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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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 전설상의 통치자
네클란
Neklan

제호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
네클란
(Neklan)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자녀
호스티비트, 디폴트
아버지
크레소미슬
1. 개요
2. 행적



1. 개요[편집]


보헤미아의 전설상의 통치자.


2. 행적[편집]


12세기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 학장이자 연대기 작가이며 외교관으로도 활동했던 코스마스(Cosmas, 1045년경 ~ 1125년)가 집필한 <보헤미아 연대기>에 따르면, 보헤미아 6대 공작 크레소미슬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보헤미아인들의 공작이 되었는데, 온화하지만 소심한 성격이었고, 루칸 족의 지도자 블라스티슬라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블라스티슬라프는 네클란의 영역을 침공해 여러 마을을 약탈했다. 이에 보헤미아인들은 레비 흐라데츠에서 레무지족(Lemuzi), 데카니족(Děčani) 등의 도움으로 루칸족을 격파했다.

네클란은 승리를 거둔 후에도 블라스티슬라프와 협상을 시도했지만, 블라스티슬라프는 이에 불응하고 20,000명에 달하는 군대를 동원해 재차 침공했다. 이에 체스트미르(Čestmír)가 네클란의 망토와 두건을 대신 쓰고 네클란이 타고 다니던 말을 타고 전장에 나섰다. 루칸인들은 많은 개, 늑대, 사냥개들을 동원했고, 보헤미아인들은 매, 코뿔새, 독수리를 동원했다. 이후 격전 끝에 체스트미르가 블라스티슬라프를 죽였지만, 자신도 말을 잃고 중상을 입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헤미아군은 전투에서 승리한 뒤 체스트미르를 기리는 기념비는 크를리슈 우 투르스카 언덕에 세웠다.

그 후 브라스티슬라프의 어린 아들 즈비슬라프(Zbyslav)가 루츠크(Lutsk)에서 발견되었다. 네클란은 즈비슬라프를 불쌍히 여겨 루칸 지역에 드라후스(Drahúš) 성을 세우고 두린크(Durynk)에게 소년을 보호하도록 했다. 그런데 두린크는 브라스티슬라프가 사망한 후 첫번째 겨울에 즈비슬라프를 강으로 유인한 뒤 도끼로 얼어붙은 강에 구멍을 뚫고 즈비슬라프에게 엎드린 채 그 구멍으로 물고기를 관찰하게 한 뒤 도끼로 머리를 베고 네클란에게 가져갔다. 두린크는 잠재적인 정적을 제거했으니 상을 받을 거라 기대했지만, 네클란은 격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라! 이것이 내 보상이다!"라고 외쳤다. 두린크는 오리나무에 목을 매었고, 이 나무는 나중에 '두린크의 오리나무'로 일컬어졌다고 한다. 네클란 사후에는 장남 호스티비트가 공작이 되었고, 둘째 아들 디폴트(Děpolt)는 코우르짐(Kouřim)의 통치자가 되었다고 한다.

네클란(Neklan)은 평화를 의미한다. 체코의 영화 평론가이자 역사가이며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자비시 칼란드라(Záviš Kalandra, 1902 ~ 1950)에 따르면, 네클란은 옛 슬라브어 요일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금요일에 해당한다고 한다.

체코의 민속학자 블라디미르 카르부시츠키(Vladimír Karbusický, 1925 ~ 2002)에 따르면, 그를 비롯한 보헤미아 역사의 신화적 인물 12명의 이름은 9세기에 보헤미아인이 프랑크 왕국에 보낸 고대 슬라브어 텍스트의 일부에서 유래했다. 이 텍스트에는 다음의 문구가 담겨 있었다.

"Krok‘ kazi tetha lubossa premisl nezamisl mna ta voj‘n ni zla kr‘z mis neklan gosti vit..."


카르부시츠키에 따르면, 이 문구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고 한다.

"발걸음을 멈추세요, 테타[1]

. 그리고 더 잘 생각하십시오. 나는 당신을 위해 전쟁이나 악행을 의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절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손님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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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르부시츠키는 이 용어는 당시 프랑크족의 지도자 이름이나 보헤미아에 거주하는 슬라브인들이 서쪽 이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