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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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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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제2대 민정수석비서관
정동기
鄭東基 | Jung Dongki

파일:정동기 수석.jpg
출생
1953년 8월 17일 (58세)
경상북도 봉화군 물아면 가평리
본관
청주 정씨
재임기간
제49대 법무부 차관
2006년 8월 28일 ~ 2007년 3월 4일
이명박 정부 제4대 민정수석비서관
2008년 6월 23일 ~ 2009년 9월 1일
학력
경동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법학 / 학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 · 박사)
병역
대한민국 공군 대위
가족
배우자 김외숙, 슬하 1녀
경력
제18회 사법시험 합격
제8기 사법연수원 수료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법무부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법무행정분과위 간사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이명박 정부)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1. 개요
2. 생애
3. 경력
4.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법조인(전 법무부차관, 전 대검차장).


2. 생애[편집]


1953년 8월 17일,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에서 4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경동고등학교한양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76년 제1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여[1] 검사가 되었다. 병역은 대한민국 공군 대위로 마쳤으며, 검찰에서는 대구지검장, 인천지검장, 대구고검장, 법무부차관, 대검차장 등 고위직을 역임하였다.

참여정부에서 법무부 차관을 역임했고,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법무행정분과위 간사,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가 낙마하자, 이에 책임을 지고 민정수석에서 사임한다.

감사원장 후보자로도 지명되었지만,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낙마했다. 이후 법무법인 바른의 고문으로 재직하였다. 19대 총선을 앞두고는 새누리당의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당시 새누리당에서는 친이계에 대한 공천학살이 이루어졌고, 정동기 역시 공천을 받지 못하였다.

언론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하며, 2017년에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이명박에 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 2018년 초 재직하던 법무법인을 퇴사하고, 이명박 변호를 위해 이명박 측근 출신 법조인들이 모여 만든 로펌에 합류하였다.#.#

그런데 정동기는 하필 BBK 주가조작 사건 때 대검찰청 차장검사였던 관계로 이 사건수임이 변호사법상 수임제한 규정(변호사/권리와 의무 문서 참조) 위반이 아닌지 논란이 되었고, 정 변호사는 결국 대한변호사협회에 수임의 적법 여부에 관해 유권해석을 의뢰하였는데# 변협은 그러한 수임이 위법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결국 정동기는 이명박의 변호인단에 합류하지 못하게 되었다.

2020년 12월 15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들에 관련해 사과한 것에 반발하여 당을 탈당하였다.


3. 경력[편집]


  • 2011.03 ~ 2018. 02 법무법인 바른 고문












  • 2000 인천지방검찰청 제1차장 검사



  • 1997.08 ~ 1998.03 서울지방검찰청 공판부 부장검사

  • 1996.07 ~ 1997.08 부산지방검찰청 형사제1부 부장검사



  • 1993 ~ 1993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 부장검사



  • 1983 ~ 1987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검사

  • 1981 ~ 1983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




4. 여담[편집]


감사원장 후보로 지명되었다가 정치권의 파상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2011년 1월 12일 사퇴하게 되었는데, 사퇴 직전에 지인들에게 "나는 그간 마이너리그로 살아왔다."#라고 억울해 하는가 하면 사퇴문에서도 "...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일류대학을 나오지 못한 제가 ..."라고 하여 사람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하였다. # 국민일보 논설위원의 평을 빌리면, "이에 대해 한양대 동문들은 어떻게 느낄까. 지금 한양대에 원서를 넣은 입시생들, 나아가 서울에 있는 대학이라도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학생들의 비애감은 또 어떨까. 한양대가 일류 대학이 아니라면 정씨가 말하는 일류 대학은 어디일까."# 참고로, 사법시험/통계를 봐도 알 수 있듯이, 한양 법대는 대한민국의 법과대학 중 항상 4~5위를 다투는 명문대로 꼽히고, 정 변호사 본인의 법조경력도 매우 화려했다.

하지만, 지금이야 그렇지 이 사람이 학교를 다닐 무렵의 한양법대는 명문대학이 되기 위해 열을 올리던 학교였다. 그 시절에는 서울법대를 갈 수 있는 점수 이상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액장학금과 소정의 품위유지비를 주어 우등생들을 입학시켰다. 게다가 서울법대의 판검사 카르텔은 이루 말할 것도 없다.[2]

“그 사람이 한양대 출신이다. 완전 비주류다. 그런 사람이 검찰에서 그 자리(대검차장)에까지 올라가려고 얼마나 자기 관리를 잘했겠느냐. 나하고 가깝다고 감사원장 시키려 한 게 아니다. 정치인들이 자기들은 얼마나 깨끗하다고 시비하느냐.”


이명박 대통령 역시 그 점 때문에 민정수석에 이어 감사원장으로 지명했다며, 여당의 지명 철회 건의에 대해 무척이나 분노했다는 후문이다. 마침 이명박도 비서울대(?)인 고려대학교 출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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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법연수원 기수는 8기[2] 그래서 앞선 논설위원의 같은 글에서도 후반부에 "우리나라 대법원 구성을 보면 고대와 연대도 마이너리그인 모양이다. 이번에 추천된 대법관 후보 4명이 모두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결국 14명의 대법관 중 서울대 법대가 13명을 차지하게 된다. 대법원이 꼭 서울대 법대 동문회 같다. 이러니 정씨의 자괴감도 이해할 만하다."라고 꼬집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 문서에도 서술되었듯이, 서울 법대 출신 법조인은 쪽수만 많을 뿐 그 사이에서 우리가 남이가 비슷한 것이 전혀 없고 따라서 서울 법대 카르텔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