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경비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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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를 근거지로 했던 대한민국 육군 소속 사령부.
1969년 1월 18일 "동해안경비사령부"로서 창설되었다. 제1, 2유격여단을 배속받았으며, 같은 달 31일 강원도 삼척시로 이동했다. 이후, 강원도 동해안부터 경상북도 일부지역을 경비하였다. 이후 같은 해 8월 18일, 제1, 2유격여단이 육군특수전사령부로 전속하여 동해안경비사령부를 떠났다.
1974년 동해안방어사령부로 개칭되고 제1해안전투단이 신설, 1975년에는 제88보병여단과 제68훈련단이 신설되었다. 그리고 88보병여단에는 53, 55, 56연대가 예속되었다.
이후 1982년 8월 16일부로 제1해안전투단이 제88보병여단으로 흡수되면서 88여단이 제22보병사단으로 확대 개편되었으며 동시에 53, 55연대가 창설되었다. 또한 동해안경비사령부에서 8군단으로 개편되고 해체되었다.
참고로 전두환이 1979년 말 동해안경비사령관으로 올 뻔했다. 10.26 사태 이후 곳곳에서 월권행위를 하며 안팎으로 날뛰던 전두환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을 당시 한직으로 꼽히던 동해안경비사령관에 전보시키고자 노재현 당시 국방부 장관과 협의한 적이 있다. 그러나 군내 소문이 도는 정보망을 이미 꽉 쥐고 있던 전두환의 귀에도 당연히 이 이야기가 들어갔고 뚜껑이 열려버린 전두환이 정승화를 바로 체포해서 상황을 뒤엎은 것이다. 결국 12.12 군사반란으로 전두환은 권력의 핵심으로 등극했고 전두환을 날려버리려던 정승화는 역설적으로 비참하게 군복을 벗게 된다.
1. 개요[편집]
강원도 삼척시를 근거지로 했던 대한민국 육군 소속 사령부.
2. 특징[편집]
1969년 1월 18일 "동해안경비사령부"로서 창설되었다. 제1, 2유격여단을 배속받았으며, 같은 달 31일 강원도 삼척시로 이동했다. 이후, 강원도 동해안부터 경상북도 일부지역을 경비하였다. 이후 같은 해 8월 18일, 제1, 2유격여단이 육군특수전사령부로 전속하여 동해안경비사령부를 떠났다.
1974년 동해안방어사령부로 개칭되고 제1해안전투단이 신설, 1975년에는 제88보병여단과 제68훈련단이 신설되었다. 그리고 88보병여단에는 53, 55, 56연대가 예속되었다.
이후 1982년 8월 16일부로 제1해안전투단이 제88보병여단으로 흡수되면서 88여단이 제22보병사단으로 확대 개편되었으며 동시에 53, 55연대가 창설되었다. 또한 동해안경비사령부에서 8군단으로 개편되고 해체되었다.
참고로 전두환이 1979년 말 동해안경비사령관으로 올 뻔했다. 10.26 사태 이후 곳곳에서 월권행위를 하며 안팎으로 날뛰던 전두환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을 당시 한직으로 꼽히던 동해안경비사령관에 전보시키고자 노재현 당시 국방부 장관과 협의한 적이 있다. 그러나 군내 소문이 도는 정보망을 이미 꽉 쥐고 있던 전두환의 귀에도 당연히 이 이야기가 들어갔고 뚜껑이 열려버린 전두환이 정승화를 바로 체포해서 상황을 뒤엎은 것이다. 결국 12.12 군사반란으로 전두환은 권력의 핵심으로 등극했고 전두환을 날려버리려던 정승화는 역설적으로 비참하게 군복을 벗게 된다.
3. 편제[편집]
4. 사령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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