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에커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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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에커슬리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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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1989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Eckersley%20Dennis%20Plaque_NB.png
데니스 에커슬리
헌액 연도
2004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83.2% (1회)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2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칼 립켄 주니어
(볼티모어 오리올스)

데니스 에커슬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프랭크 토마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2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
로저 클레멘스
(보스턴 레드삭스)

데니스 에커슬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잭 맥도웰
(시카고 화이트삭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8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
게리 가이에티
(미네소타 트윈스)

데니스 에커슬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리키 헨더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8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롤레이즈 구원 투수상
데이브 리게티
(뉴욕 양키스)

데니스 에커슬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제프 러셀
(텍사스 레인저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2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롤레이즈 구원 투수상
브라이언 하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데니스 에커슬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제프 몽고메리
(캔자스시티 로열스)




파일:Dennis_Eckersley.jpg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No. 43
데니스 리 에커슬리
Dennis Lee Eckersley

생년월일
1954년 10월 3일 (69세)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출신지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신체
188cm / 83kg
포지션
선발 투수마무리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72년 드래프트 3라운드 전체 50번 (CLE)
소속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75~1977)
보스턴 레드삭스 (1978~1984)

시카고 컵스 (1984~1986)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87~1995)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96~1997)
보스턴 레드삭스 (1998)
기록
노히트 노런 (1977.05.30)

1. 개요
2. 선발 시절
3. 최초의 1이닝 마무리
4. 은퇴와 그 이후
5.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6. 연도별 성적
7. 이야깃거리




1. 개요[편집]


미국의 前 야구선수로, 최초의 '1이닝 전문 마무리 투수'로 꼽힌다.


2. 선발 시절[편집]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에커슬리는 1972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에 지명됐다. 20세의 젊은 나이에 데뷔해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선발로 뛰었을 당시에도 매년 평균 208이닝, 151승 128패, 평균자책 3.67을 기록했던 우수한 선발 요원이었다. 심지어 20승을 거둔 시즌도 있었을 정도니. 선발 3년째인 1977년에는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따른 부상과 팔 부담, 그리고 후술된 어두운 개인사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1980년대 중반부터 이닝당 1개 이상의 안타를 맞는 등 구위가 떨어져갔고, 1986년에는 평균자책 4.57, 6승 11패라는 부진한 기록에 그치고 만다.

3. 최초의 1이닝 마무리[편집]


평범한 투수였다면 하위권 팀의 4, 5선발로 두 세 시즌 정도 던지다가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었겠지만, 당시 리그 최강팀이었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토니 라 루사 감독은 초유의 '1이닝 마무리'라는 개념을 창안해 이 노장투수에게 해당 역할을 맡겼고, 이는 120% 성공으로 보답받게 된다.[1]

1986년 전까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을 주름잡았던 브루스 수터리치 '구스' 고시지는 지금처럼 게임 후반부의 최종 아웃카운트 3~5개 정도를 처리하는 게 아니라 게임 후반부의 승부처 전부를 맡아서 처리하는 흔히 말하는 중무리 투수였다. 이 때문에 이들은 적어도 80이닝에서 많게는 100~130이닝 정도를 던지면서도 세이브 개수는 적게는 25개, 많아도 40여 개에 그칠 정도였다. 실제 브루스 수터는 1042.0이닝을 던졌지만 통산 기록은 68승 71패 310세이브, 선발투수로도 한 시즌을 뛰었었던 리치 고시지는 1809.1이닝 동안 124승 107패 310세이브를 거두는 데에 그쳤다. (반면 트레버 호프만은 1089.1이닝 동안 61승 75패 601세이브, 마리아노 리베라는 1283.2이닝동안 82승 60패 652세이브) 현대야구에서 이런 중무리 투수는 이젠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최근까지 몇몇 팀에 있었다.

그러나 데니스 에커슬리가 1987년부터 중간으로 돌아 54게임에서 115.2이닝을 던지며 113탈삼진 17볼넷을 기록하는 등 좋은 구위를 보이자, 라루사 감독은 1988년 에커슬리에게 1이닝 전문 마무리 투수라는 특이한 임무를 맡겼고, 그는 그 임무를 누구보다 훌륭하게 수행하면서 (60게임 72.2이닝 4승 2패 45세이브 평균자책점 2.35) 메이저리그, 더 나아가 현대 야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후 오클랜드가 우승했던 1989년에는 33세이브 평균자책점 1.56, 준우승한 90년에는 48세이브 평균자책점 0.61을 기록하여 1이닝 마무리 제도는 완전히 정착시켰고, 92년에 37세의 나이로 80이닝 51세이브를 기록해 아메리칸리그 사이 영 상 및 MVP를 수상하여 정점에 올랐으며, 그 뒤로도 꾸준히 매년 50~80이닝 정도를 던지며 30~40세이브를 거두었다. 마침 1978년에 20승을 달성한 적이 있었던 덕분에 역대 최초로 단일시즌 20승과 단일시즌 50세이브를 모두 기록하는 진기록이 완성되었다.[2] 비록 시즌 60세이브의 벽을 돌파한 현재 기준으로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한 기록이지만, 1990년대 전반만 해도 라루사이즘을 체화한 그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언터처블로 군림하던 1988년, LA 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백도어 슬라이더를 시도하다가 대타 커크 깁슨에게 시리즈 향방을 좌우했던 홈런을 맞기도 했다. 1이닝 마무리의 시초인 그가 정작 대부분의 야구 팬들에게 다리를 절뚝거리며 타석에 들어선 커크 깁슨[3]에게 끝내기 홈런을 허용하는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4][5] 하지만, 1993년 월드시리즈에서 조 카터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몰락한 미치 윌리엄스, 2005년 NLCS에서 다 이긴 경기에서 알버트 푸홀스에게 홈런을 맞고 그 충격을 벗어나지 못하며 수년간 부진을 거듭했던 브래드 릿지와는 달리, 이후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대선수로서의 진가를 입증해냈다.

4. 은퇴와 그 이후[편집]


그 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떠나 1996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옮긴 토니 라루사 감독을 따라 세인트루이스로 이적해 2년간 불펜투수로 활약하다 1998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은퇴했다. 이후 2004년 명예의 전당 투표 기회를 받게 되었고 최초의 1이닝 마무리라는 상징성으로 83.2%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게 되었다. 모자는 당연히 전성기였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모자.

파일:external/www.totalprosports.com/dennis-eckersley.jpg

알콜 중독으로 인해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으며, 현재는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의 NESN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다. 주로 맡은 일은 경기 리캡이지만 메인 해설위원인 제리 레미가 암 투병 경력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서 자주 빠지는지라 가끔씩 땜빵으로 해설을 뛰기도 한다.

해설 스타일은 대체로 비판적이며 이로 인해 데이빗 프라이스를 비롯한 선수단과 마찰이 있던 듯. 정확히 말하면 에커슬리가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의 리햅 경기 결과를 보고 'yuck'(미국에서 역겨움을 말하고 싶을 때 쓰는 표현)이라는 말을 뱉었는데, 이를 듣고 프라이스가 화가 났다고 한다.[6] 하지만 에커슬리가 보스턴에서 뛰며 20승도 거두는 등 공헌했던 것과 달리 프라이스는 보스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7] 선수단 내부에서 '에커슬리의 24시즌을 메이저리그에서 제외해야 한다.', '에커슬리의 명전 투표를 다시 해야한다.'라는 등의 질나쁜 발언들이 나왔다는 게 알려지며 팬들의 여론은 에커슬리의 손을 들어주는 편이다.[8]

2022년 8월 17일 피츠버그와 보스턴과의 경기에선 리빌딩 중인 피츠버그의 타선을 무명의 라인업, 아무것도 아닌 선수들이 뒤죽박죽으로 모여 있다 라는 비하적인 발언으로 피츠버그 선수단의 어그로를 끌어 피츠버그의 마무리 투수인 윌 크로우에게 "형편없는 소리" 라는 디스를 먹기도 했다.


5.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에커슬리
8
130
158
34
HOF 입성자 평균
40
185
100
50

  • JAWS - Relief Pitcher (1st)

career WAR
7yr-peak WAR
JAWS
에커슬리
63.0
38.1
50.5
릴리프 HOF 입성자 평균
40.6
28.2
34.4


6. 연도별 성적[편집]


파일:MLB 로고.svg 데니스 에커슬리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75
CLE
34
13
7
2
0
186⅔
2.60
147
16
90
7
152
1.270
144
2.8
5.3
1976
36
13
12
1
0
199⅓
3.43
155
13
78
5
200
1.169
101
4.6
2.9
1977
33
14
13
0
0
247⅓
3.53
214
31
54
7
191
1.084
112
4.6
5.1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78
BOS
35
20
8
0
0
268⅓
2.99
258
30
71
7
162
1.226
139
3.9
7.3
1979
33
17
10
0
0
246⅔
2.99
234
29
59
6
150
1.188
149
4.4
7.2
1980
30
12
14
0
0
197⅔
4.28
188
25
44
2
121
1.174
99
2.9
2.1
1981
23
9
8
0
0
154
4.27
160
9
35
3
79
1.266
91
3.2
0.8
1982
33
13
13
0
0
224⅓
3.73
228
31
43
2
127
1.208
116
3.1
4.5
1983
28
9
13
0
0
176⅓
5.61
223
27
39
6
77
1.486
78
0.8
-0.4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84
BOS/CHC
33
14
12
0
0
225
3.60
223
21
49
5
114
1.209
110
3.2
4.2
1985
CHC
25
11
7
0
0
169⅓
3.08
145
15
19
3
117
0.969
129
4.3
4.6
1986
33
6
11
0
0
201
4.57
226
21
43
3
137
1.338
88
3.7
1.9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87
OAK
54
6
8
16
2
115⅔
3.03
99
11
17
3
113
1.003
137
3.4
3.0
1988
60
4
2
45
1
72⅔
2.35
52
5
11
1
70
0.867
163
2.3
2.3
1989
51
4
0
33
1
57⅔
1.56
32
5
3
1
55
0.607
239
1.7
2.6
1990
63
4
2
48
0
73⅓
0.61
41
2
4
0
73
0.614
603
3.2
3.3
1991
67
5
4
43
0
76
2.96
60
11
9
1
87
0.908
130
1.7
1.5
1992
69
7
1
51
0
80
1.91
62
5
11
1
93
0.913
195
3.1
2.9
1993
64
2
4
36
0
67
4.16
67
7
13
2
80
1.194
98
2.0
0.7
1994
45
5
4
19
0
44⅓
4.26
49
5
13
1
47
1.398
105
0.9
-0.2
1995
52
4
6
29
0
50⅓
4.83
53
5
11
1
40
1.272
905
0.9
0.0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96
STL
63
0
6
30
4
60
3.30
65
8
6
4
49
1.183
127
0.7
0.4
1997
57
1
5
36
0
53
3.91
49
9
8
2
45
1.075
107
0.3
0.2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98
BOS
50
4
1
1
9
39⅔
4.76
46
6
8
2
22
1.361
99
0.0
0.2
MLB 통산
(24시즌)
1071
197
171
390
17
3285⅔
3.50
3076
347
738
75
2401
1.161
113
61.8
62.2

7. 이야깃거리[편집]


  • 24시즌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으면서도 통산성적은 197승 171패 390세이브로 약간 미묘하다. 200승도 400세이브도 (살짝 낮지만) 넘지 못했고 100승 300세이브 동시달성... 그러나 최초의 전문 마무리 투수라는 역사적 의미 + 그가 활약한 1980년대 후반이 우수한 선발 투수들의 공백 시기였던지라 2004년에 83.2%라는 높은 지지율로 첫턴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직행한다.

  • 2010년까지만 해도 투수로서 리그 MVP를 차지한 마지막 선수였지만, 2011년 저스틴 벌랜더가 에커슬리 이후 최초로 AL 사이영상과 AL MVP를 수상한다.

  • 메이저리그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에 뛰었던 선수라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선수이지만, 현재 활약하는 수많은 1이닝 마무리 투수들의 원조라는 점에서 야구 역사에 남을 선수라 하겠다.

  • 야구끝내기(Walk-off)라는 표현을 최초로 사용한 선수이기도 하다. 해당 항목 참조.

  • 그의 가족사는 더 큰 아픔으로 점철돼 있다. 여동생은 2018년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형은 살인미수와 납치 등으로 1989년 법원으로부터 '48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두 번째 부인과 함께 살 때 입양한 22세 딸은 정신질환으로 현재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다. 에커슬리가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리는 유일한 부분이다. 그의 삶을 다룬 기사 그 노숙자 딸은 26살의 나이로 2022년 연말. 결국 사고 크게 쳤다... 이런 전설적인 선수가 어떻게 이렇게 가족 복이 없는 것인지...

  • 2021년 8월 19일, 잭 모리스오타니 쇼헤이를 향한 방송 중 실언으로 인해 밥줄이 끊기게 되자, 애커슬리의 안목이 재조명되고 있다. 실제로 애커슬리는 인종차별주의자를 아주 경멸했고, 선수 생활 중에도 실언을 하는 모리스를 보고 "쟤 나중에 일 내겠구먼." 이라고 일갈했는데 이게 실제로 발생했기 때문.

[1] 에커슬리는 상당히 과음하는 편이라서 이 당시에는 많은 이닝을 소화할만한 체력이 아니었다고 한다.[2] 존 스몰츠가 이 기록을 두번째로 달성한다. 체력 문제로 고생하다 마무리로 전업한 에커슬리와 마찬가지로 스몰츠 역시 선발로서 잘 나가다가 부상 때문에 마무리로 전업하여 성공한 케이스. [3]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감독. 당시 깁슨은 주루플레이를 하기도 힘들 정도로 부상이 심했던 상태라 라소다 감독이 대타를 냈을때 의문을 가지기도 했었다. 홈런을 치고 주먹을 불끈쥐고 절뚝거리며 그라운드를 도는 장면이 압권.[4] 당시 얼마나 상황이 극적이었냐면, 에커슬리는 8월 24일 이후로 홈런을 허용한 적이 없었으며, 9회말 2아웃 풀카운트까지 잡아놓은 상태였다.[5] 한국야구로 치면 역사상 손꼽히는 정상급의 마무리 투수 임창용이 삼성 시절인 1999년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펠릭스 호세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패한 것과 비슷한 장면인 셈이다. 하지만 임창용은 당시 심심하면 2~3이닝씩 던지며 경기를 마무리짓는 중무리였기에 그럴만도 했다. 당시 임창용은 마무리 투수가 100이닝을 넘길 정도로 심각한 혹사를 당했고, 가을야구에서도 던지느라 구위가 정규시즌 초반에 비해 매우 떨어진 상태였으니...[6] 프라이스가 에커슬리한테 한마디 할 때 박수치는 선수도 있었다고 하며, 프라이스는 에커슬리한테 욕설도 했다고(expletive) 한다.[7] 심지어 이 발언이 있은지 한달 정도인 7월에 부상을 당해 DL로 내려갔다.[8] 에커슬리의 해설 스타일이 대체적으로 비판적인 것 사실이나, 잭 모리스클레이 벅홀츠의 부정투구 의혹을 제기했을 때, 증거도 없이 뭐하냐는 말로 벅홀츠를 보호해주는 등 선수들이 사실과 다르게 비판받는 경우에는 보스턴 선수 편에 서서 보호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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