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드래프트/2009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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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드래프트
NBA 드래프트/2008년도

2009년도 NBA 드래프트

NBA 드래프트/2010년도

h
NBA 명예의 전당 헌액 선수
m
최소 한 번 MVP를 수상한 선수
t
최소 한 번 All NBA Team을 수상한 선수
a
최소 한 번 All Star가 된 선수
r
신인상을 받은 선수


1. 1라운드[편집]



순위
구단
선수
국적
포지션
1순위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블레이크 그리핀t a r
미국
포워드
2순위
멤피스 그리즐리스
하심 타빗
탄자니아
센터
3순위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제임스 하든m t a
미국
가드
4순위
새크라멘토 킹스
타이릭 에반스r
미국
가드
5순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1]
리키 루비오
스페인
가드
6순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조니 플린
미국
가드
7순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스테픈 커리m t a
미국
가드
8순위
뉴욕 닉스
조던 힐
미국
포워드
9순위
토론토 랩터스
더마 드로잔t a
미국
가드
10순위
밀워키 벅스
브랜든 제닝스
미국
가드
11순위
뉴저지 네츠
터렌스 윌리엄스
미국
가드
12순위
샬럿 밥캣츠
제럴드 헨더슨
미국
가드
13순위
인디애나 페이서스
타일러 한스브로
미국
포워드
14순위
피닉스 선즈
얼 클락
미국
포워드
15순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오스틴 데이
미국
포워드
16순위
시카고 불스
제임스 존슨
미국
포워드
17순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즈루 할러데이a
프랑스
포워드
18순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2]
타이 로슨[3]
미국
가드
19순위
애틀란타 호크스
제프 티그a
미국
가드
20순위
유타 재즈
에릭 메이너
리투아니아
가드
21순위
뉴올리언스 호네츠
대런 콜리슨
미국
가드
22순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4]
빅터 클레버
스페인
포워드
23순위
새크라멘토 킹스[5]
옴리 카스피
미국
포워드
24순위
댈러스 매버릭스[6]
바이런 멀린스[7]
미국 / 영국
센터
25순위
오클라호마시티 썬더[8]
로드리고 베오부이스[9]
프랑스
가드
26순위
시카고 불스[10]
타지 깁슨
미국
포워드
27순위
멤피스 그리즐리스[11]
더마레 캐롤
미국
포워드
28순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12]
웨인 엘링턴
미국
가드
29순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토니 더글라스
미국
가드
30순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크리스천 아이엥가
콩고
포워드


2. 2라운드[편집]



순위
구단
선수
국적
포지션
33순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단테 커닝햄
미국
포워드
42순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패트릭 베벌리[13]
미국
가드
47순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대니 그린
미국
가드
55순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패티 밀스
호주
가드


3. 총평[편집]


초특급 유망주였던 블레이크 그리핀이 1픽으로 뽑힐 것으로 예상되었고 그렇게 되었다. 다만 부상으로 09-10 시즌에는 뛰지 못했고, 다음 시즌인 10-11시즌에 데뷔해서 신인왕을 차지했다. 그런데 사실 드래프트 전부터 미디어의 관심을 차지한 것은 1픽 0순위 그리핀이 아닌 리키 루비오였다. 미국 농구를 경험해보지 않은 유럽 출신 백인 가드에 올드 스쿨한 어시스트 특화 1번이라는 점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던 것. 다만 관심도에 비해 픽순위는 5위로 살짝 낮은 편인데, 사실 이 당시 드래프트 픽 최상위 팀들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를 제외하곤 대부분 1번 자리가 채워진 상태였기 때문에 루비오를 뽑을 팀은 미네소타 밖에 없었던 것[14]. 결국 앞 순위 팀 중에 스틸을 시도한 팀이 나오지 않아, 루비오를 간절히 원했던 미네소타가 루비오를 데려가는데 성공했다. 단지, 수년이 지나도록 루비오의 슛고자스러움이 개선되지 않아 결국 루비오가 저니맨이 됐을 뿐.

그러나 훗날 이 드래프트의 주인공은 그리핀도, 루비오도 아닌 7순위 스테픈 커리였음이 드러났다. 커리의 경우 뉴욕 닉스가 그를 뽑을 것이라 예상되었고, 선수 본인 또한 닉스를 원하는 상태였는데.... 그러나 뜬금없이 바로 앞순위였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커리를 스틸해버렸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워리어스는 사실 커리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는데, 앞선 순위의 팀들이 커리를 뽑을 줄 알고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가 자기들 순위까지 커리가 내려오자 만세를 불렸다고 한다. 어쨌거나 이런 사태 속에서 당시 드래프트 현장이었던 메디슨 스퀘어 가든의 뉴욕 팬들이 열받아서 야유를 보내고 몇몇 팬들은 얼굴을 감싸쥐며 좌절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는데, 만약 그들이 미래를 알 수 있었다면 야유나 좌절 정도가 아니라 그자리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대성통곡을 해도 모자랐을 것이다(..). 심지어 닉스가 커리를 놓쳐 울며 겨자 먹기로 대신 뽑은 조던 힐은 존재감이라곤 1도 없는 선수였다.

그런데 사실 닉스는 단지 운이 없었을뿐, 커리 드래프트에서 진짜 삽질을 한 팀은 바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였다. 이미 5순위에서 루비오를 뽑았던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는 6픽 또한 가지고 있어서 현장에서 루비오와 커리 둘 다 뽑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던 것. 이 상황에서 팀버울브스가 커리 대신 자니 플린이라는 선수를 뽑는 희대의 멍청이 짓을 저질러 버렸는데, 사실 팀버울브스 측도 나름의 이유가 있긴 있었다. 루비오가 원소속팀과 바이아웃이 지지부진해서 스페인에서 최소 2년을 더 뛰어야 했기에 루비오가 NBA에 데뷔할때까지 1번으로 뛰어줄 대타가 필요했기 때문.[15] 결국 5픽을 2년간 루비오의 대타 역할을 맡아줄 자니 플린에 쓴 셈이다. 그런데 사실 이 얘기는 당시 팀버울브스 프런트가 얼마나 트랜드에 뒤떨어져 있었는지, 또 선수 평가를 엉망으로 했었는지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사실 팀버울브스가 프런트가 조금만 머리가 돌아갔다면, 자니 플린 따위보다 무조건 커리를 골랐어야 한다. 어차피 커리를 딱 2년만 쓸 생각이었다고 해도 당장 위의 닉스나 골스처럼 커리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팀들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에, 상당히 좋은 대가를 얻고 커리를 팔아치우는게 가능했을 수 있다.

한편, 2위 픽인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하심 타빗은 참혹한 대실패였다.[16] 그러나 3위 픽인 제임스 하든은 초특급 선수로 성장하였다. 다만, 하든을 픽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는 기껏 하든을 픽한 혜안을 발휘해놓고선 훗날 연봉 문제로 우왕좌왕하다가 하든을 거의 헐값에 다른 팀으로 보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9순위 더마 드로잔도 초특급 선수로 성장하였다. 1라운드 하위픽 중에선 즈루 할러데이가 성공적이였다. 2라운드에서는 대니 그린, 패티 밀스이 성공작이였다고 볼 수 있다.

여담으로, 33순위에 지명된 단테 커닝햄은 2022년에서 2023년까지 KBL에서 뛰었다. 14순위에 지명된 얼 클락, 24순위에 지명된 바이런 멀린스도 KBL에서 뛴 적이 있다.

한편 신인왕은 그리핀이 부상으로 뛰지 못하는 사이에 제법 괜찮은 성적[17]을 기록한 4순위 새크라멘토 킹스타이릭 에반스에게 돌아갔는데, 데뷔 첫해가 에반스의 커리어하이였고, 극히 평범한 선수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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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워싱턴 픽[2] 마이애미 픽[3] 덴버 너기츠로 트레이드[4] 댈러스 픽[5] 휴스턴 픽[6] 포틀랜드 픽[7]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로 트레이드[8] 샌안토니오 픽[9] 댈러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10] 덴버 픽[11] 올랜도 픽[12] 보스턴 픽[13] 휴스턴 로키츠로 트레이드[14] 2위 픽인 멤피스 그리즐리스에는 마이크 콘리, 3위 픽인 오클라호마 썬더스는 러셀 웨스트브룩이 있었는데 둘 다 파릇파릇한 신인들이었다. 4위 픽인 새크라멘토 킹스는 포인트가드 자리가 비어있었긴 하지만 어차피 루비오를 데려올 능력이 안된다고 판단했는지 얌전히 타이릭 에반스를 뽑았다.[15] 플린도 데뷔시즌에 수차례 위닝샷을 넣으며 올-루키 세컨드팀에 이름을 올렸었지만, 2010년 여름 엉덩이 수술 이후 루키시즌때 보인 과감함을 보이지 못하며 2012년을 끝으로 NBA에선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16] 타빗은 탄자니아의 최초의 NBA리거였으나, 큰 키에 비해 장점은 블락슛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 후 2010년 멤피스는 타빗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사실상 타빗을 다시 NBA에서 볼 가능성은 0%라는 것이다.[17] 20.1득점, 5.3리바운드, 5.8어시스트. 신인으로 20-5-5 이상을 해낸 선수는 이때까지만 해도 오스카 로버트슨, 마이클 조던르브론 제임스 정도 밖에 없었을 정도로 드문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