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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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대공.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9세와 독일 왕족 호엔촐레른 가문 수장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의 외할아버지이다.
2. 생애[편집]
1851년 3월 19일 루트비히스루스트 궁전에서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2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본에서 수학하며 법학을 전공했다.
1883년 4월 15일 대공위를 물려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심한 천식으로 고통받은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는 건강 문제로 국정을 보기 힘들어했다. 국정을 관료들에게 맡기고 주로 온난한 기후의 이탈리아나 남부 프랑스에서 생활했다.
1896년 무렵부터 급격하게 건강이 안 좋아졌다. 1897년 4월 10일, 프랑스 칸에 위치한 빌라의 담벼락 바닥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서둘러 빌라 안으로 옮겨졌으나 얼마 안 가 숨을 거두었다. 정황상 자살일 확률이 높았기에 이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지만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가에서는 사인을 사고사라고 발표했다. 주간 신문에서는 심부전으로 인한 호흡 곤란 상태에서 담벼락 밑으로 추락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해는 루트비히슬루스트 궁전 영묘에 안장되었다.
3. 자녀[편집]
4. 여담[편집]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 1세의 친손녀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여대공[4] 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2녀를 낳았으며 아내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지만 사실 동성애자였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의 사후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가에 그의 동성애 성향을 두고 협박 편지가 보내졌다. 주범은 베를린 출신의 재단사 구스타프 로데였는데, 그는 대공의 사적인 편지를 빼돌렸고 전부터 동성애자들을 협박해온 이력이 있었다. 수사관에 의해 체포된 로데는 공범과 함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891년에는 백년 가까이 자칭 귀족이던 암스베르크 가문을 귀족으로 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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