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S (r2020030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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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이름
WANDS | 완즈 | ワンズ
멤버
우에하라 다이시 (보컬)
시바사키 히로시 (기타)
키무라 신야 (키보드)
결성
1991년
데뷔
1991년 12월 4일 싱글 '寂しさは秋の色'
활동기간
1991년 ~ 2000년
2019년 ~
레이블
TM FACTORY/도시바 EMI (1991~1993)
B-Gram RECORDS (1993~2000)
D-GO / GIZA studio (2019~)
장르
, 팝 록, 얼터너티브 록, J-POP
관련사이트
공식 사이트,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파일:유튜브 아이콘.png
1. 개요
2. 약력
2.1. 1기 : 1991~1992년
2.2. 2기 : 1992~1996년
2.3. 3기 : 1997~2000년
2.4. 재결성 (4~5기) : 2019년~
3. 멤버
3.1. 우에스기 쇼 (上杉昇, Show Wesugi)
3.2. 시바사키 히로시 (柴崎浩, Hiroshi Shibasaki)
3.3. 오시마 코스케 (大島康祐, Kohsuke Ohshima)
3.4. 키무라 신야 (木村真也, Shinya Kimura)
3.5. 와쿠 지로 (和久二郎, Jiro Waku)
3.6. 스기모토 잇세이 (杉元一生, Issei Sugimoto)
3.7. 우에하라 다이시 (上原大史, Wehara Daishi)
4. 디스코그래피
4.1. 싱글
4.2. 콜라보레이션 싱글
4.3. 정규 앨범
4.4. 베스트 앨범


1. 개요


BEING 계열의 팝, 록 그룹. 1991년에 결성되어 두 차례의 멤버교체를 겪은 뒤 1999년에 해체되었다가 2019년 재결성하였다. 멤버 교체 시기에 따라 음악성이 극명하게 갈리며, 팬덤도 그에 따라 나뉘어져 있다.[1] 가장 인기있던 시기는 빙의 전성기와 궤를 같이했던 2기 초~중반. 물론 전체적으로 좋아하는 팬도 있다. WANDS라는 명칭은 타로카드의 완드에서 비롯되었는데, 나중에 1~2기 보컬 우에스기가 이름의 영문 표기를 Uesugi에서 Wesugi로 바꿈에 따라 W and S, 즉 보컬 우에스기(3기에는 와쿠) & 기타 시바사키(3기에는 스기모토)라는 의미도 추가되었다.

2. 약력



2.1. 1기 : 1991~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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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DS는 1991년 BEING의 음악 프로듀서 나가토 다이고의 주도 아래 BEING이 주최하는 음악 진흥회 오디션 BAD에서 상위에 오르며 나가토 다이고에게 픽업된 보컬 우에스기 쇼, 같은 오디션에서 최종 심사까지 올라갔던 기타 시바사키 히로시, 그리고 메탈 밴드 라우드니스의 서포트 뮤지션으로도 활동했던 키보드 오시마 코스케를 멤버로 결성되었으며, 같은 해 12월에 드라마 호텔우먼의 주제가로 타이업 된 싱글 寂しさは秋の色로 데뷔했다. 그러나 이 싱글과 두 번째 싱글 ふりむいて抱きしめて의 성적은 처참했다. 그리고 미쓰이생명 광고음악이었던 세 번째 싱글 もっと強く抱きしめたなら도 처음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때 빙에서는 당대의 인기 아이돌 나카야마 미호를 섭외하여 자사의 그룹과 합작 싱글을 냄으로써 세간의 주목을 받고자 했다. 처음에는 B'z가 물망에 올랐으나 불발되었고, 기회는 WANDS에 돌아갔다. 이 싱글이 발매되기 전 키보디스트 오시마 코스케가 탈퇴를 선언했는데, 표면적 이유는 음악성 차이였으나 일설에 따르면 아이돌과 합작하는 걸 오시마가 마음에 안 들어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세 번째 싱글의 결과는 대히트. WANDS의 커리어에 앞길이 활짝 펴게 해준 밑바탕이 되었다.
대체로 오시마 코스케 특유의 댄스 팝 스타일이 두드러졌던 시기이다.(寂しさは秋の色, もっと強く抱きしめたなら 등 그렇지 않은 곡도 있는데 이 곡들은 쿠리바야시 세이이치로, 타타노 요시오 등 빙의 다른 작곡가가 작곡했다.) 1~3번째 싱글과 1집 WANDS 앨범이 이 시기에 해당된다.

2.2. 2기 : 1992~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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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야마 미호와 합작한 싱글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2]가 180만 장에 육박하는 대히트를 치자, 앞서 발매됐던 3번째 싱글도 덩달아 차트를 역주행, 160만장을 넘는 판매량을 달성했다. 이 때부터가 명실상부한 WANDS의 전성기였다. 90년대 초~중반을 휩쓸었던 계열 붐을 견인하는 간판급 밴드로서 WANDS는 時の扉, 愛を語るより口づけをかわそう, 世界が終るまでは… 등의 싱글과 2장의 앨범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등 호조를 보였다.
그러나 원년 멤버 2명은 대중 지향적인 팝 록 그룹으로서의 WANDS에 불만을 품었다. 팬클럽 회보를 통해 우에스기는 "하드 록 같은 걸 부르고 싶다. 라이브라면 역시 라이브 하우스에서 시작하고 싶다.", 시바사키는 "예를 들면, 라이브라면 WANDS의 곡만이 아니라, 커버곡을 연주한다든지."라고 말하는 등, 두 멤버는 그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편 신규 멤버였던 키무라는 반대로 팝 그룹으로서의 WANDS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했다.
이러한 음악성의 변화는 4집 PIECE OF MY SOUL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Love&Hate처럼 기존의 WANDS 스타일을 유지한 곡들과, FLOWER, Crazy Cat, PIECE OF MY SOUL처럼 하드록, 얼터너티브 록의 색채를 가미한 곡들이 한 앨범 안에 공존하고 있었다.[3] Jumpin' Jack Boy는 전자에 해당되는 경쾌한 곡이었는데 이 앨범에서 팝적인 색채를 줄이는 방향으로 재편곡됐다. 이 앨범은 2, 3집에 이어 또다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는데, 이것이 메가 히트 싱글 世界が終るまでは…가 견인한 결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때까지는 나름 성공한 변신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후 발매된 싱글 Same Side, WORST CRIME에서부터 WANDS의 음악은 점점 팝과는 거리가 먼 그런지, 얼터너티브 록 성향을 완연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후 다음 싱글곡 후보도 정해져 있었다고 하는데, 당시 프로듀서가 가져온 그 곡은 기존의 팝 노선이었고 이에 우에스기는 "이제 더 이상 WANDS에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 결국 WORST CRIME 싱글을 끝으로 우에스기와 시바사키가 탈퇴하였다. 멤버들은 4집의 다음 앨범으로 "BURN THE BRIDGE"라는 가제를 생각했었다고 하는데, 멤버들이 탈퇴하면서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앨범이 되어버렸다.
전술한 바와 같이 2기 WANDS는 음악적으로 전형적인 빙 사운드였던 전반기(4~8번째 싱글과 2집 時の扉 그리고 3집 Little bit), 내향적인 가사에 얼터너티브 록 요소를 도입했던 후반기(9~11번째 싱글과 4집 PIECE OF MY SOUL)로 나눌 수 있다.[4] 다만 편곡은 양쪽 모두 하야마 타케시가 대부분을 담당했다.[5]
라이브 투어는 이 시기에만 개최되었다. 1기와 3기의 라이브는 전부 TV 방송분.

2.3. 3기 : 1997~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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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DS의 존속을 바랐던 키무라의 의향에 따라 새로운 보컬과 기타리스트가 합류했다. 보컬은 쟈니스 주니어 출신으로 보컬 오디션을 통해 영입된 와쿠 지로, 기타는 스기모토 잇세이였다. 둘 다 본래 성은 달랐으나 'W AND S'의 의미를 이어가자는 프로듀서의 의향에 따라 이니셜을 맞춘 예명으로 데뷔했다.
우에스기가 작사를 전담했던 1~2기와 달리, 싱글 타이틀곡에 한해 외부 작사가에게서 가사를 받아 썼다. 단 앨범 제작에서는 멤버의 참여도가 높은 편. 그리고 2기에서는 편곡을 하야마 타케시가 전담했던 데 비해, 3기에서는 1기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곡을 멤버들이 편곡했다. 밀도가 높고 중저음이 두드러지는 박력있는 사운드가 특징. WANDS의 정체성은 팝에 있다고 여겼던 키무라의 의향대로 2기 후반의 얼터너티브 락 느낌은 거의 빠졌지만, 오시마 코스케가 주도했던 1기보다는 밴드사운드를 훨씬 강조하였다.
안티가 가장 많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안티 팬덤의 주축은 우에스기와 시바사키가 탈퇴한 뒤에도 WANDS가 존속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기존 팬덤. 기존 팬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인지 단순히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했기 때문인지 애니메이션 타이업된 싱글을 제외하면 차트 성적과 매출은 급하락, 베스트 앨범 BEST OF WANDS HISTORY를 마지막으로 해산하였다.
12~15번째 싱글과 5집 앨범 AWAKE가 이 시기에 해당된다.

2.4. 재결성 (4~5기) :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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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잊혀지나 했지만, 20년후인 2019년 11월 13일 새로운 멤버 우에하라 다이시를 보컬로 한 5기로써의 활동 재개를 발표하였다. BEING 공식 사이트에 기재된 설명에 따르면 같은 소속사의 밴드 BREAKERZ의 보컬 DAIGO가 BEING 소속 아티스트의 곡을 커버한 앨범 DEING에서 WANDS의 もっと強く抱きしめたなら을 커버한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원년 멤버였던 오시마 코스케와 시바사키 히로시도 WANDS 재시동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안 나가토 다이고가 우에하라 다이시를 멤버들에게 소개해주며 본격적인 재시동 작업에 돌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6] 그리고 마침내 11월 19일 도지마 리버 포럼에서 열린 무료 라이브 DFT presents 音都 ONTO vol.6을 통해 5기로써 첫 라이브를 선보였고, 이 공연은 유튜브로도 생중계되었다. 2020년 1월 29일에는 해산 이후 20년 만의 새 싱글 真っ赤なLip이 발매되었고, [7] 2월 13일에는 BEING 산하의 레이블 GIZA Studio에서 운영하는 라이브 하우스 "Hills 빵 공장"에서 WANDS SPECIAL LIVE EVENT in OSAKA를 개최하였다. 이날 라이브에서 5월 신곡 발표를 예고하였다.

3. 멤버



보컬
기타
키보드
1기
우에스기 쇼
시바사키 히로시
오시마 코스케
2기
키무라 신야
3기
와쿠 지로
스기모토 잇세이
4기
우에하라 다이시
시바사키 히로시
오시마 코스케
5기
키무라 신야

3.1. 우에스기 쇼 (上杉昇, Show Wesugi)


1~2기 보컬. 1972년 5월 23일생. 중학생 때 건스 앤 로지스의 비디오를 보고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 고등학생이 된 후 밴드를 결성해 보컬로써 마치다요코하마 등지에서 라이브 활동을 하였다. 이후 멤버들의 취업이나 가정문제로 밴드를 지속할 수 없게 되어 밴드 해산 후에는 음악 잡지에 실린 밴드 구인공고를 보며 구인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 후 그가 동경하던 밴드 라우드니스가 몸 담기도 했던 BEING의 음악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이후 BEING 음악 진흥회 오디션에 참가, 상위에 오르며 프로듀서 나가토 다이고의 눈에 띄어 연습생으로 지내다 19세에 WANDS의 보컬로서 데뷔하게 되었다.
2기까지 작사는 모두 그가 담당했다[8]. 통속적인 가사가 많았지만 작사 센스는 있는 듯. DEEN의 このまま君だけを奪い去りたい, ZYYG의 君が欲しくてたまらない[9], MANISH의 声にならないほどに愛しい 등 다른 가수들에게도 가사를 제공했으며, 그 곡은 나중에 WANDS의 앨범에 수록되기도 했다. [10] 작곡가 오다 테츠로[11]는 2007년 한 인터뷰에서 "(우에스기는) 재능이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좋은 작품을 쓰기를 바란다"라고 말한 바 있다. 2집 時の扉에 수록된 Keep My Rock'n'Road가 처음으로 작곡한 곡이라고 하며 싱글 WORST CRIME의 커플링 곡인 Blind To My Heart를 작곡하였고, 그 외에도 PIECE OF MY SOUL, Same Side 등의 곡을 시바사키와 공동 작곡하였다.
보컬로서는 감성으로 승부하는 타입. 특히 발라드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3기 보컬 와쿠 지로에 비해 す를 '수'에 가깝게 발음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주의해서 들으면 구별해 내기 쉽다.
WANDS 때의 활동은 "아이돌"이었다고 표현하였다. 프로듀서로부터 "록 밴드로 데뷔시켜 준다"는 말에 드디어 록커로써의 길이 열렸다며 기대하고 있었으나 막상 데뷔한 그룹의 음악은 디지털 풍의 대중적인 팝 록 노선. 세상에 알려진 "우에스기 쇼"의 이미지와 자신의 본질이 전혀 다른 것에 대해 깊은 좌절감도 느꼈다고 한다. [12] 그러다 같은 소속사에 있던 싱어송라이터 쿠리바야시 세이이치로의 솔로 곡이었던 IT'S MY TREAT를 듣고는 "이거다" 싶어서 WANDS의 곡으로 커버, 9번째 싱글 "Secret Night ~It's My Treat~"로 재탄생하였다. 프로듀서에게 이 곡은 꼭 부르고 싶다며 밀어붙인 감이 있다고. 원곡은 영어 가사인데 반해 이 곡의 가사는 일본어로 우에스기 쇼가 작사. 데뷔 때부터 WANDS의 음악성이 자신과는 맞지 않는 느낌이 계속 있었다고 하지만, 2집부터 작곡에도 참여하며 조금씩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WANDS에서도 보여주기 시작하였고, 이 곡에서부터 자신의 음악 성향을 점점 드러내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너바나(미국 밴드)커트 코베인에 경도된 모습을 보였다. 초창기의 댄디한 이미지에서 지금은 우에스기 쇼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 액슬 로즈를 연상케 하는 두건이라든가 당시 그런지 밴드 풍의 캐주얼한 복장 등 처음에는 패션에서만 그러한 경향이 나타났으나, 곧 노래에도 영향이 갔다. 일부러 스크래치를 넣는 식으로 보컬 스타일도 거칠게 바뀌었고 얼터너티브 록을 도입하려 했음은 물론, 가사에서도 커트의 영향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았다. 4집 앨범의 타이틀곡 PIECE OF MY SOUL에는 대놓고 너바나를 연상케 하는 요소를 가사에 심어넣었다. 가사 중에 "少しずつ 消えるくらいなら ひと思いに散ればいい?"라는 구절은 커트 코베인의 유서 말미에 적혀 있던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 [13] 라는 문장을 번역한 것이며, 2절 후렴구의 'PEACE OF MYSELF'는 '나 자신의 평화', 즉 열반(니르바나)이다. 10번째 싱글 Same Side 에서부터 사실상 그런지, 얼터너티브 록으로의 전환을 보여주었는데, 훗날 솔로로 셀프 커버 할 때도 "지금 내 음악의 원점이 된 곡"이라고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 후 11번째 싱글 WORST CRIME을 마지막으로 1997년 WANDS에서 탈퇴하였다. 대외적인 이유는 음악성의 차이. 커트 코베인의 죽음이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를 동경하고 있었기에 커트처럼 자신의 음악으로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그런 시기에 프로듀서가 건네 준 팝 노선의 싱글 후보곡을 듣고는 더 이상 WANDS에 있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탈퇴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1997년 탈퇴 후에는 같은 해 11월 시바사키와 함께 al.ni.co라는 유닛을 결성하였다. 원래 우에스기는 솔로 활동을 하려고 했으나 시바사키에게 편곡을 의뢰하고, 음악 제작에 있어 우에스기를 서포트 해준 것이 유닛 결성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밴드는 유니버설 레코드와 계약, 1998년 3월 21일 싱글 TOY$!로 데뷔, 3장의 싱글과 1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였고 라이브 투어도 진행되었다. 투어 종료 후 al.ni.co는 해산하였고 이후 우에스기는 자체 레이블 pojjo récord를 설립하여 솔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X JAPAN의 기타리스트 파타와의 합작 싱글, 소속 아티스트 JAZZNEKO의 앨범 프로듀싱, 자체 라이브 이벤트 주최 등 꾸준히 솔로 활동을 이어가다 2006년 '네코다마시(猫騙)[14]'라는 밴드를 결성해서 활동하였다. 비주얼계 밴드 느낌의 분장은 아니지만, 우에스기와 밴드 멤버들이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같은 깃털모자를 쓰고, PV에 검푸른 필터를 깔고 눈에 형광색으로 빛나는 효과를 넣는 등 기괴한 분위기가 특징. 그러나 비주얼적인 면에 비해, 곡은 al.ni.co 시절에 비하면 그나마 덜 매니악하다. 솔로에서는 컬트한 곡 외에도 Frozen World[15]같이 WANDS 시절을 연상케 하는 발라드도 냈다.
WANDS 시절을 부정하던 때와 달리 지금은 세월이 흐르며 유해진 듯. 2012년에는 Animelo Summer Live에 시크릿 게스트로 출연하여 오다 테츠로와 함께 世界が終るまでは를 불렀으며, 솔로 라이브에서도 WANDS 시절의 곡을 노래하고 있다. WANDS 5기가 다시 시작 했을때도 "WANDS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므로 지금은 자신이 WANDS의 멤버였던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새로운 WANDS는 철저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응원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는 등 자신이 WANDS의 멤버였음을 긍정하는 멘트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대만에서 열린 페스티벌이나 TV 프로에도 출연하여 WANDS 시절의 곡을 노래하였다.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출신으로 X JAPANhide와 고등학교 동문으로 우에스기가 7년 후배이다.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닌건 아니지만 당시 hide는 현지에서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3.2. 시바사키 히로시 (柴崎浩, Hiroshi Shibasaki)


1~2기 기타. 1969년 12월 13일생.
야마하 음악원 출신으로 BAD 오디션[16]을 거쳐 스튜디오 뮤지션으로서 일하고 있다가 WANDS의 멤버로 발탁됐다.[17] 처음에는 곡 제작에 그다지 관여하지 않았으나[18], 2기에 들어서는 커플링곡과 앨범 수록곡 가운데 상당수를 그가 작곡했다. 기타리스트로서는 테크닉과 감성을 모두 갖추었다고 평가된다.
1997년에 우에스기와 함께 WANDS를 탈퇴, 1998년에 al.ni.co를 결성했다. al.ni.co에는 우에스기를 돕기 위해 합류했기 때문에, 기타 연주와 편곡 담당에 머물렀다. 작곡은 딱 한 곡만 했다.(세이렌 앨범의 Prayer) 그러나 2001년에 "앞으로는 자신의 음악을 하고 싶다"리며 탈퇴, strange egg라는 인디밴드를 만들어 활동했다. 기타는 물론 보컬까지 겸하였고, 라이브 활동에 중점을 두되 음반은 발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프로로서는 세션과 작곡 활동을 계속했다. 대표적인 곡이 아이카와 나나세의 오와리나이 유메(이누야샤 3기 오프닝)인데, 2소절에서 들리는 남자 목소리의 코러스가 그의 것. TV 라이브에서도 기타 세션과 코러스를 담당했다. DEEN의 타가와 신지가 낸 2번째 기타 솔로 앨범 Global Groove에도 게스트로 참여했는데, 해당 앨범은 한국에서도 발매되었으나 현재는 절판된 상태다. 2005년에는 니시카와 타카노리T.M.Revolution의 세션 멤버들로 구성된 abingdon boys school에 합류, 밴드의 메인 작곡가로써 INNOCENT SORROW, HOWLING 등의 히트곡을 작곡하였다. 그리고 2018년 WANDS 4기의 멤버로 합류하여 21년만에 WANDS로 복귀, 2019년 WANDS 5기로써 본격적인 그룹 활동을 재개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카피한 곡은 라우드니스의 곡이었다고 하며 존경하는 기타리스트는 라우드니스의 아키라 다카사키, 토토의 스티브 루카서, 마이클 랜도 라고 한다. 특히 자신의 기타 스타일은 마이클 랜도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사용하는 기타는 WANDS 시절에는 파란색과 갈색의 오더 모델을 사용하고 있었다. 파란색은 "톰 앤더슨"으로 넥을 나중에 "Art Tech"의 것으로 교체하였다. ("Art Tech"는 기타 메이커가 아닌, 개인 기타 빌더의 브랜드명). 갈색은 전부 "Art Tech". al.ni.co. 시절에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주로 사용했다. 그 후에는 뮤직맨 LUKE를 사용하였고, 그 밖에도 PRS의 커스텀 24와 PRS Singlecut Satin 등을 사용. abingdon boys school의 "HOWLING"에서는 곡 중간에 PRS에서 뮤직맨으로 바꿔 친 적도 한다. WANDS 재결성 후 활동 시에는 개인 빌더인 "니시가키 기타 (Nishgaki Guitars)"의 "Amnis Novus"를 커스터마이즈한 자신의 모델을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다.

3.3. 오시마 코스케 (大島康祐, Kohsuke Ohshima)


1기 키보디스트. 1970년 9월 4일생.
WANDS 데뷔 전에는 라우드니스의 서포트 멤버였다. 1기 WANDS의 색깔을 내는 데에 크게 공헌한 멤버였으나, 1992년에 음악성 차이를 이유로 탈퇴. SO-Fi라는 여성보컬 유닛을 결성해 활동했다. 그러나 탈퇴 후에도 WANDS에 곡을 몇 차례 제공했다. (時の扉, 恋せよ乙女, White Memories)
2000년부터 이름을 大島こうすけ로 바꾸고(발음 동일), 여러 가수의 곡을 작곡 및 편곡하고 있다. WANDS 탈퇴 후에 제작한 곡 중 대표작은 영화 오오쿠<남녀역전>의 주제가였던 아라시의 Dear Snow.
2018년부터 우에하라 다이시, 시바사키 히로시와 함께 WANDS 4기로써 곡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이후 악곡 제공 등 제작에 전념하고자 탈퇴하였다.

3.4. 키무라 신야 (木村真也, Shinya Kimura)


2~3기 키보디스트. 1969년 7월 28생.
학창시절에는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하여 무사시노 음대에 진학했지만, 대중음악에 매력을 느끼고 대학을 중퇴하고 키보드 연주자로 전향. 이후 친구 시바사키의 소개로 WANDS에 합류하였다. 합류 시점은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 싱글부터. 가입 당시에는 안경을 쓰지 않았으나 사무소 측의 지시로 검은 뿔테 안경을 썼고 3기에서는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기에 "안경 쓴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이 때문에 3기 멤버로 합류한 두 사람도 처음에 앨범 자켓 이미지로 봤을때는 굉장히 조용한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항상 분위기 메이커로써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만큼 매우 밝은 성격의 소유자라고 말하였다. 라이브에서는 상체를 격렬하게 흔들거나 음악에 취한 듯 흐느적거리는 동작이 인상적이다.
원년멤버는 아니지만 WANDS의 정체성에 대해 가장 확고한 신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재결성 후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WANDS의 음악성은 팝에 있다고 느끼고 있었죠. 사운드도 그렇고, 부르기 쉬운 멜로디도 그렇구요. 이를 이어간다면 15기든 20기든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19] 서로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지만, 그 때문에 당시 하드록그런지에 심취한 우에스기와 시바사키에게 거리감 비슷한 걸 느낀적도 있었다고 한다. 다만, 당시에는 그런지, 얼터너티브 록이 인기였던 때라 젊은 두 사람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간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탈퇴한 후에도 WANDS를 이어가기로 하여 마츠모토 지로, 스기모토 잇세이를 맞이하여 WANDS 3기 활동을 시작, 3기를 이끄는 중심적 존재가 된다.
2000년 3월 WANDS 해산 후에는 버추얼 아이돌 테라이 유키의 데뷔곡 my dearest you로 작곡가 데뷔. 이후 현재까지 송라이터, 프로듀서, 세션 뮤지션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3기 보컬이었던 마츠모토 지로(WANDS 시절의 예명은 와쿠 지로)의 솔로 앨범에도 곡을 제공했다. 키무신(きむしん) 명의로 애니메이션 GR 자이언트 로보, 게임 드래곤나이트4 윈도우판과 하급생2 등의 OST를 제작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WANDS 5기의 멤버로 재합류하여 그룹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

3.5. 와쿠 지로 (和久二郎, Jiro Waku)


3기 보컬. 1970년 12월 11일생. 본명은 마츠모토 지로(松元治郎).
본디 쟈니스 주니어였다. 스케이트 보이즈와 헤이케파(平家派)라는 유닛에서 활동했으며 헤이케파에서는 리더이기도 했다.
우에스기와 시바사키가 탈퇴한 뒤 BAD 오디션을 거쳐 신생 WANDS의 보컬로 발탁되었다. 오디션에서 부른 노래는 WANDS 3집의 타이틀곡 'Little bit...'. 우에스기와 목소리가 비슷하긴 하지만 다소 탁하고 건조한 느낌이 있다. 감정 표현이 덜 두드러지기는 하나, 가창력은 제법 안정된 편.
3기 WANDS의 가사 중 그가 작사한 것은 왠지 애인이 변심하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짝사랑하던 여자를 떠나보내는 내용이 많다. 그 중 5집 수록곡 Please tell me Jesus는 애인과 친구가 바람피우는 광경을 목격하고 혼란에 빠지는 이야기이며, 15번째 싱글의 커플링곡 FREEZE는 외도가 의심되는 애인을 얼음 속에 가둬 버리고 싶다는 내용.
WANDS 해산 후에는 음악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었다. 솔로로 복귀하기 전까지는 Bar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하며 2012년에 본명인 마츠모토 지로 명의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여 10월 12일에 미니앨범 Reverb를 발매하였다. 앨범의 프로듀서는 WANDS 3기의 멤버로 같이 활동했던 스기모토 잇세이. 앨범은 스기모토가 설립한 "인터스텔라 프로덕션"을 통해 발매되었다. (2015년 현재 절판) 2016년 2월 2일 두번째 미니앨범 I come back again을 발표하고 새롭게 활동을 시작했다. 전작에 이어 키무라 신야와 안보 잇세이, Brand New Love 싱글의 작곡가 와타누키 마사아키가 앨범 제작에 참여했다.

3.6. 스기모토 잇세이 (杉元一生, Issei Sugimoto)


3기 기타. 1972년 5월 8일생. 본명은 안보 잇세이(安保一生).
와쿠 지로와 함께 3기 WANDS에 합류하였다. 코러스를 전담하였고 AWAKE 앨범에서는 몇 곡을 작사, 작곡하기도 했다. 중학생 때 BOØWY의 카피 밴드를 했었고 잉베이 말름스틴과 도켄의 노래를 카피했었다고 한다. 22살때까지는 기타와 동시에 보컬도 맡고 있었다고 한다. 작곡과 레코딩을 할 수 있게 된 건 대학생 무렵. 도서관에서 작곡법 등의 음악 이론을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하며 이때부터 레코드 회사에 데모 테이프를 보내기 시작했다. WANDS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영어교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 음악 사무소의 제작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있었는데 이게 인연이 되어 일본을 대표하는 거물 아티스트와 함께 일하게 되었고 이러한 활동이 WANDS 가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WANDS 시절에 대해서는 "짧은 시간 동안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싫었던 기억은 없고, WANDS의 멤버였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였다.
WANDS 해산 후에는 B'z 멤버들의 솔로 활동 서포트 (TV 라이브 시 세션), Fayray, 쿠라키 마이의 라이브 투어에서 세션 멤버로 참여하였고 이후 "flow-war [20]"의 기타리스트로 합류. flow-war 해산 후에는 BEING을 퇴사하고 flow-war의 보컬과 밴드 CANDYMAN을 결성하여 활동. 2009년 밴드 해산 후에는 "인터스텔라 프로덕션"을 설립, 프로듀서와 A&R/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flow-war 때까지만 해도 스기모토라는 예명을 유지했으나, 그 뒤로는 안보"Suginho"잇세이 명의로 활동 중. WANDS 해산 이후에도 다른 3기 멤버들과 계속 교류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마츠모토 지로의 솔로 라이브에도 객원으로 참여하였고, 그의 솔로 앨범을 프로듀싱 하기도 하였다.

3.7. 우에하라 다이시 (上原大史, Wehara Daishi)


4~5기 WANDS의 보컬. 존잘이다.
초등학교 6학년때 기타를 치며 음악을 접했다고 하며 중학생때 작곡을 시작하여 멀티 트랙 레코더를 이용해 녹음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의 영향으로 사이먼 앤 가펑클을 처음 접했고 쇼와 시대 일본가요 뿐만 아니라 헤비메탈, J-POP, EDM 등등 작곡을 위해 다양한 음악을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집에서 항상 포크 기타를 연주하였고 형은 L'Arc~en~Ciel의 카피밴드를 하는 등 음악과 가까운 가정에서 자란 듯. 친구와 포크 듀오를 하거나 밴드를 하는 등 음악 활동을 해오다 현재 소속사에 들어와서 연주 활동 및 다른 아티스트의 노래를 작사,작곡하는 등 프로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원래는 가수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고 기타리스트나 엔지니어 혹은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에서 그의 보컬을 칭찬해주었고 좀 더 표출해주면 좋겠다고 말해주어 서서히 보컬리스트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21]
BEING의 프로듀서 나가토 다이고와는 다수의 프로젝트를 통해 신세를 졌던 사이라고 한다. 나가토 다이고와 사무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을 때 우에하라에게 "WANDS 할거니까~" 라며 농담식으로 던지듯이 말했던 걸로 봐서는 이전부터 WANDS의 새 보컬리스트로 점 찍어뒀던 것으로 보인다. 멤버 시바사키 히로시도 그가 부른 과거 WANDS 시절 곡들의 데모를 들어보며 좋은 인상을 받았었다고 하며, 제작 중인 신곡을 부르는 그의 노래를 듣고는 "WANDS로써 내고 싶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22]
이후 원년 멤버들과의 미팅을 시작으로 우에하라 다이시, 시바사키 히로시, 오스마 코스케를 멤버로 한 4기로써 본격적으로 재결성을 위한 작업에 착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오시마 코스케는 제작에 전념하기로 하며 탈퇴, 2~3기의 멤버였던 키무라 신야가 합류하며 우에하라를 3대째 보컬로 맞이한 5기로써의 활동 재개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아직 상세한 프로필이 공개되진 않았는데 일본의 몇몇 유튜버들이 모 인디즈 비주얼계 밴드의 멤버와 동일 인물이라는 설을 제기하였다. 특히 보컬 보이스가 매우 흡사하여 이미 다수의 팬들이 WANDS 5기의 노래를 듣고 밴드의 유튜브 채널에 응원 댓글을 다는 등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 밴드 자체는 일본색이 짙은 심각한 분위기의 메탈 밴드 같지만 가사나 라이브 분위기를 봐서는 유쾌하면서도 은근히 병맛스러운 컨셉의 밴드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해당 밴드의 다른 곡 중에선 결혼 찬양(...)곡도 있을 정도.


4. 디스코그래피



4.1. 싱글


기수
발매일
제목
순위
비고
수록 앨범
1기
1991.12.04
寂しさは秋の色
63위

WANDS
1992.05.13
ふりむいて抱きしめて
80위
1992.07.01
もっと強く抱きしめたなら
1위

時の扉
2기
1993.02.26
時の扉
1위
1993.04.17
愛を語るより口づけをかわそう
1위
Little Bit...
1993.07.07
恋せよ乙女
1위
1993.11 17
Jumpin' Jack Boy
2위

PIECE OF MY SOUL
1994.06.08
世界が終るまでは…
1위
슬램덩크 2기 엔딩
1995.02.13
Secret Night ~It's My Treat~
1위
[23]
1995.12.04
Same Side
2위
1996.02.26
WORST CRIME~About a rock star who was a swindler~
9위
3기
1997.09.03
錆びついたマシンガンで今を撃ち抜こう[24]
4위
드래곤볼 GT 4기 엔딩
AWAKE
1998.02.11
Brand New Love[25]
17위
1998.06.10
明日もし君が壊れても
8위
유희왕(토에이판) 엔딩
1999.03.31
「今日、ナニカノハズミデ生きている」
32위
[26]
5기
2020.01.29
真っ赤なLip
14위
명탐정 코난 오프닝
2020.05 예정
TBA


4.2. 콜라보레이션 싱글


발매일
제목
아티스트
순위
수록 앨범
1992.10.28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27]
中山美穂 & WANDS
1위
中山美穂 『Dramatic Songs』
1993.6.9
果てしない夢を
ZYYG, REV, ZARD & WANDS
featuring 長嶋茂雄[28]
2위
ZARD
『ZARD BEST The Single Collection ~軌跡~』
『ZARD SINGLE COLLECTION ~20th ANNIVERSARY~』
『ZARD Forever Best ~25th Anniversary~』

4.3. 정규 앨범


기수
발매일
제목
순위
1기
1992.06.17
WANDS
10위
2기
1993.04.17
時の扉 [29]
1위
1993.10.06
Little Bit…
2위
1995.04.23
PIECE OF MY SOUL
1위
3기
1999.10.27
AWAKE
18위

4.4. 베스트 앨범


발매일
제목
순위
비고
1996.03.16
SINGLE COLLECTION+6
1위
[30]
1997.11.06
WANDS BEST~HISTORICAL BEST ALBUM~
1위
[31]
2000.06.09
BEST OF WANDS HISTORY
17위
[32]
2002.08.25
complete of WANDS at the BEING Studio
47위
[33]
2007.12.12
BEST OF BEST 1000 WANDS
52위
[34]
2008.05.27
WANDS BEST HITS
순위권 외
[35]

[1] 엄밀히 말하자면 2기 팬덤과 3기 팬덤이 갈리는 모양새.[2] 가수 포지션의 '그해 겨울은'과 더 넛츠의 노래 사랑의 바보의 원곡.[3] 그래도 이 때까지는 키보드 파트가 살아 있었다. 반면 4집 이후에 나온 싱글 2장은...[4] 世界が終るまでは…를 과도기로 치기도 한다.[5] Secret Night은 이케다 다이스케가, Same Side 싱글과 WORST CRIME 싱글은 멤버들이 편곡함.[6] https://beinggiza.com/ci/artist/wands/[7] 명탐정 코난의 51번째 오프닝으로 사용 중이다.[8] 단, もっと強く抱きしめたなら는 카피라이터 겸 작사가인 우오즈미 츠토무와 공동으로 작사했다[9] 이상 2곡은 데뷔싱글로서 자신들의 곡 중에서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다.[10] 이러한 가사 제공 후 셀프커버 패턴은 ZARD와 코마츠 미호, 사에구사 유카 IN db 등 다른 빙 소속 가수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11] BEING 소속의 싱어송라이터로 WANDS는 물론 ZARD와 DEEN, TUBE 등의 히트곡을 양산한 간판급 작곡가였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아이카와 나나세를 프로듀스했을 때부터 소속사와 갈등을 빚다 결국 탈퇴. 2015년 현재까지도 음악활동을 계속하고 있다.[12] https://news.livedoor.com/article/detail/11647119/[13] 서서히 사라지기보다는 한 번에 불타 없어지는 것이 낫다[14] GallaMuff의 前 베이시스트 시노다 타츠야도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15] 우에스기의 솔로곡 중 한국의 음원사이트에서 유일하게 서비스되는 곡이다. 그의 근황을 잊고 살았던 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자.[16] BEING의 자체 오디션. 이 오디션을 거친 뮤지션으로는 B'z의 보컬 이나바 코시, 오구로 마키, T-BOLAN 멤버 전원, BAAD와 doa의 기타리스트 오타 신이치로, ZYYG의 보컬 타카야마 세이키, DEEN의 전 멤버였던 드러머 우즈모토 나오키 등이 있다.[17] 이와 같이 스튜디오 뮤지션 시절을 거쳐 데뷔한 또 다른 케이스로, 보컬 나카무라 유리를 제외한 GARNET CROW의 멤버들이 있다.[18] 오시마 코스케와 공동작곡한 곡이 있기는 하다[19] https://realsound.jp/2020/01/post-494249.html[20] B'z의 서포트 밴드에서 출발한 밴드[21] https://rollingstonejapan.com/articles/detail/32765?n=1&e=32777[22] https://www.barks.jp/news/?id=1000177935[23] 쿠리바야시 세이이치로의 솔로 2집 앨범 <SUMMER ILLUSION>의 수록곡 It's My Treat를 리메이크함. 원곡은 가사가 영어였으나 우에스기가 일본어 가사를 새로 썼다.[24] 코마츠 미호 작사작곡.[25] 바로 다음 싱글인 明日もし君が壊れても와 함께 사카이 이즈미가 작사를 담당했다.[26] GARNET CROW의 아즈키 나나가 작사했다. 작곡은 rumania montevideo의 미요시 마코토.[27] WANDS의 앨범에는 밴드의 연주와 가창만으로 구성된 앨범 버전으로 수록.[28]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이었던 나가시마 시게오가 게스트 보컬로 참여했으며, 사카이 이즈미와 우에스기 쇼가 공동 작사했다.[29] 스카이의 '반전'의 원곡인 孤独へのTARGET, 포지션의 '그해 겨울은'과 더 넛츠의 '사랑의 바보'의 원곡인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Album Version~이 이 앨범의 수록곡이다. 후자는 나카야마 미호와 같이 부른 버전이 아닌 WANDS 단독 버전이다. 코러스를 담당한 여성 보컬은 우토쿠 케이코.[30] 싱글 타이틀곡 외에 싱글 커플링곡이 2곡, 정규앨범 수록곡이 3곡, 신곡이 1곡 포함돼서 +6이다.[31] 3기 멤버로 재편된 직후 발매된 두번째 베스트앨범. 싱글을 중심으로 선곡되어 있다. 일부 트랙들이 리믹스 되었으며, 3기 재편 후의 싱글 및 재녹음 트랙도 수록되어 있다. 다만 보컬 우에스기 쇼우는 이 앨범에 대해 "SINGLES COLLECTION+6 에서 베스트 앨범 발매는 끝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의도적으로 이런 앨범이 발매 된 것에 놀랐다."고 밝혔다.[32] 3번째 베스트앨범이자 2019년 재결성 이전까지는 공식적으로 WANDS의 마지막 앨범. 1기부터 3기까지의 싱글 곡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곡 리마스터링 됨.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의 어쿠스틱 라이브 버전과 2기 시절 의 미발표곡 '太陽のため息'이 처음으로 공개되었으며, 앨범에는 미수록된 커플링 곡 'Baby Baby Baby', 'FREEZE'도 수록되어 있다. [33] 빙계열 추억팔이 상술의 첫 스타트를 끊은 시리즈 at the BEING Studio 시리즈의 두 번째 앨범.[34] BEING 창립 30주년 기념으로 발매된 베스트 앨범. 제목의 1000은 세금을 제외한 앨범 가격을 뜻하며, at the BEING Studio 시리즈의 염가판으로 구성되어 있다.[35] 일반 CD 유통경로가 아닌 일본 내 고속도로 매점용으로 출하된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