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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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국민당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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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룬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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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대 신베이시장
제7·11대 중국국민당 주석
주리룬
朱立倫(주립륜) | Eric Chu Li-luan
[1]


파일:주리룬 프로필.jpg

출생
1961년 6월 7일 (62세)
중화민국 타이완성 타오위안현 바더향
(現 타오위안직할시 바더구)
본적
중화민국 저장성 이우
(現 중국 저장성 진화시 이우시)
현직
중국국민당 주석
재임기간
제14·15대 타오위안현장
2001년 12월 20일 ~ 2009년 9월 10일
초대 신베이시장
2010년 12월 25일 ~ 2015년 10월 19일
제2대 신베이시장
2016년 1월 18일 ~ 2018년 12월 25일
배우자
가오완칭
학력
국립타이완대학 (경영학 / B.A.)
뉴욕대학교 (회계학 / Ph.D.)
소속 정당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4
경력
국립타이완대학 정교수[2](1996~1998)
중화민국 입법의원[3](1998~2001)
중화민국 타오위안현장[4](2001~2009)
중화민국 행정원 부원장(2009~2010)
중화민국 신베이시장(2010~2018)
중국국민당 주석(2015~2016, 2021~)

1. 개요
2. 상세
3. 대선 출마
3.1. 관련 문서
4. 총통선거 이후
5. 저서
6. 기타
7. 선거이력



1. 개요[편집]


대만정치인. 전직 신베이 시장이며 2012년부터 국민당 주석을 지냈으나 2016년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사실 이 사람 책임도 아닌데 말이다. 이후 2021년 중국 국민당 주석 선거에서 당선되어 2021년 11월 현재 국민당 주석으로 복귀했다.


2. 상세[편집]


외성인본성인통혼으로 출생하였다. 외가는 타오위안의 유지이며, 아버지는 국부천대 때 넘어온 저장 성 출신의 군인이었다.

국립대만대학 경영학과와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회계학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뉴욕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뒤 대만에 귀국하여 모교인 국립대만대학에서 강사로 강의를 시작하였고 4년 뒤인 1996년 만 35세로 정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리고 1998년 대만 입법원 의원(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된 이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가 2001년 타오위안현 현장선거[5]에 출마하여 민진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뒤 2005년 여유있게 재선에 성공했다.

2009년 지방선거에서는 재선 제한[6]에 걸려 타오위안현장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고 행정원장인 우둔이의 천거로 행정원 부원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 이후 2010년 타이베이현이 신베이 직할시로 승격하자 행정원 부원장 자리를 사직하고 중국 국민당 소속으로 신베이 시장선거(한국경기도 도지사선거)에 뛰어들었다.

파일:9949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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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도 이 때 신베이 시장을 놓고 격돌한 후보는 민진당차이잉원 대표. 팽팽한 접전이 계속되다 롄잔의 아들 롄성원에 맞는 사건의 덕을 봐서 52.6% vs 47.4%로 차이잉원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다. 그 이후 나름 시정을 잘 이끌었는지 2014년 선거에서 2014년 홍콩 우산 혁명의 바람을 타고 대만 독립 바람이 거세게 불어 중국 국민당 후보들이 추풍낙엽처럼 썰려나갔는데도 민진당의 유시쿤 후보를 50.1% vs 48.8%로 아슬아슬하게 누르고 당선에 성공했다. 그 이후 마잉주 총통이 사직한 중국 국민당 당대표(주석)에 지명되어 2015년 현재 활동중.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과 회담도 했다.

중국 국민당2014년 중화민국 지방공직인원 선거지방선거 참패로 지지율이 바닥으로 추락하자 대선 출마요구가 빗발쳤으나 기어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훙슈주 후보를 2016년 1월 16일 있을 대선 후보로 공천했는데 2015년 8월 5일 쑹추위 친민당 전 대표가 대선에 뛰어들자 재빨리 단일화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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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7일 대한민국유정복 인천광역시장과 회담을 가졌다.


3. 대선 출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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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운동구호: 대만이 힘이다. One Taiwan.

2015년 10월 현재 국민당의 훙슈주 후보가 여전히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보다 열세를 면치 못하자, 국민당 내부에서 주리룬 주석으로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주리룬 본인도 이번에는 거부 의사가 약화된 편이어서, 막판 변수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되었다. 마침내 2015년 10월 17일 주리룬 주석으로 후보교체가 전격 단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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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8일 부총통 후보로 여성인 왕루쉬안(王如玄) 전 행정원 노동공업위원회 위원장(한국의 노동부 장관격)을 지명함으로서 대만 역사상 남녀 vs 여남 대결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왕루쉬안 후보 역시 천젠런 후보처럼 무소속으로 유지한다고 한다.


2016년 1월 16일, 선거 개표 3시간만인 오후 7시에 제14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제9대 대만 입법위원 선거에서의 국민당 패배를 공개 인정하고, 중국 국민당 주석직을 사임하였다. 기사 풀링크 다만 신베이 시장직은 유지한다.


3.1. 관련 문서[편집]




4. 총통선거 이후[편집]


2018년 대만 지방공직인원 선거에서, 국민당의 수도 타이베이 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현 시장인 커원저와의 가상 대결에서 불과 3% 이하의 접전을 펼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승리할 경우, 정치적 재기의 발판이 마련될 수 있을 듯.

그런데 주리룬 본인이 타이베이 시장 선거 출마 의사를 포기하고, 대신 딩서우중(丁守中) 국회의원이 타이베이 시장 선거 출사표를 던졌다. 대신 후임 신베이 시장 선거에서 같은 국민당 출신의 유세를 도우며 그의 당선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7]

2018년 12월말 신베이 시장 퇴임식에서 2020년의 차기 총통 선거에 재출마할 의사를 밝혔다.

2019년 7월, 당내 경선에서 한궈위 가오슝 시장에 밀려 패했다. 심지어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에게도 뒤지면서 3위에 머물렀다. 국민당 내에서 한궈위의 대선 유세를 적극적으로 도운 몇 안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홍콩 사태로 인해 한궈위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대부분의 당내 주요 인사들은 한궈위를 내다 버렸고, 궈타이밍은 아예 쑹추위 후보를 지원했다. 다만 루슈옌 타이중 시장이 한궈위 대신 주리룬으로 후보교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서 오해를 산 일이 있었다.

2021년 8월 2일, 차기 총통 선거 재도전을 선언했다. 그 정지단계로 우선 당권을 잡기 위해 9월에 열릴 국민당 주석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4.1. 2021년 중국 국민당 주석 선거와 그 이후[편집]


2021년 9월 25일 열린 중국 국민당 주석 선거에서 승리, 10월 30일부터 대표 자리에 복귀할 예정이다.# 그러나 득표율은 50%에도 미달했다. 무려 99%가 넘는 지지로 처음 당 주석이 되었던 지난 2014년은 말할 것도 없고, 이후 훙슈주우둔이, 장치천이 과반수 득표로 당 주석에 올랐던 것보다도 적다. 그만큼 당내 장악력 문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은 1년 앞으로 다가온 전국 지방공직인원 선거에서 국민당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 그의 당면 과제다. 그 성패 여부에 따라 차기 총통선거 도전을 포함한 그의 정계 입지가 좌우될 전망이다.

2021년 10월 23일에 열린 대만기진 소속 천보웨이(陳柏惟) 타이중시 제2선거구 국회의원의 주민소환 투표에서 파면안이 통과됨에 따라 당 지도력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었다. 이 투표가 주리룬이 주석이 된 뒤에 맞이하는 사실상 첫 투표이기 때문.[8]

이 기세를 몰아 2021년 12월 18일에 열리는 2021년 대만 국민투표[9]에서 4개 안건 전부 통과를 노렸으나, 예상 밖으로 전부 부결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2022년 1월 9일에 열릴 타이중시 제2선거구 보궐선거에서 국민당 옌콴헝[10] 후보의 승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결국 민주진보당 린징이(林靜儀) 후보에 밀려 낙선하여 또 다시 타격을 입었다. 원래 타이중 2구는 범람연맹이 꽉 잡고 있었는데, 지난 2020년 총선에는 대만기진이 승리하는 이변을 만들더니 이번에는 민주진보당이 최초로 이 선거구에서 승리하였다. 국민당 입장에서는 천보웨이를 파면해서 신만 실컷 내고 죽 쒀서 개 준 꼴이 된 것. 이로 인해 '輸綠倫'[11]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생겼다.#

2022년 6월 8일,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국민당 미국사무처를 개소하고, 국민당이 친중 정당이 아니라 친미 정당이라고 발언했다. #92공식에 대해 "합의 없는 합의"라고 말했다. 이에 중국 공산당은 아니나다를까 주리룬 주석과 국민당을 싸잡아 디스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21곳 중 13곳에서 승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로써 2020년부터 3년간 이어진 선거 연패를 탈출해 당의 정치적 재기를 위한 계기를 마련하고, 본인도 2년 후 총통 선거에 재도전을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12] 다만 다음 대선 출마가 유력한 허우여우이 신베이 시장 등과의 당내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2023년 3월 4일에 치러진 난터우현 제2선거구 보궐선거에서 국민당 린밍전(林明溱) 전 현장이 민진당 차이페이후이(蔡培慧) 후보에게 접전 끝에 낙선하여 다시 타격을 입었다. 이 선거구는 2008년 분구된 이래로 국민당이 한 번도 뺏기지 않았던 국민당의 텃밭인데도 불구하고 린밍전은 개표 내내 1000표 가량 차이페이후이에게 뒤쳐졌고, 결국 낙선하여 이 선거구를 민진당에게 내주고 말았다.

선거가 예상밖 패배로 끝나자 뜬금없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끌고와 패배를 합리화하려하는 추한 모습까지 보였지만 일단 패배를 인정하면서 공식 사과하긴 했다.

2024년 총통 선거를 앞두고 본인은 불출마를 선언한 대신 허우여우이를 경선 없이 국민당 총통 후보로 지명하였으나, 허우여우이가 고전을 면치 못하자 주리룬 주석 본인이 대타로 나간다는 설이 또 떠돌고 있다.

5. 저서[편집]


파일:做,就要做好.朱立倫.jpg
  • 做,就要做好.朱立倫(한다면, 잘 해야 한다. 주리룬.[13]) : 2010년 작.


6. 기타[편집]


파일:L0TwWHi.jpg
대만 만화 5도쟁패에서는 변태로 나와서 3페이지만에 끔살당하는(...) 역할로 나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

파일:OkiTAEd.jpg
특유의 쾌활한 성격을 가진 주리룬 신베이 시장"악의만 없다면 우리는 환영입니다"라는 대인배적 면모를 발휘했다고.

정치 상황이 매우 유사한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숨겨둔 동생이 있다.


7. 선거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8
제4대 입법위원 선거
타오위안현


34,971 (5.21%)
당선(10위)
초선[14]
2001
제14대 현시장선거
타오위안현
441,827 (55.24%)
당선 (1위)
초선
2005
제15대 현시장선거
488,979 (60.84%)
재선
2010
제5대 직할시시장 선거
신베이시
1,115,536 (52.61%)
초선
2014
지방공직인원 선거
959,302 (50.06%)
재선
2016
제14대 정부총통 선거
중화민국 자유지구
3,813,365 (31.04%)
낙선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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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어 기사에는 에릭 추(Eric Chu)로 쓴다. 비슷한 사례로는 쑹추위가 James Soong을 쓴다.[2] 임용될 당시 35세였다.[3] 한국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타오위안현에서 당선되어 활동하였다.[4] 한국의 광역자치단체장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도지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5] 한국으로 치면 광역자치단체장(도지사)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국회의원이 도지사, 광역시장에 출마하는 일이 흔한만큼 대만에서도 마찬가지이다.[6]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은 3선이 한계이지만 대만 지방자치단체장은 재선이 한계이다. 즉 3선에 출마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7] 대만의 경우 지자체장은 두 번까지만 연임이 가능하며, 3연임은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이미 재선인 주리룬은 애초에 신베이 시장직 재도전이 불가능했다. 3연임까지는 허용되는 대한민국과는 다른 점.[8] 국민당 지도부가 타이중에 거의 매일 상주하며 파면운동을 이끌 정도로 이 투표에 매우 큰 공을 들였다.[9] 안건은 제4원전 재가동 동의안,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금지 동의안, 국민투표일 대선 연계 동의안, 타오위안 천연가스시설 건설 중지 및 이전 동의안이다. 민주진보당은 전부 반대, 국민당은 전부 찬성을 주장하고 있다.[10] 흑사회 출신인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그 영향력으로 재선을 했지만, 제10대 대만 입법위원 선거에서 대만기진 천보웨이에 밀려 낙선하였다.[11] 뜻은 '계속 범록에게 지는 주리룬'인데, 발음(슈뤼룬)이 '주리룬'과 유사하다.[12] 8년 전인 2014년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이 패한 직후 당 주석직을 사퇴한 마잉주 당시 총통의 뒤를 이어 주석과 총통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상당히 해볼만한 상황이다.[13] 국내 미발매[14] 타오위안현장 선거 출마를 위해 입법위원 사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