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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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김은제
金恩濟[* 연안김씨대동보에는 金濟로 등재되어 있다.]

본관
연안 김씨[1]
출생
1906년 7월 15일[2]
평안북도 정주군 오산면 삼리[3]
(현 평안북도 정주시 세마리)
사망
1936년 10월 29일 (향년 28세)
중화민국
상훈
건국포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12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1906년 7월 15일 평안북도 정주군 오산면 삼리(현 정주시 세마리)에서 아버지 김임전(金任銓, 1851. 11. 24 ~ 1907. 3. 24)과 어머니 전주 이씨(1863. 12. 21 ~ ?)[4] 사이의 3형제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평안북도 강계군에 있던 영실중학교(英實中學校)를 졸업하고 40촌 지간의 족형(族兄) 김근제(金勤濟, 1904 ~ 1926)[5]와 함께 중화민국으로 건너가 중국국민당 육군군관학교에 6기로 입학해 보병과 및 기병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이어 1931년 3월에는 중앙항공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국민혁명군 중국항공대에 소속되어 비행장교로 복무했다.

1933년에는 한국혁명당에 입당해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당에 자금을 제공하는 한편, 의열단과 연계하여 군자금 모집 및 연락 임무를 수행했다. 이때 같은 당원이었던 신익희의 소개로 그의 장녀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김◯식(金◯植)을 두기도 했다.

그러나 1936년 10월 29일 비행 도중 기체 고장으로 추락하여 별세했다. 향년 28세.

201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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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성부윤공파 28세 제(濟) 항렬.[2] 연안김씨대동보에는 1905년 1월 15일생으로 등재되어 있다.[3]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갈산면 정양동으로 개칭되었다가 1949년에 오정리, 사산리, 마관리로 분리 개편되면서 폐지되었다.[4] 이안숙(李安叔)의 딸이다.[5] 족보명은 김근훈(金瑾薰). 2011년 4월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 황푸구(黃埔區) 창저우섬(長洲島) 완쑹링(萬松嶺) 황포군관학교 옛 터 서쪽에 있는 동정열사묘(東征烈士墓) 학생군묘(學生軍墓)에서 발견된 김근제의 묘비에는 金濟로 새겨져 있다. 1904년 평안북도 곽산군 남면 안의동(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정주군 안흥면 안의동으로 개편됨) 395번지에서 태어나 정주 오산학교에 다니다가 1919년 3.1 운동 이후 일본군 순사를 때려눕히고 중화민국 황포군관학교에 6기로 입학했다. 연안김씨대동보에 의하면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독립군 장교로 근무하다가 흑룡강 전투에서 전사, 순국했다고 하나, 《황포군관학교 동학록》 사망동학(死亡同學) 조에 의하면, 학교 재학 중이던 23세 때 별세했다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