 일어나는 바람에 현재는 열손가락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게다가 2016년과 2019년도 7도 이상을 기록했다.

  • 11월[150]~12월 10일, 12월 21~22일, 31일 - 서울의 11월 평균기온 10.0 °C로 11월 평균 역대 3위.[151] 이때의 양상을 요약하면, 10월부터 따뜻했던 날씨가 11월에도 이어져 따뜻했다가, 잠깐 급락하고 다시 오르기를 12월 10일까지 반복했다.[152] 특히 11월 27일에는 서울의 최고기온이 16.1 °C까지 올랐고, 28일에는 무려 17.8 °C를 기록했다. 한편 1990년 늦가을은 북태평양 기단이 강해서 늦더위가 나타났으며, 놀랍게도 일본에 태풍까지 왔다.


11.2. 1991년[편집]


  • 5월 - 18일 포항의 최고 기온이 33.9 °C로 1988년 다음으로 가장 높은 5월 중순 최고 극값 기록이다. 단 서울은 오히려 약간 낮았으나 20일부터 기온이 오르기 시작해 23일에 최저 기온 20.4°C[153], 최고기온 31.1°C에 일평균기온은 무려 25.5°C[154]를 기록해 7월 한여름 수준의 날씨를 보였다.

  • 12월 - 2004년, 2016년과 함께 2.9°C로 전국 12월 평균 기온 역대 공동 3위를 기록했다.


11.3. 1992년[편집]


  • 1~3월 - 전년도 12월부터 이어진 고온이 이듬해 1~3월에도 계속 지속하였고 이로 인해 한강이 얼지 않았다. 특히 1~2월을 통틀어 -10°C 이하의 한파가 기록된 날이 아예 없었다.[155] 또한 3월에도 서울이 월평균 7.6°C를 기록해 당시 기준 1위였고, 3월 전체를 통틀어 영하를 기록한 날이 6, 7일 단 이틀에 불과했으며[156], 4월 상순의 경우도 평년보다 매우 높았다. 그러나 중순에는 기온이 급락하여 2020년 4월 수준의 강한 이상 저온을 보였다.[157]

  • 5월 일부 - 5월 5일에 서울 최고기온 27.3°C에 일평균 20.2°C를 기록해 5월 상순에 일평균 20°C를 넘겼다. 그 이후에는 뚜렷한 고온 없이 대체로 평범하게 가다가 5월 30일에 서울 29.9°C, 전라북도 남원군 31.2°C를 기록했다. 단 1992년 5월은 저온이 더 심해서 전국적으로는 역대 최하위였다.

  • 7월(남부지방) - 서울은 폭염이 없었으나 대구광역시는 폭염이 길게 지속되었다. 7월 1일에 33.0°C로 폭염의 시작을 알리더니, 급기야 7월 8일에는 무려 38°C에 육박한 37.8°C[158]까지 올랐다. 이후 중순은 장맛비가 자주 내리며 심한 더위가 없었으나, 21일부터 31일까지 모두 최고기온 35°C 이상, 체감온도 37~40°C 안팎의 폭염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졌다.[159] 마치 2021년 7월 하순의 서울과 기온양상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결국 대구의 7월 하순 평균기온은 무려 30.5°C로 역대 최고 3위이며, 월평균기온 역시 27.5°C로 상당히 높았다.

  • 8월 하순 - 9월을 앞두고 폭염 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8월 29일에 서울 최고기온 32.8°C, 다음 날인 8월 30일에도 32.7°C를 기록했다.

  • 12월 - 서울 평균기온 1.5°C로 1929년 12월과 함께 공동 15위 기록. 12월 5일과 20일에 최고기온 13℃를 넘겼으며, 최저극값도 -9.7℃[160]로 한파일수가 없었다.[161] 또한 12월 5~7일에는 최기온도 영상 5~7°C대를 기록하는 등 고온이 강했다.[162] 결국 12월 상순 평균기온은 5.8°C로 역대 최고 3위를 기록했다.


11.4. 1993년[편집]


  • 2월[163] - 6일 기온이 급작스럽게 올라서 순천 낮 기온이 21.2°C, 대구 22.2°C, 영덕 24.1°C까지 치솟았고, 서울14.2°C까지 올라갔다. 이로 인해 대부분 지역에서 2월 상순 신기록을 경신하였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신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포근했던 2월이었다. 서울 기준 월평균기온도 1.0°C로 2015년, 2019년 2월과 같았다.

  • 4월 18~21일 - 평년기온보다 낮은 4월이었지만, 18~21일 사이에는 서울은 20°C가 넘고 지역에 따라서는 25°C 이상을 찍은 고온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대구에서는 4월 19일에 30 °C를 찍었다.

  • 5월 하순 - 5월 29일에 서울 기온이 31.9 °C를 기록했다.[164] 그리고 1993년 여름이 이상 저온 경향을 보였기에 최고 기온을 기록한게 5월 말인곳도 있었다. 평균기온과 극값을 따진다면 2013년 5월과 비슷하다.

  • 9월 일부 - 서울 기준으로 9월 1일과 6일에 최고 30°C를 넘기는 늦더위가 있었으며, 이후 9월 21일까지 몇몇 날을 제외하면 최고 27~28°C의 기온 분포를 보였다.

  • 11월 중순 - 서울 기준 평균기온 12.0°C1990년과 함께 역대 11월 중순 공동 1위를 기록했다. 여담으로, 바로 직후의 하순은 이상 저온이다.[165] 기온 양상이 2020년과 비슷하다. 중순에 초고온, 하순에 저온이었던 점.[166]

  • 12월 하순 - 특히 12월 25일에 서울의 최고기온이 10 °C를 넘었다. 이후 26일과 29일에도 각각 7.6°C, 7.8°C를 기록했다.


11.5. 1994년[편집]


전국 연평균 기온 최고 9위, 당시엔 최고 1위였다. 여름의 폭염으로 기록이 남을 뿐만 아니라 3월을 제외한 모든 달이 평년보다 높았다.

  • 1월 초~중순 - 1월 초~중순에는 이상 고온이었다. 그러나 1월 18일 이후에는 한파가 찾아왔다. 그리고 서울 평균기온 -0.9 °C로 2019년 1월과 같았다.

  • 3월 31일~4월[167] - 3월에는 꽃샘추위로 이상 저온이 찾아왔으나 3월 31일부터 기온이 올라 4월에는 1998년, 2022년 4월 수준의 초이상 고온을 보였다. 어찌 보면 그 유명한 폭염의 전조 증상이라 할 수 있다... 전국 평균도 13.5°C로 꽤 높았던 편이다. 서울은 4월 6일28.9°C를 찍어서 4월 상순 일최고기온 신기록을 경신하였고, 4월 전체로 봐도 1~5위에는 안 들어가지만 최상위권이다. 4월 초에 28.9도면 엄청난 기록이며 6일만 빨랐으면 압도적인 차이로 3월 최고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168] 그 유명한 폭염의 전조 현상이었는듯 하다. 다음날인 7일에도 26.4°C까지 올랐다. 다만 일교차가 매우 커서 일평균기온이 20도를 넘지는 못했다. 심지어 저온 자체도 없었다. 결국 4월 상순 평균기온은 13.8°C로 역대 2위였다.[169] 이후 중순은 큰 고온이 없었으나 19일과 21일에 각각 26.6°C, 28.7°C를 기록한 뒤에 점차 내려갔다. 결국 서울의 4월 평균기온이 무려 15.2°C[170]1998년 다음으로 역대 최고 2위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3월 이상 저온 탓에 벚꽃 개화는 4월 8일로 그리 빠르진 않았다.[171]

  • 5~6월 - 5월 초반부터 이상 고온을 보여 특히 5월 2일에 서울 최고기온 27.2°C에 일평균기온 무려 22.5°C를 기록하는 초이상 고온을 보였고, 이후 5월 11~12일에도 27°C 안팎의 초여름 더위를 보였다. 대구광역시의 경우 5월 1일과 9일에 31.3°C를 기록했다. 6월에도 몇몇 날에 고온이 이어져 특히 6월 13일부터 기온이 크게 오르기 시작해 6월 16일에는 33.3°C, 다음 날인 17일에는 34.7°C를 기록하며 폭염경보 기준에 근접하였다.

  • 7~8월[172] - 7월 상순은 대체로 평범했으나 중순부터 기온이 올라 최악의 폭염이 왔다. 7월 서울 월 평균기온 28.5°C, 광주 29.3°C, 대구 30.2°C, 전국 27.8°C. 서울 기준 최고기온 극값도 2018년 다음으로 가장 높은 38.4°C였다. 자세한 내용은 1994년 폭염 문서 참조. 다만 8월은 2021년과 비슷하게 7월보다 더위가 상대적으로 약했고, 대망의 2018년과는 비교도 불가할 정도이며 2013년2016년보다도 낮고 2012년2019년보다 약간만 높은 정도...

  • 9월(남부지방) - 특히 1일에 대구 최고 기온 37.5°C.[173] 이후로도 여전히 고온을 보여 월평균기온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서울 등 중부지방의 경우 9월은 평년과 비슷해서 고온이 심하지는 않았다.[174][175]

  • 11~12월 - 11월 서울 평균기온 9.3°C로 역대 최고 6위, 12월 서울 평균기온 1.1°C. 11월 6일에 최고기온 19.8°C를 기록했고, 이후에도 고온이 계속 이어져 첫 영하권이 11월 27일[176]이 되어서야 기록되었다. 그리고 2년 연속 크리스마스에 서울 최고기온이 10 °C를 넘겼다. 그러나 다음해 1월은 한파가 오긴 했다. 그러나 심하지 않아서 1981~2010년 평균과 비슷했다.


11.6. 1995년[편집]


  • 1월 7~9일 - 서울 최고기온 10.3°C, 대구 13.4°C, 광주 12.8°C 등을 보이며 전국적으로 강한 고온을 보였다.

  • 2월 - 2023년과 비슷하게 2월 초반의 추위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고온이 많았으나 강도는 강하지 않아 최고기온 극값이 10°C를 넘긴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177]

  • 10월 - 이달 초에 쌀쌀해지는듯 싶더니, 이내 올라서 11일부터 14일까지 이상 고온이 나타났다. 하순에도 최고기온이 20도를 넘는날이 7번이나 있었다.


11.7. 1996년[편집]


  • 2월 13~14일 - 추운 경향을 보였던 1996년 2월이였지만, 2월 13일 ~ 14일 에는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1993년 2월과 마찬가지로 전국적으로 기온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14일 울산이 24.2 °C까지 올랐고, 서울도 13일에 14 °C를 기록했다.

  • 4월 24~28일 - 평년보다 크게 낮은 날이 계속 이어진 4월이지만, 22~23일부터 저온현상이 회복하기 시작하더니 24일에는 최저기온은 평년 수준, 최고기온은 평년보다 크게 높은 고온현상이 시작되었다. 점점 올라서 27~28일에는 급기야 수도권도 낮 최고기온이 20도대 중반에 이르렀다.

  • 5월 31일 ~ 6월 상순[178] - 5월 31일 서울 최고기온 31.4 °C, 6월 1일에는 32.7 °C로 6월의 시작과 함께 폭염일수에 근접하였다. 이후 5일과 9일에도 최고기온 30.3°C, 7일 최저기온 21.2°C를 기록하였고, 그 밖의 날들도 다소 고온을 보여 6월 상순 평균기온은 22.9 °C[179]를 기록했는데, 놀랍게도 같은 달 중순, 하순보다 더 높은 현상이 벌어졌다. 중하순에는 장맛비로 인해 기온이 크게 오르지 못한 날들이 다소 많았기 때문이다.

  • 12월 8일 ~ 1997년 1월 1일 - 몇몇 날을 제외하면 대부분 10도 이상의 포근한 날씨가 이어졌다. 서울 기준 12월 최저 극값도 -10.5°C에 그쳐 강한 한파가 없었다. 특히 12월 15일에 서울의 최고기온 12.7°C, 광주 14.7°C, 전라북도 전주시16.0 °C까지 올랐다. 이 고온 현상은 1997년 첫날까지 이어졌다가 다음날에 최고기온까지 10 °C 이상 급락하며 끝이 났다.[180]


11.8. 1997년[편집]


  • 2~4월 - 2월의 경우 최고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심한 이상저온은 없었고 24일, 25일, 27일에 초이상고온을 보였다. 3월은 가끔 꽃샘추위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고온이었으며 특히 12일 최고기온 18도, 13일은 무려 20.2도 였다. 4월은 심하지는 않았으나 평년보다 높은 고온이 많아 12.9°C였다.

  • 9월 상순[181] - 2010년과 비슷하게 늦더위가 매우 심했다. 대부분의 지역이 1994년보다 평균 기온이 높았을 정도다. 늦더위가 절정에 달했던 9월 1일에 대구에서는 최고기온이 무려 36.5°C를 기록하였고, 경상북도 포항 35.9°C, 강원도 강릉 35.8°C, 울산 35.4°C 등을 보여 남부 지방 곳곳으로는 폭염경보일수가 기록되었다. 서울도 31.6°C를 기록했으며, 최저기온도 25.7°C로 9월에 열대야가 발생하기도 했다.[182] 이후 2일에도 늦더위가 이어져 제주시 34.4°C, 대구 33.5°C, 부산 32.8°C 등을 기록했다. 다만 서울은 흐리고 비가 내리면서 26.7°C로 조금 내려갔다. 하지만 4일부터 다시 올라서 5~8일까지 30°C를 넘기는 늦더위가 다시 찾아왔다. 이 여파로 서울의 9월 상순 평균기온은 2010년과 비슷한 24.6°C를 기록했다. 그러나 11일부터 상당한 이상 저온이 내내 이어져 결국 월평균기온은 낮았다.[183]

  • 10월 17~23일[184] - 특히 제주도, 대구 등 남부 일부 지방에 극심한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20일에 제주시는 30.2 °C를 기록했고, 대구는 21일에 30.7 °C를 기록하며 도저히 10월 하순이라 할 수 없는 날씨를 보였다.[185] 전라북도 전주시에서도 28.1 °C를 기록하였고, 서울도 20일 24.9°C로 고온인 편이었다. 다만 고온이 극심했던 만큼 저온도 대체로 많아서 월 평균기온은 오히려 이상 저온이었다.

  • 11~12월[186] - 11월은 엘니뇨로 서울에서 8.8°C로 2015년 11월과 비슷하고, 12월은 한파가 찾아온 날을 몇몇 빼고 가을 날씨를 보여 서울 기준 1.8도를 기록했다.


11.9. 1998년[편집]


1997년 7월부터 1998년 초반까서 슈퍼 엘니뇨로 고온현상이 나타났고 여름 이후 라니냐로 전환되어 늦더위까지 나타나 대한민국 평균기온 역대 4위[187]를 기록했다.[188] 평년대비 +1°C로 이 해의 기록이 본격적인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기온이 높아진 2010년대 중반 이후의 해[189]를 제외하면 유독 돋보인다. 정작 날짜 상 여름인 6~8월은 잦은 폭우 때문에 더위가 약했다.[190] 이 해의 극값은 여름에 더웠던 제주도를 제외하면 다른 계절에 연중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대부분 지역이 7~8월이 아닌 5월에 연중 최고기온을 기록했고 서울의 경우 9월 중순에 늦더위로 연중 최고기온을 기록했으며.(9월 12일, 32.8 °C)[191] 속초는 아예 더 나아가 4월 중순(20일)에 32.1°C로 연중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그로 인해 1998년 서울과 속초에서 폭염일수는 없었다.[192] 이 이상 고온은 매우 심각해서 당시 평균 기온 최고 기록들을 대부분 갱신했다.

  • 1월 상순~중순 - 엘니뇨로 인해 포근한 겨울을 맞았다. 1월 말에는 -15.4℃의 강한 한파가 오긴 했으나 서울 기준 -1.4°C로 여전히 평년보다 높았다.

  • 2월[193] - 이해 2월은 2007년처럼 봄날씨를 보였다. 봄같은 포근한 날씨로 인해 서울에서 3.4°C로 2위를 달성했다.[194] 전국 평균기온도 3.4 °C로 2020~2021년과 같고 매우 높았다. 서울에서는 2월 18일에 봄이 시작되어 가장 빨랐다. 중순 평균은 5.2°C로 역대 1위이며 유일하게 5도를 넘었으며 하순 평균 기온도 6.2°C로 역대 4위. 2019년 상위호환인 날씨를 보였다.

  • 3월[195] - 20~23일에는 기습한파로 기온이 크게 떨어졌지만 그 밖의 날이 매우 포근해서 전국은 7.0°C, 서울 기준 7.3°C를 기록했다. 2019년 3월과 비슷한데 봄이 일찍 시작했으며 3월 중하순은 반짝추위와 이상 고온이 번갈아 일어났다. 단 추위가 기승을 부린 2019년 4월과 달리 1998년 4월은 이상 고온이 심했다.[196]

  • 4월[197] - 1~3일에는 반짝 추위로 이상 저온이 나타났으나 4일부터 크게 올라 5월에 가까운 날씨를 연일 보였다. 특히 20일 강릉의 최고기온이 33.6°C를 기록해서 4월 중순에 폭염이 나왔다.[198] 특히 속초는 이 날 32.1 °C를 기록하는 것도 모자라, 연중 최고 기온 1위를 4월, 그것도 하순이 아닌 중순에 달성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199] 서울은 이상 저온이 잦은 일제시대 5월 평균기온과 맞먹으며, 4월 21일~23일, 30일은 아예 일평균 기온이 20 °C를 넘겼다. 전국 평균기온도 14.7°C이며 서울은 15.6°C로 1994년 기록을 깨버렸으며 둘다 상위 1위이다. 서울 기준 1991~2020 대비 +3.0°C[200]로 4월 고온의 끝판왕이며 2021년 3월과 맞먹는 기온편차를 가진다.

  • 5월[201] - 5월에도 4월의 여파로 매우 더웠다. 5월 14일에 여름이 시작되었으며[202] 특히 20~23일에는 여름 더위가 나타났다. 게다가 5월 하순 평균은 20.7°C로 2019년보다도 높았다. 강수일수가 적어서 일사로 기온이 크게 올라서 전국 평균기온은 17.8°C, 서울 19.0°C를 기록했다. 18도 이상이지 않아 약해보이지만 1990년대에 일어난 일이라 전국 평균기온은 당시 기준 1위를 기록했다. 사실 약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2010년대 5월 이상 고온이 매우 심한 것이다[204] 그리고 서울은 당시 치고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일부 지역은 5월에 연중 최고 기온을 달성했다. 그러나 6월에 접어들면서 저온으로 갔다.

  • 9월[205] - 9월 초반은 그럭저럭 평범했으나, 7일부터 30°C를 웃도는 늦더위가 찾아왔다. 특히 9~12일에는 강한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는데, 9일에는 전라북도 남원시의 최고기온 34.0°C를 기록했고, 전주시 33.7°C, 대구광역시 33.6°C 등으로 남부 지방 중심으로는 폭염일수가 기록된 지역들이 많았으며 서울31.7°C를 기록했다. 다음날인 10일에도 강원도 강릉시 33.3°C, 충청북도 청주시 32.9°C, 서울도 전날보다 1°C 가량이나 높은 32.6°C로 폭염일수에 근접하였다. 서울의 9월 상순 평균기온은 2002년과 같은 24.1°C로 평년보다 다소 높았다. 중순의 시작인 11일에도 늦더위는 멈추지 않았다. 특히 가을이 쌀쌀하기로 유명한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최고기온이 무려 33.8°C를 기록하였고,[206] 광주광역시 32.3°C, 서울도 32°C대에 근접한 31.8°C의 더위가 찾아왔다. 이에 멈추지 않고 12일에는 서울에서 1998년 연중 최고기온 극값을 기록하게 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최고기온이 무려 32.8°C로 9월 중순 일최고기온 기준 역대 1위를 기록했고, 이는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9월 중순 최고 극값이다. 이 늦더위는 14일까지 이어지다가 15일부터 기온이 다소 하락하며 한풀 꺾였다가 20일에 다시 한번 31.8°C를 찍었고, 27일에도 27.3°C를 기록했다. 결국 서울은 9월 중순 평균기온 역시 24.5°C로 역대 최고 1위를 기록하게 되었고, 하순 역시 평년보다 다소 높은 20.4°C를 기록했다. 9월 서울 월평균기온은 23.0°C로 2016년 이전까지 1위였고 현재에도 3위이다. 전국 평균 기온은 21.6°C로 역대 4위. 서울에서는 단 한번도 15.6°C 아래로 떨어지지 못했으며 당시 기준 가장 높았다.[207]

  • 10월[208] - 서울 월 평균기온 17.0°C로 역대 2위이다.[209] 전국 평균기온도 16.2°C로 2006년 다음 순위인 역대 2위이며 평년보다 2도이상 높았다. 상순 내내 이상 고온과 늦더위로 10월 중순 전반까지 일평균기온이 20도 안팎으로 기록했다. 상순 평균기온은 2013년과 동일한 20.0°C로 공동 4위. 기상학적 가을이 10월 14일에 시작하여 5월 14일~10월 13일, 즉 무려 5달이 여름이었으며[210] 물론 2016~2017년, 2019년, 2021년 같이 28도 이상의 강한 늦더위는 없었지만 24~27도의 기온이 꾸준히 이어졌다. 이후 19~20일에 추워지나 싶더니 하순까지 계속 고온을 유지했다. 다만 라니냐로 인해 건조했다.

  • 11월 일부 - 특히 13일에 서울 최저기온 11.6°C, 14일에는 무려 최저 기온이 15.1°C를 기록하며 11월 중순 역대 1위를 기록하게 된다.[211][212] 최고 기온 역시 20.5°C2015년, 2020년, 2022년처럼 11월 중순에 20°C를 넘는 기록이 나왔다. 이후 16일에 비가 내린뒤 고온이 해소되었고 17일부터 영하권 추위가 찾아오다가 월말에 다시 올라 11월 29일에 10°C로 올랐고 30일에 서울의 최고기온이 각각 14.4°C를 기록했다.

  • 12월[213] - 서울 월 평균기온 2.3°C로 역대 5위.[214] 최저기온 극값이 -8.1°C[215]에 그쳐 한파일수가 없었다. 또한 12월 전체를 통틀어 일최고기온이 영하권이었던 날이 12월 30일 단 하루였다! 그리고 12월 중순에는 다소 극심한 고온이 찾아오면서 서울 기준 최고기온이 12.9°C[216]를 보였고, 중순 평균기온도 4.1°C로 역대 최고 4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11.10. 1999년[편집]


수 년간의 엘니뇨가 끝나고 라니냐의 해가 되었지만 여전히 고온 현상이 잦게 나타나서 평년보다 상당히 높았다.

  • 1월[217] - 1일에 -6.9°C로 반짝 추위가 온뒤 이후 점점 기온이 올라 4일에 최고 기온 9.2°C를 기록하는 등 고온을 보였다. 이후 8일부터 11일까지는 -10°C 안팎의 한파[218]를 보이다가 다시 기온이 상승세를 보이더니 1월 22~26일에는 2021년 1월 이맘때를 연상시키는 초고온 현상이 나타났다.[219] 1월 24일에 서울 최고기온이 12.4°C, 광주는 13.8°C까지 올랐다. 서울의 1월 월평균기온은 -0.8°C로 역대 최고 1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 4월[220] - 16일에 갑자기 최저기온이 10°C를 넘었고, 17일부터는 최고기온도 21°C를 넘겼으며, 18일부터 26일까지 24°C 이상의 최고, 11~15°C의 최저를 연속으로 기록했다. 특히 4월 25일에는 28.2°C[221]를 기록. 23~26일에는 아예 일평균이 20°C를 넘었다.[222] 그 뒤로 으레 그렇듯이 기온이 급격히 내려갔으나 이 고온의 여파로 4월 평균기온 13.9°C를 기록. 2022년 3월까진 열손가락 중 마지막으로 꼽혔으나, 2022년 4월이 14.8℃를 기록해 2년 연속으로 14도를 넘어서는 바람에 지금은 11위로 바뀌어 열손가락에서도 밀려나게 되었다. 전년인 1998년 4월이 말도 안 되는 고온 현상으로 월평균 1위를 기록해서 자연히 가려졌을 뿐, 1999년 4월도 어떤 의미로는 대단한 기록을 세웠다. 4월 최고기온 25도 이상 6일과 4월 하순 평균기온 등 1994년, 1998년, 2022년과 같이 쟁쟁한 이상 고온 사이에 낀 것인데 오히려 월평균기온이 반올림으로 15도[223]는 나올법한데 13.9°C 나온게 더 의외이다. 그만큼 일/월교차가 컸다고 설명할 수 있다.

  • 9월[224]~10월 1일 - 전국 9월 평균 기온이 22.0°C로 역대 최고 2위를 기록했다. 8월 말에 잠깐 낮아졌던 기온이 9월이 되자 다시 올라 9월 1~4일에 서울 최고기온 30~32°C 사이의 늦더위가 나타났고, 강원도 춘천홍천은 9월 3일에 32.4°C까지 올랐다. 또한 서울은 9월 1~17일까지 5일 단 하루를 제외하면 최고기온이 모두 28°C 이상이었으며, 9월 상순 평균기온도 1939년과 같은 25.3°C로 역대 공동 최고 2위를 기록했다. 9월 12~13일에는 2019년처럼 중순에 이틀 연속으로 30°C를 초과했으며 특히 13일에는 최고기온이 32.0°C를 기록하며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9월 중순에 32°C대의 기록이자 9월 중순 일최고기온 기준 역대 최고 4위[225]를 기록했다. 한술 더 떠 전라북도 남원에서는 33.1°C로 폭염일수가 기록되었다. 이후 20~23일은 전국적으로 가을비가 내리며 이상 저온을 보였지만,[226] 25일부터 다시 올라 28일에 28.4°C를 기록하였다. 결국 서울의 9월 월평균기온은 22.9°C로 2023년, 2016년, 1998년 다음 순위인 4위이며 기상학적 가을이 정확히 10월 첫날에 시작되었다. 만약 20~23일이 평년~약간 높았다면 월평균 기온이 2016년, 1998년과 맞먹는 23℃ 초반이었을 것이고, 그 기간도 이상 고온이었다면 2023년을 넘어 역대 1위를 달성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음 해에는 평균 기온이 20 °C 미만으로 떨어지는 이상 저온 현상이 찾아왔다는 점이 대조된다.

  • 11월 일부[227] - 서울 월평균기온이 7.9°C를 기록하며 전반적으로 온화했던 11월이다. 상순은 비교적 평범했으나 중순 일부와 하순 초반에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11월 14일서울은 최고기온 17.9°C를 보였고, 광주광역시 20.0°C, 제주도 서귀포는 무려 22.9°C까지 오르며 평년 10월 수준의 기온이 기록되었다. 이후에 잠깐 기온이 하락했다가 22일부터 다시 올라 23~24일에 다시한번 고온이 절정을 찍게 된다. 11월 23일 최고 기온 서울 18.3°C, 대구광역시 19.3°C, 전라북도 전주시 20.5°C, 서귀포 21.7°C 등을 보였다. 이후 25일부터는 전국적으로 영하의 추위가 찾아오면서 고온이 해소되었다.

  • 12월 일부[228] - 11월 말에 반짝 추위가 온뒤 12월이 되자 기온이 다시 상승하여 12월 2일 서울 최저기온 1.1°C로 영상권에서 시작하여 최고기온은 11.0°C까지 올랐다. 그 밖에 전주시 12.2°C, 광주광역시 13.6°C, 강원도 강릉시 13.5°C 등을 보였다. 12월 3일에도 고온이 이어져 서울 10.5°C, 울산광역시 14.3°C, 부산광역시16.6°C를 기록하였다. 이후 5일까지 고온이 이어지다가 6~7일 잠깐 낮아진 뒤 8일부터 다시 평년보다 높아지면서 12월 10일서울 최고기온 12.0°C가 기록되었다. 이 고온의 여파로 서울의 12월 상순 평균기온은 4.2°C로 당시 평년보다 크게 높았고, 역대 최고 11위로 랭크되었다. 이후 중순부터 크리스마스 연휴까지는 평년보다 낮은 기온을 보였다가 27일부터 다시 고온이 찾아와서 30~31일에 서울의 최고 기온 각각 7.7°C, 7.3°C를 기록했고, 그 중 31일에는 최저기온도 영상권을 보이는 등 포근한 날씨를 보이며 연말이 지나갔다. 이는 다음해 첫날의 초이상 고온으로 이어진다.
[1] 1972년 1월과 같다.[2] 67년 뒤에야 겨우 공동 기록을 기록했다.[3] 1931~1960년으로는 무려 4.8°C라는 편차를 자랑한다. 수십년 사이에 1월 평균이 급작스럽게 오르면서 편차가 좁혀지는 중이다.[4] 이를 가지고 판단해보자면 서울의 1월 평균이 0.2°C~0.7°C 사이였을 것이며, 1916년 1월보다도 더 높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인천의 사례를 보면 무려 한달 중에 26일씩이나 영상을 기록했는데, 서울도 최소 비슷하거나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5] 같은 시기에 관측되었던 인천은 이와 대조적으로 딱히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14일에 최저기온이 22 °C로 오른 적은 있다.[6] 1991년~2020년 평년보다 1.0°C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한파가 강했던 그 당시 치고는 꽤 높은 편이다.[7] 1908년부터 5월 기온이 기록된 이후 처음으로 31°C 돌파. 이때 당시에도 5월에 31°C를 넘어가는 날씨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기록이다.[8] 특히 이 해 가을철인 9, 10, 11월은 아예 관측 사상 가장 낮은 월평균기온과 가장 추운 가을철로 기록되었다. 11월 평균기온이 1.4°C로 2월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9] 1946년 10월 1일의 29.9°C가 그 다음으로 높았으며, 최근의 사례로는 2017년 10월 2일의 29.4°C가 있다.[10]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를 비롯한 수도권은 상순만 해당, 강릉시, 대구광역시, 부산광역시, 목포시는 중순까지.[11] 관측 당시에는 1위였으나, 109년 뒤 2023년에 이 기록을 크게 경신하면서 2위로 밀려났다.[12] 4~6일에는 34.6~34.8 °C를 기록했다. 0.2°C만 더 높았으면 9월에 35 °C를 넘는 기록을 일찍부터 세울 뻔했다.[13] 지구 온난화 현상이 흔해진 105년 뒤 2019년 12월의 최저 극값(-10.9°C)보다도 높았으니 말 다한 셈.[14] 이는 11월 말에 반짝 추위가 온 뒤 12월은 평년보다 다소 높았다가 다음해 1월 중순에는 강력한 한파가 찾아왔다는 점에서 2015년 12월~2016년 1월하고도 유사하다.[15] 26일에도 11.3 °C를 기록해서 이 날만 기온이 유독 오른 것도 아니다.[16] 1월에 이상 고온이 빈번하게 찾아오고 있는 지금도 이 해 1월은 공동 기록을 합하면 상위 6위에 들 정도로 굉장히 높은 축에 속하고, 1971년까지는 아예 1위를 차지했다. 1911~1940 1월 평균 기온보다 정확히 5°C나 높으며, 1월 평균 기온이 많이 오른 1991~2020 기준으로도 정확히 2°C나 높다. 사실상 일제 시절로 치면 2020년 1월의 그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다만 1905년 1월보다 낮다는 의혹이 있다.[17] 2002년 1월 중순, 2020년, 2021년 1월 하순 등 현대에 여러차례 이상 고온이 오며 이 기록은 2009년 1월 30일과 함께 상위 8위 정도에 그치지만 1932년 1월 6일이 크게 경신하기 전까지 1월 최고기온 자리를 지켰고 추운 겨울이 널리고 널린 일제강점기 시대를 떠올리면 매우 높은 축에 속하는 기온이다.[18] 사실 1월도 반짝 한파를 제외하면 -10 °C 이하인 날이 한번도 없었다.[19] 현대 서울의 도시화를 감안해도 평년보다 고온인 날씨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1916~1917년 겨울은 엄청난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한파/대한민국 문서 참조.[20] 평년보다 10 °C 이상 높은 수준이며, 일제 시절로 치면 사실상 2023년 5월 16일의 그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21] 1~6일, 24~28일[22] 평균기온은 1917년 1월이 더 낮지만 최저기온 기록은 1918년 1월이 더 낮았다.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 문서 참고.[23] 그럼에도 최고기온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았다.[24] 두 곳 다 1904년 관측 시작인데 아직도 17위라는 점도 대단한 것이다.[25] 역대 9월 27일 최고 극값 중 최하위.[26] 100년 뒤 2021년 9월도 늦더위가 왔는데, 순수 자연적이었던 1921년 9월과 달리, 2021년 9월은 열섬+지구온난화더블로 무장장한 것도 모자라, 하순에도 북태고까지 쉽게 물러가지 않아 100년전과 비슷한 듯 정반대인 양상을 만들어냈다. 결국 이는 10월 전반에도 수그러들긴 커녕 오히려 심화되어 유례 없는 초이상고온으로 이어졌다.[27] 이로 100년 후이며 약간 이른 시기인 2022년 4월 26일에 이보다 약간 높은 28.7 °C를 기록하였다.[28] 5월 상순 일최고기온 역대 최고 4위이며, 여름이 가장 빨리 시작되었던 2012년 5월 2일보다도 높았다.[29] 5월 말부터 4월 같은 날씨가 제대로 풀리기 시작했다.[30] 하지만 1930년 1월은 1931년 1월보다 최저기온이 낮지는 않았으나 중순까지 한파가 잦았다.[31] 기온 양상으로는 2021년 12월하고도 비슷하다. 이 해 역시 초중순에는 평년보다 다소 따뜻한 날씨를 보였다가 하순부터 한파가 시작되며 크리스마스 전후로 한파가 절정에 달했다.[32] 3월 9일 기록[33] 현대에 와서는 평년비슷 범위이다.[34] 다만 앞뒤 해보다는 양반이었다.[35] 2017년 9월 26일과 함께 9월 하순 최고기온 공동 1위.[36] 일명 경칩의 날로 일컬어지는 3월 6일(기존 기록 14.3℃. 현재는 16.5°C)보다도 높다! 참고로 3월 6일의 기록은 3월 한달의 극값 중 제일 낮은 값에 속다. 이날 일기도를 보면 도저히 1월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수준이고 남서-남동풍이 골고루 매우 강하게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보인다.[37] 서울의 경우 평년 1월 최고기온이 영상 2°C 정도이니 이 날은 평년보다 무려 12°C 이상 높았던 것이다. 이후 2021년 1월 25일13.9 °C로 이 기록에 근접하게 나오기도 했다.[38] 이틀 더 빨랐으면 4월에 30°C가 기록될 뻔 했다. 이후 2017년 5월 3일에도 동일한 기온을 기록했다.[39] 일평균은 23.7°C. 기록상 처음으로 5월 중 일평균 23°C을 넘겼다.[40] 당시 한강이 빨리 얼었던 이유는 11월 저온도 있었지만 이 해와 기온이 같은 1915년 12월도 12월 중순에 결빙한 것을 보면 당시 결빙 기준이 지금과 달랐을 수도 있다. 사실 70~80년대에 대대적인 한강 공사로 강의 폭이 넓어져서 1930년대의 한강과는 달랐다고 한다.[41] 1981년~2010년 평년과 같지만 3월에도 혹독했던 일제시대 치고는 꽤나 높은 기온이다.[42] 1914-09-03, 1997-09-01, 2023-09-05과 함께 몇 안되는 기록. 게다가 9일 아침에도 27 °C라는 9월치고 초기록적인 열대야를 보이면서 열대야가 2일 연속 기록되면서 관측사상 9월 중 가장 많았다.[43] 1991년~2020년 평년보다 약간 낮지만 1930년대 당시에는 한파가 강했고, 열섬 현상도 적었기 때문에 이정도도 꽤 따뜻한 편이였다.[44] 2014년부터 9년째 성행 중인 3월 고온 현상으로 인해 3월 극값 기록들이 줄줄이 깨지는 현재도, 3월 1일 극값은 깨지는 법이 없어서(...) 재조명받지 못하고 있다.[45] 특히 3월 1일에 최고 -4.8℃에 일평균 -9.5℃로 추산되었던 것과 정반대이다.[46] 하순 제외[47] 특히 1~6일. 그 중에서도 4~6일2011년 이맘때를 능가하거나 맞먹는 수준이었다.[48] 여름 및 가을에 타 지역보다 다소 선선한 것을 감안하면 매우 기록적인 이상 고온이라고 할 수 있다.[49] 정확히 두 달 전인 같은 해 9월 5일의 최고기온 25.9°C보다도 0.3°C나 높다![50] 특히 1월 31일-20.4°C를 기록할 정도였다.[51] 특히 5~6일, 10~12일, 19~23일, 28~30일. 강릉15~17일도 포함. 그 중 6일, 12일, 20일2015년 6월 10일, 2020년 6월 22일에 맞먹는 수준이다.[52] 이틀만 더 빨랐다면 2015년 6월 10일34.9°C에 이어 6월 상순 최고기온 2위를 달성했을 수도 있다.[53] 서울의 11월 하순 최고기온 상위 1위.[54] 현대 평년으로 해도 이정도인데 당시 평년(1911-1940년)으로 하면 얼마나 편차가 엄청났을지 궁금하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20.0 °C로 전날에 이어 다시 한번 20도를 넘어섰다.[55] 2011년 11월 28일에는 14.6 °C로 하순 일평균기온 최고기록을 경신하였다.[56] 1위 1954년 10.8°C, 2위 2014년 9.9 °C[57] 그런데 12월 1일으로 넘어가자마자 따뜻했던 날씨가 돌변하면서 한기의 급격한 남하로 첫날부터 갑자기 싸늘해진 12월을 생각하면 이 기간은 하늘이 마지막 자비를 베푼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 뒤 11월 30일과 12월 1일 간의 기온 차가 크게 벌어진 것이 2014년 11월 30일~12월 1일, 2022년 11월 29일~30일을 연상케 할 정도이다. 서울의 1944년 12월 상순 평균기온은 -5.8 °C로 하위 1위이다.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강력한 고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이로운 차이를 보인 것이다.[58] 이는 2021년과도 유사하다. 4월 하순에 28°C를 넘는 고온 현상이 나타난 후 5월은 대체로 강한 이상 저온이 찾아왔다는 점.[59] 8일, 11일, 17~21일, 26~27일 제외[60] 이는 2019년과 비슷한 케이스이며, 9월 16일에 30도 초과, 9월 말~10월 초 늦더위가 찾아온 것 모두 2019년과 동일하다.[61] 13~14일, 28~30일 제외.[62] 우연하게도 폭염이 찾아오지 않는 기간이 現 대한민국의 기간(1948년 8월~현재)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이후 1998년, 1999년, 2022년, 2023년이 32 °C대를 기록하며 폭염 기준에 근접하긴 했다.[63] 그러나 지금으로썬 33℃ 이상의 폭염이 오지 않길 바래야만 하는데, 9월에 33℃를 넘기고도 열섬 현상 부재로 몇시간 내로 금방 기온이 내려가는 저 시대와 다르게, 현재는 양상이 많이 바뀌어, 33℃는 커녕 30℃만 기록해도 열섬 현상과 먹구름/강수 현상이 나타나 기온이 쉬이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후 급격히 내려가는 기온에 적응하기도 힘든 것은 덤. 대신 그만큼 올라가기도 쉽지 않아졌다. 5~9월은 과거와 달리 기록 경신이 잘 되고 있지 않는데, 이 영향이 크다. 이게 좀 의아하게 들릴 수 있으나, 현대에 와서 극값이 자주 경신되는 10~4월과 달리, 하절기인 5~9월은 어지간한 고온이 아닌 이상 기온 상승이 중간에 저지되어 평년보다 약하게 높은 날씨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경우에 그치는 정도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평균 기온은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열섬 현상으로 인한 최저 기온 상승이 크다.[64] 1958년 12월의 설명을 보면 알겠지만, 이해 12월은 1958년보다 고작 0.2°C 낮을 뿐이라 사실상 1958년 12월과 맞먹는 이상 고온의 끝판왕이며 1991~2020년 평년치보다도 3.6°C 높아 지금까지도 2020년 1월과 함께 평년대비 이상고온 편차 상위 2위에 해당하며, 이보다 이상 고온 편차가 높은 달은 1958년 12월(3.8°C)뿐이다. 당시 기준으로 평년치보다 5°C 정도 높았다.[65] 2위는 1932년 5월 17일의 33.5°C. 대신 이쪽은 가장 이른 폭염이라는 타이틀은 그대로이다.[66] 반면 29~30일 대구는 평년보다 조금만 높은 29.4°C, 27.3 °C를 기록했다. 동풍의 영향으로 서울이 대구보다 확실히 높았다.[67] 열섬 현상이 적었던 시기임에도 이렇게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은 현대나 추후에 오면 35°C 이상 기록이 가능하게 되어 5월에 폭염 경보일수를 찍게 될 수도 있다.[68] 최저기온은 9.1°C였는데, 이게 5월 중에 유일하게 한자릿수로 기록된 것이다. 평균기온이 낮고 5월 중순까지도 최저기온이 한자릿수를 기록하던 이전의 기록에 비하면 확실히 놀라운 기록.[69] 만약 17~22일의 추위조차 없었다면 1990년, 2022년 11월처럼 10도대가 나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70] 평년 4월 수준이다.[71] 해당 사이트에서 1953년 1월 14일의 오전 6시 최저 기온을 보면 서울 관측소가 위치한 종로구 송월동이 -16~-18°C 사이에 걸쳐져 있다. 즉 서울은 1월 11일까지 이상 고온을 보이다 곧바로 추워져서 1월 14일에 -16°C 이하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인천 최저 기온도 -14.6°C로 가장 낮았다.[72] 특히 8~10일, 21~24일, 26~28일.[73] 당시 기준으로 치면 2022년 11월과 비슷한 정도의 편차이다.[74] 이후 60년 뒤인 2014년9.9℃를 기록하면서 또다시 10°C에 근접하게 된다.[75] 2011년 이후에 18도를 넘지 못한 해는 2012년뿐이다.[76] 다음 날에는 33.9 °C를 기록.[77] 다음 날에는 34.0 °C를 기록.[78] 만약 이 현상이 2010년대 이후에 일어났더라면 12월인데도 최저기온이 기껏해야 영하 1~2°C, 심하면 최저극값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졌을 것이다. 비록 추측일 뿐이지만 2020년대 현대에 와서도 평년보다 3.8 °C나 높은 초이상 고온 현상을 보였다. 게다가 1991~2020 기준 가장 높은 편차 1위이기도 하다. 2위는 2020년 1월의 +3.6.[79] 그리고 11월 극값인 -3.3°C도 낮지 않은 값으로 이보다 높은 경우는 최근 10년간 3번(2012년,2014년,2018년)뿐이다.[80] 현대에서도 이상 고온으로 꼽히는 2015년, 2019년 12월도 최고기온은 2015년, 2019년 각각 12.2 °C, 12.9 °C로 1958년보다 살짝 높았지만 -10~-11 °C의 한파는 있었다.(서울 기준) 하지만 1958년 12월은 한파는 커녕 추위 자체가 없이(...) 12월을 끝내며 서울은 역대 가장 높은 12월 평균기온을 달성했다. 한편 2016년에도 13.6 °C까지 올랐고 -10 °C 이하로 간 날도 없고 따뜻했지만 추위가 몇 날 있어서 1958년 12월보다는 2~3 °C 낮았다. 한파가 강하긴 했으나 이상 고온도 강했던 2018년 12월도 3일에 13.5°C까지 올랐고 일평균 극값 5위이며 22일에도 12.4°C까지 올랐다. 2021년 12월도 13.3°C가 연속으로 이어졌다.[81] 1월 평균기온은 -5.1˚C로 2018년 1월보다도 1도 이상 낮은 편이었다.[82] 이는 현재까지도 전주의 5월 일최고기온 역대 1위에 랭크되어 있다. 2위는 2014년의 34.8°C이다.[83] 대구의 경우 6월 16~17일 이틀 연속으로 35 °C 초과.[84] 현대에 와서도 높은 기온이다. 만약에 이게 현대에 왔고 세밑 한파가 없었더라면 기온이 더 높게 나왔을 것이다.[85] 2020년 1월의 평년편차 +4.5°C보다도 높다.[86] 2001과 2002년의 경우 같은날 최저기온 -18.6 °C11.0 °C를 기록한 적이 있으나 2001년은 하순에 한파가 누그러졌고 2002년은 상순에 한파로 다소 추워서 월평균기온 차이는 4.5°C로 1963-1964년이 두배 차이로 훨씬 심하다.[87] 정확히 1년 뒤 1965년 1월 12일에 최고 -11.2℃, 최저 -18.1℃를 기록해 두 해의 차이가 극명하게 대조되었으며, 이는 2001년 1월과 2002년 1월이 사흘 뒤로 옮겨간 채로 재현된다. 여담으로 1964년 1월과 2001년 1월-2002년 1월은 각자 극값 기록을 부분적으로 세웠으며, 1965년 1월도 1위만 못 했을 뿐 그에 버금가는 값을 기록했다.[88] 특히 4월 17~20일에 최저기온이 크게 오르면서 서울 15.7°C, 전주는 최기온이 무려 20.8℃를 기록했다. 4월에 최저기온이 20°C를 넘기는 현상은 매우 드물며, 평년 7월 수준이다.[89] 그나마 이 현상에 가까운게 1974년 7월이다. 강릉은 19.2°C로 매우 강력한 초이상 저온 이었는데 서울, 제주는 23.5°C, 전주는 23.9°C를 기록해서 이상 저온이지만 다른 지역과 4°C 이상 차이난다.[90] 2015년 4월도 동풍이 잦아 영동이 초이상저온이라 그나마 가깝긴 하지만 22~27일은 초이상 고온이라 월평균기온이 심각하게 낮지 않았고 그 밖의 지역도 24~30일에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났지만 23일까지는 대체로 평범해 큰 고온현상이 없었기 때문에 크게 높지 않았다.[91] 세부적으로는 일최고 평균 25.7 °C, 일최저 평균 14.2 °C이다. 이는 이상 고온이 심화되었다고 평가받는 2010년대 이후 7개 해의 5월과 비슷한 것으로, 2012년 5월(19.7 °C/25.1 °C/15.4 °C), 2014년 5월(19.0 °C/25.3 °C/13.8 °C), 2016년 5월(19.6 °C/25.7˚C/14.1 °C), 2017년 5월(19.5 °C/25.4 °C/14.4 °C), 2019년 5월(19.4 °C/25.6 °C/13.7 °C), 2022년 5월(19.1 °C/25.0 °C/13.9 °C), 2023년 5월(19.5 °C/25.0 °C/14.6 °C)과 비슷하다. 이는 앞뒤 년도는 커녕 11년 뒤인 1978년 5월의 25.1 °C가 그나마 비슷할 정도라 더 특이하고, 2003년 4월까지는 역대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밖의 2010년대 이후의 해 중 2010~2011년, 2021년을 제외하고는 2013년, 2015년, 2018년, 2020년 5월도 평년보다 다소 높았고 이상 고온이 나타났으니 할 말 다한셈.[92] 서울 기준이며, 남부 일부 지역에서는 30 °C를 초과한 날들이 몇몇 있었다. 대프리카로 유명한 대구의 경우 5월 18일에 32.1 °C 기록.[93] 2012년 5월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94] 이는 5월 하순에 이동성 고기압도 아닌 때 이른 북태고 확장 때문인데, 7~8월도 아닌 5월에 확장했다는게 매우 놀라울 지경. 이는 마치 1998년(이때는 심지어 5월도 아닌 4월), 2018년(이 때는 5월 중순)을 연상케한다. 결국 이는 극심한 여름철 폭염으로 이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폭염/사례 참고.[95] 단, 최저 기온은 평년과 비슷하여 일교차가 15℃ 이상으로 크게 벌어졌다.[96] 현대 치고도 매우 빠르며 2018년, 2021년, 2023년과 비슷한 시기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해는 강한 폭염강력한 한파가 찾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97] 단, 동쪽 지방은 6월 19~21일이상 저온이 있었다.[98] 이는 11월 26일의 최저기온 최고 극값이다.[99] 1위는 1958년, 2위는 1948년[100] 이는 서울의 12월 역대 최고기온이며, 평년 10월 수준이다.[101] 몇 번의 작은 한파 이후 금세 이상 고온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다가 마지막 날인 31일에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갔다는 점에서 2019년 12월하고도 공통점이 있다.[102] 2019년~2020년 겨울하고 비슷한 셈이다.[103] 일평균기온도 무려 14.5 °C를 기록, 평년보다 7 °C 이상 높은 초이상 고온을 보인 것이다.[104] 여담으로, 불과 이틀 전인 4월 11일의 최저 기온이 5.8℃였는데 이틀 만에 무려 14.5℃나 상승한 것이며, 최고 기온 역시 27.6℃로 매우 높았다.[105] 특히 서울에서는 5월 한달 내내 일 최고기온이 27℃ 이상 오른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106] 그나마 더위로 유명한 대구에서는 7월 하순에 최고극값 34.8℃를 기록하긴 했지만 지난해에 비해선 확실히 약했다. 최고 극값만 비교하더라도 지난해보다 2.4℃ 낮았다. 또한 서울은 최고극값이 32.9℃로 폭염이 없는 여름으로 기록되었으며, 남쪽에 위치한 제주시에서도 열대야만 길게 이어졌을 뿐 폭염일수는 3일로 적은 편이었다.[107] 정확히 50년 뒤인 2019년에도 9월 평균이 6월보다 높았다는 점이 흥미롭다.[108] 이후 53년 뒤, 이보다 약간 이른 시기인 2022년 11월 11일서울에서 이와 같은 기온을 기록했다.[109] 6~15일, 19~20일. 특히 9~13일[110] 이마저도 하순에 기록된 것이며, 상순~중순 동안에는 최저 기온 극값이 -6.5 °C에 그쳐 2020년 1월과 극값이 같았다.[111] 이 고온 현상으로 56년 동안 1위를 차지했던 1916년 1월(0.0°C)이 2위로 밀려나게 되었다.[112] 9~10일, 23일[113] 7월 29일 34.5°C, 7월 30일 35.8°C, 7월 31일 35.6°C, 8월 1일 34.9°C[114] 강릉, 대구광역시 등 동쪽 일부 지방 한정[115] 특히 8월 18~19일 이틀 동안 내린 비의 양이 무려 313mm에 달한다.[116] 가장 높았던 날은 8월 15일에 기록된 35.1°C였다.[117] 이 점은 2021년 10월 15~17일과 유사하다. 15일까지 늦여름 날씨를 보인 뒤 기온이 급락하여 이틀 뒤에 1.3°C까지 급하강한 점.[118] 5~6일, 10~11일, 23~26일[119] 26일은 최저기온 제외.[120] 1~6일, 8일 제외[121] 현대에도 고온이고 당시 치고 매우 높다.[122] 1°C만 높았으면 4월에 30°C대가 기록될 뻔했다.[123] 이 기록은 46년 동안 깨지지 않고 있으나 서울은 2016년에 23.1°C로 기록을 깨긴 했다.[124] 1975년은 10월 1일, 2019년은 10월 4일. 1975년 당시를 감안하면 놀랍다.[125] 1976년 5월 27일: 32.2℃, 2015년 5월 28일: 32.2℃.[126] 비교 대상인 2015년 5월 28일 일평균이 24.3℃이다. 이것보다 살짝 더 더웠다는 것.[127] 똑같이 5월 상순이 매우 낮은 2021년과는 다른 양상으로, 이쪽은 5월 하순의 최고기온이 유독 낮아 하순도 상당히 저온이 강했다. 다만 그만큼 중순에 더위가 와서 평균기온이 많이 낮지는 않았다.[128] 8~9일, 25~31일 제외.[129] 1981~2010과 같다.[130] 하지만 1월 말부터 기온이 서서히 낮아지더니 2월 첫날부터 -16 °C를 기록하여 가장 강한 한파가 왔다. 그 다음부터는 1월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기온이 이어졌으며 그 영향으로 서울의 2월 평균기온이 -2.5 °C로 1월보다 낮았다.[131] 일최고 평균으로만 치면 25.1 °C로 2012년 5월 최고 평균과 같으나, 일최저 평균은 12.9 °C로 당시의 최저 평균과 비슷하게 기록되었다.[132] 10~13일, 23~27일 제외[133] 서울 최저기온 극값이 12월이 11월보다 높게 기록된 건 1970년 이후 9년만이다.[134] 이는 2021년 5월 상순 및 하순과도 비슷하다.[135] 이는 현재에도 7위이다. 심지어 9월 평균 기온을 넘어섰을 정도였다. 참고로 1위는 2019년의 21.0°C.[136] 이후 2020년 6월이 24.3 °C로 1위를 기록하고 2022년 6월도 경신하여 3위로 밀려나게 되었다. 강릉이 아니라도 그 밖의 동쪽 지역들은 6월동안 대체로 고온이었다. 하지만 수도권은 6월도 이상 저온이었고 한여름인 7~8월은 전국이, 강릉도 마찬가지로 이상 저온으로 갔다. 또한 1980년 여름은 수도권 중심으로 저온을 보이기도 해서 영동 및 동쪽 지역은 수도권보다 저온이 덜했다. 반면에 1993년은 남부지방 및 동해안 중심으로 저온을 보여 그들 지역 기준 기록적이었다.[137] 이 점은 2005년, 2014년, 2022년과도 비슷하다. 11월에는 반짝 추위 빼고 매우 따뜻해서 평년보다 높았지만 12월에 강한 한파가 찾아온 점.[138] 2013년, 2018년, 2023년이 이를 깼다.[139] 심지어 전국은 4.4°C로 역대 최하위.[140] 2022년 4월 11일26.6°C를 기록했고, 마찬가지로 일일 기록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음에도 4월 10일 기록보다 하루 늦고 0.1°C 낮다.[141] 참고로 대관령은 최고 기온 기록이 7~8월 32.9°C이고, 9~10월에는 아예 30°C를 넘긴 적이 없었다! 5월 하순이면 현재는 여름이긴 하지만 그때는 아니었고, 대관령은 완연한 봄(한반도 대부분의 4월 15~25일 정도 날씨)인 시기에 매우 높게 기록된 것이다. 대관령이 지대가 높은 지역임에도 이랬는데 낮았으면 31도로 그치지 않았을 듯.[142] 이전에는 겨울철에 서울의 월평균기온이 -4℃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흔했으나 1987년 이후로는 다섯 차례(2001년, 2010년, 2011년, 2018년 1월, 2012년 12월) 뿐이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치고 한파가 제대로 왔다 하면 기록하던 -5℃ 이하의 월평균 기온도 2011년 단 한 번 밖에 없었다.[143] 규칙이 항상 성립한다고 볼 수는 없으나 1948년, 1958년, 1968년, 1978년, 1987년, 1997년, 2007년, 2016년은 모두 12월에 이상 고온 현상이 있었다. 2006년과 2015년 12월도 고온이었고, 2019년 12월도 상순 일부와 마지막 31일에 한파가 찾아오긴 했으나 평년보다 고온이었고 또 금세 이상 고온으로 돌아갔다. 1948년 이전 1908년에는 서울 평균기온이 -0.8 °C로 당시치고는 따뜻했지만 1918년, 1928년, 1938년은 각각 -1.5 °C, -1.9 °C, -2.3 °C으로 당시 기준으로도 평년 수준이며 최저기온은 서울 기준 -13~-16 °C로 꽤나 낮았다. 게다가 그들 해는 다음해 1~2월에 한파가 왔다.[144] 만약 이 날 날씨가 맑았더라면 기온이 더 상승하여 최고기온 15°C 전후까지 올라 4월에 가까운 날씨를 보였을 수도 있었다.[145] 최근 이상 고온인 2020년 2월보다도 더 높다. 그리고 2021년 2월과 동일하다.[146] 단 1989년 12월은 따뜻했다.[147] 만약 날씨가 맑았더라면 2021년 2월 21일처럼 최고기온이 15°C를 넘기는 강한 고온을 보였을 것이다.[148] 1992년, 1998년, 2002년, 2008년, 2014년, 2018년, 2020년. 당연하다는 듯이 끼어있는 2020년 이 시기 동안 2018년 3월이 가장 도드라졌다.[149] 2021년, 2022년, 2023년. 중간에 한달 단위로 기록적인 저온이 있지 않는 한은 2020~2050년 사이에는 아예 연속으로 깨지는게 당연한 현상일 가능성이 커졌다.[150] 6~11일, 21~23일 제외. 특히 1~4일, 13~19일, 25~30일. 그 중 14~19일, 27~30일2022년 11월에 맞먹을 정도로 고온이 매우 심했다.[151] 기록 당시에는 2위였으나 2022년에게 추월당해 3위로 밀려나게 되었는데, 그 차이가 불과 0.02 °C 차이였다! 소수 첫째자리만 비교해보면 10.0°C로 2022년과 같은 값이 나오지만, 소수 둘째자리까지 환산하면 1990년은 10.01°C, 2022년은 10.03°C가 되기 때문이다.[152] 후일담 격으로, 12월 11일부터 평년 수준의 추위가 찾아왔다가 21일에 9.0 °C까지 올라갔고, 23일부터 기온이 한파 수준으로 내려갔다가 또 올라가 31일에 8.8 °C를 기록했다.[153] 5월에 최저 기온 20°C는 매우 기록적이다. 당장 현재인 2023년까지 최저 기온 20°C를 넘은 날은 단 7일에 불과하다. 게다가 당시 기준 가장 빠른 20°C대를 기록했다.[154] 5월 하순 일평균기온 기준 2014년 5월 31일에 이은 역대 최고 2위 기록이다.[155] 1월 19일의 -9.1°C가 최저 극값이었다.[156] 29년 뒤 2021년 3월이 영하를 기록한 날이 단 하루밖에 되지 않는 상위호환격 날씨를 보였다. 이는 그 2023년 3월도 기록하지 못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1992년 3월이 2021년 3월의 전신이고 선배격이다. 극값도 -1.4°C로 2021년 다음으로 높았다.[157] 이는 2019년 12월~2020년 4월과도 양상이 비슷하다. 12월부터 3월까지 4달이 모두 이상 고온이었으며, -12°C 이하의 한파일수가 없었던 점, 한강이 얼지 않았던 점 역시 동일하다. 단 4월은 초반까지 고온이라는 점은 비슷하나 중순과 하순은 양상이 달라졌다. 1992년 4월은 중순에 저온, 하순은 평년 수준이었지만, 2020년 4월은 중순이 평년 수준, 하순이 저온이었다. 두 해의 달력 모양까지 일치한다.[158] 7월 말~8월 초에 와도 매우 높은데, 이 기록이 7월 상순에 나왔으니 기록적이다. 이는 현재까지도 대구의 7월 상순 일최고기온 역대 최고 4위에 해당한다.[159] 특히 7월 29일에는 3주 전과 동일한 37.8°C가 기록되었다.[160] 12월 23일 기록[161] 즉, 이 해는 1월부터 12월을 통틀어 한파일수가 전혀 없었던 해이다.[162] 2019년 12월 10일에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일어났다.[163] 7~9일, 24~26일 제외[164] 현대에 비해서는 기록적이지는 않지만 이정도면 강한 이상 고온이고 놀라운 점은 이 기록이 연중 최고 기온이라는 것이다. 극값이 2016년 5월 19일의 31.9°C와 같다. 다만 2016년 5월은 중순부터 29~31도를 여러 차례 넘겼다. 이 외에도 강원도 홍천이 같은 날에 31.9°C를 기록.[165] 정확히 11월 21일부터 기온이 급락하였다. 하순 평균 0.9°C로 11°C 이상 차이가 났다.[166] 기온 급락 시점도 11월 20일로 단 하루밖에 차이 안난다.[167] 특히 5~7일, 19~21일[168] 실제로 29년 뒤인 2023년에 이 값에는 못 미쳤지만 전국 곳곳에서 3월 극값이 경신되었고 서울도 25.1°C를 기록했다.[169] 1위는 2021년 4월 상순.[170] 이는 평년의 10월보다도 높다.[171] 4월의 이상 고온에 비해서 늦은것이지 물론 당시 평년보다 5일 빠르기는 했다. 여담으로 3년 뒤에도 4월 8일에 개화했다.[172] 특히 7월 23~24일[173] 정확히 50년 전인 1944년 9월 1일 37.2°C를 겨우 뛰어넘어 1위를 차지했다.[174] 단, 월초에 반짝 폭염으로 9월 1일, 4일에 서울에서 32°C 안팎을 기록하긴 했다.[175] 이 점은 2018년과도 비슷하다. 7~8월 강력한 폭염이 이어진 뒤 9월은 심한 고온 없이 대체로 평범했다는 점.[176] 이후 28년 뒤인 2022년에 역시 같은 날짜에 첫 영하권을 기록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이 두 해는 달력 모양까지 같다.[177] 즉 2023년도 2월 27일에 최고 기온 12°C를 넘겼던 것을 제외하면 이 해와 비슷한 기온 분포를 보인 것이다.[178] 특히 1~2일, 5일, 8~9일.[179] 2020년 6월과 같다.[180] 또한 이 날 울진에서 당시 최대 1위인 순간최대풍속 51.9 m/s를 기록하였다.[181] 특히 1일, 6~8일[182] 서울에서는 이 해 9월 1일 이후 2005년 같은날에 9월 열대야가 기록되었고, 이후 기록한 해는 나오지 않고 있다.[183] 이는 2010년 9월에서 11일 더 빨리 낮아지면 비슷하다. 이쪽은 중순까지 한여름 수준이라 매우 높았다.[184] 특히 20~21일[185] 즉 8월 하순에 나올법한 날씨가 10월 하순에 나온 것이니 상당히 기록적이다. 이는 현재까지도 대구의 10월 일최고기온 역대 최고 3위에 랭크되어 있다. 1위는 마찬가지로 10월 늦더위가 강력했던 2021년 10월31.8°C.[186] 11월 17~19일, 12월 1~4일, 9~13일 제외[187] 원래는 1위였지만 2016년에게 밀려 2위로 떨어졌고, 2019년과 2021년에도 밀려 결국 4위가 되었다.[188] 1917년라니냐의 정석을 보여준 해라면 1998년은 엘니뇨의 정석을 보여준 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름부터는 라니냐라 폭우도 내리고 늦더위도 강력했다. 그러나 1998~1999년 겨울은 따뜻했다.[189] 2015년, 2016년, 2019년, 2021년이며, 그 밖의 2014년, 2017년, 2018년, 2020년, 2022년도 꽤 높은 편이다. 특히 2016년과 2019년, 2021년은 이 해 기온을 넘겼다.[190] 물론 제주도는 여름 더위 역시 강한 때가 있었다.[191] 이후 2022년이 근소한 차이로 2위를 기록하게 된다.(32.5 °C).[192] 1998년 여름은 폭우로 기온이 크게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193] 8~10일 제외[194] 당시 기준 신기록. 이후 2007년 2월이 4.0도를 기록해서 2위로 떨어졌다.[195] 20~23일 제외[196] 물론 2019년 4월도 21~23일에 이상 고온이 심하긴 했다. 게다가 1998년처럼 1~3일은 이상 저온이었다.[197] 1~3일 제외[198] 이 현상이 3월 하순에 나타났으면 3월에 최고기온 30°C이상도 가능하다는 것으로 추론되기도 한다. 또한 2013년에는 3월 초반인데도 불구하고 전주가 28.2°C를 찍은걸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현상이다.[199] 이유는 1998년은 고온현상이 많았으나 정작 여름에는 잦은 폭우로 인해 폭염이 없거나 적었다.[200] 1961~1990 대비 +3.8°C[201] 11~12일, 29~31일 제외[202] 당시 신기록. 이후 2012년이 5월 2일로 갱신했다. 현재에도 2012년, 2019년 다음 3번째이며 2000년대 이후 상당수 해(2001년, 2003년, 2009년, 2013~2018년, 2021년~2023년)가 15~22일 사이에 시작했다.[203] 2012년은 한술 더 떠서 5월 초에 여름이 시작되었다.[204] 취소선이 그어져 있지만 사실이다. 온난화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전인 1980년대까지는 당연하고 온난화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1990년대에도 5월 온난화는 적어 덥지 않았으며 5월 온난화가 심해진 2000년대~2010년대 극초반만 해도 5월은 여름보다는 봄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는데 2010년대에 들어서 5월은 봄보다 여름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특히 2020년을 제외하면 5월 중순에 봄이 끝나서 여름으로 바뀌었는데[203] 1998년 역시 이랬다.[205] 특히 8~13일[206] 9월 중순이면 봉화 등 내륙 대부분 지방에서 기상학적 가을이 시작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34°C에 육박했다는 건 매우 기록적이다. 다만 그만큼 일교차도 15~17°C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207] 2021년 9월이 극값이 16.0°C로 경신했다.[208] 19~20일 제외[209] 1위는 2006년 10월[210] 2012년(5월 2일~9월 27일), 2019년(5월 11일~10월 4일), 2021년(5월 15일~10월 9일)이 근접했지만 1998년을 넘지는 못했다. 즉 폭염은 없어도 여름자체는 가장 길었다.[211] 일최저기온 기준이다.[212] 단 아침 최저기온 기준으로 하면 1위가 아니다. 2020년 11월 19일 아침에 18.5°C를 기록했기 때문.[213] 8~12일 제외[214] 1958년, 1948년, 1968년, 1977년 다음 순위[215] 12월 10일 기록. 중순 및 하순이 아닌 상순에 최저극값을 기록하게 되는 현상이 벌어졌다.[216] 12월 18일 기록[217] 특히 2~5일, 22~26일[218] 1월 8일 -11.0°C, 1월 9일 -12.2°C, 1월 10일 -10.8°C, 1월 11일 -9.1°C[219] 공교롭게도 이 두 해는 달력 모양까지 같다.[220] 10~11일, 16~26일. 단, 16일은 최저기온 한정. 특히 18~19일, 23~25일.[221] 20년 뒤인 2019년 4월 22일, 22년 뒤인 2021년 4월 21일과 같은 값이다.[222] 1998년 4월 21일~23일이 일평균기온 20~21°C를 넘었는데, 1999년 4월도 그에 못지 않은 기록을 세웠다.[223] 14.5~15.4도[224] 20~22일 제외. 특히 8~13일, 27~28일.[225] 1998년, 2022년, 1943년 다음 순위[226] 특히 21일에는 서울의 최고기온이 18.5°C에 불과했다. 사흘만에 10°C 이상 하강한 셈.[227] 12~14일, 22~24일[228] 2~5일, 8~10일, 28~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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