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커우시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중국 랴오닝성 서부의 지급시. 선양시에서 서남쪽으로 150km, 다롄시에서 동북쪽으로 170km 떨어져 있는 항구 도시이다. 보하이 만 속의 랴오둥만 안쪽의 항구 도시로, 훈허와 타이쯔하 (태자하)가 만난 다랴오하의 하구 남쪽에 입지한다. 지급시의 관할 인구는 250만명인데, 그중 도시 자체에는 110만이 거주한다. 19세기 후반 요동 지역의 유일한 국제 무역항으로 지정되어 발전하였으나 20세기 들어 남쪽의 다롄에게 밀려 쇠퇴하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 개혁개방 후 제지와 기계공업을 중심으로 재차 발전하여 현재에 이른다. 그외에 세계 최대의 마그네슘 광산이 있어 그 생산 거점이기도 하다.
시가지는 동쪽의 랴오벤구를 통해 다스차오 시와 점차 연담도시화가 되고 있으며, 랴오벤구와 다스차오시 사이에 위치한 잉커우 동역에서는 하얼빈-다롄, 잉커우-판진 고속철이 다닌다. 판진을 통해 베이징 등 중원으로 진출할 수 있다. 남쪽 20km의 바위취안구의 여객항에서는 한국의 인천항국제여객터미널과 일주일에 2번 카페리가 운항하며, 약 24시간이 걸린다. 시내와 바위취안구 사이에는 잉커우란취 공항이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도시로, 2020년 중국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10위 안에 든 바 있다. 바이취안 훙취 시장은 3백년의 유구한 전통을 자랑한다.
2. 역사[편집]
잉커우 남쪽 가이저우에는 고구려의 주요 방어 거점인 건안성이 있었다. 다만 본래 도시의 자리는 랴오허강 하구의 어촌에 불과하였다. 그러던 1858년 톈진 조약에 따라 개항된 우장 (니우좡)이 토사의 퇴적으로 항구 기능을 상실하자 1864년 그를 대신하는 조약항으로 잉커우가 지정되었다. 1872년부터 본격적인 대유럽 외교가 시작되었고, 랴오허강의 수운으로 콩을 중심으로 한 만주의 농산물이 집결되며 도시는 국제적인 교역항이 되었다. 1895년 3월에는 일본군이 청나라군을 격파하고 도시를 점령한, 청일전쟁 최후의 지상전인 영구 전투가 벌어졌다.
20세기 들어 남만주 철도와 연결되는 짧은 지선이 놓이기도 하며 번영하던 도시는 그 종착점인 다롄이 요동 지방의 국제항으로 부상하고, 하구의 모래 퇴적 및 동절기 결빙 등의 단점으로 인해 연안 무역항으로 격하되었다. 다만 지급시에 해당하는 지위는 유지하였다. 1958년 랴오허, 훈허강의 분류 공사 후 잉커우는 훈허강 하구가 되었다.[1] 20세기 중반 하구 일대의 갈대를 원료로 한 제지 산업을 중심으로 공업이 발달하였고, 임해 공업도시가 되었다. 1988년 개혁개방 후 잉커우 수출 가공구가 설치되었고, 1992년 경제기술 개발구로 지정되어 해외 투자를 받아 발전하였다.
3. 교통[편집]
주요 역으로는 잉커우역(营口站)과 잉커우 동역(营口东站)이 존재하며, 잉커우역은 선다 철도(沈大铁路)의 지선인 잉커우선(营口线)만 통과하여 선양역에서 출발하는 일반열차만 정차하는 재래역이고 고속철도는 잉커우 동역에서 정차한다.
항공교통의 경우에는 관내에 잉커우 란치 공항(营口兰旗机场)이 존재하며, 국내선 전용이지만 쿤밍시, 칭다오시, 난징시, 시안시 등의 장거리노선이 상당히 존재하는 나름 규모가 존재하는 공항이다.
항구도시라서 페리도 존재하는데, 주로 산둥성의 도시와 연결하고 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5 07:02:10에 나무위키 잉커우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