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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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고려의 왕족.
이름은 왕영(王瑛, 1126 ~ 1186), 자는 현허(玄虛)이다.
문종의 아들인 조선국 양헌왕 왕도의 손자이자, 강릉공 왕온의 아들로 작위는 공화후(恭化侯)이다.
2. 생애[편집]
어려서부터 성품이 침착하고 조용하며 욕심이 적었다. 학문에 깊이 뜻을 둬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에 오른 뒤에도 과거에 응시하려 해 의종이 기특하게 여기지만 종실로 과거에 응시함은 관례가 아니라 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30대에 인종과 공예태후의 딸인 승경궁주와 혼인한 뒤 공화백(恭化伯)에 책봉된다. 명종 즉위년인 1170년 왕이 종친들의 작위를 높일 때 공화후(恭化侯)로 승진한다.
말년에는 불교에 심취해 불경을 탐독하고, 재(齋)[3] 를 지내는 날이면 계율을 지킴으로 몸을 정결히 하였다. 명종 16년인 1186년 모월 10일 61세의 나이로 사망해 빈소를 금선사(金善寺)에 마련한다. 명종은 공화후가 사망했다는 소기에 수일간 조회를 멈췄으며 정의공(定懿公)으로 추증한다. 이듬해 8월 우봉군(牛峯郡)[4] 동쪽에 장사지낸다.
3. 가족관계[편집]
- 부: 강릉공 왕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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