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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네 아우구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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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덴마크 크리스티안 10세의 왕비이자 프레데리크 9세의 어머니. 現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 그리스의 아나마리아 왕비의 친할머니이다.신이시여, 우리가 지키고 싶은 유일한 독일인인 왕비를 지켜주소서!
카이 뭉크
알렉산드리네라는 이름은 첫째 이모할머니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부인 알렉산드리네에게서 따왔다. 반면 여동생 체칠리에는 외할머니인 바덴의 체칠리에에게서 이름을 따왔다.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와 러시아의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여대공의 장녀이며 니콜라이 1세의 외증손녀다. 여동생은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인 체칠리에다. 따라서 체칠리에의 차남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의 이모가 된다.
옐레나 블라디미로브나 여대공[1] , 니콜라우스 폰 올덴부르크[2] 와는 고종사촌, 율리아나 여왕과는 친사촌[3] 이다.
2. 작위[편집]
- 메클렌부르크슈베린 알렉산드리네 여공작 전하 Her Highness The Duchess Alexandrine of Mecklenburg-Schwerin (1879년 12월 24일 ~ 1898년 4월 26일)
- 덴마크의 알렉산드리네 왕자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Alexandrine of Denmark (1898년 4월 26일 ~ 1906년 1월 29일)
- 덴마크의 왕세자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Crown Princess of Denmark (1906년 1월 29일 ~ 1912년 5월 14일)
- 덴마크의 왕비 폐하 Her Majesty The Queen of Denmark (1912년 5월 14일 ~ 1918년 12월 1일)
- 덴마크와 아이슬란드의 왕비 폐하 Her Majesty The Queen of Denmark and Iceland (1918년 12월 1일 ~ 1944년 6월 17일)
- 덴마크의 왕비 폐하 Her Majesty The Queen of Denmark (1944년 6월 17일 ~ 1947년 4월 20일)
- 덴마크의 왕대비 폐하 Her Majesty Queen Mother of Denmark (1947년 4월 20일 ~ 1952년 12월 28일)
3. 생애[편집]
3.1. 어린 시절[편집]
187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의 첫 아이로 태어났다. 알렉산드리네는 다방면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다. 부모님의 모국어인 독일어와 러시아어는 물론 프랑스어와 영어에도 능숙했다. 훗날 음악가들을 후원할 만큼 음악을 좋아했으며,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고 한다.
슈베린의 성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건강 문제로 1년의 반 이상은 습한 슈베린을 떠나 이탈리아나 남프랑스에서 보냈다. 크리스티안 10세와 처음 만난 장소도 프랑스 칸이었다.
3.2. 왕세자비[편집]
신붓감을 찾던 크리스티안 10세와 만난 알렉산드리네는 어머니의 열렬한 지지 하에 1897년 3월 24일에 그와 약혼했다. 두 사람은 1898년 4월 26일에 프랑스 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1년만에 장남 프레데리크 9세를 낳고 연달아 둘째 크누드를 낳았다. 부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1906년 1월 29일에 시할아버지인 크리스티안 9세가 숨을 거두었다. 시아버지가 프레데리크 8세로 즉위하면서 알렉산드리네는 왕세자비가 되었다.
3.3. 왕비[편집]
1912년 5월 14일에 요양 중이던 시아버지 프레데리크 8세가 돌연 사망하면서 덴마크의 왕비가 되었다. 수줍음이 많았던 알렉산드리네는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온화하고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했으며, 모범적인 왕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머리가 좋아 적절하게 처신하는 방법을 알았다고 한다.
왕비가 된 후 덴마크 리하르트 바그너 협회 등 각종 음악 단체를 후원했다. 그리고 시어머니 스웨덴의 로비사가 그랬던 것처럼 자선사업 활동에도 충실했다. 1914년에 가난한 가정을 후원해주는 단체인 'Dronningens Centralkomité af 1914'를 설립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덴마크는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았다. 덴마크는 독일의 보호령이 되었지만 국왕 부부는 독일에 굴복하지 않았고, 알렉산드리네는 독일 출신이었지만 덴마크의 편에 서면서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독일의 카우피시 장군이 국왕과의 알현을 요청했을 때 침착하고 단호하게 그의 접견을 물린 일은 유명한 일화. 그리고 다양한 사회구호 단체를 지원하며 덴마크인들의 힘이 되어주었다. 또한 덴마크 왕실의 보석들을 교회와 농가에 숨겨 나치의 약탈로부터 왕실의 재산을 구했다.
3.4. 말년[편집]
1940년 장손녀 마르그레테 공주가 태어나고 연달아 1944년에는 둘째 손녀 베네딕트 공주, 1946년에 막내 손녀 아네마리 공주가 태어났다. 그러다 이듬해 1947년에 남편 크리스티안 10세가 숨을 거두었다. 알렉산드리네는 말년에 대부분의 시간을 어린이를 위한 자선활동에 바쳤다.
1952년 12월 28일, 오랜 투병 끝에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에서 프레데리크 9세는 어머니 알렉산드리네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곡인 에드바르 그리그의 'Springtime'을 직접 지휘했다. 유해는 로스킬레 대성당의 남편 옆에 안장되었다.
4. 가족관계[편집]
4.1. 조상[편집]
4.2. 자녀[편집]
5. 여담[편집]
- 부계와 모계로부터 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후손이다. 부계쪽의 경우 옐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의 현손녀이며, 모계로는 니콜라이 1세의 외증손녀이기도 하다.
- 알렉산드리네 본인과 남편 크리스티안 10세, 제부인 빌헬름 황태자는 모두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고손으로 서로가 8촌간이다. 크리스티안 10세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외손녀 네덜란드의 루이세[6] 의 외손자이고 알렉산드리네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외손자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7] 의 외손녀, 빌헬름 황태자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친손자 프리드리히 3세[8] 의 친손자이다.
- 덴마크 크로네의 500 크로네 앞면에 그려진 Dronning Alexandrines 다리는 알렉산드리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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