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지방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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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분류
2.1. 내국민 도시
2.1.1. 콜로니아(COLONIA)
2.1.2. 무니키피움(MUNICIPIUM)
2.2. 외국 도시(CIVITATES PEREGRINAE)
2.2.1. 동맹시(civitates liberae et foederatae)
2.2.2. 자유시(CIVITAS LIBERA)
2.2.3. 종속도시(CIVITAS STIPENDARIA)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고대 로마의 지방 행정 체계.

흔히 알려진 로마의 속주(PROVINCIA)는 말 그대로 전직 집정관(PROCONSUL)이 관할권(IMPERIUM)을 맡은 구역을 말하고, 본 문서는 로마의 속주 휘하에 있는 여러 개별 도시들의 분류와 법적 지위를 설명한다.

로마는 도시 국가에서 출발하여 다른 도시국가/부족들과 동맹 등의 형태의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패권을 장악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흔적이 제국화 된 후에도 남아 여러 국가와 도시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로마의 주권자들과 관계를 맺는 식으로 로마의 패권 하에 편입되었다.

로마는 이렇게 패권에 편입된 도시들은 로마의 '영토' 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SPQR 과 모종의 관계를 맺은 개별적인 도시였기 때문에, 로마 치하의 대부분의 도시들은 강한 자치권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그 반대 급부로 로마 역시 자기 패권 아래에 있는 이 수 많은 도시들을 관리하는데에는 놀라울 정도로 적은 관료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인 체제였다.


2. 분류[편집]



2.1. 내국민 도시[편집]


로마 시민권 혹은 그에 준하는 라틴 시민권을 수여 받은 도시들. 로마시 자체의 확장 혹은 그에 준하는 도시로 여겨졌다. 로마 초기의 병농일치적 관습이 이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시민들은 병역의 의무는 존재했으나 세금의 의무는 존재하지 않았다. 로마군에 군단병을 공급하는 중요한 거점이었다.

1~2세기 기준 이러한 시민권을 가진 도시는 이탈리아에 집중되었으며, 로마 제국 전체에 존재하는 시민권자는 10~20%에 불과했다.


2.1.1. 콜로니아(COLONIA)[편집]


로마 시민이 식민된 식민시들이다. 시민병을 정착시켜 해당 지역을 로마화 시키고 영토의 수비를 공고히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그 특성상 군사적 성격이 강했다. 보통 300명 이상의 성인 남성 시민이 정착하였으며, 이 병사들이 각기 가족을 거느리면 1200~1500명 정도 인구의 당시로써는 꽤 규모가 되는 도시가 만들어졌다.

그리스 폴리스들의 식민시와 유사하지만, 수도 로마의 SPQR 에 외교 군사적으로 종속되었다는 점에서 그리스 식민시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로마 시민의 의무는 기본적으로 병역이었기 때문에 면세였다는 점도 그리스 식민시들과 다르다. 이들은 선거권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들 도시 내에서도 로마의 법과 제도에 따라 똑같이 명예로운 경력들을 선출하고 원로원을 만들어 자치를 행하였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본국 로마에 종속된 입장이었기 때문에 자치권을 제외한 외교, 전쟁 같은 사항은 본국 로마가 결정하는 것에 따라야 했다.

공화정 초기 무렵까지는 병농일치가 잘 이뤄졌기 때문에 콜로니아는 군사 기지이자 식민지의 성격이 잘 유지되었으나, 포에니 전쟁을 지나 그라쿠스 형제 무렵부터는 병사들이 토지가 없는 빈민들 위주로 이뤄졌기 때문에, 이들이 퇴역한 이후 정착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세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해외 식민지들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할 수 없는 도시들로 여겨져 토지세와 인두세가 부과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세워진 식민지의 주민들과 식민지를 설립 시킨 정치인은 보통 클리엔텔라 관계가 맺어졌기 때문에, 원로원은 유력 신입 정치가가 식민시를 세워서 수 많은 클리엔테스를 거느려 성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원로원은 그러한 식민시 설립에 강하게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이 콜로니아의 군단병 병력을 제공한다는 핵심적인 군사도시라는 입장, 반면 투표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교 등 중요한 정치 사항을 자기네가 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은 후일 로마 공화정을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중앙에 정치적 의사를 전달할 수 없다는 불만을 가진 콜로니아 주민들은 로마시 본국의 유력자를 자신들의 파트로누스로 삼아 그를 군사적으로 지원했다. 이것은 로마 공화정 후기에 군벌들이 생겨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로마가 정복한 속국들 속에 식민시들이 대규모로 설립되기 시작하는 것은 아우구스투스가 황제로 즉위한 이후부터 였다.

2.1.2. 무니키피움(MUNICIPIUM)[편집]


로마 시민 및 라틴 시민권자들이 사는 도시들이다. 로마의 초창기에는 로마가 주변 도시를 정복하면 해당 도시는 없애고 기존 시민들은 로마에 편입되어 로마의 시민이 되었으나, 로마 시가 일정 이상 성장하자 그 방식이 어려워진다.

때문에 로마는 주변 도시를 자기들 내에 편입하는 것을 관두고, 대신 자신들의 패권 아래에 들어온 도시에게 의무(MUNERA)를 부여한다. 무니키피움의 어원 역시 무네라에서 나온 것으로, 무니키피움은 '공동의무자'라는 뜻이 된다.

이들은 로마에 대해서 전쟁 때 동맹으로써 함께할 의무가 주어졌고, 라틴 시민권이 주어졌으며 자치권을 보장받았다. 국방과 외교에 대해서는 로마에게 종속되었으나 세금의 의무는 존재하지 않았다.

초창기의 동맹국인 이 무니키피움은 라틴 시민권의 특성 상 빠르게 로마에게 동화되었고, 결국 실질적으로는 콜로니아에 이은 높은 권리를 가진 2등 도시들을 뜻하는 것으로 의미가 바뀐다.

후에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하며, 정복 당한 각국의 주요 도시들도 무니키피움으로 편입되었다. 이들에게도 자치권과 무네라가 주어졌다. 자치권 이외의 권리는 개별 도시별로 달랐으나 완전한 시민에 비해 권리는 적었다. 이들은 라틴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신무니키피움들은 기존 이탈리아의 무니키피움들과 달리 로마에 동화되는 속도는 느렸다.

2.2. 외국 도시(CIVITATES PEREGRINAE)[편집]


페레그리누스(PEREGRINUS)는 라틴어로 외국인이라는 뜻으로, 로마 시민권자가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로마는 다른 도시국가/부족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 지배했으나 시민권이 없는 이러한 속국들은 여전히 '외국인' 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본래 외국인이라는 뜻의 페레그리누스는 로마 국경 안의 로마의 지배를 받는 비시민권자들을 부르는 용어로 바뀌었다. 로마의 신민이 아닌 외국인들은 바르바루스(Barbarus), 즉 야만인으로 불렀다.

로마 시민들과 달리 이들은 군단병에 복무할 권리가 존재하지 않았고 대신 보조병으로써 복무가 가능했다. 보조병으로써 오래 복무한 페레그리누스는 시민권을 부여받았는데, 이것은 법적으로 정해진 권리라기보다는 유력자의 호의와 관습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군단장이나 대대장 등 유력자와 친분을 만들었다던가, 황제가 기분이 내켰다던가, 운이 좋다던가 하면 10년 정도만에 시민권을 따기도 했으나 오래 걸리면 25년이 걸리기도 했다.

이들은 흔히 로마법이라고 불리는 로마 시민법이 아닌, 외국인들과의 관계를 다루는 법인 만민법(ius gentium)의 지배를 받았다. 지방 내의 실질적 지배는 기존의 귀족층이 계속했으며, 로마 시민과 관련된 사건일 경우에만 로마가 파견한 관리의 법정에서 판결했다. 물론 로마법이 항상 지방관습법보다 우선했기 때문에 로마 시민과 페레그리누스가 토지 관련된 법정 분쟁이 있다면 로마 시민이 유리했다.

하지만 이러한 페레그리누스가 로마에 충성한다면, 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일은 자주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재산, 토지 기준 등을 충족해낸 사람이 있다면 심지어 원로원으로 진출하기도 하는 등 로마에 충성하는 이들에게는 그만한 보상이 있었기 때문에 로마는 페레그리누스들에게서 충성을 받을 수 있었다.

이 페레그리누스에 해당되는 도시들 중 높은 자치권과 권리를 누린 동맹시, 자유시는 실질적으로는 이탈리아 근교나 그리스 문화권 등 로마인들이 존중해줬던 특정 지역들에 몰려 있었고, 절대 다수의 페레그리누스는 종속도시로 분류되었으며 무거운 의무를 지고 낮은 권리를 가졌다. 예를 들어 시칠리아의 경우 65개의 종속도시, 5개의 자유시, 2개의 동맹시가 존재했다.

물론 동맹시와 자유시가 그렇게까지 자유로운 건 아니었고, 엄연히 로마의 패권 아래에 종속된 처지였다. 당시 로마는 개인에게 도시 몇개 수준의 거대한 대농장을 사유지로 가질 수 있게 해놨고, 클리엔텔라 관습 덕분에 로마의 유력자와 끈끈한 관계를 맺은 이들이 후원을 받아 도시 내 행정을 장악하는 것이 당연했다. 때문에 동맹시나 자유시가 무니키피움이나 콜로니아로 전환되어 라틴/로마시민권을 얻게 되면 그것이 더 큰 은혜로 여겨졌다.


2.2.1. 동맹시(civitates liberae et foederatae)[편집]


형식적으로 여전히 로마와는 동맹을 맺은 독립 국가인 도시들. 물론 이전 시대의 무니키피움과 마찬가지로 실질적으로는 로마에게 외교, 군사적으로 종속된 도시들이었다.

이들은 로마와의 상호 의무 관계를 조약(FOEDUS)를 통해 규정 받았으며, 구체적인 개별 조약에 따라서 상업이나 결혼의 권리 등 특정한 권리를 보장 받았으며 자치권 역시 유지되었다.

흔히 서로마 제국 때 게르만 부족들이 침입해서 땅을 갈라먹었다고 알려진 케이스는 대부분 게르만족이 로마의 관할 구역 내에 정착하여 이 동맹국의 관계를 맺은 것이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서로마 도시들의 인구가 급감하여 기존 로마인들의 인구만으로는 넒은 땅을 안정적으로 통치할 수 없었기 때문. 서로마의 군사력이 나날히 약해지는데 막대한 수의 게르만 부족들이 들어오자 서로마 중앙 당국에서 통제할 수 없게 되어 오히려 로마의 속주시들을 게르만 부족들이 관리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2.2.2. 자유시(CIVITAS LIBERA)[편집]


형식적으로는 독립 국가인 도시들. 헬레니즘 시대에 군주들이 그리스 도시들에 부여한 특권이나 행정들을 그대로 모방하여 만든 제도로, 그 유래와 같이 그리스 지역에 주로 주어졌다.

다만 이들은 동맹시와 달리 로마와의 상호 계약이나 조약을 통해 규정된 권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로마 황제의 호의에 의해 부여 받는 특권을 누렸다.

이들에게 주어진 주된 특권은 자치권과 주화발행권이었다. 이들 역시 동맹시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권리가 주어지기도 했으며, 타르수스 역시 결혼과 상속의 권리가 보장된 자유시였고 사도 바오로가 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이 있었던 것도 그런 배경이 있었다.


2.2.3. 종속도시(CIVITAS STIPENDARIA)[편집]


가장 전형적인 로마 제국의 지배하의 도시. 이들은 여전히 자유민이었으나, 로마의 절대적 우위 아래에 있었다. 이들은 로마와 별다른 협상을 하지 못한채 로마에게 정복되고 항복한 종속국들이었다.

위의 페레그리누스의 설명에서 안 좋은 부분은 전부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동맹시와 자유시들은 종속적인 외국일지언정 형식적으로는 독립국이었기 때문에 면세가 당연했으나 이들에게는 토지세와 인두세가 부과되었다.

이들은 로마에 정복되는 순간 그 토지가 전부 SPQR 소유의 토지, 즉 공공재산(PUBLICUS)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로마의 공공재산이 된 토지 중 일부는 해당 지역에 정착할 식민시에 할당되었고, 일부는 재정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로마의 부유층에게 매각되었고, 일부는 황제의 토지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일부는 기존 거주민들에게 다시 분배되었으나 그들은 로마에 대해 토지세를 낼 의무를 가졌으며, 로마의 지배에 격렬하게 저항한 이들은 토지가 대부분 몰수되었다.

특히 이들은 로마 제국의 재정의 가장 큰 원천인 직접세(tributum) 특히 인두세(tributum capitis)의 대상이 되었으며, 토지세(tributum soli) 또한 존재하였다. 이들은 로마 시민법에 따른 결혼의 권리와 상속의 권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로마 시민과 결혼할 경우 사생아로 취급되어 로마 시민권을 얻을 수 없었고, 사망시 재산도 로마에 귀속되었다.

대표적인 종속도시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료로는 신약성경이 있다. 당시 이스라엘 왕국은 로마의 종속도시에 속했기 때문.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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