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파 (r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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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대




1. 개요
2. 성경에서
3. 여담
4. 대중매체에서


그리스어Καϊάφας
라틴어Caiphas
영어Caiaphas
공동번역가야파
가톨릭카야파
개신교가야바


1. 개요[편집]


본명은 요셉 바르 카야파스(Yosef Bar Kayafa)이나 보통 가야파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안나스의 사위로, 당시 유대교대제사장인 동시에 사두가이파의 거두였다.


2. 성경에서[편집]


성경에서는 마태오의 복음서요한의 복음서 등에서 예수의 죽음을 모의한 자들의 대표격 인물로 등장한다. 가야파는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예수를 죽여서라도 유대 민족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공회를 설득해 예수의 죽음을 결정하게 만들었으며 이후 자신의 수하들로 하여금 예수를 체포하도록 명령했다.

47 그래서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의회를 소집하고 "그 사람이 많은 기적을 나타내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그대로 내버려두면 누구나 다 그를 믿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로마인들이 와서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백성을 짓밟고 말 것입니다." 하며 의논하였다.

49 그 해의 대사제인 가야파가 그 자리에 와 있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그렇게도 아둔합니까?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는 것도 모릅니까?"

요한의 복음서 11장 47~50절 (공동번역성서)


예수를 체포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가야파는 장로들과 함께 예수를 심문하였다. 심문 도중 예수가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1] 이라고 답하자 흥분해 자신의 옷을 찢으며 예수의 발언을 사형에 처해야 할 신성모독으로 간주했으며, 자신의 수하들과 함께 예수를 폭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에게 예수의 신병을 양도하며 예수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폰티우스 필라투스는 본인의 항목에 묘사된 대로 책임을 회피하고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했으니, 가야파의 계획은 어긋남 없이 성공하였다.

사도행전에서도 등장하여 요한과 베드로를 체포하여 협박하며 그들을 죽여서라도 전도를 저지하려 하나,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할 뿐이라는 사도들의 항변과, 사도들의 주장이 하느님의 뜻이 아닌 지어낸 말에 불과하다면 사도들은 자멸하게 될 것이라는 가말리엘의 설득[2] 에 매질만 하고 도로 놓아주고 만다. 요한복음이나 마태복음에서 보여주었던 강경함과 비교하자면 예수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위축되기는 커녕 급격히 퍼져나가기만 하는 복음에 난처함을 느끼는 듯한 태도를 보여준다.


3. 여담[편집]


행적을 놓고 보면 사실상 예수의 죽음을 기도하고 실행해 성공시킨, 예수를 죽인 장본인이라 할 만한 인물이지만 그 이후의 행적은 불분명하다. 사도행전에서의 등장을 감안하면 예수의 죽음 이후에도 가야파는 상당한 기간 동안 권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후에 그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느냐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굴되기도 하였지만, 그 역시도 정말로 가야파의 것이 맞는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빌라도가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죄가 없으니 너희가 책임을 지라'고 말하자 가야파를 비롯해 예수의 죽음을 주문한 이들은 그 피의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라고 답했으며, 기독교 세계는 이 구절을 반유대주의의 명분으로 삼아 유대인 탄압을 정당화시켰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비극적이고 피비린내나는 역사를 겪은 끝에서야 기독교 세계는 1965년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이 구절의 주체를 유대 민족 전체가 아닌, 당시의 성전 지도자인 가야파와 안나스, 그 추종자들로 한정해 규정하며 공식적으로 가야파 이래 유대인에게 씌워진 연좌제의 굴레를 벗겨내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독교 세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네오 나치대안 우파로 대표되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가야파와 추종자들의 행위를 근거삼아 반유대주의를 주장하고 있으니, 부족하다 못해 없다시피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가야파가 역사에 끼친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요한복음에서는 상기한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라는 가야파의 발언을 예수가 유대 민족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들을 하나로 만들고 대속하기 위해 죽을 것임을 예언한 것으로 해석하는 구절(요한복음 11장 51-52절)이 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가야파의 발언이 가야파의 생각에 따른 것이 아닌,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언임을 강조하며 선을 긋는다.

유대교의 일각에서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가야파의 책임을 부정하기도 한다. 가야파는 물론 유대인 중 누구도 예수의 죽음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예수의 죽음은 오롯이 유대인 정치지도자를 제거해 구심점을 흩어놓으려는 로마의 정치적 결정이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오늘날의 성경 해석 전반이나 대중매체에서 나타나듯이, 이러한 의견은 거의 입지가 없는 소수파에 불과하다. 상기한 연좌제적 반유대주의에 대한 반동적 성격으로 나타난 주장으로 해석된다.


4. 대중매체에서[편집]


다양하고 과감한 재해석이 이루어지곤 하는 유다폰티우스 필라투스와 달리, 가야파는 예수의 죽음을 다루는 대중매체 전반에서 권력과 재물을 탐하는 타락한 종교인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단테신곡에서는 위선자들이 떨어지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으로 나온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도 나오는데 성경에 나오는대로 나오지만 더 분노에 차고 추악한 모습이 나오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빌라도를 협박하기까지 했고 마지막에 휘장이 찢어진것을 보고 비통하며 애통한다.

선 오브 갓에서는 일반적인 제사장처럼 나오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땐 유월절 축제를 하러갔다.
[1] 마르코의 복음서 14장 62절[2] 사도행전 5장 3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