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유(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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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의료인, 교육인, 기업인.
2. 생애[편집]
1906년에 경기도 인천부 내리(인천 중구 동인천동)에서 최변헌과 김승량 사이에서 태어났다.
1908년에 아산으로 이주했으며 1929년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에 일본 교토제국대학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3년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하여 1945년에는 같은 대학의 부속병원장과 재단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1955년부터 1956년까지 보건사회부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이승만 정부의 국무위원으로 입각했고 장관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부총장을 했다. 그러다가 한국적십자사 총재로 발탁되었고 이후 1957년에 대한문교서적주식회사 사장으로 재직했다. 그러다가 문교부장관으로 다시 이승만 정부의 국무위원으로 입각을 했다.
문교부장관으로 재직할 때 도의교과서를 국정으로 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초등학교 도의교과서 교사용을 출판했으며 과학, 기술 교육의 진흥방침에 따라서 실업기술교육5개년계획과 실업교육진흥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외에도 교육세법의 재정 실시와 중고등학교의 시설 기준 설정에도 기여를 했다.
하지만 1960년에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의 여파로 이승만 정부가 무너진 이후에 그는 부정선거 공범으로 구속되었고 1961년에는 정치정화법 대상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1963년에 정치정화법에서 해제되었고 이후에 박정희 대통령의 특사로 사면되었다.
이후 1964년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고 1965년부터 1972년까지는 연세대학교 재단 이사장을 지냈으며 1966년에는 이수화학 사장, 1972년에는 이수화학 회장을 지내면서 기업인 활동도 했다. 1973년부터 죽기 전인 1993년까지는 인덕학원 이사장을 지냈다.
1993년 5월 28일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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